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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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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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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58,507

작성
16.12.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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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57. 재회

DUMMY

오늘도 먼산을 바라보고 있다.

태산 같은 기개가 어려있던 어깨는 예전의 모습일 뿐이다. 석양 빛을 받은 머리카락이 핏빛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

등뒤로 다가감에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발걸음 만으로 누군지 익히 알고 있을 터이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다.

“무얼 보고 있느냐?”

등뒤에서 물었다.

“지난 세월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 외에 제가 무얼 볼 수 있겠습니까?”

일체의 감정이 묻어있지 않은 담담한 어조지만 회주는 그 속에서 원망을 느낀다.

“몸은 어떠하냐?”

서천의 후예와의 격돌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었다.

“다 나았습니다. 회복을 바라지 않아도 몸이 저 혼자 회복되는군요. 제 마음을 몰라주니 제 몸이 아닙니다.”

“스스로에게로 향하는 원망은 내게로 돌리고 자중자애自重自愛했으면 한다.”

“사부께 원망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제 스스로 그리 된 것뿐입니다.”

회주는 제자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자기 스스로를 원망할 뿐이다. 착한 녀석이다. 하지만 예전의 그 따뜻함은 이제 없다.


그 일이 있은 후 산을 내려와 바로 얻은 첫 번째 제자다. 자질도 훌륭했고 심성心性도 착했다. 스승인 자신이 시키는 대로 성실히 수련했고 탁월한 성취를 이루어갔다.

하지만 스승의 마음은 급했다.

그들을 죽이진 않았다. 하지만 회복되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그나마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후계자를 키우는 것이다. 그리 되면 혼자서 그들을 모두 상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도 빨리 제자를 키워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도 손발이 필요했다.

제자의 성취속도는 탁월했지만 마음이 급했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더뎠다. 무리수를 뒀다. 그것이 성공하면 시간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무리수는 결국 무리수였다.

제자가 주화입마를 입었다. 그나마 자신이 돌보았기에 죽음을 면할 수는 있었지만 후유증으로 강력한 마성魔性 생겨버렸다. 마성이 머리를 지배하는 순간 제자는 이성을 잃고 딴 사람이 되었다. 살욕殺慾과 색욕色慾이 급격하게 샘솟았고 그런 욕망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제자는 스승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미욱하여 스승의 대계를 그르쳤다 생각했다. 제 정신일 때에는 여전히 수련에 매달렸다. 아마 수련을 통해 마성을 극복하는 길을 찾으려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수련에도 불구하고 마성이 찾아오는 주기는 조금씩 빨라졌고 머리카락도 더불어 점점 붉어졌다. 이제는 회주도 제자도 안다. 종내 완전히 마성이 머리를 지배할 것임을.



눈앞에 보이는 초옥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할아버지”

초옥 마당에 들어선 묵진휘가 큰 소리로 스승을 불렀다.

하얀 머리카락에 하얀 수염이지만 선비풍이라기보다는 일반 백성 같은 수수한 모습의 늙은 노인 한 사람이 방문을 열며 걸어 나온다.

“진휘냐? 벌써 왔느냐?”

목소리에 반가움이 그득하다.

묵진휘가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스승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묵진휘를 일으켜 세우더니 가만히 묵진휘 얼굴을 살폈다.

“많이 다친 게로구나”

“다 나았습니다.”

“이놈아 할아버지를 속이려거든 하늘을 속여라. 이리 손목을 내어 보거라”

스승이 묵진휘의 손목을 잡아채 마당에 있는 평상平床으로 끌고가 앉더니 맥을 짚기 시작했다. 아니 자신의 내기內氣를 묵진휘에게로 흘려 보내 묵진휘의 몸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몸 속에서 인위적인 뭔가가 터졌구나. 권拳이나 장掌으로 인한 상처가 아니다. 다행히 묵운내기墨雲內氣가 자발自發하여 이 정도인 것이 천행이로구나.”

스승이 놀라며 잡았던 손목을 놓곤 묵진휘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그 동안의 일을 묻는 것이다.

묵진휘가 산을 내려간 뒤부터 상처를 입기까지 자신이 겪은 일을 소상히 말했다. 그리고 복거유를 스승께 인사시켰다.

“일년 남짓 짧은 순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시간을 가지고 차근차근 뜯어보도록 하자구나. 우선 푹 쉬거라”

스승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사양하는 묵진휘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진휘를 데려 와서 고맙네. 자네도 우선 푹 쉬게”

스승이 복거유에게도 빈 방을 하나 내 주었다.


다음날 새벽같이 묵진휘가 눈을 떴다. 스승의 강요로 일찍 잠자리에 들어 푹 쉰 탓도 있었지만 옛집이 주는 포근함이 피곤을 순식간에 걷어낸 탓이다.

묵진휘가 마당을 돌아 자신이 수련하던 조그만 공터에 다다랐다. 늦봄의 포근함에 신록이 무르 익어가고 있었다.

묵진휘가 선채로 묵운기墨雲氣를 최대한 천천히 일주천 했다. 묵운기는 묵운내기와 묵운외기로 구분할 수 있었다. 묵운내기는 항상 몸 속에만 존재하며 묵진휘의 뜻(意)에 따라 운공되기도 하고 스스로 운공되기도 했다. 즉, 의발意發과 자발自發이 모두 가능하며, 묵진휘의 몸 밖으로 표출되는 묵운외기와 조응調應했다.

묵운외기墨雲外氣가 가만히 묵진휘의 몸 밖으로 빠져나가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그리곤 자연의 기운과 조응했다. 묵진휘가 가만히 손을 뻗어 묵천외기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묵진휘가 창출한 공간은 자연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묵진휘가 전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곤 다시 손을 뻗어 창출한 공간을 지웠다.

이번에는 몸 속의 묵천내기를 의념(뜻)으로 운용하여 묵천외기와 조응케 했다. 이제 묵천외기가 묵진휘의 의념에 따라 묵천내기와 조응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했다.

묵진휘는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일년 전 하산할 때보다 창출되는 공간이 넓었고 손쉽게 창출할 수 있었다.

“많이 발전했구나”

뒤에서 스승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 뻗어간 묵천외기를 통해 스승의 존재를 이미 느끼고 있었다. 묵진휘가 순식간에 의념을 끊어 공간을 지웠다.

“여전히 조잡할 뿐입니다.”

“할애비도 네 나이 땐 손바닥만한 공간 정도를 잠시 만들어 봤을 뿐이다. 그것도 묵운외기를 직접 운용하여 그리한 것이지. 너처럼 의념으로 묵천내기와 묵천외기를 조응시켜 그리 큰 공간을 만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경지다. 대견하구나. 하하”

“제가 느끼기에도 일년 전 하산 때보다 공간이 조금 커진 듯 합니다. 산에서 지낼 때보다 아무래도 수련이 적었는데 오히려 조그만 진전이 있는 게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의심하지 말거라. 세상이 그런 발전을 이루어준 것이다.”

스승의 말에 묵진휘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스승을 바라봤다.

“묵운신공은 생각이 깊어질수록 위력이 증대된다. 기본적으로 의념意念에 바탕을 무공이기 때문이지. 물론 처음에는 묵운신공 자체를 수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련을 통해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어찌 의념으로 호응케 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수련을 통해 제대로 익힌 후에는 생각의 깊이를 통해 의념을 키우고 그 의념과의 교감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에 묵운신공의 공능이 좌우되지. 내가 너를 세상에 내려 보낸 이유이니라.

너는 오랜 수련으로 묵운신공을 제대로 익혔다. 다만 사유思惟를 통해 의념을 키워야 했지. 하지만 사유라는 것은 하려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세상과 접촉함으로써 의문을 갖게 되고 그 의문과 싸워나가는 과정이 사유의 과정인 게지. 다행히 일년이란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험과 의문을 갖게 되었더구나.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우연을 만났으며, 이황야를 뵙고, 네 과거를 알게 되었고, 적을 만나 격전을 치루고 종내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러 봤으니 그 속에서 행한 많은 고민이 너의 발전을 이룬 게야. 하하하. 정녕 하늘이 도우시는 게지”

스승님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날 밤, 스승님이 묵진휘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작고 소박한 방에는 침상과 조그만 탁자 그리고 조그만 서랍장 하나가 놓여 있었다. 묵진휘가 의자에 앉자 스승이 탁자에 놓여 있던 조그만 상자 하나를 묵진휘에게 건넸다.

“열어보거라”

묵진휘가 상자를 열어보니 투명하면서 밝은 연두색 빛이 나는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모양이 조금 신기했다. 길쭉한 사각형을 기울여 밑면을 바닥과 평행하게 잘라내고 다시 윗면도 밑변과 나란한 방향으로 잘라 놓은 모양이었다. 측면에는 불규칙하게 미세한 홈과 돌기들이 있었다.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네 목에 있던 것이다. 한눈에 봐도 귀한 물건인지라 내가 맡아서 보관하고 있었다. 어제 네 말을 들어보니 혹 이 목걸이도 여러 사람들이 찾던 삼각과 사각목걸이와 연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묵태부께서 전임 황제의 신하셨다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이제부터 네가 보관하면서 알아 처리하거라”

스승이 건네는 목걸이를 묵진휘가 가만히 들여다본다. 목걸이에 자신의 진짜 할아버지인 묵태부의 얼굴이 희미하게 겹쳐지며 묵진휘의 눈을 뿌옇게 흐려놓았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본적이 없으니 항상 희미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스승께서 다시 다른 얘기를 꺼내셨다.

“네가 세상을 구경하면서 아직 붉은 강기, 노을 빛 강기, 푸른 강기를 보지는 못한 듯 하구나.”

“예. 그런 색의 강기를 본 적은 없습니다.”

“옛날 이 할애비에게 세 명의 친구가 있었다. 그들이 각기 붉은 빛 , 노을 빛, 푸른 빛 강기를 사용했지. 각기 북천, 서천, 남천이라 불렸다. 아마 나처럼 모두 전인傳人들을 두었을 게다. 하지만 한 친구가 딴 마음을 먹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상처입고 불행하게 헤어지고 말았지. 딴 마음을 먹은 친구가 붉은 빛 강기를 사용한다.

진휘야~ 다시 세상에 내려가서 그런 색의 강기를 본다면 붉은 색 강기를 사용하는 자는 무조건 조심하거라. 반면 노을 빛 강기와 푸른 강기를 보거든 친구로 여겨도 좋다. 그들도 네 묵빛 강기를 본다면 기뻐할 것이다.”

스승의 얘기는 길지 않았지만 어떤 얘기를 할 때보다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이었다. 묵진휘도 고개를 끄덕였을 뿐 자세한 내막은 묻지 않았다. 필요하면 다시 말씀하여 주실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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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5. 회오리 +2 16.12.30 3,816 5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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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3. 숙원宿願 +2 16.12.29 3,515 5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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