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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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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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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1
글자수 :
1,158,507

작성
16.12.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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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51. 멸구滅口

DUMMY

“아이구~ 삭신이 쑤시는 구나”

“여기 좀 주물러줘~”

항백과 경표가 연신 엄살을 떨고 있었다.

항주에서 복면인들과 격전을 벌인 후 조장인 두원이 조원들에게 새벽마다 특별 수련을 지시한 탓이다. 부딪혀 본 적들의 실력이 예상보다 높았다.

기실, 삼조는 표국들을 기습한 흉수의 단서를 찾고 있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흉수로 지목된 적발인의 무공은 초절정 수준으로 삼조에서 감당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너무 격차가 나면 대책도 수립되지 않는다. 두원은 조원들을 수련시킨다고 적발인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항주에서 부딪혀 본 세력은 달랐다. 물론 그들이 적발인과 동일한 세력인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어쨌던 적으로서 앞으로 얼마든지 부딪힐 수 있는 세력이었다.

두원은 앞으로 닥쳐올 태풍을 예감했다. 나름 강호에서 칼밥을 먹으며 얻은 감각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조원을 잃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조장으로서 조원들은 지키고 싶었다. 새벽 특별 수련을 지시했다. 자신도 동참했다.

며칠 계속된 특별 수련에 항백과 경표가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항백과 경표가 서로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며 수선을 떨고 있을 때 조장인 두원이 들어왔다.

두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출장보고를 다시 써야겠다.”

두원이 얘기했다.

“잘못된 게 있습니까?”

항백이 조심스레 물었다.

“경비 지출이 너무 많단다. 기루 출입하면서 사용한 것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소명자료를 충분히 제시하란 군사부軍師部의 지시다.”

“작전상 어쩔 수 없었지 않았습니까?”

항백이 발끈했다.

“그렇게 얘기했지만 다른 작전을 수립할 수도 있었지 않았냐고 하더구나. 달리 그 놈과 긴말 섞기 싫어 그냥 왔다.“

“그 놈이 누굽니까?”

항백이 두원에게 따지 듯 물었다.

“그 왜 있잖아? 기생오라비 처럼 생긴 모용 뭐라는 놈 말이야. 그 놈이 군사부 조장으로서 재정財政과 인사人事를 담당하고 있다더군.”

옆에 있던 경표가 빈정댔다.

“모용세가 모용기 말인가? 그 친구는 이현 또래잖아? 벌써 조장이야?”

항백이 되물었다. 항주 작전을 마치고 서로 친해진 조원들은 남궁이현의 요청으로 몇 살 아래인 남궁이현에게 말을 놓았다.

“그렇다네. 오대세가 출신 아닌가? 군사부에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모용기가 아주 밉살스럽게 구나 봐”

경표가 언짢다는 듯 대꾸했다.

“오대세가도 오대세가 나름이지요? 모용공자하고 남궁공자하고 어떻게 비교해요? 지금 남궁공자가 없는 자리라고 뒤에서 흉보는 거예요?”

옆에 있던 당수진이 발끈하며 나섰다.

“비교하기는···비교가 되기나 하는가?”

“암···비교라니. 모용기가 가물가물한 별이라면 이현은 태양이고 모용기가 입 속에서 나오는 한숨이라면 이현은 태산도 뒤엎는 태풍이지.”

항백과 경표가 급히 수습에 나섰다.

그렇게 당수진의 불이 꺼지려는 찰나 조장 두원이 당수진의 불을 활화산처럼 만들었다.

“참, 자네를 군사부로 발령 내려는 모양이던데?”

두원이 갑자기 생각난 듯이 당수진을 보며 말했다.

“네? 누···누가요?”

당수진이 더듬기까지 했다.

“이번 항주 작전이 위험했다면서 여성인 자네를 후방부서인 군사부軍師部로 돌리려는 모양이야? 모용조장이 그러던데?”

“이런 미친 작자를 봤나? 내가 지보고 내 걱정해달래? 어디서 썩어빠진 동태 눈깔을 달고 다니는 작자가··· 조장님, 그 출장보고 저 주세요. 제가 담판을 짓고 오겠어요”

당수진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두원으로부터 출장보고를 빼앗다시피 들곤 방문을 나섰다.

“킬킬킬···오늘 모용기 제삿날이구나.”

“덕분에 우리는 출장보고 다시 쓰지 않아도 되겠군. 크큭”

당수진이 나간 뒤 항백과 경표가 떠들썩하니 웃고 두원도 피식 웃음을 날렸다.



벽에 띄엄띄엄 걸려 은은히 타오르는 횃불 몇 개를 빼면 빛 한 점 없는 습기 찬 곳이다. 점혈 당해 이동되었기에 이곳이 동굴인지 지하인지 조차 장세모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무림맹의 감옥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생포된 다른 독립검수들도 이곳에 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벌레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장세모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다. 사실 눈을 뜬 들 별반 보이는 것에 큰 차이도 없었고 보이는 것도 없었다.

이제 격정적인 감정도 많이 가라 앉았다. 처음에는 생포된 현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잠들었다 꿈이겠지 하면서 눈을 뜬 적도 수 차례 있었다. 하지만 싸늘한 바닥의 냉기가 현실임을 먼저 가르쳐주었다. 조직에 대한 서운함, 유인한 자들에 대한 분노 등이 휘몰아쳐왔었다.

하지만 이젠 오히려 담담했다. 체념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유력한 방법임을 요즘에서야 깨달았다.

아직 놈들은 본격적인 심문을 시작하지 않았다. 생포된 직후 이름과 소속 등에 대한 간단한 신문이 있었으나 장세모는 입을 굳게 다물고 한마디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조직에 대한 섭섭함이 있었지만 조직에 대해 누설하지 않을 작정이다. 실패에는 관대한 조직이었지만 배신이나 거짓에 대해서는 냉혹했다.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조직에 대한 배신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가족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수십 년간 몸담았던 조직을 배신하는 것은 그 동안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조금 섭섭하다고 배신할 수는 없었다.

장세모는 그런 각오를 다지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러 명이다. 그들이 다가오는 소리에 비례해 어둠도 물러나고 있었다. 무수한 횃불이 발자국 소리와 함께 다가 오고 있었다.

몇 사람이 창살 앞에 와서 섰다.

“고개를 들어라”

중년의 목소리였다. 장세모가 고개를 들었다.

“이름과 소속을 대라”

그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장세모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쉽게 입을 열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본격적인 심문이 시작되면 결국 입을 열 것입니다.”

그 목소리가 같이 온 누군가에게 말했다.

창살 밖에 있는 사람들은 무림맹주, 두 부맹주, 당주들과 총군사 및 군사부에서 취조를 담당하는 책임자, 뇌옥 관리 책임자들이었다. 통상 무림맹의 수뇌부가 직접 뇌옥을 오지는 않는다. 비록 자신들이 운영하는 뇌옥이지만 뇌옥 자체가 불쾌한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 뇌옥이 완공되었고 그 첫 수감자가 장세모였기에 수뇌부들은 뇌옥에 대한 시찰 차 방문한 것이다.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장세모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고 추가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런 사이에 장세모의 귀에 나직한 전음이 들려왔다.

[장부전주는 다른 기척을 내지 말고 가만히 내 말을 들으시오.]

장세모가 흠칫했으나 전음대로 다른 기척을 내지 않았다.

[밖의 가족들은 걱정하지 마시오. 우린 장부전주의 조직에 대한 충성을 충분히 잘 알고 있소. 내가 이곳에서 장부전주를 빼내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오. 곧 심문이 시작되면 괜한 고초를 겪게 될 것이오. 다음 번 식사를 잘 살펴 보시오. 그럼 이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겠소]

조금 있다 창살 밖의 일행들이 떠났고, 장세모의 눈에서 조용히 눈물이 흘러 내렸다.

‘차라리 저번에 좌천되었더라면···’

후회가 밀려 들었다.

‘언제부터 일이 이렇게 된 것일까?’

의문도 일었다. 생각이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대항상단에 나타난 목걸이, 대공자의 부상, 사절과 무정도의 죽음, 삼공자의 죽음, 목걸이를 훔쳐간 그 놈···

그렇다. 산동 제남의 종삼각에서 목걸이를 훔쳐간 그 놈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기실 자신은 그 놈의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 갑자기 그 놈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것은 그 놈의 의도였던가? 우연이었던가?


다음 식사가 들어왔다. 멀건 죽이다. 뇌옥에 있는 자신에게 좋은 음식을 줄리 없을 뿐만 아니라 혀를 깨물고 자결하는 것을 방지하지 위해 아혈을 짚어 턱 근육을 강하게 사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음식을 씹기도 어려웠다. 다만 죽을 목으로 흘려 넣을 뿐이다. 비참했다. 포로는 비참한 것이다.

장세모가 죽을 이리저리 뒤졌다. 조그만 검은 환丸 하나가 있었다. 독약일 것이다.

새삼 조직의 치밀함에 놀랐다. 무림맹 고위직에 조직의 첩자가, 정보를 담당하는 부전주인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잠입해 있다니···

하지만 이제 그런 놀람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장세모는 자신의 생각에 잠겼다.

죽을 먹고 환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환을 바로 먹을 것인가?

생각하니 죽이 생의 마지막 음식이라 먹고 싶기도 했고 곧 죽을 몸이 먹어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세모가 피식 웃었다.

어느 누가 죽음 직전, 자신의 진지한 마지막 고민을 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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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5. 난주 격돌 3 +2 17.01.05 3,177 5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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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3. 숙원宿願 +2 16.12.29 3,514 54 11쪽
53 52. 결별의 시작 +2 16.12.29 4,186 55 11쪽
» 51. 멸구滅口 +4 16.12.27 4,207 57 9쪽
51 50. 위장 +3 16.12.27 3,554 5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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