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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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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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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4.01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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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정저지와井底之蛙

DUMMY

출발한 객잔으로 다시 돌아온 주은백과 유혜연 일행이 탁자 위에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았다. 유긍연과 주은백이 통성명을 나눈 뒤였다.

“어떻게 된 일이냐?”

파파 서은후가 주은백에게 물었다.

“들으신 대로 입니다. 집안의 원수가 한중漢中의 흑도방주인줄 알았지만 그 배후에 적발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신 후, 그 적발인을 찾아 나선 길에 파파와 유소저를 만난 겁니다. 다만, 그런 말씀을 드리진 않았죠. 그리고 무한에서 파파와 헤어진 뒤로 북쪽을 여행하다 우연히 적발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중에서의 일을 물었더니 알고 있더군요. 집안의 원수가 분명했습니다. 당연히 검으로 결판을 내려 했습니다만 그 자의 무공이 저와 동급이라 당시엔 양패구상兩敗俱傷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인근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보살핌을 받아 겨우 몸을 수습한 후 사부와 수련하던 산으로 들어가 다시 무공수련에 집중했고 하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못 지켜 죄송합니다.”

주은백이 그간의 일을 간단히 설명하자 파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된 것이로구나. 내게 죄송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아이에게 미안해야 할 것이다.”

파파가 유혜연을 가리키며 말하자 유혜연이 손을 가볍게 저으며 받았다.

“미안해 하실 일이 아닙니다. 몸이 상하셨을 뿐만 아니라 부모의 원수를 두고 어찌 하찮은 약속에 연연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오. 정말 미안하오. 사내의 약속은 일천금一千金의 값어치가 있다고 했는데 이를 지키지 못했으니 유소저께 큰 빚을 진 셈이오.”

주은백이 다시 한번 유혜연에게 사과했다.

“그 말 잊지 마시오. 내 동생에게 큰 빚이 있다는 말. 만일 잊으면 내 가만 있지 않으리다. 하하하. 그나저나 우리는 구면舊面이지요?”

유긍연이 호탕하게 웃으며 특유의 넉살로 주은백을 반겼고, 주은백도 유긍연의 호의好意를 느낄 수 있었다.

주은백은 유긍연을 보면서 남궁이현을 떠올렸다. 남궁이현이 명문가의 교육을 받은 반듯한 젊은이로서 상대에게 신뢰를 주는 유형이라면, 유긍연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거리낌과 구김살이 없어 상대에게 유쾌한 기분을 주는 유형이었다. 둘의 성격과 성향은 사뭇 달랐지만 주은백은 둘에게서 비슷한 느낌의 호감을 가졌다.

“그렇소. 장안 객잔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소.”

주은백이 유긍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주은백은 그때 유긍연 등에게서 익숙한 기운을 느꼈었는데, 그것이 파파를 통해 익숙해진 마도의 기운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너희들도 만난 적이 있단 말이냐?”

파파가 되묻자 유긍연이 부연敷衍했다.

“장안 객잔에서 저는 나가고 주대협은 들어오면서 잠깐 스친 적이 있습니다. 말을 건넨 적은 없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묘해서 특별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때 유대협 외 다른 세분도 계셨는데 그 분들의 기도도 엄청나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은백이가 우리와는 인연이 깊구나. 같이 있던 이들은 삼마존이었군.”

“그렇습니다.”

주은백의 얘기에 파파가 삼마존임을 짐작하자 유긍연이 그렇다고 답했다.

“적발인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어찌 알았는가?”

파파가 다시 주은백에게 물었다. 주은백은 상정문 얘기를 할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서설란 얘기는 빼고 하기로 했다.

“정보를 파는 상정문이란 곳을 통해 알았습니다.”

“상정문? 중원에도 제법 실속 있는 정보망이 있군 그래.”

서은후가 대수롭지 않게 상정문 얘기를 흘려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파파가 또 주은백에게 묻는다.

“어찌할 지 생각을 좀 해보려 합니다.”

“적발인이 말한 그자의 사부에 대한 생각 말이냐?”

“그렇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말리진 않겠다만 당장 급하게 행동할 것은 없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다니도록 하자. 저번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서은후가 주은백이 딴소리 하지 못하도록 저번 약속을 끄집어 내어 매조지자 주은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하겠다는 의사를 표한다. 기실 주은백도 다른 계획은 없는 편이었다. 남궁이현을 찾아 간다고 했지만 언제까지라는 기약을 정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은백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혜연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고 유긍연이 그런 동생을 신기한 듯이 바라봤다

“우리는 술이나 한잔 하는 것이 어떻겠소?”

유긍연이 주은백에게 대뜸 제안했다.

“해가 아직 창창한데?”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술 한잔이 없을 수가 없지. 술은 사람을 가려 마시는 것이지 시간을 가려 마시는 것이 아니란다.”

유혜연이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되묻자 유긍연이 새로운 주론酒論을 제기했고 파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리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당사자인 주은백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긍연이 파파를 향해 싱긋 웃으며 점소이를 불러 기어이 술을 시켰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적발인을 상대할 때 보였던 자네 무공 이름을 물어도 되겠는가?”

주은백에게 술을 따르면서 유긍연이 넉살 좋게 어느덧 주은백을 자네라고 칭하였지만 주은백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대답했다.

“무공의 이름은 나도 모르오. 사부께 들은 적도 없고 물은 적도 없소. 다만, 마지막 초식은 풍정風精이라 하오.”

“풍정이라? 바람의 정수란 말인가? 그 초식에서는 바람이 일지 않았는데?”

“내 대부분의 초식은 바람이 일지만 풍정에서만은 바람이 없소.”

주은백이 숨기는 것도 없이 얘기한다. 타인의 무공에 대해 묻는 유긍연이나 거리낌 없이 대답하는 주은백이나 통상의 무인과는 달랐다.

“나는 도대체 천마天魔조사께서 만든 무공 외에 그런 상승의 무공이 중원에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무공을 만든 것입니까?”

“세상은 넓단다.”

유긍연이 파파 서은후에게 술을 따르며 묻자 서은후가 간단히 답한다. 사실 그것 이상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유긍연은 주은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태연히 천마天魔라는 말을 쓴다. 만일 중원 무림에서 천마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여간해선 세상일에 나서지 않는 소림사 조사동祖師洞의 늙은 고승高僧들까지 모두 뛰쳐나왔을 것이다.

“자네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젊은 사내를 만난 적이 있지. 그도 강했다네. 자네가 사용하는 무공과 그의 무공이 다르니 사문이 같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비슷한 느낌이 든단 말이야.”

유긍연이 묵진휘를 만난 소회所懷를 말했지만 아직 묵진휘를 대면한 적이 없는 주은백으로서는 알 길이 없는 말이었다.

유긍연은 사실 주은백에게도 비무를 청하고 싶었지만 파파 서은후와 유혜연이 있어 참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주은백이 서은후에게 묻는다.

“북경으로 가는 길이다. 물론 우리는 길을 달리해도 되지.”

“아닙니다. 가시는 길을 가시지요. 저도 황궁은 구경한 적이 없습니다.”

주은백은 황궁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다. 하지만 지난 약속을 어겼으니 이제 파파와 유혜연의 뜻대로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중원에는 고수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나올 때마다 엄청난 고수들을, 그것도 젊은 고수들을 만나니 솔직히 제가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평소와는 다르게 유긍연이 서은후에게 기운 빠진 얘기를 했다. 주은백과 유혜연은 산책을 위해 객잔 뒤뜰에 나간 뒤였다.

“그렇다. 강호에는 정말이지 숨은 기인이사들이 많지. 하지만 우리 또한 강하다. 이 할미는 지금까지 선대 교주와 현 교주에 버금가는 고수를 본 적이 없느니라.”

“하지만 주대협이 보여준 신위는 놀라운 것입니다. 비록 한치의 차이가 있었지만 적발인의 무공도 대단했구요. 적발인의 말대로 적발인의 스승이 무서운 고수라면 아버님 못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일 주대협의 스승이 살아 계시다면 그분은 또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일전에 북경에서 만난 젊은 고수 역시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사람의 스승이나 사형, 사제들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 또한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유긍연에게 묵진휘와 주은백을 만난 충격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은백이나 적발인이 또한 너와 사령주의 무공을 견식한다면 그들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극을 받는 것은 좋으나 또한 다른 사람을 곁눈질해서 비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하. 할머니 말씀에 힘이 납니다. 저도 겸손을 배울지언정 결코 포기나 자기비하自己卑下 하진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마교의 소교주입니다. 제가 저를 낮춘다면 십만 마교도인 모두를 낮추는 것이지요.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유긍연의 얼굴에 평소의 장난기가 사라지고 다부진 각오가 서렸다. 애초 유긍연이 나약한 인물이 아닌 것이다. 그런 유긍연의 태도를 보는 서은후의 얼굴에 웃음이 퍼졌다. 교주의 자리는 무공만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명감과 책임감이 더욱 중요하다. 젊은 나이를 감안한다면 유긍연은 실로 위대한 교주가 되기에 충분한 그릇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은백이와 혜연이가 잘 어울리지 않느냐?”

서은후가 유긍연의 심중을 묻는다. 유혜연의 배필로 주은백을 고려할 때 교주의 의사와 더불어 오라버니이자 소교주인 유긍연의 태도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유긍연이 주은백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면 혼사는 어려워질 것이다. 차라리 교주의 반대는 유혜연이 떼를 쓴다면 해결될 수 있지만 유긍연에게는 떼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혜연이 얼굴에 밝은 웃음이 되돌아 오는걸 봤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이제부터 주은백이 절대 도망가지 못하도록 묶어 놓을까 생각 중입니다. 하하하.”

유긍연이 너스레를 뜬다. 마음에 든다는 의미다. 그리곤 예의 활기찬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이어 말한다.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선 마교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마교에서 중히 여기는 무공 또한 혜연이의 배필감으로는 오히려 넘칩니다. 진솔하고 진중한 성격이 남자답기도 하구요. 다만, 사람이 재미가 조금 없는 것 같습니다. 하하.”

유긍연의 말을 파파가 받았다.

“무한에서는 무척 재미있었는데 그 사이 무거워졌구나. 다시 본래의 성격으로 돌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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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 정저지와井底之蛙 +3 17.04.01 2,754 43 11쪽
125 124. 또 위기 +2 17.03.30 3,197 48 10쪽
124 123. 허정虛穽-빈 구덩이 +3 17.03.27 2,784 55 11쪽
123 122. 무인武人과 정치인政治人 +2 17.03.25 2,855 44 11쪽
122 121. 속죄贖罪 +2 17.03.23 2,772 48 11쪽
121 120. 풍정風精 +2 17.03.21 2,798 49 11쪽
120 119. 재회再會 2 +2 17.03.19 2,858 49 10쪽
119 118. 패거리 +4 17.03.17 2,953 49 10쪽
118 117. 무복武服 +3 17.03.15 3,074 47 9쪽
117 116. 승상부丞相府 +4 17.03.13 3,060 42 10쪽
116 115. 쪽지 +2 17.03.11 2,980 4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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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113. 감탄고토甘呑苦吐 +3 17.03.07 2,993 4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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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106 105. 전략戰略 +2 17.02.17 3,227 48 11쪽
105 104. 절체절명絶體絶命 +2 17.02.15 3,163 46 12쪽
104 103. 호위 +2 17.02.13 3,329 5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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