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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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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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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58,507

작성
17.03.0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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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3
추천
47
글자
10쪽

112. 눈물

DUMMY

백의 사내의 옷에서 흰 부분보다 붉은 부분이 더욱 많아졌다. 특히 오른 팔 소매는 아예 흰색이보이지 않았다. 옷이 피로 얼룩진 것이다. 그래도 사내 중에서는 그의 상태가 가장 나아 보였다.

흑의 사내는 입가에 선혈을 흘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른 허벅지에서도 붉은 피가 넘실넘실 흘러나오고 있었고, 적의 사내의 어깨와 왼 옆구리에서도 붉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고 있었다.

황의 사내의 상태는 더욱 엄중했다. 옆구리와 가슴에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는데 피도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검으로 땅바닥을 짚고 있는 것으로 봐서 더 이상의 기력이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반면 청의 여인의 옷도 너덜너덜 찢어지긴 매일반이고 상처 곳곳에서 피가 베어 나오고 있었지만 그리 중한 상처는 없어 보였다. 그녀의 무공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탓인지 묵진휘가 여인이라고 배려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반면 묵진휘의 옷에는 먼지 하나 묻지 않았고 무표정한 얼굴에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괴물 같은 놈이다. 크윽”

황의 사내가 신음 속에서 말을 뱉었다.

“우리 오의붕경의 합격술과 보이지 않는 도움에도 불구하고 옷깃 하나 베지 못하다니. 크하하하”

적의 사내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명백한 패배는 오히려 대범한 수긍과 이어지는 법이다. 적의 사내 말대로, 대결 곳곳에서 오의붕경이 위중한 순간 숲 속에서 암기가 묵진휘를 향해 날아 들었으나 이미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묵진휘에게 암기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진 못했다. 다만, 오의붕경의 목숨을 한치씩 지연시켜줄 뿐이었다.

“정말 대단하군. 강호에 기인이사들이 강변의 모래알처럼 많다더니, 믿지 않았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어. 큭큭”

흑의 사내도 쓴 웃음을 뱉었다.

“자~ 마지막을 장식하도록 하지. 화사한 봄날이 죽기에는 딱 좋은 날씨로군.”

백의 사내가 마지막까지도 풍류를 즐기려 했다.

묵진휘도 마지막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시 검을 고쳐 잡고는 검 끝을 사선으로 하늘을 향하게 했다. 가장 기본적인 기수식의 모습이었다.

묵진휘가 다시 기수식을 취하자 검을 땅에 대고 있던 황의 사내도 마지막 남은 힘으로 검을 고쳐 잡았다.

반면, 가장 몸 상태가 좋은 사람은 청의 여인이었으나 청의 여인은 별다른 자세를 잡지 않았다. 원래 검을 사용하지 않고 비수를 무기로 사용했는데 지금 품속에 남아 있는 비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싸움이 벌어지면 그냥 옆에서 구경만 할 리는 없을 것이다.

묵진휘가 다시 한번 오의붕경을 향해 도약하려 할 때 마차가 있는 곳에서 한 가닥 애절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노~”

공녀의 애절하고 먹먹한 소리였다.

“가라. 늙은이가 쓰러졌다. 우리 싸움은 여기까지로 하자. 대신 오늘의 패배는 다음에 철저하게 돌려주마.”

청의 여인이 묵진휘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콧소리 섞인 교소도 없었고 담담한 목소리도 없이 싸늘하기만 했다.

“안돼, 놈과 끝장을 봐야지.”

황의 사내가 청의 여인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 병신아, 네 꼬라지를 보고 그런 얘기를 해라. 지금 상태론 가만 둬도 죽을 놈이 끝은 무슨 끝이야. 염병할~”

청의 여인이 황의 사내에게 욕설을 퍼부었는데, 그 목소리에는 콧소리 대신 희미한 울음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묵진휘도 청의 여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묵진휘가 청의 여인을 한번 쳐다보고는 마차 쪽으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청의 여인은 묵진휘의 눈빛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위로한다는 느낌을 순간 가졌으나 이내 쓸데없는 생각이라 여기곤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내곤 황의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묵진휘가 마차 있는 곳으로 오니, 소노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양측의 싸움은 잠시 중단되었다. 각자의 우두머리가 땅바닥에 쓰러졌으니 서로 수습이 필요했던 것이다.

호위무사의 무릎에 기댄 채 누워있는 소노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가 깊이 박혀 있었다. 다행히 심장은 살짝 비켜갔으나 풀어헤친 옷 사이로 살이 검게 변해 있었다. 비수에 독이 발려 있었던 것이다.

“소노~ 괜찮으신거죠? 그렇죠?”

공녀가 소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소노의 손을 잡았다.

“헐헐~ 괜찮고 말고요. 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끄응~”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소노였지만, 독이 퍼지는 고통이 큰지 끄응하는 신음소리까지 숨기진 못했다.

묵진휘가 동창 무인들을 노려보자 무인들이 자기들 우두머리를 둘러매곤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더니 숲 속으로 사라졌다. 묵진휘와 오의붕경과의 격돌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상대할 사람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다. 이미 오의붕경도 보이지 않았고 숲 속의 보이지 않던 눈도 사라지고 없었다.

묵진휘가 공녀로부터 소노의 손을 넘겨받아 맥을 짚었다. 극렬한 맹독이 전신 곳곳으로 퍼지고 있는 중이었다. 묵진휘가 묵운내기를 소노 몸 속으로 운용해 맹독을 막으려 하자 이를 감지한 소노가 다른 한 손을 흔들며 묵진휘를 말렸다.

“그럴 필요 없네.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은 다한 셈이야. 끄응~. 아가씨 곁에 자네가 있으니 이젠 아가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야. 헐헐.”

그리곤 묵진휘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가만히 뺐다.

“못난 저 때문에 어르신께서 이 고초를 겪으시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크흐흑.”

소노로 인해 목숨을 구한 호위무사가 옆에 있던 다른 호위무사로부터 정황을 전해 듣곤 소노 곁에 엎드려 굵은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 늙~은 목숨이 가고 젊은 목숨이 계속 살아야 함은 헉헉~ 자연의 이치라네. 내가 이리 가는 것도 자연의 이치인 게지. 헉헉~ 결코 자네 탓이 아니네. 절대로 자신의 탓으로 여기지 말게. 허~억.

소노가 젊은 호위 무사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자 젊은 무사가 알겠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한없이 주억거렸다.

처음 오의붕경이 일대일 대결을 제안했을 때 젊은 호위무사 한 명이 나서 청의 여인의 손에 죽는 것을 말리지 않았던 소노였지만, 그것이 무인의 숙명이라고 했던 소노였지만, 소노 역시도 젊은 무사의 죽음을 실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목숨과 젊은 목숨을 맞바꾼 것이다.

“소노~”

공녀가 목이 메이는지 소노를 부르곤 말을 잊지 못했고 곁에 있던 냉보모가 가만히 공녀의 어깨를 안았다.

“헉헉~ 내게 약속해주게. 아가씨를 지켜 주겠다고, 헉헉”

소노의 숨결이 미약해지고 있었지만 묵진휘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불꽃 같은 마지막 기운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마지막 생기生氣를 사용해 묵진휘의 대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묵진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묵진휘의 눈에도 습기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고맙네. 끄응~ 헉헉~”

소노가 마지막 숨을 토해내며 하늘을 올려다 봤다.

“잘 가시오, 소노. 그동안 고마웠소.”

냉보모가 눈물로 얼굴을 적시며 마지막 인사를 하자 소노가 고개를 겨우 돌려 냉보모를 쳐다보며 싱긋 웃는 듯했다.

“어른신, 편히 가십시오.”

서홍이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하자 역시 고개를 겨우 움직여 서홍과 눈을 맞추었다.

“소노~ 감사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공녀가 냉보모 품에서 빠져 나와 엎드린 채로 소노에게 절을 했다. 하지만 내려간 고개가 다시 올라오지는 않았다. 가녀린 어깨가 들썩이면서 울음을 참는 나지막한 신음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소노가 눈을 감았다. 편안한 모습이었다. 입가에는 여전히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묵진휘가 고개를 들어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봤다. 눈부시게 빛나는 봄 햇살이었다. 그것은 소노의 웃음이었다. 이제 소노는 눈부시게 푸르른 봄 햇살 속에서 살리라.


소노는 갔지만 공녀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묵진휘가 가만히 공녀의 어깨에 두 손을 얹자 공녀가 엎드렸던 상체를 겨우 일으키며 편안히 눈을 감고 있는 소노를 한번 보곤 고개를 돌려 묵진휘를 바라봤다.

“편히 가셨습니다. 더 이상 울지 마십시오. 소노께서는 공녀께서 우시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묵진휘의 말에 공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울음을 그치려 했지만 이를 악물며 겨우 소리 내어 우는 것을 그쳤을 뿐 흐르는 눈물마저 어찌할 순 없었다.

“아가씨, 눈물을 거두시고 소노를 보세요. 웃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언젠가는 가야 한답니다. 소노처럼 웃으며 가는 사람이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은 사람은 소노를 기억하고, 소노와의 약속을 지키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냉보모가 어찌 보면 냉정한 어조로 공녀를 달랬다. 평소의 냉보모 모습인 듯도 했고 다른 듯도 했다.

다시 공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들어 소노를 바라봤다.

“냉보모 말씀대로 소노와의 약속을 꼭 지키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공녀도 이제 약속을 끌어 안으며 소노를 보내주고 있었다.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 그것이 무림인이었던 소노가 황실의 일에 개입하게 된 이유였고, 이황야에게 바라는 바였으며, 공녀와의 약속인 것이다.

‘저도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묵진휘도 약속을 다짐하면서 소노를 보내주고 있었다. 반드시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더 이상 그녀 눈에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해주겠다고.

눈부시게 빛나던 화사한 봄 햇살이 어느덧 석양 노을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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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127. 투항과 저항 +3 17.04.06 2,668 48 11쪽
127 126. 현무당 특수조 +4 17.04.03 2,814 48 11쪽
126 125. 정저지와井底之蛙 +3 17.04.01 2,754 43 11쪽
125 124. 또 위기 +2 17.03.30 3,197 48 10쪽
124 123. 허정虛穽-빈 구덩이 +3 17.03.27 2,784 55 11쪽
123 122. 무인武人과 정치인政治人 +2 17.03.25 2,855 44 11쪽
122 121. 속죄贖罪 +2 17.03.23 2,772 48 11쪽
121 120. 풍정風精 +2 17.03.21 2,799 49 11쪽
120 119. 재회再會 2 +2 17.03.19 2,858 49 10쪽
119 118. 패거리 +4 17.03.17 2,953 49 10쪽
118 117. 무복武服 +3 17.03.15 3,074 47 9쪽
117 116. 승상부丞相府 +4 17.03.13 3,060 42 10쪽
116 115. 쪽지 +2 17.03.11 2,980 43 10쪽
115 114. 역할분담 +3 17.03.09 3,021 47 11쪽
114 113. 감탄고토甘呑苦吐 +3 17.03.07 2,993 43 11쪽
» 112. 눈물 +3 17.03.05 3,214 47 10쪽
112 111. 부서지는 햇살 +2 17.03.03 3,174 45 12쪽
111 110. 반성反省 +2 17.03.01 3,191 45 11쪽
110 109. 숨어있는 눈 +2 17.02.27 3,081 46 12쪽
109 108. 예상된 기습 +2 17.02.23 3,181 48 11쪽
108 107. 구사일생九死一生 +2 17.02.21 3,256 48 11쪽
107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106 105. 전략戰略 +2 17.02.17 3,227 48 11쪽
105 104. 절체절명絶體絶命 +2 17.02.15 3,163 46 12쪽
104 103. 호위 +2 17.02.13 3,329 54 11쪽
103 102. 함정 +2 17.02.12 3,303 4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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