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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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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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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2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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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7. 구사일생九死一生

DUMMY

“이제 끝내도록 하자.”

귀곡부 명도근이 큰 도끼와 작은 도끼를 각각 한 손에 잡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번량은 옆구리와 다리에 제법 깊은 상처를 입어 피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고 들고 있는 검도 이미 반동강난 상태였다.

명도근의 큰 도끼가 말이 끝나는 순간 번량에게로 빙글빙글 돌며 사나운 기세로 날아갔다.

‘이미 내공이 고갈되고 상처도 중해 저 큰 도끼를 피하거나 검으로 쳐 내더라도 곧이어 날아올 작은 도끼를 피할 길이 없구나. 삼조장, 원수를 갚아주지 못해 미안하이.”

번량이 마지막 남은 내공을 쥐어짜 날아오는 큰 도끼를 반동강 짜리 검으로 맞서갔다. 그 순간 작은 도끼가 날아오는 것이 번량의 눈에 들어왔다.


깡~

검과 큰 도끼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나면서, 큰 도끼는 번량의 머리카락 몇 올을 자르며 아슬아슬 비켜갔고 번량의 검은 손잡이만 남고 검신이 아예 없어져버렸다. 그 순간에도 작은 도끼가 매서운 기세로 번량의 가슴께로 날아왔다. 번량은 눈으로는 작은 도끼를 보고 있으나 발은 움직이지 못했다. 큰 도끼와 맞서는 순간 모든 내공을 쏟아낸데다 희망의 불꽃이 이미 꺼져버렸다는 절망에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려 해도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한 순간 많은 생각을 했지만 사실 큰 도끼와 작은 도끼의 시간 차이는 눈 몇 번 깜박일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기에 피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번량이 또 다시 눈을 감았다. 처음 눈을 감았을 때는 삼조장이 몸을 날려 번량을 살려냈었다. 도산검림에 사는 무인이, 그것도 무림맹의 당주나 되는 고수가 죽음이 무서워 자꾸 눈을 감느냐 할 수 있지만 누구나 그런 순간이면 눈을 감을 수 밖에 없다. 무섭기도 하지만 마지막 죽음을 경건하게 받아들이려는 이유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깡~

번량의 감각에, 작은 도끼가 자신의 가슴에 박힐 즈음이라고 여기는 순간 경쾌한 금속성이 다시울렸다. 번량이 감았던 눈을 떴다. 자신이 막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경쾌한 금속성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에 걸친 죽음의 위기가 생사生死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여겼다. 눈을 뜨자 당황한 표정의 귀곡부 명도근의 얼굴이 바로 보였다. 번량이 고개를 돌려보자 작은 도끼가 일장 넘게 날아가 나무에 박혀 있었고 명도근의 시선이 향한 반대편에는 준수한 용모의 젊은 무인 하나가 서있었다.

“누구냐?”

귀곡부 명도근이 날카롭게 물었다. 명도근의 손에는 어느새 큰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번량을 스치며 날아간 도끼가 허공에서 큰 회전을 하며 다시 명도근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정주에는 누구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군. 주은백이라 한다. 그것 외에는 정말이지 더 이상 말해줄 것도 없다.”

주은백이 말하면서 명도근 앞으로 걸어가자 무의식적으로 명도근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곧 상황을 깨달으면서 걸음을 멈췄다.

“이 놈~”

명도근이 뒷걸음질 친 부끄러움에 목소리를 길게 빼며 달려나가면서 큰 도끼로 주은백을 내리쳤다. 아니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번량의 눈에 주은백의 손이 검집으로 움직이는 것밖에는 보이지 않았고 단지 바람이 언뜻 부는 듯 했는데 귀곡부 명도근이 목에서 피분수를 뿜어져 쓰러져 내렸고 크윽~하는 비명소리는 쓰러진 뒤에 들려왔다.

명도근이 주은백의 일수一手에 쓰러지자 장내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명도근이 주은백에게로 달려가면서 워낙 분노에 찬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막바지에 이른 맥빠진 싸움을 하던 무인들이 모두 명도근에게로 시선을 던졌고, 명도근이 곧바로 쓰러지자 놀라 싸움 자체를 멈춘 탓이었다.

“누구냐? 네놈은.”

그리 말이 없던 애면은검 간은수가 손호를 두고도 시선을 주은백에게 던지며 물었다. 비록 간은수의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지만 손호는 간은수를 공격하지 못했다. 이미 정신적으로 완전히 패배한 상태였기 때문이었고, 주은백에 대한 호기심 탓이기도 했다.

“알 것 없다.”

주은백은 이제 더 이상 이름을 말하는 것에도 지겨워졌다. 자신에게 누구냐고 묻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궁금한 것이 아닌 듯했다. 그들은 그들이 아는 범위 내에서의 정보를 요구했고 주은백은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만 자신을 설명할 수 있었는데 두 범위에는 교차되는 지점이 없었던 것이다. 즉, 애초 누구냐고 묻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관계였던 것이다.

“이 놈~”

간은수 역시 목소리를 길게 빼며 손호를 제쳐두고 주은백에게로 신형을 날려갔다. 하지만 결과는 명도근과 마찬가지였다. 바람이 잔잔히 잠깐 불었고 간은수가 목에서 피보라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간은수가 귀곡부 명도근보다 고수였다고는 하나 주은백의 상대로는 오십보백보 차이의 상대였던 것이다.

이제 장내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몇 남지 않은 무림맹 무인들은 생존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으며 빈객들을 잃은 독립검수들은 주은백의 신위에 감히 맞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빈객, 파석권 석홍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이 와중에도 또 다른 젊은 무인 하나와 대결 중이었다. 주은백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남궁이현이 파석권 석홍을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장내 시선은 두 사람간의 대결과 주은백에게로 왔다 갔다 했다. 주위의 변화에도 아랑곳 없이 대결에 몰두하고 있는 두 사람간의 싸움으로 시선이 가는 것도 인지상정이요, 새로 나타나 단 숨에 두 사람의 빈객을 베어버리고 가만히 두 사람의 대결에 무심히 시선을 던지고 있는 주은백에게로 시선이 가는 것도 인지상정이었다.

남궁이현은 주위의 시선과 주은백의 눈길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주은백의 신위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석홍은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호흡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두 빈객이 단 칼에 목숨을 잃은 충격에다 주은백이 언제 자신을 공격해올지 모르는 탓이었다. 남궁이현이 대결하고 있는 마당에 주은백이 싸움이 끼어들 리가 없건만 주은백의 성정을 모르는 석홍의 신경은 분산되기 시작했다.

남궁이현의 검은 더욱 빨라지고 부드러워지는 반면 석홍의 주먹은 점점 뻣뻣해졌다. 이윽고 남궁이현의 검에 석홍의 허벅지가 베어 적지 않은 상처가 생기고 피가 솟기 시작하자 석홍의 집중력은 극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수가 지나자 남궁이현의 검에 석홍의 오른팔이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권사拳士에게 팔은 목숨과 진배없는 것이다. 남궁이현이 검을 거두자 석홍이 자신의 팔을 지혈시키더니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노을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하나 둘씩 독립검수들은 도주하기 시작했으나 아무도 그들을 뒤쫓지는 않았다. 그럴 여력이 없었다.


무림맹 정주 지부 집무실에 손호와 주은백, 두원과 남궁이현 등이 앉아 있었다. 번량은 옆구리와 다리의 상처가 심해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기에 함께 자리하지는 못했다.

“감사하오. 무림맹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바이오.”

손호가 주은백에게 포권을 취하며 정식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손호도 어깨에 적지 않은 부상을 당했으나 번량보다는 형편이 나았다.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소. 그 놈들에게 나도 받아야 될 빚이 있으니 내일을 한 것이오. 그러니 내게 감사할 필요 없소.”

아직 그들이 적발괴인과 한패라는 확증은 없었으나 주은백은 자신의 일로 돌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에게 도움을 받기도 싫어했지만 감사를 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주은백이었다.

“설사 주대협의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감사한 마음이 줄어들지 않소. 주대협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 죽은 목숨. 주대협은 생명의 은인이시오.”

손호가 거듭 감사했고 주은백은 별다른 대꾸 없이 침묵하는 것으로 화제를 돌리고자 했다.

“실례가 되지 않은 다면 사문師門이 어찌되시오? 주대협 같은 출중한 고수를 알아보지 못했으니 이 손모의 형편없는 식견이 부끄럽구려.”

“말씀드릴 사문이랄 것도 없소. 스승께서는 일찍 돌아가셨고 제자라고는 혼자 뿐이니 사문이랄 게 어디 있겠소?”

정중한 손호의 질문에 주은백은 짜증스러웠으나 상대를 고려해 최대한 정중하게 대답했다. 주은백으로서는 할 수 있는 가장 성의 있는 대답이었다. 그렇다고 스승의 이름을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스승의 이름을 얘기한대도 알지 못할 것이다.

“말씀하시기 곤란하다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되오. 아무튼 주대협 같은 젊은 고수가 있음이 무림으로서도 큰 홍복洪福이라 아니할 수 없소. 하하”

주은백이 사문에 대한 얘기를 하기 꺼린다고 생각한 손호가 어정쩡하게 웃으며 말을 포장하는 것으로 사문에 대한 얘기를 마무리했다.

“이런, 쯧쯧. 상중喪中이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당주된 사람으로서 소리 내어 웃고 말았으니 실로 결례로소이다. 주대협께서 이 철없는 사람을 나무라셔도 할말이 없소이다 그려.”

체면과 예의를 중히 여기는 정파인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손호였고 주은백이 머리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으로 충분히 이해한다는 뜻을 표했다. 주은백은 손호와의 자리가 불편했다. 과도한 예의와 격식에 답답함을 느낀 것이다.

“이제 그만 쉬시지요. 손당주님께서도 부상이 적지 않으니 휴식이 필요합니다. 일단 휴식을 취하시고 다음을 생각하도록 하시지요.”

두원이 주은백의 심사를 알아채고 손호의 휴식을 핑계로 자리를 파하려 했다.

“그렇습니다. 주대협은 저희가 모실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안정을 취하십시오.”

“현무당 삼조도 큰 도움이 되었소. 내 무림맹으로 복귀하면 정식으로 맹주님께 삼조의 활약을 보고 드리겠소.”

남궁이현까지 나서 휴식을 권하자 손호가 그리하자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무당 삼조에게도 감사를 표했고, 두원과 남궁이현 그리고 주은백은 자리에서 일어서 집무실을 나왔다.


“주대협이 없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생각하니 아찔할 뿐이오. 다시 한번 감사드리오.”

“주형께 감사하오.”

두원과 남궁이현이 집무실에서 나오자 말자 주은백에게 감사의 포권을 했다. 두원은 무악산에서 무림맹 집무실로 오는 길에 남궁이현으로부터 주은백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들은 뒤였다.

“이제 그만하십시오. 그리고 남궁형까지 왜 이러시오?”

주은백이 두원에게 손을 휘저었고 남궁이현에게는 눈을 흘기기까지 했다. 몇 차례 만나면서 편해진 것이다.

“그럼 나는 이만 물러나겠소. 남궁이현 자네가 주대협을 잘 모시게.”

두원이 주은백에게 인사하면서 물러가자 주은백의 표정이 비로소 환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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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108. 예상된 기습 +2 17.02.23 3,181 48 11쪽
» 107. 구사일생九死一生 +2 17.02.21 3,256 48 11쪽
107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106 105. 전략戰略 +2 17.02.17 3,226 48 11쪽
105 104. 절체절명絶體絶命 +2 17.02.15 3,162 46 12쪽
104 103. 호위 +2 17.02.13 3,328 5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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