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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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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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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58,507

작성
17.02.1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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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06. 마지막 인사

DUMMY

“크윽~”

가슴을 부여 잡으며 무인 하나가 쓰러졌다. 남궁이현의 검에 쓰러지는 북천회의 독립검수였다. 벌써 몇 명이나 쓰러뜨렸는지 모른다. 남궁이현은 묵진휘와의 대화對話 이후 나름대로 깨달은 바를 상기하면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자신 스스로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측정하기 어려웠지만 아무튼 적의 약점이 속속들이 보였고 적의 약점에 가장 효율적으로 접근하여 제압할 수 있는 초식들이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검 끝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듯 했기에 초식간의 이어짐이 마치 원래 하나의 초식인 듯 보여졌다.

“대단하군. 언제 남궁이현이 저렇게 발전했지? 마치 딴 사람 같군.”

“얼마 전까지 방에 틀어박혀 궁리하더니 무슨 깨달음이 있었던 듯 하네.”

경표와 항백이 서로 등을 마주선 채 적을 상대하면서도 말을 주고 받았다. 상대를 믿기에 등 뒤쪽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전방만 주시할 수 있으니 여간 편한 것이 아니었다.

“조장님 등 뒤···”

항백의 외침에 두원이 허리를 숙여 등 뒤에서 찔러오던 적의 검 끝을 피한 후 뒤돌며 적의 다리를 베자 달려들던 적이 그 자리에서 푹 쓰러졌다.

“고맙네.”

두원이 항백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현무당 삼조원들이 서로를 돌보며 적들을 베어감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전황戰況은 무림맹에게 극도로 불리했다. 백호당 무인 하나하나가 독립검수들에게 밀렸으며 빈객청의 세 빈객에 맞설 고수가 무림맹에는 절대 부족했다.

번량은 귀곡부 명도근과 맞서고 있었으나 연신 뒤로 밀리면서 방어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잘도 피하는 구나. 어디 이것도 피해봐라.”

귀곡부가 도끼로 번량을 내리찍다가 갑자기 손목으로 도끼자루에 회전을 주자 도끼가 한 바퀴 돌더니 다시 귀곡부의 손에 들어왔고 귀곡부가 다시 번량을 내리 찍어갔다. 이 공격은 처음 공격과 약간의 시간 차이를 발생시켜 처음 공격을 막고자 검을 들어올린 번량의 방어를 시간차이로 속이는 것이었다. 대개 부斧를 사용하는 무인들은 힘을 바탕으로 직선적이고 패도적인 초식을 사용했으며 변화가 많지는 않았다. 즉, 검劍보다는 도刀에 가까운 초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귀곡부의 이번 초식은 변화를 기해 상대의 호흡을 빼앗는 절묘한 초식으로 실제 번량은 귀곡부의 시차 공격에 대경실색해 뒤로 허둥대며 물러서다 넘어지고 말았다. 고수와의 대결에서 뒤로 넘어지는 것은 목숨을 칠할 가까이 잃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 놈, 마지막이다.”

귀곡부가 넘어진 번량에게로 도끼를 던지자 도끼가 빙글빙글 돌며 넘어져있는 번량에게로 날아갔다. 번량은 넘어져 당황한데다 이미 도끼가 빛살 같은 속도로 바로 눈앞까지 날아오자 피하기보다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크윽~”

번량은 순간 그 비명소리가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순간적인 생각에도 자신의 목소리 같진 않았다. 번량이 용기를 내어 눈을 떠는 것과 동시에 귀곡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훌륭한 수하를 두었군.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 상관을 감싸다니 대단히 훌륭해. 클클”

귀곡부의 소리에 번량이 옆을 돌아봤다.

주작당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삼조장이었다. 삼조장의 등에 귀곡부의 도끼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자신에게로 날아오던 귀곡부의 도끼를 대신 맞은 것이다.

“이 사람아, 왜 그랬나?”

번량이 울먹이는 소리로 삼조장을 일으켜 안으며 물었다. 눈엔 이미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크윽~. 당주님께서 사셔야 저희 원수를 갚아주시지 않겠습니까? 헉헉. 저는 이미 떠난 조원들을 보살피러 가야 합니다. 헉헉. 살아서 원수를 갚···”

살아서 원수를 갚아 달라는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가늘게 이어지던 호흡이 끊겼다.

“삼조장~”

번량이 삼조장을 흔들어 깨우려 했지만 이미 숨을 거둔 삼조장이 되살아날 리 없었다.

“눈물겹군. 큭큭. 너무 그리 아쉬워하지 마시게. 같이 가면 되질 않겠나?”

귀곡부가 등뒤에서 자그마한 도끼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원래 귀곡부는 큰 것과 작은 것으로 이루어진 한 쌍의 도끼를 사용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번량의 두 눈에 한광寒光이 빛났다. 좀 전 두 눈을 감았던 체념은 사라졌고 옆에 있던 검을 쥐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애면은검哀面銀劍 간은수幹殷壽와 맞서고 있는 약궁탄검 손호의 사정도 번량과 비슷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간은수의 입은 귀곡부와 달리 무겁다는 것이었다.

슬픈 듯 애절한 표정의 간은수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치 은빛 모래가 사방에 뿌려지는 듯 햇살이 반짝이며 부서졌고 이것이 간은수의 표정과 묘한 조화를 이뤄 화사한 슬픔을 자아내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검은 표독스러울 정도로 손호의 요소요소 급소를 노리며 날아들었고 손호는 수세에 몰려 방어에 벅찬 상황이었다.

손호의 다리를 노리고 날아들던 간은수의 은빛 검이 어느새 방향을 바꾸어 손호의 어깨 어름으로 은빛 모래를 뿌려대고 있었다.

“크윽~”

손호가 어금니를 깨물었지만 비명은 입 밖으로 새어 나오고야 말았고 손호의 어깨에서는 은빛 모래 속에 새빨간 핏물이 터져 올랐다. 그 순간만을 정지해서 본다면 찬연한 아름다움처럼 느껴질 정도로 부서지는 은빛 햇살 속의 선홍색 붉은 피는 진한 대조를 이루었다. 다행히 검을 잡고 있는 우측이 아닌 좌측 어깨의 상처였기에 손호가 검을 놓치지는 않았으나 지혈할 틈도 없이 간은수의 공격은 이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십여 수 이상을 받아내기는 어려워 보였다.

파석권 석홍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라 한다면 종횡무진縱橫無盡일 것이다. 손호와 번량을 제외하곤 파석권 석홍의 주먹을 그나마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백호당 대원들 중에는 없었다. 백호당 대주 한 명이 석홍과 맞섰으나 불과 다섯 합 만에 얼굴이 뭉개져 버렸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난전亂戰의 와중에도 석홍 주위에는 사람이 없었다. 적을 맞아 싸우는 와중에도 가급적 석홍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호당 대주의 얼굴을 한 주먹에 날려버린 석홍이 다시 먹이를 찾는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볼 때 젊은 무인 하나가 석홍을 막아섰다.

“애써 죽음자리를 찾아 드는 것을 보니 생긴 것과는 다르게 멍청한 놈이로다. 클클”

석홍이 자기를 막아선 젊은 무인 하나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오른 주먹을 천천히 말아 쥔다.

“어디 실력은 어떤지 한번 보자꾸나.”

마치 스승이 제자의 실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살펴보자는 요량으로 젊은 무인에게 공격해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내자 젊은 무인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으로 석홍을 베어갔다. 몸이 검을 앞세우는지 검이 몸을 이끌고 가는 것인지 알기 어려울 만큼 검과 몸이 완연한 일체가 된 공격이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호하게 자신을 베어오는 검을 바라보며 석홍은 생각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석홍은 젊은 무인이 공격해 들어오면 주먹으로 검면劍面을 쳐 검을 부러뜨려 젊은 무인에게 좌절을 맛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것이 멍청하거나 만용蠻勇인 것에 대한 응징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젊은 무인의 검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고 석홍은 검을 부러뜨리기는커녕 황급히 신형을 뒤로 물려 피해야만 했다.

간발의 차이로 젊은 무인의 검을 피한 석홍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제법 한 가닥 하는 놈이로구나. 좋다. 어디 한번 어울려보자. 이놈아”

석홍의 말에도 젊은 무인, 남궁이현은 대꾸 없이 가만히 검을 움켜쥐며 석홍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간다 이놈아~”

석홍이 신형을 날려 발로 먼저 공격해 들어오자 남궁이현은 몸을 회전시켜 옆으로 피하면서 검을 석홍의 가슴께로 찔러 넣었고 석홍도 허리를 숙여 검을 피한 후 제비 넘기를 하듯 팔로 땅을 짚으면서 다리를 횡으로 휘돌리며 남궁이현의 얼굴을 재차 공격해 들어오자 남궁이현 살포시 뒤로 물러나며 검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다리를 베려 했다. 계속 거리를 좁혀 오려는 석홍과 물러났다 곧바로 공격해 들어가는 남궁이현의 싸움은 당분간 누구의 승리를 점치기 어려울 만큼 대등하게 어울려갔다.

상급의 독립검수 하나를 상대할 정도였던 남궁이현이 어느덧 빈객청의 빈객과 대등하게 겨룰 정도로 발전한 것이다.

남궁이현과 석홍의 어울림만으로 볼 땐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은 싸움도 사실은 이미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백호당 무인들의 수는 수십 명에서 십여 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번량과 손호는 선혈이 낭자한 몰골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으나 경각에 달한 처지였고, 현무당 삼조원들의 형편도 번량과 손호보다 나을지언정 도토리 키 재기 차이였다. 반면 독립검수들의 수는 여전히 수십 명이 건재했고 세 빈객 중 두 명도 절대 우위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일다경 정도면 이 싸움도 끝이 날 운명이었다.

“장가도 못 가보고 죽는 모양이군. 제길~”

경표가 가쁜 숨을 삼키며 투덜거렸다.

“네 놈은 애초 아무것도 없었으니 무엇이 아쉬울 것이냐. 나는 저리 예쁜 색시감을 두고 가려 하니 미치도록 억울하다.”

항백 역시 호흡이 거칠기는 매한가지였다. 근처에서 싸우고 있는 관지선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었으나 그마저 여유가 없었다.

“있는 놈이 더한다더니 딱 그짝이로구나. 네놈은 손이라도 잡아봤을 것 아니냐? 어쩌면 뽀뽀를 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무슨 여한이 있느냐?”

“그래, 자네 말대로 나 혼자만 간다면 무슨 여한이겠나? 다만 그녀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 한恨이라네.”

항백의 말이 농담에서 처연한 슬픔으로 바뀌자 경표의 가슴 역시 쓰라려왔다. 어찌 그 마음을 모르겠는가?

[내가 뒤돌면서 자네 정면에 있는 놈에게 검을 날릴 테니 그 사이 자네는 관조장에게로 달려가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 그곳에서 다시 만나세.]

경표가 거의 소진된 내공에도 불구하고 항백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무슨 소린가? 검을 날리고 나면 빈손으로 무얼 할 텐가? 그딴 소리 말게. 아쉬움도 슬픔도 모두 잠시일 뿐이네. 이러나저러나 곧 다시 모두 만날 테니.]

“하하. 그렇군. 그럼 이따가 보세.”

“그러세. 편히 오시게.”

경표와 항백이 마치 하루 일을 마치고 객잔에서 한잔 술을 나눌 약속을 하는 듯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둘의 마지막 인사는 그처럼 가벼웠으나 서로 등지고 있는 친구의 두 눈에 무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음을 모르진 않았다.

그렇게 둘이 죽음을 맞이하려는 순간 어디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점점 거세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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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109. 숨어있는 눈 +2 17.02.27 3,080 46 12쪽
109 108. 예상된 기습 +2 17.02.23 3,180 48 11쪽
108 107. 구사일생九死一生 +2 17.02.21 3,255 48 11쪽
»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106 105. 전략戰略 +2 17.02.17 3,226 48 11쪽
105 104. 절체절명絶體絶命 +2 17.02.15 3,162 46 12쪽
104 103. 호위 +2 17.02.13 3,328 54 11쪽
103 102. 함정 +2 17.02.12 3,302 4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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