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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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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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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3.0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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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0. 반성反省

DUMMY

“어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어찌 아무 말씀들이 없으시오?”

무림맹 맹주 운월자의 탄식이 연신 터져 나왔다.

정주에서 당주인 번량을 제외한 주작당 전원이 전멸하고 백호당 두 개 대隊가 몰살당했다는 비보悲報에 무림맹 수뇌부는 경악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출신이 아닌 정파의 많은 인물들이 무림맹으로 입맹하면서 한껏 기세를 올리던 무림맹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세를 타고 파죽지세로 적을 휩쓸어 버릴 거라 생각했다.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총군사인 제갈청이 적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는 우려를 표명했지만 그것은 원래 걱정을 도맡아 하는 자리인 총군사의 기우杞憂라 여겼다.

“그 놈들이 누구길래 그리 큰 세력을 형성했다는 말이오?”

직진무퇴直進無退 진백련 장로가 불쑥 물었다. 무림맹에서 부맹주 팽보기와 더불어 직선적이고 생각이 조금 짧은 것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것이~ 아직 별다른 단서가 없소이다.”

허세학이 조금 풀죽은 얼굴로 답했다. 자신이 타협안을 내어 주작당과 백호당을 정주로 파견했건만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마치 자신의 탓 인양 얼굴 들기가 부끄러워진 것이다.

“마교도 아니고, 사파는 지리멸렬한지 오래니 살펴볼래야 살펴볼 것도 없고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아니라면 강호에 그리 큰 세력이 어찌 있을 수 있겠소? 혹시 세외 놈들이 아니오?”

진백련이 직선적인 성격답게 상황을 단순하게 추정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어느 누구도 진백련의 추정이 틀렸다 단언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럴 듯 하다는 생각에 고개까지 주억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팽보기가 그랬지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직 그들이 세외 무림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저는 외람되지만 진장로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생각한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제갈청이 조용히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시오.”

팽보기가 진백련을 대신해 물었다.

“지금 진장로께서는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그리고 마교 외에는 세력을 이룰 집단이 없다고 단정하고 계십니다. 저는 그것이 문제라는 봅니다. 아직 명확히 확인된 바는 아닙니다만 놈들은 이십여 년 이상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도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수면 밑에서 세력을 키워왔습니다. 최근에 확인된 바에 의하면, 전대前代의 고수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사파 출신만이 아니라 정파와 마도 출신까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젊은 고수들과 무력집단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 한두 해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런 역량을 외부에서 충원했다기 보단 자체 육성했다고 판단됩니다. 실로 무서운 계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무림맹은 이제 막 결성된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자체 역량 육성 체계 구축은 고사하고 아직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정예들도 적극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근자에 많은분들이 참여하고 계시지만 아직 정파의 원로들과 많은 고수들이 더 필요합니다. 제 말씀은 우리를 높이 보고 적들을 낮게 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여야 합니다. 그래야 냉철한 판단이 가능하며 적절한 대응이 가능합니다.”

제갈청이 조금 목소리를 높여 생각을 말하자 좌중에는 다소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제갈청의 말은 모두를 질타하는 얘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제갈군사의 말씀이 참으로 옳다고 생각됩니다. 항상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에 있는 법이지요. 오만과 자만이 가장 큰 내부의 적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항상 조용한 편이었던 현무당 흥선 당주가 제갈청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고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무림맹이 이제야 반성을 통해 자기 분수를 알고 자기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은 일부였지만.

반성反省에는 항상 희생이 선행되는 모양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오?”

청룡당주 감세곡이 제갈청에게 물었다.

“이제와 같은 전면전은 일단 무리입니다. 주작당과 백호당은 정주로부터 철수시키겠습니다. 우선 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밀을 유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히 총군사 자리를 내세워 당분간 이 문제에 관한 전권全權을 위임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또 하나 무림맹의 전력을 대대적으로 보강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도 진행 중인 사안이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도 先실행 後추인을 요청드립니다.”

제갈청이 나선 김에 쇠뿔을 뽑으려 했다. 좌중에는 자그마한 탄식도 있었고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반대하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팽보기만이 그럼 우리는 뭐하냐고 눈을 껌뻑이며 물었지만 누구 하나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젯밤에는 좋은 시간들 보내셨는가?”

경표가 입술을 씰룩이며 항백과 관지선, 남궁이현과 당수진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어제 저녁에 술 한잔 하자는 제안을 뿌리치고는 항백과 남궁이현이 슬그머니 사라졌고 뒤이어 관지선과 당수진 마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두원마저 생존한 백호당 대주 등 무림맹 내의 동기 몇 명과 술자리를 가지는 바람에 경표 혼자 외로운 밤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자네도 좋은 시간 보냈는가?”

항백이 경표의 사정을 알면서 놀리듯 물었다.

“나야 자네에 비할 바가 있겠는가? 적을 앞에 두고도 님 그리워 눈물 흘렸던 사람의 밤과 외로운 기러기 신세인 내 밤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말일세.”

경표가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항백을 놀렸다.

“아니, 항백 선배가 울었어요?”

당수진이 놀라 물었다.

“울었다 뿐이야? 아예 눈물이 빗줄기 같더만 글쎄. 사내가 못나 가지곤. 쯧쯧”

“어머~ 멋있다 항백 선배.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며 흘리는 사내의 눈물. 천금인들 그보다 더 중하겠어요?”

당수진이 경표의 기대와는 달리 항백에게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아니, 찌질한게 아니고 멋져? 그게?”

경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당수진에게 물었다.

“그럼요~. 얼마나 멋있어요?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 안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잖아요? 그리고 그 교육 때문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눈물을 잘 흘리지 않잖아요? 그런데 님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으니 그 눈물이 어찌 가짜일 수 있겠어요? 흔하지 않으니 그 눈물이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걸 이해 못하니 경표 선배가 외로운 밤을 보내는 거예요.”

당수진의 얘기에 모두들 싱긋 웃으며 경표를 쳐다봤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내가 모르긴 뭘 몰라요? 다 안다구요.”

“뭘 다 아는데요? 경표 선배가 다 안다는게 뭔지 어머 궁금해라”

경표의 항의에 당수진이 경표 가까이 얼굴을 붙이며 묻자 경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또다시 당수진의 꽃놀이 패에 빠져 허우적대는 경표를 구해준 것은 관지선이었다.

“어제 저녁에 무림맹 본부에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주작당과 백호당은 전원 귀대하라는 지시입니다. 부상자를 제외하곤 모두 오늘 중으로 무한으로 출발한다고 합니다.”

관지선이 화제를 돌렸다.

“그럼 우리도 귀대하는 겁니까?”

“아니다. 우리는 특별한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그대로 정주에 있는다. 어제 군사부로부터 별도 지시를 받았다.”

경표의 물음에 두원이 답했다.

“그럼 우리는 놈들을 찾는 임무를 계속해야 하는군요."

“그렇다. 하지만 목적이 다르다. 우리 임무는 적들을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실체를 찾는 것이다. 물론 우리 전력으로 적을 섬멸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하하”

두원이 삼십 대가 즐겨하는 농담을 섞어 삼조의 임무를 알렸다.

“주대협은 어떻게 한다는가?”

항백이 남궁이현에게 물었다.

“주대협도 당분간은 정주에 머문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겠군.”

“그날 본 주대협의 신위神威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해정에서 봤던 묵형 생각이 나더군요.”

“아니, 갑자기 엄청난 고수들이 등장하니 한편으론 겁도 납니다. 묵형과 주대협 같은 고수가 나타난다는 얘기는 적들도 그런 수준이라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자고로 세상사는 균형을 이루니까요.”

삼조원들이 주대협에 대한 얘기를 하는 중에 경표가 어깨를 부르르 떠는 시늉을 하며 겁먹은 듯이 말하자 삼조원들은 모두 부지불식간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궁이현마저도 경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느끼기에도 묵진휘와 주은백의 신위는 실로 자신들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자신들이 평생을 노력한다고 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쪽에서 그런 초절정고수가 나타났다는 것은 상대도 그런 수준이라는 경표의 말이 이 순간 세상사 진리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하지만 세상사가 그런 고수들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네. 우리 같은 일반인도 역할이 있다는 뜻이지. 너무 주눅들지 말게나.”

두원이 경표의 얘기에 동의하면서도 자칫 주눅들기 쉬운 삼조원들을 위로했다. 역시 세상을 조금더 오래 산 연륜이 묻어나는 식견이었다. 조장은 조장인 것이다.

“그렇겠죠? 세상 만물에 쓰임이 없는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 각각의 쓰임이 있고 그 쓰임에는 경중輕重이 없이 모두 소중한 것이죠.”

두원의 말에 이어 항백이 말을 보태자 모두 항백을 놀란 듯이 바라보았고 옆에 있던 관지선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하~ 연애가 사람을 어른스럽게 만드는 효능이 있군요.”

당수진이 말을 하면서 다시 경표를 쳐다보자 경표가 발끈했다.

“흥~ 누가 그 정도 얘기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자기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고 저래?”

“그럼 경표 선배도 그런 얘기 해봐요.”

“내가 못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야. 다만 입이 무거울 뿐이지.”

당수진의 놀림에 경표가 발끈했다.

“그렇지. 자네 입 무거운 거야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알지. 항주 작전 때의 기루 얘기를 관조장에게 구구절절이 얘기한 것 빼면 말이야. 그것도 자네 얘기는 쏙 빼고 내 얘기만.”

항백의 얘기에 경표가 태연히 받았다.

“사실이잖아? 과묵한 사람도 진실을 밝힐 때는 입을 여는 법이지. 암~”

경표의 얘기에 사람들이 웃었다. 재미있기도 했고, 어이없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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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반성反省 +2 17.03.01 3,191 45 11쪽
110 109. 숨어있는 눈 +2 17.02.27 3,080 46 12쪽
109 108. 예상된 기습 +2 17.02.23 3,180 48 11쪽
108 107. 구사일생九死一生 +2 17.02.21 3,255 48 11쪽
107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106 105. 전략戰略 +2 17.02.17 3,226 48 11쪽
105 104. 절체절명絶體絶命 +2 17.02.15 3,162 46 12쪽
104 103. 호위 +2 17.02.13 3,328 5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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