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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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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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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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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15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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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04. 절체절명絶體絶命

DUMMY

“나무 위를 조심해라.”

번량이 나무 위에서 빠른 속도로 찔러 오던 검을 튕겨내며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번량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주작당 무인들은 하나 둘씩 쓰러져가고 있었다. 적의 기습이 워낙 의외였고 그 수법 또한 신출귀몰한지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고, 평정심이 유지 되지 않다 보니 옆에 있던 동료의 죽음이 용기로 나타나는 대신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퇴각한다. 앞에 사람이 뒤로 퇴각할 때까지 뒤에 있는 사람이 엄호하는 방식으로, 차례로 퇴각하라.”

번량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무너져 내리는 전열을 다시 재정비해야 했다.이대로 있으면 전멸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번량의 지시는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적의 공격이 앞 뒤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차별적인데다 이미 주작당의 전열이 붕괴한 후였기 때문이다.

번량이 다시 주위를 둘러 보려는데, 자신이 튕겨낸 검이 재차 다리를 베어왔다. 그 베어옴이 빠르기도 빨랐고 검기까지 머금고 있어 주위를 둘러보면서까지 쉽게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놈~”

번량이 사나운 일성을 뱉으며 신형을 허공으로 날려 다리를 베어오는 무인의 머리를 가격하려 했으나 어느새 옆에서 허공 중에 떠있는 번량의 옆구리를 찔러오는 또 다른 무인의 검이 있어 공격을 멈추고 옆구리를 찔러오는 무인의 검을 막아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리를 공격해오던 무인이 번량의 어깨를 찔러왔다. 번량은 두 명의 적에게 합공을 당하는 바람에 주위의 형세를 읽고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부운검浮雲劍 번량은 복건성福建省 출신으로 강호에서도 널리 알려진 복건칠자七子의 하나였다.비록 성격은 급했으나 그가 사용하는 무공은 별호처럼 하늘에 허허롭게 떠있는 구름과 같이 부드럽고 장중하며, 그렇다고 무겁지는 않은, 도가道家 계열의 것으로 현기玄機를 머금고 있는 상승무공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는 두 명의 합공으로부터 어떠한 여유를 가질 형편이 되지 못했다. 일견一見해서는 그의 무풍武風이 지금과 같은 집단적 난전亂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무공은 크게 수양을 목적으로 창안되고 발전한 것과 적을 주살하는데 주안을 두고 창안된 무공으로 구분할 수 있고, 후자의 무공은 다시 개인간의 정면 대결, 집단 대결, 기습, 편법, 암수 등의 목적에 따라 다시 그 특징을 달리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그렇게 나름의 특징을 가진 무공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서로 통합統合되기도 하고 또는 더욱 세분細分되기도 하면서 그 종류가 천문학적으로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무공에 초식이 많아진 이유도 상황에 따라 주요하게 고려해야 할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 무공이 상승무공이냐 아니냐로 그 수준에서 차이가 생기게 된다. 상승무공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통합되면서 새로운 개념과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담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 발전했느냐 아니면 단순히 몇 가지 장점들만 섞어서 만들어진 것이냐의 차이에 있었고,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이 몇 번이나 거듭하여 이루어진 것이냐의 차이에 따라 일반적 상승무공과 신공神功으로 구분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그 무공을 익혀 도달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냐 하는 데서 드러났다.

지금 번량이 사용하는 무공은 원래 현묘한 이치를 담고는 있으나 여럿이 얽혀 어지럽게 싸우는 싸움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무공이 접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난전의 경험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도 있었다. 또는 번량이 상대하는 적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매우 높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번량이 상대하는 무인들은 북천회의 독립검수들이었다. 어쨌던 번량은 명성과는 달리 단 두 명의 적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

사정은 약궁탄검 손호가 이끄는 백호당도 다르지 않았다. 원래 백호당은 집단전을 염두에 두고 조직된 부대였다. 그래서 개개인의 무력보단 합격술에 능한 조직이었지만 지금은 기습에 당황한데다 가파른 산중이라 평소에 훈련한 합격술을 사용할 환경이 조성되지도 못했다. 그리고 무림맹이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것도 주요한 원인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전멸을 면치 못할 것 같습니다.”

후진後陣에 있다 주작당과 백호당이 적들의 기습을 받는 모습을 고스란히 본 경표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현무당 삼조는 주작당과 백호당을 공격하는 적의 등뒤에서 적을 공격하는 형세였다.

“큰일이군. 어디서 지원군을 요청할 수도 없는 형편 아닌가? 우리라도 흩어지지 말고 적의 등뒤 한곳을 집중 공격해 아군의 퇴로를 확보하도록 하세.”

두원이 침착하게 관리자로서의 식견을 드러냈다. 지금 주작당과 백호당을 구하겠다고 삼조원이 뿔뿔이 흩어져 적과 맞선다면 그들 하나하나도 모두 주작당과 백호당의 하나에 다름 아니게 될 것이다. 두원의 말처럼 적의 등뒤 한 지점을 집중 공략해 아군의 퇴로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책이었다. 모두는 그리 알아듣고 두원의 말에 따라 모여서 적의 등뒤를 착실히 공략해 들어갔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현무당 삼조원들이 공략하는 곳은 그마나 적과 아군의 형세가 균형을 이루어 하나 하나씩 백호당 무인들이 모여들고 그런대로 대오를 형성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곳은 주작당과 백호당 무인들이 거의 허물어지면서 적들도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점점 적과 아군 모두가 흩어져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난전이 대오隊伍 대 대오隊伍간 정상 집단전의 양상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주작당 무인들은 모두 전멸한 것 같습니다. 당주”

겨우 살아남은 주작당 조장 하나가 번량에게 목메는 소리로 보고했다. 주작당에서는 조장 하나와 번량만이 살아 삼조원과 백호당이 중심이 된 대오에 결합했다. 그렇다고 백호당의 사정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었다. 백호당 이대 사백 명이 이번 수색에 참여했으나 살아 남아 대오를 이룬 이는 그 중 일할 정도였다. 백호당으로서는 난주에서 일대와 이대가 참여해 많은 사상자를 낸대 이어 이번 정주 작전에 참여한 삼대와 사대에서도 많은 사상자가 생긴 셈이었다.

“내 이 놈들을 살려두지 않으리라.”

번량이 어금니를 갈며 이 사이로 분노를 내뱉었다. 비록 큰 정이 든 부하들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부하들이 죽는 광경을 직접 목도한 번량의 마음은 이미 새카맣게 타버린 숯덩이였다.

“진정하시오. 번당주. 번당주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살아 남은 부하들의 목숨도 생각하셔야 하오.”

백호당주 손호가 번량의 팔을 잡으며 말리고 나섰다. 자신 역시 데리고 온 사백 여명의 부하들을 거의 잃고 수십 명만이 남은 상태였지만 번량이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자신마저 그리할 수 없었다.

“허허허. 손당주, 수하들이 모두 죽었소. 내 한 목숨 부지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소? 손당주께서는 살아남은 수하들이라도 잘 건사하시오.”

번량은 손호의 손을 뿌리치며 다시 적진으로 달려들려 했다.

“낄낄. 그리 흥분하지 않아도 곧 수하들 곁으로 보내주마.”

“아직 해가 넘어가지 않았으니 지금 살아있는 네 놈들이나 이미 죽은 놈들이나 제삿날은 모두 같을 것이다. 외롭지 않을 것이야. 헐헐”

마주보고 선 적의 대오 앞에 세 명의 늙은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지원을 위해 북천회의 빈객청에서 나온 전대의 고수들이었다.

늙은이들을 바라보는 손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마주선 독립검수들만 해도 상대하기 벅찬 전력이라 생각하고 퇴로 확보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늙은이들을 바라보자 퇴각 자체가 어려울 것이란 예감이 든 탓이다. 한눈에 봐도 늙은이들이 뿜어내는 기파氣波는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번량도 늙은이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음을 즉각 알아채고 물었다.

“노인들은 뉘시오?”

“이 놈아, 어린 놈이 자기 이름도 대지 않고 감히 어른 이름을 묻는 게냐?”

세 노인 중 가장 우람한 체격의 노인이 콧웃음을 치며 말했다. 덩치로 보나 무기를 들지 않은 것으로 봐서 권拳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노인이었다.

“본인은 무림맹 주작당주인 부운검 번량이라 하오. 옆에는 백호당주직을 맡고 있는 약궁탄검 손호 대협이오.”

번량이 자신과 옆에 있는 손호의 이름과 소속까지 말했다. 노인의 말대로 노인들은 자신이나 손호보다는 윗대의 인물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영 막돼먹은 놈은 아니로군. 낄낄. 이 몸은 파석권破石拳 석홍石洪이라 한다.”

“귀곡부鬼谷斧라 부르지.”

우람한 덩치의 노인과 그 노인 옆에 도끼를 들고 있던 노인이 자신의 별호를 댔다. 깡마른 또 한명의 노인은 자신의 별호나 이름을 대지 않고 가만히 번량과 손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노인께서 주먹으로 바위 깨는 것을 즐긴다는 파석권 석홍이시오? 그리고 노인께서는 귀곡부 명도근이시고?”

손호가 놀라 되물었다. 그들은 자신보다 전대의 고수들로 사파의 인물로 분류되었다. 그리 큰 살행이나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아 무림 공적 명단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결코 정파의 인물로 분류될 수는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십여 년 전 홀연 무림에서 사라졌다 오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번량도 노인들의 이름이 귀에 익다 여기고 있었는데, 손호의 설명을 듣자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리 이름을 알고 있는 걸 보니 영 조무래기는 아니구나. 그래도 어르신들 손에 의해 가는 황천길이니 너무 억울하다 여기지 말도록 해라.”

파석권 석홍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름을 대지 않고 있던 깡마른 노인이 갑자기 신형을 허공으로 날리며 은빛으로 빛나는 검을 번량의 머리 위로 짓쳐왔다.

번량이 너무나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검으로 머리를 막았지만 공격해오는 검의 위력을 채 흩지 못하고 뒤로 나동그라졌다.

번량을 공격한 깡마른 노인은 애면은검哀面銀劍 간은수로 파석권 석홍이나 귀곡부 명도근 이상가는 고수였다. 평소 슬픈 표정에 워낙 말이 없었고 검은 은빛으로 빛났기에 슬픈 얼굴의 은빛 검이란 별호가 생긴 것이다. 애면은검의 공격을 신호로 두 진영 간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격돌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싸움이었다. 질과 양에서 적들의 전력이 월등했던 것이다.

“정말 좋지 않는 날이군.”

“난 네 놈이 연애질하는 꼴이 여간 보기 싫지 않았어. 이제 그 꼴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것 같군. 낄낄”

항백이 투덜거리면서 대오의 앞으로 나가자 옆에 있던 경표가 낄낄거리면서 항백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그 뒤를 남궁이현과 두원이 뒤따랐다.

그들도 무림맹이었기에 동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항백과 남궁이현이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관지선과 당수진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녀들의 눈빛은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지만 아쉬움이 가장 커 보였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 생각했지만 아직 충분히 행복과 즐거움을 누려보지 못한 채 그 날이 너무 빨리 찾아 온듯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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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125. 정저지와井底之蛙 +3 17.04.01 2,753 43 11쪽
125 124. 또 위기 +2 17.03.30 3,197 48 10쪽
124 123. 허정虛穽-빈 구덩이 +3 17.03.27 2,784 55 11쪽
123 122. 무인武人과 정치인政治人 +2 17.03.25 2,855 44 11쪽
122 121. 속죄贖罪 +2 17.03.23 2,771 48 11쪽
121 120. 풍정風精 +2 17.03.21 2,798 49 11쪽
120 119. 재회再會 2 +2 17.03.19 2,858 49 10쪽
119 118. 패거리 +4 17.03.17 2,953 49 10쪽
118 117. 무복武服 +3 17.03.15 3,074 47 9쪽
117 116. 승상부丞相府 +4 17.03.13 3,060 42 10쪽
116 115. 쪽지 +2 17.03.11 2,980 43 10쪽
115 114. 역할분담 +3 17.03.09 3,021 47 11쪽
114 113. 감탄고토甘呑苦吐 +3 17.03.07 2,993 43 11쪽
113 112. 눈물 +3 17.03.05 3,213 47 10쪽
112 111. 부서지는 햇살 +2 17.03.03 3,173 45 12쪽
111 110. 반성反省 +2 17.03.01 3,191 45 11쪽
110 109. 숨어있는 눈 +2 17.02.27 3,080 46 12쪽
109 108. 예상된 기습 +2 17.02.23 3,181 48 11쪽
108 107. 구사일생九死一生 +2 17.02.21 3,256 48 11쪽
107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106 105. 전략戰略 +2 17.02.17 3,227 48 11쪽
» 104. 절체절명絶體絶命 +2 17.02.15 3,163 46 12쪽
104 103. 호위 +2 17.02.13 3,329 54 11쪽
103 102. 함정 +2 17.02.12 3,303 4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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