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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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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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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58,507

작성
17.03.2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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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22. 무인武人과 정치인政治人

DUMMY

“국수도 한 그릇 했으니 슬슬 뒤를 밟아 볼까요?”

국수를 그릇 채 들이킨 항백이 그릇을 탁자에 놓으며 말하자 관지선이 항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항백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스함이 가득하다.

마차 행렬은 정주 중심가를 벗어나 한적한 외곽 길로 접어들었고 항백과 관지선은 길에서 벗어나 산길을 달리며 마차를 뒤따랐다. 이제부터는 인적이 드물어 몸을 숨겨야 했다.

마차는 모두 여섯 대였고 마차를 호위하는 인원은 마부를 제외하고 마차 행렬 앞 뒤로 네 명씩 모두 여덟 명이었다. 결코 호위가 많다고 할 수 없는 행렬이었고, 마차 행렬 자체도 느릿한 속도로 한가하게 움직이고 있어 비록 산길이지만 항백과 관지선이 마차 행렬을 뒤쫓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마차 행렬이 갑자기 산길로 접어드는군요.]

관지선이 전음을 보내왔다. 물건을 실은 마차 행렬이 관도官道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산길로 접어드는 것이 이상한 노릇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흉수들에게로 조달되는 마차 행렬이라고 완전히 속단할 수도 없었다.

[이상하군요. 계속 따라가 봅시다.]

항백과 관지선도 마차가 사라진 산길로 은밀하게 접어들었다.

산길로 접어든 마차는 그 후로도 한 시진 이상 이동을 계속했다. 갈수록 길은 험해졌고 산세도 깊어졌지만 다행히 길은 끊어지지 않고 마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계속 이어졌다.

[길이 이상하지 않아요? 뭔가 인공적으로 조성된 길인 것 같아요.]

관지선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항백도 길을 살펴보니 사람 손길이 닿아 만들어진 길처럼 보였다. 이 깊은 산속에 마차가 다닐 만한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것 같소. 정말 이상한 놈들이군요. 이제까지 한번도 쉬지 않은 것이 목적지가 그리 멀지 않은 모양입니다.]

항백의 말이 끝나자 마자 마차 행렬이 갑자기 우측으로 꺾이더니 종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항백과 관지선은 속력을 높여 마차가 사라진 우측 꺾인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길도 마차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귀신이 곡할 만큼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항백과 관지선은 순간 당황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항백이 전음을 사용하는 것도 잊고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지만 관지선은 고개를 숙이고 주변을 세세히 살피느라 항백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던 관지선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항백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여기 마차 바퀴 자국이 있습니다. 나무로 교묘히 가려져 있지만 길이 있는 것 같아요.]

관지선이 조심스럽게 마차 바퀴 자국이 있는 곳으로 가더니 나무와 관목을 헤치면서 숲으로 사라졌고 항백도 이내 관지선을 뒤따랐다.

[대단하군. 이런 곳에 웅크리고 있으니 어찌 찾을 수 있었을까?]

항백이 탄성에 가깝게 전음으로 중얼거렸다.

관지선과 항백이 나무와 관목으로 가려진 곳을 헤치며 전진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탁 트인 공터가 나타났고 전각도 몇 채 들어서 있었다. 인공으로 조성한 것인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정말이지 천혜의 장소였다. 항백과 관지선이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자 소리 죽여 제법 큰 나무를 타고 올랐다.

[저기 마차들이 있군요.]

어느 전각 앞에 멈춰선 마차가 보였고 사람들이 마차에 실린 짐을 내리고 있었다.

전각은 셋 채 정도였는데 곳곳에 경비 무사들이 있고, 드물지 않게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봐선 제법 많은 인원이 상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그 놈들의 본거지 같소. 우리만으로 더 이상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니 일단 돌아갑시다.]

항백의 말에 관지선이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곧바로 들어온 방향으로 몸을 날려 사라져갔다. 둘이 사라지자 그들이 서있던 나뭇가지 위로 소리도 없이 귀신처럼 두 인영이 내려앉았다.

“쥐새끼 같은 연놈이군. 오랜만에 피 맛과 계집 맛을 동시에 볼 기회였는데 아쉽군.”

깡마른 몸에 시꺼먼 피부, 온 몸을 칭칭 감듯이 휘감은 흑의 무복과 팔짱을 낀 양팔에 끼여있는 검. 흡사 지옥에서 온 사자라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 질만한 몰골의 사내가 혀로 입술을 축이며 말했다. 심지어 혀까지도 까맣게 보였다.

“낄낄. 그 놈들이 또 다른 연놈들을 이끌고 곧 올 것이니 조금만 기다리게. 낄낄. 조금 기다려 배불리 먹는 것이 좋지 않겠나? 낄낄”

비슷한 몸매지만 창백하여 파리한 기색이 도는 피부. 움푹 패인 눈과 새빨간 입술의 적의赤衣 사내가 음흉한 소리로 받았다. 흑의 사내가 지옥에서 온 사자 같다면 적의 사내는 시체와 같은 분위기였고, 그렇기에 매우 잘 어울려 보이는 조합이었다.



“드디어 정주로군.”

정주가 내려다 보이는 산마루에서 서홍이 감탄처럼 외쳤다. 그럴 만도 했다. 항주와 장안작전에서부터 놈들의 본거지가 정주임을 파악했으나, 정작 정주로 오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정주에 숨겨둔 마누라라도 있는 모양이군.”

냉보모가 농담을 한다. 소노가 죽고 난 다음에 나타난 변화였다. 소노가 있을 때는 농담이나 싱거운 소리는 모두 소노의 몫이었고 냉보모는 핀잔을 주는 것이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제 농담이나 싱거운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어졌기에 냉보모가 대신하는 것이다. 한편으론 서홍이나 묵진휘와도 많이 친해진 것이 농담으로 이어지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람 좋은 홀아비들도 많을 겁니다. 어디 저만 재미를 보겠습니까?”

서홍이 지지 않고 냉보모를 골린다.

“내가 과분 줄 알아? 이래 봬도 아직 처녀야 처녀.”

냉보모도 지지 않고 처녀임을 강조한다.

“처녀도 세월 지나면 과부 시세라던데요? 킬킬”

“그래, 세상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 했으니 어디 오늘 누가 먼저 세상 하직하나 보자.”

냉보모가 검집으로 손을 가져가자 서홍이 놀란 듯 묵진휘 뒤로 숨는다.

둘의 장난을 지켜보던 공녀가 조그맣게 소리 내어 웃자 묵진휘도 흐뭇한 듯 냉보모와 서홍을 바라본다. 어디 둘이 재미가 있어 장난을 치겠는가? 소노를 잃은 상실감으로부터 공녀를 막기 위한 애씀이다. 물론 공녀도 그것을 알았기에 소리까지 내면서 웃어주는 것이다.

“서서히 해가 지고 있습니다. 서둘러 내려가서 객잔을 잡도록 하시지요.”

묵진휘가 공녀를 보면서 가벼운 재촉을 하자, 냉보모와 서홍도 장난을 멈췄고 공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걸터앉은 바위에서 일어섰다.


묵진휘 일행은 언제나처럼 객잔 별채를 하나 빌려 짐을 풀곤 객잔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별채에 마련된 다실茶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냉보모가 묵진휘에게 물었다. 서홍에게는 농담도 잘하고 말도 편하게 하면서 묵진휘에게만은 깍듯하게 존대를 했다. 아마 공녀를 의식한 것이리라.

“날이 밝으면 무림맹 정주지부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간의 경과가 있다면 알아야겠지요. 만일 아무런 경과가 없다면 하평전장으로 가서 후명신이라는 자에 대해 알아볼 생각입니다.”

묵진휘가 생각을 숨김없이 말했다. 그 생각은 공녀와 같이 북경을 가기 전, 묵진휘 혼자 정주로 향하고자 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묵진휘에게는 그것 이상의 단서도 정보도 없었고 소노 일행과 함께 무한을 떠난 이후론 무림맹에 대한 어떠한 소식도 접하지 못했다. 주작당과 백호당이 정주로 파견되어 거의 전멸한 것이나, 현무당 삼조가 지금 정주에 있다는 사실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건 서홍도 마찬가지였다. 만일 소노가 살아 있었다면 무한을 들러 무림맹의 제갈청 군사로부터 상당히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겠지만 서홍과 묵진휘가 아는 무림맹 인사는 현무당 삼조원들이 다였다.

“무림맹 친구분들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무림맹에 대한 얘기도 좋구요, 무인 일반에 대한 얘기도 좋습니다.”

공녀가 묵진휘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아니 질문이라기보다는 무림세계가 궁금했던 것이다. 공녀도 이황야가 묵진휘에게 무림의 일을 부탁한 것을 알고 있었다. 정치분야라면 자신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무림세계는 생소했기에 알고 싶었던 것이다.

“아시다시피 저도 무림세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오랫동안 산속에서 산 탓입니다. 스승님께 무림세계에 대해 조금 들은 것이 있지만 풍부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무인에 대한 얘기라면 조금 해드릴 수 있습니다.”

묵진휘의 말에 공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달라는 의미였다.

“무인武人이나 정치가나 근본은 비슷합니다. 정치가가 수신修身에서 출발하여 제가치국평천하齊家治國平天下의 단계로 나아간다면, 무인의 출발도 수신修身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자기 몸을 갈고 닦는 것이 무엇보다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수신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무인의 수신이 보다 철저하고 분명합니다. 무인은 몸을 수련하고 정신을 닦지 않으면 무인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 정치가는 수신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수신한 척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정말 수신의 노력을 뼈를 깎는 각오로 수행했는지 알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반면 무인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검을 쥐는 모양만 봐도 수신을 얼마나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무인에게는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의 단계가 없습니다. 바로 평천하平天下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정치가는 아무리 수신을 잘했어도 제가齊家, 즉 자기 집안을 잘 다스리는데 실패한다면 치국을 위한 자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백성들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인은 제가齊家 여부를 따지지 않습니다. 무인, 그 사람만 평가하지 그 관계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즉, 그 집안을 잘 다스렸다고 훌륭한 무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또한 무림에는 국가의 개념이 없습니다. 강한 자가 곧 법입니다. 일반인이 가장 냉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지요. 하지만 무인들은 법法과 같이 복잡한 것을 태생적으로 싫어합니다. 단순하고 직선적인 것을 좋아하지요. 힘이 그것입니다. 평천하의 개념도 무인과 정치인은 사뭇 다릅니다. 무인에게 평천하는 다스린다는 개념이 아니라 홀로 우뚝 선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무인들은 평천하의 개념 자체를 아예 안중에 두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은거한 기인이사들이 그들이지요.”

묵진휘가 차분하게 무인과 정치가를 대비시켜 무인의 특성을 설명했다. 산에서 내려온 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언제 정치가에 대해 이렇게 많은 공부를 했는지, 설명을 듣는 서홍도 속으로 내심 놀라워했고, 냉보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묵진휘의 말에 공감을 표했고, 공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묵진휘의 설명을 귀담아 들었다.

“말씀을 들어보니 참으로 많은 차이가 있군요. 덕분에 무인의 삶과 무림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공녀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묵진휘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는 순간, 묵진휘가 손을 들어 좌중에게 경계 상황이 발생했다는 신호를 했다. 누군가 은밀히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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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125. 정저지와井底之蛙 +3 17.04.01 2,754 43 11쪽
125 124. 또 위기 +2 17.03.30 3,197 48 10쪽
124 123. 허정虛穽-빈 구덩이 +3 17.03.27 2,785 55 11쪽
» 122. 무인武人과 정치인政治人 +2 17.03.25 2,856 44 11쪽
122 121. 속죄贖罪 +2 17.03.23 2,772 48 11쪽
121 120. 풍정風精 +2 17.03.21 2,799 49 11쪽
120 119. 재회再會 2 +2 17.03.19 2,858 49 10쪽
119 118. 패거리 +4 17.03.17 2,953 49 10쪽
118 117. 무복武服 +3 17.03.15 3,074 47 9쪽
117 116. 승상부丞相府 +4 17.03.13 3,060 42 10쪽
116 115. 쪽지 +2 17.03.11 2,980 43 10쪽
115 114. 역할분담 +3 17.03.09 3,021 47 11쪽
114 113. 감탄고토甘呑苦吐 +3 17.03.07 2,993 43 11쪽
113 112. 눈물 +3 17.03.05 3,214 47 10쪽
112 111. 부서지는 햇살 +2 17.03.03 3,174 45 12쪽
111 110. 반성反省 +2 17.03.01 3,191 4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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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108. 예상된 기습 +2 17.02.23 3,181 48 11쪽
108 107. 구사일생九死一生 +2 17.02.21 3,256 48 11쪽
107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106 105. 전략戰略 +2 17.02.17 3,227 48 11쪽
105 104. 절체절명絶體絶命 +2 17.02.15 3,163 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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