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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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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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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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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3.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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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4. 역할분담

DUMMY

“좋은 분이셨다. 소노는. 무림인 중에 협俠을 중시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처럼 실행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협俠을 실행하는 사람 중에서도 그처럼 협俠을 크게 보고, 협俠의 근본을 보는 사람은 또 한번 드물 것이다.”

이황야가 탁자 앞에 놓인 뜨거운 찻잔에서 피어 오르는 김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나직한 소리로 얘기했다.

소노에 대한 정성어린 장례를 막 끝낸 후였다.

“처음 만났을 때 세상 구경을 하기 위해 하산했다 했다. 구경을 한 소감이 어떠한가?”

이황야가 찻잔을 손에 쥐며 묵진휘에게 물었다. 소노 얘기에서 갑자기 화제를 바꾼 것이다. 묵진휘는 이황야가 일부러 소노 얘기를 피한다 생각했다.

“욕심이 너무 많고 큽니다.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서로 속이고, 싸우다 보니 세상이 너무 혼탁해졌습니다.”

묵진휘의 간결한 대답이었다.

“그렇다. 욕심은 복잡한 이해관계를 만들게 되고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다툼이 생기고, 그러다보면 혼탁해지지. 하면 어찌했으면 하는가? 어찌하면 욕심을 줄일 수 있겠는가?”

이황야가 또 물었다. 근본을 파고 드는 것이다.

“산에 있으면 욕심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하하하. 산에 있으면 욕심을 줄일 수 있겠지.”

묵진휘의 대답에 이황야가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모두 산에 살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욕심을 줄이기는 어렵겠지요.”

“욕심을 줄이지 않으면 다른 대안은 없겠는가?”

“욕심으로부터 생긴 문제를 다른 데서 어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욕심을 줄임으로서 해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욕심을 줄일 수 없다면 우선 내 욕심부터 줄여야지요. 그 다음에는 더럽고 큰 욕심을 줄여 나가야겠지요. 그리 되면 큰 다툼은 줄일 수 있고 세상은 덜 혼탁해질 것입니다.”

묵진휘의 대답에 이황야가 진지한 표정으로 아무 말없이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잠시 후 눈을 뜨며 말했다.

“자네 얘기를 듣고 보니 생각할 것이 많구나. 나는 욕심은 타고난 본성本性이며, 사람들이 모여 고을을 이루고 도시를 이루고 성省을 이루며 나라를 이루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생각했다. 욕심이 당연한 것이라 인정하니 그 욕심을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그것이 정치政治다. 그래서 정치는 타협인 것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욕심을 타고난 본성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자신의 욕심도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자신의 욕심을 없애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강력한 법으로써 큰 욕심을 막는다면 세상의 혼탁함은 없어질 것이다. 난세亂世의 정치는 어쩌면 그것이 본질일 수 있겠구나. 나는 이제까지 신하臣下들이 말하는 태평성대의 정치만을 생각한 게야. 허허”

이황야가 뒤늦은 깨달음을 허탈한 웃음으로 표현했다.

묵진휘는 이황야의 말 속에서 난세亂世라는 단어가 강력하게 귀에 들어왔다. 그렇다. 태평성대의 도道와 난세의 도道는 원리가 다를 수 있다. 자신이 산 속에서 생각하던 도와 세상의 도는 시대에 따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지금은 다른 시대인 것이다. 묵진휘의 시대인식時代認識이 이황야와의 대화 속에서 점차 뚜렸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좀더 적극적이려고 하네. 지금까진 세상의 도道가 깊게 숨어 있다 생각했지. 그래서 때를 기다렸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그 때가 올 것이라고.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군. 내가 때를 찾아 갈수도 있다고. 어찌 보면 기다리던 그 때가 찾아가는 때 일수도 있겠다고. 소노가 가면서 내게 마지막 큰 깨달음을 알려준 게야. 하하하하 크하하하”

이황야의 웃음이 호탕함을 넘어 폐부肺腑의 찌꺼기를 뱉어내는 듯 격렬했다. 소노의 죽음을 말하면서 어찌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묵진휘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황야의 가슴속에 소노가 하나의 자리를 또아리 틀고 들어 앉았음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묵진휘도 이황야의 말에 동감할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의 심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소노의 마지막을 지켜봤겠지?”

갑자기 이황야가 화제를 바꾸어 다시 소노 얘기를 꺼냈다.

“그렇습니다.”

“소노가 자네에게 마지막 당부한 말이 있을 듯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이황야가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머금은 채 눈을 가늘게 뜨며 묵진휘에게 물었다. 마치 그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이황야의 물음에 묵진휘가 선뜻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자칫 잘못하면 이황야의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괜찮네. 있는 그대로 말해보게.”

이황야의 재촉에 묵진휘가 입을 열었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으면 않지 거짓말을 못하는 묵진휘임을 이황야는 꿰뚫어보고 있는 것이다.

“아가씨를 끝까지 지킨다고 약속하라 하셨습니다.”

“크하하핫”

묵진휘의 얘기에 이황야가 박장대소拍掌大笑했다.

“그래, 자네는 뭐라 대답했는가?”

이황야의 물음에 약간 주저하던 묵진휘가 어눌하게 대답했다.

“그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됐네 됐어. 하하하핫. 자네가 가져온 장부는 내가 얼핏 살펴보았네. 심증만 있었지 확증이 없어 고심했는데 이제 분명한 확증을 잡았어.”

묵진휘의 대답에 뭐가 그렇게 좋은지 흐뭇한 웃음을 짓던 이황야가 안색을 굳히며 진중하게 말을이었다.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장부와 관련된 황실의 문제는 내가 맡겠네. 무림의 문제는 자네가 맡아줬으면 하네. 되겠는가?”

묵진휘에게 묻는 이황야의 눈빛에 불꽃이 이글거렸다. 묵진휘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았다.

“소노께 약속한 것이기도 합니다.”

묵진휘가 선뜻 대답했다. 묵진휘도 자신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이제는 방관자가 아닌 당사자가 되었다. 공녀의 안전은 지킨다고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근원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근본적인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리고 그것이 조부의 원수를 갚는 일이기도 했다.

이황야와 묵진휘의 대화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둘은 서로의 생각이 동일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만, 한가지. 공녀를 지킨다는 의미가 단순히 안전을 도모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묵진휘가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거 외에는.



“어디로 갈 생각인가?”

짐을 챙기며 서홍이 묵진휘에게 물었다.

“우선, 정주로 갈 생각이네. 원래 놈들을 찾아 정주로 갈 생각이었잖나?”

묵진휘가 어깨에 맬 수 있도록 등짐의 끈을 어림잡으며 말했다.

“무한에 들러 남궁이현을 만나보고 가더라도 늦지 않지 않겠나? 혹시 새로운 소식이 있을지도 모르고.”

서홍이 무한에 들렸다 가면 어떻겠는지 물었다.

“아마 새로운 소식이 있었다면 그 친구도 이미 정주로 갔을 것이네.”

“하긴, 무한에 그대로 있다면 새로운 소식이 없다는 얘기겠지. 자네 말대로 정주로 가세. 그나저나 해정에 있는 남태혼 그 친구는 잘 지내는지 궁금하군.”

서홍이 남태혼 얘기를 꺼냈다. 묵진휘도 남태혼을 생각했다. 하산下山해서 처음 사귄 친구였다. 묵진휘에게는 죽마고우竹馬故友나 다름 없었다. 묵진휘도 남태혼이 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길을 꺼꾸로 가긴 어려웠다.

“무소식이 희소속이랬으니 잘 지내고 있겠지. 언제 시간 날 때 한번 들러보도록 하세.”

서홍이 남태혼 얘기를 먼저 접었다. 그도 지금 남태혼을 보러 해정으로 가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얘기를 자신이 먼저 마무리하는 것이다.

“꼭 그러도록 하세.”

묵진휘가 서홍의 그런 마음을 읽고 자신의 마음도 동감同感임을 약속으로 표현했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미리 배려하는 것.

묵진휘와 서홍이 이런저런 얘기 속에 짐을 다 꾸려 갈 때쯤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물들이 있었다. 공녀와 냉보모였다.

“저도 따라 가겠습니다. 짐이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공녀가 짐을 꾸리다 얼굴을 들고 공녀를 바라보자 공녀가 먼저 단호한 목소리로 각오를 말한다.

“위험한 길입니다. 공녀님께선 여기 계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서홍이 묵진휘를 대신해 공녀를 말리고 나섰다.

“알고 있습니다. 목숨을 장담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가고 싶습니다.”

공녀가 서홍을 보며 말했으나, 마지막 시선은 얼굴을 약간 돌려 묵진휘를 바라보았다.

“함께 가시지요.”

체념 같은 것이 어려있는 얼굴로 냉보모가 묵진휘와 서홍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말려봤자 소용없다는 의미였다.

“아버님을 도와 하셔야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묵진휘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을 돕는 사람은 많습니다. 제가 돕는다고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묵대협을 따라 나선다고 제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짐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제가 있을 자리는 없습니다.”

공녀의 말은 단호했다.

서홍도 냉보모도 묵진휘를 가만히 바라봤다. 묵진휘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다.

“소노께서는 아가씨가 안전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를 따라 가면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입니다. 소노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묵진휘가 다시 한번 공녀를 설득했다.

“제가 소노의 죽음을 잊지 못해 억지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공녀입니다. 소노가 지키고자 했던 것도 공녀입니다. 공녀는 백성들의 관점에서 공녀입니다. 지키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백성들의 편에 서는 것이 우선입니다. 곤란이 있다고 백성들의 편에 서기보단 숨어 지키기부터 한다면 그것은 공녀가 아닙니다. 위험이 있다고 문제를 해결하는 편에 서기보단 숨어 지키기부터 한다면 또한 공녀가 아닙니다. 아버님께서도 허락하셨습니다. 제가 따라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공녀가 묵진휘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하는 위치에 있지 아니한 공녀였지만 이번 동행에 대해 묵진휘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시지요.”

공녀의 애절하면서도 단호한 얘기에 묵진휘 또한 동감했다. 어쩔 수 없어서 허락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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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역할분담 +3 17.03.09 3,021 47 11쪽
114 113. 감탄고토甘呑苦吐 +3 17.03.07 2,993 4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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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111. 부서지는 햇살 +2 17.03.03 3,173 45 12쪽
111 110. 반성反省 +2 17.03.01 3,191 4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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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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