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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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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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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1
글자수 :
1,158,507

작성
17.03.2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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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23. 허정虛穽-빈 구덩이

DUMMY

“술 맛이 별로인 모양이군요. 새로운 술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사승상이 곽태감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좋겠소. 다른 술이 있으면 한번 마셔봅시다. 지금 술도 좋은 술인듯한데 내 입에 맞이 않는 모양이오. 그 참~”

곽태감이 술잔 속의 술을 빙글빙글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사실 술은 아주 맛있고 향도 그윽했다. 하지만 곽태감은 아까 들어왔던 여인이 혹시 다른 술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술맛이 별로라고 한 것이다.

사승상이 손뼉을 치자 뒤편 문이 열리며 곽태감의 기대대로 처음 들어왔던 여인이 다시 들어왔다.

“술을 바꿔 오느라. 이 술은 태감 어르신의 입에 맞지 않는 모양이구나.”

사승상이 말하자마자 여인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다시 방문을 열고 나갔다. 사승상은 여인이 들어오고 나가는 동안 곽태감의 시선이 한치도 여인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것을 곁눈질로 살피곤 알았다.

‘영감탱이가 아주 바짝 달아올랐구나. 계획대로 되고 있어. 큭큭. 태감, 조금만 기다리시오. 성장로가 도착하면 소원대로 해줄 터이니. 하하하’

잠시 후 여인이 새로운 술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두고 가거라. 참, 주인 어르신은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느냐?”

사승상이 술을 들고 들어온 여인에게 물었다.

“아직 도착하시지 않으셨습니다만 곧 도착하실 터이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요.”

술이 가득 찬 술병으로 술을 부을 때 나는 것과 같은, 청량하면서도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곽태감의 눈동자는 견디기 어려운 열망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들어오시오.”

손짓으로 경계 신호을 보냈던 묵진휘가 손을 내리며 밖을 향해 말하자, 날씨가 좋아 열어놓은 문앞에 한 인영이 소리 없이 나타나 한쪽 무릎을 꿇고 공녀 일행에게 인사를 올렸다.

“비살문 특이호입니다. 오랜 만에 인사 올립니다.”

비살문 특이호가 나타난 것이다. 북경 부근에서 헤어진 뒤로 처음 나타난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공녀가 반갑게 인사했다.

“소노 어르신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좋으신 분이셨는데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소노 얘기를 꺼내는 특이호의 목소리가 젖어있었고, 억지로 소노 얘기를 하지 않던 공녀 일행은 특이호로 인해 다시 우울한 기분에 젖어 들었다.

“어떻게 소노 소식을 알고 있는 것이오?”

서홍이 특이호에게 물었다.

“그 때 북경 부근에서 헤어진 뒤로 남은 일을 처리하곤 다시 북경으로 와서 동창을 계속 살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번씩 비살문을 방문했던 동창 조장 한 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그 조장을 감시했더니, 그 자가 수상한 세력을 만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들의 대화에서 소노 어르신이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놈들이 바로 동창의 의뢰로 비살문을 잔혹하게 말살한 세력이라 짐작하곤, 그 세력의 꼬리를 더듬고 더듬다 보니 정주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특이호가 소노 소식을 알게 된 경위와 정주로 오게 된 경위까지 말하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대로 소노를 습격한 무리는 바로 정주에 본거지를 둔, 무림맹이 찾던 흉수들과 동일 세력이라는 추정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소?”

서홍이 다시 특이호에게 물었다.

“살수조직은 나름대로 정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부 대상의 특성과 동선動線 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있어야 성공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살수조직이 직접 정보망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고 정보조직과 연대한다는 말입니다. 이곳 정주에도 다양한 정보망이 있습니다. 제가 정주로 와서 공을 들인 일이 나름의 정보망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정보망에 의뢰한 내용 중에 하나가 정주 객잔의 별채를 얻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였습니다. 정보란 변화의 내용입니다. 새로운 외지인들이 객잔 별채를 얻는 다는 것은, 해당 고장의 입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이호의 설명에 모두들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정보에 민감한 전문가라면 당연히 객잔 별채를 통째 빌리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군요. 앞으로는 별채를 통째 얻는 것을 삼가야겠군요.”

공녀가 큰 배움이 있었다는 듯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고 묵진휘도 중요한 내용이라고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경험은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이오?”

이번에는 묵진휘가 특이호에게 물었다. 특이호의 얼굴이 다급한 일이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이 일이 관계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흉수들이 또 다른 흉계를 꾸미고 있는 듯해 알려드리려고 찾아뵈었습니다.”

특이호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공녀 일행과 무림맹이 관계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하는 것이다.

“말씀해보세요.”

공녀가 얘기를 재촉했다.

“현재 정주에 파견된 무림맹 주력인 백호당과 주작당은 무학산에서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후 모두 철수하고 없습니다만, 몇 명의 사람들이 남아 계속 그 놈들의 뒤를 캐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최근 놈들이 운영하는 상단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이를 놈들이 알고 먼저 허정虛穽, 즉 빈 구덩이를 팠습니다. 덫이지요. 무학산 북쪽 기슭에 놈들의 본거지 중 하나를 일부러 노출하여 그들을 유인했습니다. 아마 지금쯤 무림맹 사람들이 그곳으로 출발했을 터인데 실로 위험합니다.”

“무림맹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라 하던가요?”

서홍이 다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물었다. 혹시나 현무당 삼조원들이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남녀가 섞여 있는 여섯 명인데 정확한 신원은 모르겠습니다.”

특이호의 대답에 현무당 삼조원 다섯에 관지선을 포함하면 여섯이었기에 서홍이 걱정스런 얼굴로 묵진휘를 돌아봤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소. 나를 그리로 인도해주실수 있으시오?”

묵진휘가 특이호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그럴 생각으로 찾아 뵌 것입니다.”

특이호가 당연하다는 듯 답한다.

“공녀께서는 냉보모와 함께 여기 계십시오. 친구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묵진휘가 공녀에게 말한 후 냉보모를 바라보자 냉보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녀는 자신이 지키고 있겠다는 뜻이었다.

“조심해서 다녀오도록 하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공녀의 대답이 끝나자 마자 묵진휘와 서홍, 특이호가 자리를 떠났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묵대협은 천하 어디에도 내놓을 수 있는 고수입니다.”

냉보모가 공녀의 걱정을 달랬다.

“묵대협이 무인에 대해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를 빠트리고 말씀하셨군요. 그 무인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애끓는 심사를 말입니다.”

공녀의 시선이 묵진휘가 사라진 곳을 향하고 있었다.



“왜 이리 늦는단 말인가?”

사승상이 술을 가지고 들어온 여인에게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약속한 성장로 일행이 너무 늦는 것이다.

“그들이 이제 우리 말을 무시하는 거요. 끄윽~”

곽태감이 자신의 말이 맞지 않냐는 듯이 목소리를 눌러 말한다. 하지만 이미 혀는 반쯤 꼬부러져 있었다. 곽태감도 이제는 이곳이 북천회의 북경 비밀장원임을 알았고 주인이 누군지도 알았다. 그리고 그토록 갈망하는 여인이 누구의 시중을 드는 여인인지도 알았다. 괘씸했다. 최근에 보인 회의 행보가 괘씸했고 갈망하는 여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괘씸했다. 방에 들어온 여인이 술을 주고 나간 뒤로 곽태감은 솟구치는 울화를 술로 달래려는 듯 사승상이 주는 대로 술을 들이켰고 이미 주량의 임계치를 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영감탱이가 오늘따라 웬 술을 이리 마셔대는가? 저러다가 정신을 놓으면 오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텐데. 이것 참~’

사승상의 속이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원래 사승상은 곽태감 몰래 북천회와 별도로 계획을 세웠다. 이제 곽태감을 제거하기로.

과거 동창에서 저지른 일이 점점 자신들의 발목을 잡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승상은 감탄고토甘呑苦吐,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세상이치다. 이황야의 정치공세가 시작되면 모든 문제의 음모자로 동창을 내세워 칼받이로 만드는 것이 사승상의 계획이었다. 꼬리를 짤라 몸통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태감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동창을 쉽게 칼받이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데, 태감을 그냥 죽일 수는 없다. 그리 되면 황실에서 조사가 시작될 테고 일이 복잡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태감을 제거하고 동창을 칼받이로 만드는 방법. 그것을 성장로가 제안해왔다.


복상사腹上死.

환관이 복상사한다는 말이 애초 모순이었으나 기실 환관들이 여인들과 갖가지 방법으로 음탕한 짓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복상사가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

성장로가 복상사를 일으키는 약을 구해 가지고 오는 길이다. 그래서 여인을 별도로 구한 것이다. 곽태감이 거절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만일 성장로가 왔다면 곽태감은 그토록 갈망하던 여인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다음은 싸늘한 시신이 되겠지만. 조부태감은 이 모든 일의 목격자가 되어야 했다. 타살이 아닌 자연스런 복상사임을 증언하는.

그리고 북천회에 무력도 요청했다. 혹시 곽태감을 호위하고 있던 무사들이 곽태감의 죽음에 대한상황판단을 잘못하는 경우 그들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기에.

성장로가 오기 전에 곽태감이 술로 정신을 잃으면 모든 계획이 수포水泡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지금 갈망하는 여인을 안길 수도 없다. 약藥 없이 복상사를 기대할 순 없는 일이니까.

사승상은 고민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꿍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곽태감이 탁자에 머리를 박고 정신을 잃었다. 오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결국 계획을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인에 달아 오른 곽태감이라면 언제든지 다시 미끼를 물 것이다.

“조부태감께서 곽태감을 모셔야겠소이다. 오늘 그들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내가 따끔하게 충고를 하리다. 곽태감께는 조만간 다시 날을 잡겠다고 말해주시오. 그 땐 오늘의 결례缺禮에 대한 사죄의 대가로 원하시는 것을 얻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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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26. 현무당 특수조 +4 17.04.03 2,814 48 11쪽
126 125. 정저지와井底之蛙 +3 17.04.01 2,754 43 11쪽
125 124. 또 위기 +2 17.03.30 3,197 48 10쪽
» 123. 허정虛穽-빈 구덩이 +3 17.03.27 2,785 55 11쪽
123 122. 무인武人과 정치인政治人 +2 17.03.25 2,855 44 11쪽
122 121. 속죄贖罪 +2 17.03.23 2,772 48 11쪽
121 120. 풍정風精 +2 17.03.21 2,799 49 11쪽
120 119. 재회再會 2 +2 17.03.19 2,858 49 10쪽
119 118. 패거리 +4 17.03.17 2,953 49 10쪽
118 117. 무복武服 +3 17.03.15 3,074 47 9쪽
117 116. 승상부丞相府 +4 17.03.13 3,060 42 10쪽
116 115. 쪽지 +2 17.03.11 2,980 43 10쪽
115 114. 역할분담 +3 17.03.09 3,021 47 11쪽
114 113. 감탄고토甘呑苦吐 +3 17.03.07 2,993 43 11쪽
113 112. 눈물 +3 17.03.05 3,214 47 10쪽
112 111. 부서지는 햇살 +2 17.03.03 3,174 45 12쪽
111 110. 반성反省 +2 17.03.01 3,191 45 11쪽
110 109. 숨어있는 눈 +2 17.02.27 3,081 46 12쪽
109 108. 예상된 기습 +2 17.02.23 3,181 48 11쪽
108 107. 구사일생九死一生 +2 17.02.21 3,256 48 11쪽
107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106 105. 전략戰略 +2 17.02.17 3,227 48 11쪽
105 104. 절체절명絶體絶命 +2 17.02.15 3,163 46 12쪽
104 103. 호위 +2 17.02.13 3,329 5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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