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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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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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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3.3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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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124. 또 위기

DUMMY

“연애하는 놈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거기에 왜 연애 얘기가 나오는가?”

“제정신이었으면 좀 더 신중했겠지.”

“연애도 하지 않는 자네가 더 신중해서 함정을 알아보지 그랬나?”

“연애 하더니 말하는 것도 늘었군. 좋겠네.”

“자네는 연애도 하지 않으면서 언제 그리 말이 늘었는가?”

경표와 항백이 기둥을 두고 손을 뒤로 묶인 채 옥신각신 거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생포된 긴장감을 풀려는 그들만의 방법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제가 이번에 나갈 수 있으면 참한 아가씨를 하나 소개해 드릴게요.”

관지선과 함께 기둥에 묶여 있는 당수진이 경표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웬일이래? 나는 연애할 자격이 없다면서?”

경표가 당수진에게 쏘아붙인다. 물론 진심은 아니다.

“그동안 미안했어요.”

“뭐가?”

당수진의 나지막하면서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목소리에 경표가 놀라 되물었다.

“선배 괴롭힌거요.”

“갑자기 왜이래? 더 무섭게.”

“진짜 미안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해드리는 건데.”

당수진의 목소리에 습기가 조금 베어있었다. 항상 씩씩하던 당수진마저 이번에는 절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거 왜이래? 아냐. 괴롭힌 거. 오히려 재미있고 좋았어. 수진이가 그리 편하게 대해줬으니 우리 삼조가 무림맹에서 가장 끈끈하잖아?”

경표가 당수진을 위로한다. 여자의 눈물은 남자에겐 무서운 무기다. 아직 방어 무기가 개발되지 못한.

“그렇죠? 나 때문에 우리 삼조가 이리 끈끈하게 된 거죠? 여기서 나가면 기대하세요. 더욱 고도의 여러 방법을 동원할 생각이니까.”

“이런 우라질. 또 속았어.”

당수진의 연기에 속은 것을 안 경표가 발을 구르며 분해 동동거렸으나 평소 같으면 소리 내어 같이 웃었을 나머지 사람들이 빙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위기는 위기였던 것이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누가 우릴 구해줄까? 주대협은 북경으로 가고 없고, 무림맹은 정주에서 철수했고, 묵대협은 어디 있는지 모르고.”

당수진이 위기에 정면으로 맞선다. 통상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절망을 말하지 않는다. 마치 절망을 말하면 절망 속으로 빠질 것처럼. 이미 빠져있는데. 당수진의 장점은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인정한다는 점이다. 상황을 의도적으로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왜곡시키지 않는다. 지금은 절망적인 상황인 것이다. 어쩌면 희망은 그 속에서 움트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당수진을 남궁이현이 따뜻하고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당수진도 남궁이현을 바라보더니 싱긋 웃음을 지어준다. 자기 걱정은 하지 말라고.

“누가 구해주지 않으면 우리 힘으로 탈출해야지.”

항백이 당수진의 말을 받는다. 항백과 당수진이 닮은 긍정적인 힘이다.

“우리가 힘이 있으면 이렇게 잡혔겠어?”

경표가 항백을 누른다. 경표는 또 하나의 사실이기도 했다. 사실을 직시하는 점에선 당수진과 닮아 있었고 어찌 보면 셋 모두 닮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죽이 잘 맞는 것일지도.

“그럼 장가도 못 가보고 저승 갈 거야?”

항백이 다시 경표를 도발한다.

“난 억울한 것 없다. 원래 없었으니 아쉬운 것도 없지. 킬킬. 오히려 네놈이 아쉬울 걸?”

경표가 항백을 오히려 도발한다. 둘의 입장과 태도가 저번 무악산에서 주은백이 구해주기 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와는 백팔십도 달라진 것이다. 학습이 된 것이다.

이번에는 두원이 풋~하고 웃음을 뱉었다.

“자네들은 입장을 바꿔가면서 싸우니 참으로 대단하네. 하하”

무악산에서의 입장과 서로 바뀐 것을 알아차린 두원이 웃으며 말한다.

“사람이 지조가 없어요.”

“그래, 자네는 지조 있게 죽게.”

항백이 투덜거리자 경표가 이죽거렸다.

그때 문이 열리며 한 인영이 들어왔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군. 웃음소리가 밖에 까지 들리는걸 보니. 그럼 두려워하도록 해주지. 킬킬.”

흑의를 칭칭 두른 시꺼먼 피부의 저승사자 같은 사내가 메마른 목소리로 말하며 당수진과 관지선이 묶여 있는 기둥으로 다가가자 당수진과 관지선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두렵다기 보다는 징그러웠기 때문이다. 눈 앞의 사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상상이 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흑의 사내가 시꺼먼 손을 뒤집어 손톱으로 당수진의 목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당수진은 최대한 고개를 젖혀 흑의 사내의 손길을 피하고자 했으나 기둥에 묶여 있는 몸이라 피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네 이놈~. 그래도 명색이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무인이라는 자가 여인을 희롱하다니. 검劍에게 부끄럽지 않느냐?”

남궁이현이 포효하자 흑의 사내가 고개를 돌려 남궁이현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네 놈은 사흘을 굶어 봤느냐? 네 놈은 찬 겨울 다리 밑에서 눈물 젖은 식은 밥을 먹어 봤느냐? 아니면 그런 사람들을 보기는 했느냐? 낄낄. 네 놈은 무엇을 위해 검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굶지 않기 위해 검을 들었지. 이처럼 어여쁜 아가씨와 달콤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검을 들었단 말이야. 낄낄.”

사내가 대수롭지도 않은 듯, 말하면서도 여전히 당수진의 목덜미를 손톱으로 간지럽히고 있었다.

“사람이 사흘을 굶으면 모두 네 놈처럼 야차夜叉가 된다더냐? 어림없는 소리다. 모두 야차 같은 네 놈이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하는 소리임을 정녕 모른단 말이냐?”

남궁이현이 다시 사내를 질타했지만 사내는 남궁이현을 바라보지 않고 이번에는 관지선의 목덜미를 간지럽히기 시작하면서 대꾸한다.

“네 놈들이 뻔지레한 것은 말뿐임을 내 진작 알고 있느니라. 캬캬캬캬~. 잠깐만 기다리거라. 이 년들 다음에는 네 놈 혀부터 먼저 뽑아주마. 캬캬캬캬~.”

웃음소리마저 저승사자 같은 흑의 사내의 손이 점점 관지선의 목 아래로 내려오면서 옷깃을 벌려쇄골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관지선이 목을 이리 저리 돌리며 저항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옆에 있던 당수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네 이놈~”

항백의 포효였다. 항백의 꾸짖음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울분이 녹아 있어 그가 관지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켈켈~ 네 놈이 이 여자를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더욱 회가 동하는군. 켈켈.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하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이지. 켈켈”

흑의 사내는 겉모습만 저승사자가 아니라 마음마저 섞어 있었다.

흑의 사내가 한 손으론 천천히 관지선의 앞섶을 헤치기 시작하더니 다른 손으론 당수진의 앞섶도 조금씩 헤치기 시작했다. 두 여인은 흑의 사내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쳤고 남자들은 발부림을 치며 흑의 사내를 저지하려 했으나 마음뿐이었다.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그때 밖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놈들이 드디어 나타난 모양이군. 켈켈. 이번에는 우리가 한 수 앞을 더 내다봤지. 네 놈들만으로 이곳에 올 리가 없지 않겠느냐? 켈켈. 귀여운 것들. 조금만 기다리고 있거라.”

흑의 사내가 병장기 소리에도 전혀 놀라지 않곤 당수진과 관지선 눈 앞에 혀를 쑥 내밀어 핥는 시늉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서 문을 열고 나갔다. 흑의 사내가 나가자 당수진과 관지선은 안도의 한 숨을 쉬며 조금 풀어진 앞 섶을 정리하려 했으나 손이 묶여 있어 어려웠다. 그나마 앞 섶을 통해 피부가 보일 정도는 아니었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좀 전에 그 놈이 분명 그 놈들이라 했지? 누굴까요?”

경표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다.

“글쎄, 감이 잡히지 않는군. 정주지부 무인들인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은 우리가 여기로 오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두원과 항백이 주고 받고 하면서 의아스러워할 때 다시 문이 열리더니 몇 사람이 신속히 방안으로 들어왔다.

“숙부?”

남궁이현이 들어온 사람을 보며 깜짝 놀랐다.

“조용히 하거라.”

남궁이현이 숙부라고 부른 중년인, 남궁식연이 손가락을 입에 붙이며 조용하도록 신호했다.

“어찌된 일입니까?”

“자네들을 구하려 온 게지.”

남궁이현의 물음에 또 다른 중년인이 남궁이현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며 대답한다.

“제갈황 아저씨 아니십니까?”

이번에는 당수진이 제갈황을 알아보며 물었다.

“그렇다. 오랜만이구나. 허허”

제갈황이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이번에는 두원의 밧줄을 풀며 말한다.

“모두 풀었군요. 빨리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중년의 여승이 모두에게 서둘도록 재촉했다. 그녀는 무공뿐만 아니라 법명法名도 높은 아미의 태연도니台蓮度尼였다.

“어떻게 알고 오신 것입니까? 밖에서 싸우는 분들도 같이 오신 분입니까?”

방 한구석에 세워져 있던 각자의 무기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당수진이 제갈황에게 두서없이 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주에서부터 너희들을 몰래 감시하고 있었다. 철없는 것들이 무슨 짓을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껄껄. 밖에도 세 분이 더 계시다.”

제갈황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섞어 말해다.

“우리도 현무당 소속이다. 특수조. 총군사의 지시로 정주에서부터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너희들을 지키는 것이 우리 임무다.”

남궁식연이 정체와 임무를 밝히자 현무당 삼조원들은 알지 못할 감격에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최전선에서 적과 싸우는 것은 자신들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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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또 위기 +2 17.03.30 3,197 4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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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122. 무인武人과 정치인政治人 +2 17.03.25 2,855 4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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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120. 풍정風精 +2 17.03.21 2,798 49 11쪽
120 119. 재회再會 2 +2 17.03.19 2,858 49 10쪽
119 118. 패거리 +4 17.03.17 2,953 4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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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115. 쪽지 +2 17.03.11 2,980 43 10쪽
115 114. 역할분담 +3 17.03.09 3,021 47 11쪽
114 113. 감탄고토甘呑苦吐 +3 17.03.07 2,993 4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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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107. 구사일생九死一生 +2 17.02.21 3,255 48 11쪽
107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106 105. 전략戰略 +2 17.02.17 3,226 48 11쪽
105 104. 절체절명絶體絶命 +2 17.02.15 3,162 46 12쪽
104 103. 호위 +2 17.02.13 3,328 5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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