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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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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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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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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1
글자수 :
1,158,507

작성
17.03.1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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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글자
10쪽

116. 승상부丞相府

DUMMY

“어서 오시오 태감.”

“오랜만에 뵙습니다. 승상”

곽태감이 반갑게 승상丞相 사응렬史應烈에게 인사를 올렸지만 속에서는 조그만 불꽃이 일었다. 건방지고 오만한 승상의 얼굴에서 지난날의 비굴함을 찾기 어려웠고, 그것은 곧 자신의 품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욱 건강해 보이십니다.”

“태감께서는 외려 회춘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

덕담이 오간다. 승상이 태감에게 자리를 권하면서 상석上席에는 자신이 앉는다. 승상의 얼굴은 태감의 말이 아니더라도 장년壯年의 건강함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태감은 장년이 된 승상을 보면서 노년의 자신을 떠올린다. 십여 년 전만해도 감히 자신과 나란히 마주설 수 없었던 인물이 이제 자신에게 아랫자리를 권하고 있다.

지금의 위치로 보면 당연히 승상이 상석에 앉고 동창 태감인 자신이 아랫자리에 앉는 것이 당연하다. 더욱이 이곳은 승상부가 아닌가? 하지만 자신과 승상의 과거를 생각하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궁녀와의 추문으로 궁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것을 구해준 사람이 누구였던가?

현 황제에게 간언해 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려준 것도 자신이 아니던가?

하지만 태감은 여전히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승상이 권한 자리에 앉았다.

“그래, 무슨 일로 이곳을 찾으셨습니까?”

무엇이 답답하고 잘 풀리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 가려운 곳이 있으니 왔을 거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태감은 승상의 짐작 속에 있는 자신이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문제가 좀 생겼소이다.”

“문제라니요?”

“얼마 전 외곽에 있는 동창 비밀장원에 도둑이 들었소.”

“얼마나 진귀한 것이 많았길래 감히 동창의 비밀장원에 도둑이 들었단 말이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다. 승상의 말속에 곽태감을 비웃는 뼈가 들어있다.

“훔쳐간 것 중에 진귀한 것은 없었소. 다만 낡은 궤 하나를 가져갔는데 속에 든 것이 문제요.”

“그것이 무엇이오?”

“장부 한 권과 목걸이 두 개요.”

태감의 말에 승상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사라졌다.

승상의 어두워지는 얼굴을 보면서 곽태감이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네놈에게도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승상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회會로부터 공녀일행을 습격한 일과 실패 또한 들어 알고 있었다. 짐짓 모른 척 할 뿐이었다.

“누가 소행이오? 물건은 회수하셨소?”

승상이 거듭 묻는다.

“아직 회수하지 못했소. 나는 이황야측 소행이라고 생각하오. 그 아니면 그 물건들을 가져갈 필요가 있는 사람이 없소. 나도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펴봤으나 이황야 외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했소. 그래서 황제 생신 축하 차 궁궐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공녀 일행을 습격해 장부를 찾으려 했으나 대단한 고수가 있어 습격마저 실패하고 말았소.”

“회에서도 대단한 고수들을 파견했을 터인데?”

승상이 의문스럽다는 듯 물었다. 승상이 회의 고수를 언급했지만 태감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누군가를 습격하는 일은 대부분 회에게 위임해왔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승상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황야 측에 있던 젊은 고수 한 놈을 어찌하지 못했다 하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 회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오. 근자에 일어난 일련의 일을 살펴보면 그들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딴 생각을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소.”

“하면, 어찌하실 생각이시오?”

“그 때문에 이렇게 승상을 찾아 뵈었소.”

태감의 얼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비릿한 웃음기가 잠시 머물다 사라졌음을 승상은 놓치지 않고 보았다.

“말씀하시지요.”

승상이 태감에게 속내를 꺼내놓으라고 한다.

“이황야 측에서 장부를 입수했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마 많은 신하들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리라 예상되오. 우리도 빨리 대응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오.”

태감은 빨리 라는 말과 우리 라는 말에 힘을 실었다. 자신과 승상이 한 배에 타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승상부에서 이황야의 공세를 먼저 막아달라는 의미였다.

“어려운 문제군.”

승상이 혼잣말처럼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태감은 승상이 생각을 정리하도록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그에게도 골치 아픈 일일 것이라 짐작하면서.

“내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좀 주시오. 그리고 회와도 다시 한번 상의를 해봅시다. 그들은 너무 많은걸 알고 있소. 이 시점에서 적으로 돌리느니 가급적 친구로 대하는 것이 상책이오. 내가 다시 자리를 만들어 기별을 드리겠소.”

승상이 태감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감도 승상의 말이 일리 있다 생각했다.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승상부에서 적극적으로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뜻이요, 회를 친구로 대하자는 말도 노련한 술수라고 생각한 것이다.

“좋소. 기다리리다.”

자신이 바라는 바대로 되었다는 생각에 일어나 돌아서는 태감의 얼굴에 어슴푸레한 미소가 깃들었고 뒤에서 태감을 배웅하는 승상의 얼굴에도 비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상처는 괜찮은가?”

부드러운 얼굴에 부드러운 목소리의 장년 사내가 물었다. 그 사내는 이제 막 청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인 듯 아직은 청년이라 불려도 별 손색이 없는 모습이었다. 사내 앞에는 다섯 명이 있었는데 네 명은 사내였고 한 명은 여인이었다.

“외상은 거의 아물었습니다.”

적의赤衣 사내가 말했다.

“다행이군. 아직 내상 치유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테지. 내가 이렇게 자네들을 부른 건 그 사내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어서야.”

장년의 사내가 다섯 명을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장년 사내 앞의 다섯 명은 오의붕경五衣朋競이었다.

오의붕경은 호법 중 한 명이 자신들을 찾는다는 소리를 듣고 호법실로 온 것이다. 오의붕경은 회에 호법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심지어 호법이 몇 명인지도 몰랐다. 그저 태상호법이 회주를 대신해 거의 회를 관할하고 있다고 알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들은 어렸을 때 독립검수대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자질이 출중함을 인정받아 별도의 수련을 받았고 다섯이 하나의 단위로 편재되어 별검대에 소속되어 합격술을 익혀왔던 것일 뿐 회의 일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자는 어떤 무기를 사용했지?”

장년의 사내는 오의붕경보다는 오로지 그자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듯했다. 오의붕경은 장년의 사내가 말하는 그자란 자신들이 일전에 상대한 젊은 고수를 말하는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검을 사용했습니다. 별다른 특징은 없는 일반 무사들이 사용하는 검이었습니다.”

다시 적의 사내가 대답했다.

오의붕경 중에는 특별히 우두머리가 있지 않았지만 적의 사내가 대답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쾌快, 변變, 중重, 만晩, 화華, 중中 등으로 구분한다면 어떠하던가?”

장년인이 그자가 사용한 검법의 특징을 물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속도도 보통이었고 검의 움직임도 너무 단순하지도 너무 복잡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중中에 가깝다 할 수 있습니다.”

적의 사내가 대답하자 나머지 네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동의한다는 의미였다.

“중中이라, 중中으로 자네 다섯을 상대하다니 대단한 친구로군 그래. 초식의 특징은 어떠하던가?”

중中이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어느 것도 빠지지 않은 중용中庸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장년인이 이번에는 초식의 특징을 물었다. 찌르기 중심인지, 베기 중심인지, 검기와 검강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아니면 초상승을 절기인 이기어검술 같은 비법秘法을 사용하였는지 등을 묻는 것이다.

“역시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찌르기도 있었고, 베기도 있었고, 검기와 검강도 두루 사용했습니다. 이기어검 같은 초상승의 초식은 특별히 없었습니다. 검기나 검강에 특별한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의붕경이 익숙하다는 듯 답했다. 이것은 장로들과 빈객청에서 친하게 지내는 몇몇 사람들도 자신들에게 물어온 것이다.

“허허, 역시 중中에 가까운 것이로군. 그렇다면 내공이 강력했던 모양이지?”

“내공이 강력하다는 특별한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희들과의 승부에서도 호흡이 흐트러지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고 시종 여유가 느껴진다 싶었습니다만 상대의 내공이 대단하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자네들은 왜 진 것인가? 무엇에 당했단 말인가?”

장년인이 다소 의아하다는 듯 물었지만 역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허점이 없었습니다. 반면 저희의 약점을 너무 쉽게 포착했고 저희의 합격술을 쉽게 파훼破毁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적의 사내의 설명에 이번에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도 상처를 입었는가?”

“아닙니다. 머리카락 하나 베지 못했습니다.”

그 질문을 끝으로 장년인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오의붕경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마 자신의 절기絶技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아마 그자도 자신만의 절기가 있을 것이다. 그 정도 고수라면 대부분 자신만의 절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자는 어떤 절기도 사용하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더욱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승부는 상대적이다. 그래서 만나 보고 싶은 것이다.

‘오랜 만에 궁금증을 유발하는 인물이 나타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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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122. 무인武人과 정치인政治人 +2 17.03.25 2,855 44 11쪽
122 121. 속죄贖罪 +2 17.03.23 2,771 4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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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118. 패거리 +4 17.03.17 2,953 49 10쪽
118 117. 무복武服 +3 17.03.15 3,073 47 9쪽
» 116. 승상부丞相府 +4 17.03.13 3,060 42 10쪽
116 115. 쪽지 +2 17.03.11 2,979 43 10쪽
115 114. 역할분담 +3 17.03.09 3,020 47 11쪽
114 113. 감탄고토甘呑苦吐 +3 17.03.07 2,993 43 11쪽
113 112. 눈물 +3 17.03.05 3,213 4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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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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