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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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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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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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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3.0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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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11. 부서지는 햇살

DUMMY

“조심해라. 만만찮은 놈이다.”

적의赤衣 사내가 황의 사내와 청의 여인을 보며 주의를 시켰다. 아직 황의 사내와 청의 여인은 묵진휘와 손속을 겨루어 보지 못한 까닭이다.

“우리 모두가 합공을 해야 하는 상대를 만나다니 놀랍군.”

흑의 사내가 머리를 좌우로 움직여 어깨의 긴장의 풀며 말했다.

“나는 구경하면 안될까?”

청의 여인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앙큼을 뜬다.

“집중해라. 웃으면서 상대할 놈이 아니라 하지 않았나?”

흑의 사내가 청의 여인에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어머 무서워라. 그 성질 저 사내에게 부리지, 왜 내게 이러실까?”

말은 무섭다 하지만 청의 여인의 표정에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청의 여인이 적어도 흑의 사내나 적의 사내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음은 이들간의 서열이 동급이라는 얘기였다.

“쥐새끼들이 드디어 전면에 나섰군.”

백의 사내가 마차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마차를 공격하기 위해 새로 나타난 무인들을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었다. 이런 것으로 봐서 이들과 저들은 같은 목적이기는 하나 이질적은 무리라고 볼 수 있었다.

묵진휘가 가만히 상황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분명 동창이 주도한 기습일 것이다. 그런데 숲 속의 숨어있는 눈을 오의붕경이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마차를 공격하는 무인들에 대해서도 같은 소속이라는 유대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세 개의 세력이 같은 목적을 위해 모였다는 것인데, 과연 누굴까? 동창과 동창의 청부를 받고 움직이는 청부조직? 현재로서는 그런 추정이 가장 상황에 들어맞는다.

묵진휘가 검을 땅으로 향한 채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더 이상 이들의 헛소리를 들을 마음이 없었다. 오의붕경도 묵진휘의 태도 변화를 보며 대화를 멈추곤 검을 새로 고쳐 잡거나 손목을 풀면서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묵진휘가 가만히 선 채로 땅으로 향한 검을 들어올리면서 허공으로 베어갔다. 그리곤 다시 땅으로 검을 내리면서 재차 허공으로 검을 베어갔다.

“모두 피해라”

적의 사내의 외침과 함께 오의붕경이 허공으로 도약하자 오의붕경이 딛고 있던 땅바닥의 흙들이 비산飛散하면서 폭탄의 파편처럼 터져나갔다. 묵운외기를 땅속으로 진입시켜 격동시킨 것이다.

오의붕경이 허공으로 도약하면서 간신히 땅속에서 격동된 묵운외기를 피하자 묵진휘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에는 머리 높이에서 검을 횡으로 휘돌리자 검기가 새끼줄처럼 구불거리는 모양으로 오의붕경에게로 쏘아져 갔다.

허공 중에 도약한 오의붕경은 다시 재차 도약하면서 묵진휘가 날려보낸 검기들을 검이나 권 등으로 맞받았으나 허공 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해 충돌의 반탄력으로 대부분 뒤로 밀려나면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백의, 흑의, 적의 사내들의 옷은 충돌의 여파로 더욱 너덜너덜해져 옷으로서의 기능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으며 황의 사내와 청의 여인의 옷도 군데군데 찢어져 살갗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청의 여인은 어깨와 가슴부위에 찢어진 곳으로 뽀얀 빛깔의 맨살이 언뜻 드러나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상을 입거나 하진 않았다.

묵진휘는 뒤로 밀려난 오의붕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재차 공격하진 않았다. 마치 그들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도록 기다리는 것처럼.

“정말 매력 있군요. 그대는.”

청의 여인이 웃음은 거둔 채 담담한 목소리로 묵진휘를 바라봤다. 네 명의 사내는 청의 여인의 말이 진심임을 알아 차렸다. 콧소리의 교소를 섞어가며 하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저 남자들을 홀리는 수법일 뿐. 하지만 콧소리의 교소가 빠진 담백한 그녀의 말투는 진심을 담는 다는 사실을.

“정말 합공을 해야겠군.”

황의 사내가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적의 사내와 흑의 사내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체감한 것이다.

그렇게 묵진휘와 오의붕경이 일합을 나눈 후 잠시 눈빛을 교환하는 시간은 흑의 사내의 갑작스런공격으로 끝이 났다. 흑의 사내가 도약하면서 검에 강기를 길게 뽑으며 묵진휘를 베어갔고 흑의 사내의 검이 묵진휘의 머리 위에 다다른 순간 이번에는 청의 여인이 허공 중으로 손을 뿌리자 날카로운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은빛 반짝이는 무언가가 묵진휘에게로 날아갔다. 청의 여인의 애병愛兵인 비수였다.

비수가 날아간 시점은 너무도 절묘해서 묵진휘가 흑의 사내의 검을 자신의 검으로 맞받으려 하는 찰나였다. 만일 묵진휘가 검을 들어올려 흑의 사내의 검을 받으면 비수는 그대로 묵진휘의 심장에 박힐 것이다. 이것이 오의붕경의 합격술이었다. 각자가 모두 절정 이상의 고수이면서도 그들은 합격술에 능했다. 보통 절정 이상의 고수들은 형제 등이 아니면 합격술을 익히지 않는다. 나고 자란 배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며 개성도 달라 합격술을 익히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합격술을 익히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오의붕경 정도의 고수들이 합격술을 익혔다는 것은 그들도 어찌할 수 없는 권위가 작동할 경우뿐이다.

묵진휘의 위기였다. 하지만 묵진휘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었다. 다만 비수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미끄러지듯 반걸음 옮기며 검을 들어올려 날아오는 비수를 쳐냄과 동시에 흑의 사내의 검을 막아갔다.

튕~ 쾅~

가벼운 금속음과 무거운 금속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가벼운 금속음은 묵진휘의 검이 청의 여인의 비수를 튕겨 내는 소리였고 무거운 금속성은 묵진휘의 검이 흑의 사내의 검과 맞서면서 나는 소리였다. 충격의 여파로 흑의 사내가 허공 중에서 날아왔던 반대편으로 돼 날아가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먼저 놀란 사람은 청의 여인이었고 곧이어 세 사내가 놀란 듯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흑의 사내였다. 흑의 사내가 입으로 선혈 한 모금을 울컥 뱉어내며 일어서고 있었다. 자신은 온 몸의 힘을 실어 가속하는 방향으로 검을 내려쳤고 저 놈은 그 자리에 선채로 검을 들어 올려 막았을 뿐이다. 힘의 차이는 불문가지不問可知라 할 것이다. 그런데 저 놈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데 자신은 뒤로 날아갔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내상까지 입었다.

‘도대체 저놈의 내공이 얼마란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비수와 내 검을 동시에 막았단 말인가?’

물론 오의붕경도 단 일수의 합격술로 묵진휘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처럼 쉽게 두 사람의 공격을 막으리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절묘한 동시同時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보기보단 영리한 놈이군. 반 발짝 움직여 두 공격간의 시차를 극복하다니.”

황의 사내가 묵진휘를 보며 말하자 나머지 네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황의 사내의 말을 이해한 것이다.

두 사람의 공격이 동시同時라는 것은 한 자리에 서있는 묵진휘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비록 두 공격의 출발 시기는 달랐지만 묵진휘를 공격대상으로 할 때 두 공격은 동시에 대상을 가격하도록 연습된 것이다. 그런데 만일 공격 대상이 이동한다면? 그러면 두 공격의 동시성同時性은 당연히 깨진다. 묵진휘가 비수가 날아오는 쪽으로 반 걸음 움직이자 묵진휘와 비수간의 접점 시점은 반걸음 빨라졌던 것이다. 즉, 공간의 이동이 시차時差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생각하면 쉬운 이치理致지만 두 공격이 날아오는 시점에 미끄러지듯 유연하게 움직여 두 공격간의 시차를 발생시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님을 오의붕경은 이해하고 있었다. 묵진휘가 반 걸음 이동하는데 걸리는 이동시간이 거의 소요되지 않아야만 시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실로 신묘한 보법步法이 없고선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놀람도 잠시, 오의붕경은 다시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묵진휘와 대치했다. 두 사람에 의한 그들의 첫 번째 합격술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종내는 묵진휘가 땅바닥에 쓰러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간의 합격술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세 사람, 네 사람, 혹은 다섯 사람 모두에 의한 다양한 합격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창 다섯 고수와 맞붙은 소노 일행은 그런 대로 엇비슷하게 어울렸다. 소노가 두 명의 적들과 어울려서도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냉보모도 하나의 적을 맞아 밀리지 않았으며 호위무사 셋과 서홍은 둘씩 짝지어 한 명씩의 적과 어울렸다. 그러고 호위무사 둘과 마부석의 무인이 공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여유도 있는 형국이었다.

동창 무인들의 우두머리는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의 판단으로 숲 속에 숨어있다 기회라고 여기고 마차를 공격한 것이다. 그런데 오의붕경이 담당했던 늙은 고수가 앞을 가로막으면서 오히려 동창 고수들이 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면 기습의 의미가 없어졌다.

도대체 오의붕경은 한 명의 젊은 무인을 두고 무엇을 하는가? 답답한 심정에 오의붕경이 있는 곳을 살펴보고 싶었으나 소노의 날카로운 공격에 그 곳을 돌아볼 여유마저 없었다.

동창 무인 하나의 찌르기를, 몸을 회전하면서 살짝 피한 소노가 우두머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마치 찌르기를 기다려 이동하려 했다는 듯이 소노의 이동은 신속하고 절묘하기 그지 없었다. 동창 우두머리의 안색이 시뻘게졌다. 이미 소노가 자신의 검 안으로 파고든 것이다. 우두머리가 신속히 뒤로 물러나면서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소노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우두머리가 연신 뒤로 밀려나자 곧 호위무사 둘과 동창 무인 하나와 싸우는 곳에 이르게 되었고 자칫 두 싸움이 엉킬듯했다.

소노가 두 싸움이 엉키면 상대적으로 무위가 낮은 호위무사들이 위험해진다 여기고 빨리 우두머리를 제압하기 위해 달려가는 그대로 몸을 날려 자신의 절기絶技중 하나인 단폭장短瀑掌을 날렸다. 짧은 거리에서 폭발함으로써 마치 권券과 같은 위력을 가졌다 하여 이름 붙여진 소노 최고의 절기 중 한 초식이었다.

연신 뒷걸음질 치는 우두머리는 대경실색했다. 단폭장의 붉은 듯 보이는 강렬한 기운이 자신의 가슴께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미 방향을 바꾸기도 무리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수 없었다. 죽는다 생각하니 마지막 수단인 늙은이와의 동귀어진同歸於盡이 떠올랐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못했다. 단폭장을 뚫고 소노에게 마지막 일검을 꽂는 것은 무리였다. 그때 자신의 수하 하나가 호위무사 둘과 겨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한 놈이라도 데려가자.

뒷걸음질 치던 우두머리가 몸을 조금 비틀더니 검으로 호위무사 하나의 등을 사납게 베어갔다. 이제 소노의 단폭장이 빠를지 우두머리의 검이 빠를지에 따라 호위무사의 생명이 달려 있는 경각傾角의 순간이었다. 등진 호위무사 맞은편의 또 다른 호위무사의 눈과 소노의 눈이 순간 마주쳤다. 호위무사의 눈에는 동료의 죽음을 막으려는 절박한 심정이 담겨있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노가 단폭장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다시 한번 장력을 뻗으려 했다. 장력으로 단폭장을 밀어 우두머리의 검이 호위무사의 등에 닿기 전에 우두머리를 죽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숲 속에서 하나의 암기가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소노에게로 날아왔다.

소노는 순간 갈등에 휩싸였다. 암기를 막으려면, 지금 뻗으려고 하는 장력을 거둬들여야 한다. 그리하면 우두머리는 죽겠지만 젊은 호위무사도 죽을 것이다. 자신이 장력을 거둬들이지 않으면 단폭장의 속도가 빨라져 우두머리만 죽고 호위무사는 살 것이다. 그러나 자신도 암기를 피할 수 없다.

소노가 잠깐 눈을 감았다. 푸른 봄날의 햇살이 부서지면서 눈이 부셨던 것이다. 이렇게 화사하게 부서지는 봄날의 햇살은 정말이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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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26. 현무당 특수조 +4 17.04.03 2,814 48 11쪽
126 125. 정저지와井底之蛙 +3 17.04.01 2,754 43 11쪽
125 124. 또 위기 +2 17.03.30 3,197 48 10쪽
124 123. 허정虛穽-빈 구덩이 +3 17.03.27 2,784 55 11쪽
123 122. 무인武人과 정치인政治人 +2 17.03.25 2,855 44 11쪽
122 121. 속죄贖罪 +2 17.03.23 2,772 48 11쪽
121 120. 풍정風精 +2 17.03.21 2,799 49 11쪽
120 119. 재회再會 2 +2 17.03.19 2,858 49 10쪽
119 118. 패거리 +4 17.03.17 2,953 49 10쪽
118 117. 무복武服 +3 17.03.15 3,074 47 9쪽
117 116. 승상부丞相府 +4 17.03.13 3,060 42 10쪽
116 115. 쪽지 +2 17.03.11 2,980 43 10쪽
115 114. 역할분담 +3 17.03.09 3,021 47 11쪽
114 113. 감탄고토甘呑苦吐 +3 17.03.07 2,993 43 11쪽
113 112. 눈물 +3 17.03.05 3,213 47 10쪽
» 111. 부서지는 햇살 +2 17.03.03 3,174 45 12쪽
111 110. 반성反省 +2 17.03.01 3,191 45 11쪽
110 109. 숨어있는 눈 +2 17.02.27 3,081 46 12쪽
109 108. 예상된 기습 +2 17.02.23 3,181 48 11쪽
108 107. 구사일생九死一生 +2 17.02.21 3,256 48 11쪽
107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106 105. 전략戰略 +2 17.02.17 3,227 48 11쪽
105 104. 절체절명絶體絶命 +2 17.02.15 3,163 46 12쪽
104 103. 호위 +2 17.02.13 3,329 54 11쪽
103 102. 함정 +2 17.02.12 3,303 4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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