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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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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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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1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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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3. 호위

DUMMY

“황제의 생일 축하연도 모두 끝났으니 공녀께서도 내일이면 남경으로 돌아가실 계획이네. 무리한부탁인줄 알지만 나는 자네가 남경까지 공녀님을 호위해줬으면 하는 생각이네. 아마 지금쯤 동창에서는 장부를 잃어버린 줄 알고 범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네. 현재로선 우리가 가장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네. 동창의 적대세력으로는 이황야 외 다른 세력이 없기 때문이네. 장부를 잃어버린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네. 북경으로 오는 길에는 공녀님을 직접적인 공격대상으로 삼지 않았지만 현재 상태로선 그들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장부를 회수하려 들것이네. 그들로서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지. 그들이 작정하고 우리 일행을 습격한다면 나와 냉보모 및 따라온 호위무사만으로 공녀님을 충분히 지켜낼 자신이 없어 이렇게 자네에게 부탁하는 걸세.”

객잔을 찾은 소노가 묵진휘에게 정중하게 부탁하고 있었다.

원래 묵진휘는 목걸이를 쫓는 세력을 찾아 정주로 가는 길이었다. 현무당 삼조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들은 무림맹이 쫓는 흉수와 동일한 무리로 간주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현 황실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추정도 가능했으나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적인 단서를 찾진 못했다. 이제 묵진휘의 조부인 묵태부를 살해한 장본인이 동창임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동창 쪽을 파고들다 보면 목걸이를 쫓는 흉수와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이어진 굴이라면 어느 쪽에서 파고 들어도 결과는 동일할 것이다. 오히려 묵진휘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흉수인 동창을 파고 드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는 공녀의 안전이 무엇보다 염려되기도 했다.

“내일 북경 성문을 나서면서부터 동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묵진휘가 서홍에게 혹시 다른 의견이 있는가 하는 것을 눈으로 물어보면서 소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서홍이 고개를 끄덕여 다른 의견이 없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고맙네. 공녀께서도 무척 기뻐하실 걸세. 그럼 내일 아침에 남쪽 성문 앞에서 만나도록 하세”

소노가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 나갔다.


“남경까지 험난한 여정이 되겠군.”

서홍이 창문을 열자 부드러운 봄 공기가 방안으로 살며시 흘러 들어왔다.묵진휘가 서홍이 열어놓은 창가 쪽으로 다가가 해지는 저녁 노을을 바라본다.

묵진휘와 서홍이 묵고 있는 객잔 방은 서쪽으로 제법 넓은 창문이 나있는 이층으로 저녁놀과 거리의 풍경이 잘 보였다.

“저기 소노께서 걸어가시는 것이 보이는군.”

서홍이 턱짓으로 거리 방향을 가리키자 묵진휘의 시선도 자연히 소노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소노를 바라보는 묵진휘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소노를 미행하는 놈들이 여럿이군. 아마 동창이겠지. 그렇다면 우리도 이미 공녀일행임이 간파 당했다고 볼 수 있겠군. 자네 말대로 험난한 여정이 될 것 같네.”

묵진휘의 말에 서홍도 소노 주위를 세세히 살피기 시작했으나 이미 소노의 모습은 저 멀리로 사라졌고 당연히 소노를 미행하는 무리를 찾을 수도 없었다.



“공녀를 호위하는 사람 중에 소노라는 늙은이가 있습니다. 무림인 출신으로 상당한 고수입니다. 그 늙은이가 태평로 근처에 있는 객잔에 들락거렸습니다. 만난 사람은 두 명의 젊은이들인데 모두 무림인인 듯합니다. 만난 이유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같은 일행이 틀림없습니다. 혹시 그 놈들이 장원에 침입한 괴한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부태감이 곽태감에게 조사 동향을 보고하고 있었다. 뚜렷한 증거 없이 묵진휘와 서홍을 장원에 침입한 괴한이라 여기는 동물적인 감각은 가히 동창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다웠다. 아무나 부태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유는?”

곽태감이 여전히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만년한철로 만든 자물쇠가 두부 깨지듯 깨져버린 점과 장원을 지키던 무사들이 비록 방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괴한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모두 쓰러졌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장원에 침입한 괴한이 무림 고수들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근자에 북경으로 들어온 무림고수는 없었습니다. 태감께서도 아시다시피 다른 곳과 달리 이곳 북경은 성문에서부터 무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신원을 대부분 확인합니다. 하지만 파악된 고수가 없다는 것은 무림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고수이거나 성문을 통하지 않고 숨어 잠입한 고수들일 것입니다. 객잔에 머물고 있는 젊은이들도 전혀 무림에서 알려지지 않은 놈들입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의심스럽습니다.”

조부태감이 물증보다는 몇 가지 정황증거만으로 이유를 설명했지만 곽태감 또한 조부태감의 추정이 그리 허술한 것이 아니라 여겼다. 현재로서는 범인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사람이 이황야 측이라 할 수 있었으며 공녀 일행과 따로 떨어져 황궁에 묵지 않고 객잔에 머물고 있는 무림인이라면 충분히 의심이 가는 인물들이었다.

“공녀는 언제 떠나는가?”

“내일이면 남경으로 출발한다 합니다.”

“공녀 일행이 북경을 벗어나면 기회를 봐서 습격하여 장부를 회수한다. 장부만 회수할 수 있다면 모두 죽여도 상관없다. 부태감은 지금 즉시 회會를 만나 습격을 요청하라. 이번에는 한치의 실수도 없어야 함을 분명히 주지시키도록. 그리고 동창의 고수들로 하여금 회에서 나온 고수들의 뒤를 받히도록. 공녀 일행이 장부를 들고 남경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존명”

존명을 외치는 조부태감의 심정도 곽태감만큼이나 절박했다. 곽태감이 낙마落馬한다면 자신 역시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음을 알기에.



“북경 구경은 어떠셨나요?”

다시 만나는 공녀의 얼굴은 봄 기운을 닮아 하얀 얼굴에 약간의 분홍색이 감돌며 화사했다.

“무척 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묵진휘가 크다는 인상 뒤에 따라왔던 공허하다는 느낌은 말하지 않았지만 공녀는 묵진휘의 말 속에서 공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 그 사람의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법이다. 무수한 반복 속에서 차이를 느끼는 것이 사유思惟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그런 의미에선 호감好感을 갖는 것도 차이를 느낀다는 측면에서는 사유의 한 가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꾸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묵진휘가 일정을 바꿔 북경행에 동행했고, 다시 남경으로 동행하는 것에 대해 공녀가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것은 제 일이기도 합니다.”

묵진휘가 공녀의 미안함을 덜어주기 위해 말했고, 이 말로 인해 공녀의 미안함은 덜어졌으나 대신 약간의 섭섭함이 생기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공녀의 안전을 걱정해서 동행한다거나 공녀와 함께 하는 여행이 즐겁다거나 하는 식으로 대답했다면 공녀의 미안함도 덜어지고, 섭섭함 대신 즐거움도 생기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묵진휘에게 그런 고차원의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리라. 공녀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내미는 섭섭함을 지긋이 눌렀다.

“저 친구가 동행하지 않았다면 저라도 왔을 것입니다. 공녀님과 함께 하는 여행만큼 즐거운 것이또 어디 있겠습니까? 비록 도움이 되진 못하겠지만요. 하하”

서홍이 예민한 감각으로 시의적절時宜適切한 말을 골라냈다. 서홍에게도 또 다른 의미의 초절정고수 같은 감각이 있는 것이다.

“황제 생일 축하 잔치는 어떠했습니까?”

서홍이 황궁을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을 얼굴에 담으며 공녀에게 물었다.

“함께 구경할 기회를 만들려 했으나 여의치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황제의 생일 축하연은 북경의 모습처럼 크고 화려하지만 속은 공허했습니다. 진심으로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녀가 황궁 구경을 시켜 주겠다는 서홍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표함과 동시에 황제 생실 축하연의 모습이 묵진휘가 표현하지 않은 북경의 공허한 모습과 닮았다고 함으로써 공묵진휘와 동감同感을 표현하려 했다.

“개의치 마십시오.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테지요.우선은 별탈 없이 남경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렇습니다. 동창에서 우리를 의심하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그들은 장부가 남경에 계신 이황야께 들어가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수하려 할 것입니다. 모두 마음을 단단히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서홍이 주의를 환기시키자 소노가 모두의 각오를 다지듯 묵진휘와 서홍, 냉보모를 돌아보며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황실의 문제로 여러분 모두를 고생시키고, 위험에 빠트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앞으로 긴박한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스스로의 몸을 중重히 여기시고 먼저 돌보시기 바랍니다.”

공녀가 자신의 목숨보다 각자 본인의 목숨을 먼저 지킬 것을 진심으로 당부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공녀님께 행여 무슨 변고가 생긴다면 이 늙은이가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공녀님의 몸이야 말로 공녀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만백성의 것입니다. 공녀님께서 먼저 스스로를 중히 여기십시오. 이 늙은 목숨은 공녀님을 지키는 것을 평생의 보람이자 기쁨으로 생각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그런 말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노의 말이 진정으로 옳습니다. 저 또한 소노의 생각과 같습니다. 부디 마음을 강하게 먹으시고 스스로를 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공녀의 말에 소노와 냉보모가 정색하고 나서자 공녀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묵진휘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타인他人의 존재 자체가 내 삶의 의미일 수 있다는 스승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진휘야,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 줄 아느냐?

자중자애自重自愛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중히 여기고 스스로를 아끼는 것이다.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나는 분명히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이다. 부모님의 소중한 존재일 수 있고, 한 남자의 또는 한 여자의, 또는 자식들의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만일 내가 상하게 되고 스스로를 험하게 다룬다면 누구의 마음이 아프겠느냐? 바로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플 것이다. 그래서 자신 스스로를 중히 여기고 아껴야 한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인생의 참 의미는 내속에 있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타인 속에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기쁠 때 내가 더 기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슬플 때 내가 더 슬픈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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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107. 구사일생九死一生 +2 17.02.21 3,256 48 11쪽
107 106. 마지막 인사 +3 17.02.19 3,501 48 11쪽
106 105. 전략戰略 +2 17.02.17 3,226 48 11쪽
105 104. 절체절명絶體絶命 +2 17.02.15 3,162 46 12쪽
» 103. 호위 +2 17.02.13 3,329 54 11쪽
103 102. 함정 +2 17.02.12 3,303 4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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