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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와 아가타

혜수, 여행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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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독자
작품등록일 :
2019.10.11 05:14
최근연재일 :
2019.11.2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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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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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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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4. 도피

DUMMY

지수는 조대리에게 꾸지람을 듣고는 화를 삭이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개새끼. 나보다 나은건 이 회사에 먼저 다니고 있던거 밖에 없으면서 졸라 뻐겨요. 에이그 불쌍한 인생아. 그 인물에 그 성격에 이 직장 아니면 여자라도 만나겠니? 평생 일중독이라는 괴병에걸려 직장에 충성하다가 여자도 못만나고 그 자리에 고대로 앉아 망부석이나 되라!”


구석에 놓인 아레키야자 식물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며 성난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대는 그녀를 지나가던 민수가 지켜 보고 있었다.


“와~ 대단한 저주인데?! 저번에 볼때도 화가 나 있더니 오늘도 그렇네요.”

“어머. 조대리인지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간 떨어질뻔 했다구요!!”


저주를 퍼붓는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던 사실과, 의도했던 것보다 더욱 시니컬하게 울려 퍼진 자신의 목소리에 당황스러운 지수였다.


“아까까지는 잘 안들려서 몰랐는데, 이제 들리네요. 조대리였구나. 욕하는 사람이.”


진정하고 보니 박민수였다.


“저번에 강의하셨던?”

“하하. 내 강의를 기억해주니 고맙네요.”


‘강의를 기억하는게 아니라 날 열받게 한, 군대 안간 여자 어쩌고 한 그 말, 그걸 기억하는 겁니다.’

속으로 생각했지만 지수는 이내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날 진짜 감명 깊게 들었어요. 대단하신 것 같아요.”

“뭐가 제일 감명 깊었는데요?”


대충 ‘아, 감사합니다.’하며 겉치레의 말들이 오고 갈거라 예상했던 지수는 갑작스런 추가 질문에 할 말을 잃은채 버벅댔다.


“흠,,,그니까,,, 아, 그 일억 백억 천만원. 돈에 대해 말했던거로 기억하는데요,,,?”

“아, 큰 금액이 감명깊었다?!”


지수는 민망해져 화제를 돌렸다.


“지금도 투자의 귀재라는 칭호처럼 아주 잘 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일하시는데 불편함 없도록 버그없는 전산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신입 사원답게 밝고 패기있게 말했다고 생각하며 미소짓는 그녀였다.


“어쩌나, 내가 요즘 실적이 부진해서 지금 부장님께 한소리 듣고 오는 길인데. 여직원들은 왜 립서비스를 입에 달고 사는 건지 언제나 의문이야.”


뒤돌아 가버리는 민수를 향해 지수가 소리쳤다.

“야!”


멈추어 뒤돌아 선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나?’ 하며 벙긋거렸다.


“저번에도 그러시더니, 자꾸 여직원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으시네요. 그거 내세울거라고는 ‘남자라서 군대 다녀온 것’ 밖에 없는 사람들이 능력있는 여자를 상대로 아주 유아적인 방식으로 콤플렉스를 표출하는 찌질남의 고전인거 모르세요?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그저 소문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잘 나가신다는 분이 굳이 그런 콤플렉스를 가질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인성 자체가 원래 저질인거면 그냥 말을 줄이고 사세요. 티내지 않으면 중간이라도 가니까!!.”


조대리에게서 받은 화까지 더해 사나운 눈초리로 마구 퍼붓는 그녀였다.


“흥미로운 발언이네요. 립서비스보다 발전된 모습 보기 좋아요.”

“뭐 저 저런 놈이 다있어. 아우 진짜.”

그런 지수에게 민수는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


그날 저녁 지수는 성준의 호출에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여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요즘 너무 바쁜거 아냐? 쉬엄쉬엄해. 어차피 결혼하고 나면 어떻게될지 모르는 회사인데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없잖아?”


그녀는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오빠. 나 맛있게 식사하고 싶거든.”

“왜 그래 또?”

“안그래도 낮에 거지 발싸개같은 놈들이 여성 비하적인 발언으로 열받게 하는거 겨우 참고 일하고 왔는데, 오빠까지 그러면 나 비싼 스테이크 먹다 체할 것 같단 말야.”

“속 안좋을때 사랑 나누면 소화 잘되는데. 저녁 식사하고 바로 호텔방으로 올라갈까?”


지수의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귀여운 듯 성준은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오늘 단단히 화가 났었나보네.”

“나 내일 출근이거든요. 대학생 때랑은 달라요.”


지수는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었다.


“근데 아까 한 말, 농담 아니었어. 우리 사랑 나눈지 꽤 된 것 같은데?”


못 들은척 먹는데 집중하는 지수를 보며 성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같이 호텔방을 가던지, 이대로 영영 헤어지던지 그러자.”

“오빠!”

“어떻게 할지 대답해. 아니면 미련없이 일어날거니까.”


처음에는 성준의 짓궂은 농담쯤으로 생각한 지수는 성준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정말 성준과 헤어지고 싶어하는지.

그렇지 않았다.

섹스에 집착하는 모습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성준은 근사했다.


“오빠. 내일 나 출근해야 한다고 한 말 듣긴 한거죠?”

“그게 걸리면 내일 출근 안하면 될 것 같은데? 일단 결정해.”

“알았어요. 식사하고 같이 올라가요.”


그제서야 성준도 다시 식사를 했다.


#


친했던 동기중 몇명은 빨리 군대를 해결하고 온다며 사라지고, 철수도 본과에 진학후 본격적으로 바빠졌다.

학준의 제안대로 혜수는 비는 시간마다 그와 함께 보냈다. 그러면서 혜수는 학준에 대해 알지 못했던 점들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점점 그를 아무 부담없이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오빠. 내가 저번에 듣기로 오빠네 형이랑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 것 같은데, 이유 물어봐도 돼?”

피식 웃으며 대답을 머뭇거리는 그였다.

“그게 왜 궁금해?”

“그냥. 저번에 우리 언니랑 오빠네 형 같이 만난 적이 있는데, 나빠보이지 않았어.”

“너희 언니랑 우리 형이 아직도 만난다고?”

“응.”

“그렇구나···”

“왜?”

“우리 형이 누군가를 그렇게 오래 만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진심인가 싶어서.”

“우리 언니도. 언니도 헤어질 때 냉정하게 돌아서는 타입이라, 마음에 안든다 싶으면 머뭇거리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별 말 없이 오래 만나는 것 같아.”

“하하. 아직은 섣부른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이러다가 우리 가족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런가? 뭐, 좋은 일 일수도. 난 요즘 오빠가 친오빠 같이 꽤 편한데?!”

“하하.그럼 앞으로 우리 동생 혜수~하고 부를까?”


웃고는 있지만 무언가 씁쓸한 표정이 묻어나는 그였다.


#


학준과 혜수는 각자 다른 교양 수업 강의실로 향했다.

학준은 과학에 대한 관심을 포기할 수 없어 그에 관한 교양 과목을 들으며 심리적 위안을 얻고 있었다. 심리학 복수 전공을 심각하게 고민할 만큼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높은 혜수는 교양 과목 사회 심리학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실로 들어가 조용히 앉는 혜수에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 우리 경영학과 강의실에서 본적이 있는데 혹시 기억하니?”


누군지 가늠하기 힘든 눈빛으로 위아래로 살피는 혜수에게 악수를 청하는 그녀였다.


“안녕. 난 정현정이라고해. 수진이의 친구이고, 이번 학기부터 경영학을 복수 전공 하고 있는 심리학과 학생이지.”

“안녕. 반가워.”


수진의 이름을 듣고는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혜수에게 현정이 다짜고짜 묻기 시작했다.


“너 설마 수진이하고 학준 오빠 일에 대해 듣고도 그렇게 같이 다니는거니?”


혜수는 학준이 수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눈치채고는 이후로 묻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보이지 않는 그녀에 대해 궁금했던 터라 조심히 물었다.


“그에 대해 들은 적은 없어. 혹시 알고 있으면 말해줄 수 있니?”

“이따 강의 끝나고 학교 앞 카페로 와.”

수업이 시작되자 자기 이름과 핸드폰 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고는 자리로 돌아가 앉는 그녀였다.


#


왠지 모를 불안함에 수업 후 바로 카페로 향한 혜수였다. 입구에서 잘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조금 지나자 현정이 모습을 보였다.


“안녕.”

“어. 안녕. 아까 하려던 이야기 이제 해줄래?”

“경영학과 복수 전공 결정하고 나서 수진이한테 너에 대해 들었어. 전지현급 외모로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하더니,,, 예쁘기는 진짜 이쁘네.”

수줍은 듯 당황하는 혜수였다.

“그런 말 듣자고 온게 아닌데?? 난 수진이에 대해 듣고 싶어서 왔어. 요즘 왜 학교에서 안 보이는거니?”

“휴학했어. 학기 시작하고 얼마있다가. 그리고 여행갔어. 다 털어버리고 온다고.”

“뭐,,, 그랬다면 좋은 여행 하고 오라고 전해줘. 근데 나한테는 학준 오빠랑 아무 관계가 없는 걸로 들리는데??”


혜수에게는 부유한 집 대학생이 해외 여행을 빌미로 휴학을 강행한 팔자 좋은 소리로 들렸기에 조금은 날선 반응을 보였다.


“우리 일단 마실것 좀 시킬까? 시간 얼마나 있니?”

“한 시간 정도.”

시계를 확인하고 혜수가 말했다.

“좋아. 본론은 그렇게 긴 이야기가 아니니까.”


주문한 음료를 마시며 현정은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년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준 오빠가 수진이에게 연락을 해왔어. 오빠를 마음으로 오랫동안 좋아하고 있던 수진이는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지. 나한테 전화를 해서는 오늘 학준오빠가 데이트 신청을 했다고 얼마나 자랑을 해대던지.”

그때를 회상하듯 피식 웃는 현정이었다.

“학준 오빠가 수진에게 사귀자고 말하면서 둘이 거의 매일 만났다고 하더라고. 집도 가깝고,,, 뭐 만나는데 걸릴게 없으니까. 그러다가 둘이 잠자리를 하게 되었어. 뭐,,,성인남녀가 사랑해서 하는 일인데 그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없어.”

현정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였지만 혜수는 속으로 놀라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근데 이게 한번 그렇게 되니까 서로 브레이크가 안걸린건지··· 굉장히 자주 잠자리를 하게 되었나봐. 수진이 그애는 오빠도 이제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는구나 생각하고 다 받아주었다지 뭐야. 에이그,,,헛똑똑이. 남자 마음을 그렇게 몰라서야.”


여기까지 말하고는 슬쩍 혜수의 얼굴을 살피는 현정이었다.

그런 눈길을 알아챈 혜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되물었다.


“뭐 사랑하면 그럴수도 있는거 아니겠니?”

“그러게,,,사랑이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그게 무슨 말이야?”

“둘이 좋은 날들을 보내다가 개강을 하였는데, 이후에 학준 오빠가 갑자기 달라지더래.”

“......”

“수진에게 거칠게 대하고, 잠자리에서 혜수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빈번했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혜수였다.

“많이 놀랬구나? 그럴만하지. 우리같은 대학생이 듣기에는”

정신을 차리고 혜수는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수진이는 당연히 학준 오빠에게 항의를 했지만, 그게 먹히지 않았어. 오히려 ‘네가 뭔데 혜수 이름을 함부로 지껄이냐’ 면서 무지하게 화를 내더래. 그런 일이 반복되던 어느날, 학준 오빠가 수진의 뺨을 때렸고 그날 이후로 수진이는 마음의 상처가 깊어져 학교를 떠나게 되버린거지.”


혜수는 오싹한 기분에 몸서리가 쳐졌다.

“너가 모르고 있을거라고 예상은 했어. 그리고 나는 혜수 니가 걱정돼. 내가 지켜본 학준 선배는 BDSM인것 같거든. 지배를 하거나 지배를 당하기를 즐기는 사람, 일반적인 성적 행위를 하지 못하는 유형도 여기에 포함돼. 그렇다고 학준 선배가 미쳤다는건 아니야. 병이라고 부를만큼 심각하진 않지만 성적 취향도 지배적이고, 상대방을 여러 거짓으로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는게. 의심이 되는 부분이야.”


‘이젠 진짜 모르겠다. 그냥 이상한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멀리 떨어져야 했던걸까? 같이 있는 동안에 절대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 안해봤는데. 미치겠다.난 정말 바보인가봐. 구제불능! 어떻게 그런 사람한테···’

속으로 스스로를 원망하는 혜수를 현정은 흥미로운 듯 유심히 바라보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묻는 혜수였다.

“당장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너무 무서워.”

“너에게는 아직 그러한 성향을 나타내지 않고 있으니까, 그전에 빨리 거리를 두는게 좋지 않겠니?. 뭐,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강의 같이 들을 때마다 니 옆에 있어줄게.”

“고마워. 정말..."


혜수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이에 대해 거창하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내 일이 아니라고 도피하고는 모른척 달아나고 싶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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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도피 19.11.15 27 1 13쪽
23 23. 감정을 삼키다. 19.11.11 31 1 13쪽
22 22. 꽤나 다정한 모습 19.11.09 34 1 13쪽
21 21. 만남 19.11.09 36 1 16쪽
20 20. 행복과 불안 19.11.04 46 1 12쪽
19 19. 그와 당신 19.11.01 49 1 14쪽
18 18. 너는 이제 내꺼야 19.10.31 50 1 13쪽
17 17. 영희, 그녀 19.10.28 48 1 13쪽
16 16. 20살의 크리스마스 19.10.25 44 1 14쪽
15 15. 능력있는 사람 19.10.24 44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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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느끼지 마! 생각하지 마! 19.10.18 60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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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언니, 내가 지켜줄게. 19.10.13 7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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