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나타샤와 아가타

혜수, 여행을 떠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여행중독자
작품등록일 :
2019.10.11 05:14
최근연재일 :
2019.11.21 22:44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1,455
추천수 :
27
글자수 :
158,410

작성
19.10.16 19:00
조회
58
추천
1
글자
13쪽

9. 그 남자랑 끝내!

DUMMY

영화가 끝나고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배고프지? 저녁 먹으러 갈까?”

“네. 오빠 먹고 싶은거 먹으러 가요.”

“여자들은 양식 좋아하니까 스파게티 먹으러 갈까? 근데 어느 음식점이 맛있는지 내가 잘 몰라서.”

“우리 일본 라멘집 갈까요? 나 사실 스파게티보다 라면 좋아해요.”

“어? 혜수도 라면 좋아해? 나 완전 좋아하거든. 하하. 빨리 가자. 11월 됐다고 이제 밤되니까 추워진다.”


혜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예전 석찬씨랑 연애하던 때가 생각나. 다시 그때로 돌아간것 같아. 행복해.’

실내로 들어선 라멘집은 맛있는 향으로 가득차 있었고, 몇 안되는 테이블이 모두 차 있었다. 잠시 동안의 대기시간 있은 후에 둘은 구석에 있는 2인용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여기가 맛집이긴 한가봐요. 올때마다 손님이 항상 가득이야···”

“그러게. 나도 여기 몇번 와봤는데 그때도 이랬던것 기억이 나.”

서로 마주보며 앉아 있자 잠시 어색함이 밀려왔다.

“주문하시겠어요?”

어색한 분위기를 종식시키기에 좋은 타이밍이었다.

“주문할까?”


곧 주문한 메뉴가 도착하였고, 출출했던 둘은 후후 불어가며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이런 시끄러운 식당에서 <네. 오빠 우리 사귀어요.>라고 말하는건 좀 아닌것 같다...'

혜수는 그와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어 보이며 식사에 집중했다.


식사 후 라멘집을 나온 혜수는 서로간의 마음을 확실하게 확인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우리 차나 맥주 한잔 어때요? 제가 살게요.”

“조금 늦었는데 괜찮겠어?”

시계를 보니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응. 11시전까지만 귀가하면 되요. 오빠는요?”

“나도 괜찮아. 그럼 근처 커피숍으로 갈까?”


전문 커피점이 아닌 좌석이 편안한 찻집으로 들어간 둘은 바깥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자 철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올 한 해 동안 동아리에서 자주 만났는데 생각해보니 둘이 있던 시간은 없었더라. 내가 더 빨리 고백했어야 했는데 미안. 저번에 내가 했던 말,,,생각 해봤어?”

“응. 나 오빠랑 만나 보고 싶어요.”

밝게 웃어 보이는 철수였다.

“고마워. 본과 진학하면 내가 많이 바빠져서 혜수랑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저런 고민들 다 떠나서, 그냥 당장 보고싶고 만나고 싶어 못견딜것 같아. 혜수가 다른 남자랑 다니는 것도 싫고,,,”


'다른 남자? 내가 학준과 다니는걸 보았던 걸까?'

물어볼까 망설이다가 그저 미소만 짓는 혜수였다.

“내 마음 받아줘서 고마워.”

달콤하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혜수는 화제를 돌렸다.


“참. 오빠 집은 어디에요?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있어요?”

질문을 한 혜수는 피식 웃었다.

“그동안 오빠 이름이랑 나보다 한 살 많다는 것. 그리고 의예과 학생이라 것. 세 가지만 알고 있었네요.”

“내 잘못이지. 서로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못 만들었으니. 일단 나는 혜수보다 두살 많아. 내가 대입 시험에서 쓴 고배를 마시고 재도전해서 성공한거라. 하하."

"재도전한다고 누구나 성공하나요? 재도전이 얼마나 힘든데요! 일년동안 자기 의지로 공부를 해야하는 건데,,,쉽지 않죠!"

"응? 혜수는 어떻게 그렇게 잘알아? 혹시 혜수도?"

'아차... 과거에서나 고배를 마셨지 지금은 아니잖아.'

"아,아니요. 주위에 재수하는 친구가 있어서,,,전해 들어서 알아요."

"그렇구나. 음,,,운좋게도 집은 학교 근처야. 부모님이랑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네식구가 같이 살고 있지."

“아,,, 그렇구나.”


말하는 어조에서 행복하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떠올라 안도하는 혜수였다.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 그래서 사랑을 줄 줄도 받을줄도 아는 사람.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이지만 다른 얼굴을 하고 앉아 있다.’

사실 석찬과 철수는 외모가 아주 다른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닮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혜수는 이란성 쌍둥이 둘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신비로웠다.


‘석찬씨는 컴퓨터만 좋아하는 단순 끝판왕 이공계 곰돌이 였는데,,, 그 겉치레 없는 순수함을 난 많이 좋아했고.’


“혜수 너는? 그때 듣기로 근처에서 자취한다고 들었던것 같은데?!”

“응. 맞아요. 친언니랑 근처 자취방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언니도 같은 학교 공대에 다니는데 이제 4학년이라 곧 졸업이에요. 부모님은 수원에 계시고요.”

“그렇구나. 집이 아주 멀지는 않으니 자주 가겠네?"

"아니요. 생각보다 자주 가지는 못해요. 주말에 언니랑 시간 맞을 때에, 또는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먹고 싶을 때에 내려가죠.호호."

"맞어. 자취하면 엄마가 해주는 밥이 그립다고 하더라. 과 동기중에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꽤 되거든,"


잠시 대화가 끊기자 둘은 앞에 놓인 음료를 마시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런 시간도 어색해하지 않아야 오래 사귀게 된다...예전에 난 연애할때에 조급한 행동으로 타오르는 불을 껴버리거나, 연애 초기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 진땀 꽤나 흘렸었지...'


차분한 미소로 밖을 바라보는 혜수에게 철수가 물었다.

"혜수는 취미가 뭐야? 하하. 소개팅할 때 단골 질문이라 너무 식상해 보이지만 상대방을 알기에는 좋은 질문이지 싶어서."

“취미요? 글쎄요,,, 예전에는 요리하는걸 좋아했는데,”

“요리? 20살 여대생 취미가 요리라고 하니까 신선한데?”

혜수는 아차 싶었다.

‘철수씨랑 있으면 자꾸 헷갈리게 된다...조심해야지.’

“그러니까,,,잘하지는 못하는데 엄마옆에서 보조 하는거 좋아했어요."

혜수는 차를 홀짝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그동안 공부하느라 취미 생활은 생각 못해본것 같아요.”


“그럼 댄스가 취미는 아니었던거고네? 누군가가 좋아서 동아리 활동 했던걸로 알아도 되는건가? 하하"

“호홋, 맞아요. 그랬던게 사실이에요.”

“사실 나도 춤은 취미라기 보다는 스트레스 해소용 도구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진짜 취미는 컴퓨터 게임이야. 좀 유아틱하긴 하지만.”


‘석찬씨도 컴퓨터 게임을 정말 좋아했지. 40대 아저씨가 되어서도 핸디 게임에 열중하는,,, 그래서 많이 싸우기도 했는데. 왜 나는 그 모습을 그렇게 싫어 했을까? 회사 생활 잘하고 집안일도 잘 도와준 다음, 개인 여가용으로 짬내서 하는 것 뿐이었는데,,,? 내가 아닌 핸디 화면을 보고 있어서??’

혜수는 피식 웃었다.


“어? 너무 대놓고 비웃는거 아니야? 컴퓨터 게임이 생각만큼 유치하지는 않아. 머리도 꽤 써야하고.”

“아니, 그런거 아니에요. 오해 말아요. 저는 컴퓨터 게임을 정말 못하거든요. 잘하고 싶은데 영 소질이 없어요. 오빠가 가르쳐줘요. 같이 할 수 있게.”

“그럴까? 하하. 공통 취미 생활 하나 득템!"


혜수와 철수는 시간이 너무 늦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집까지 바래다 줄게.”

“나 데려다주고 가려면 선배 너무 늦지 않아요?”

“괜찮아. 첫 데이트인데 여자 혼자 보내면 예의가 아니지. 그런걸 나중에 여동생이 알면 매너 빵점 공부충이라고 엄청 몰아 붙일거야.”


버스는 금방 도착했고 약간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 자리잡은 혜수의 자취방은 그날 따라 무척이나 가까워 보였다.

“평소에는 학교에서 멀어 보였는데, 오늘은 너무 빨리 온 것 같아요.”

“우리 혜수 얼굴도 이쁜데 애교까지 만점이네? 남친으로서 완전 땡큐지!”


“이제 돌아가요. 서둘러 가야 오빠도 집에 늦지 않게 들어가죠.”

철수는 망설이다가 혜수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오늘 즐거웠어. 조만간 또 보자.”


집으로 돌아온 혜수는 행복감에 젖어 철수와의 달콤한 하루를 되새겼다.


#

그날은 경영대 필수과목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혜수는 조금 일찍 강의실에 도착하여 중간 즈음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때 학준이 다가와 옆에 앉았다.


“주말에 뭐했길래 연락이 없었어? 내가 삐삐친거 못받았어?”

다정하게 말을 걸며 자신에게 다가온 학준을 보며 혜수는 생각했다.

‘어차피 말해야 하긴 하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안좋아. 강의 후에 말하자.’

“어,,, 받긴 했는데 바빴어. 수원집에 다녀 오느라고.”

“그랬구나. 내가 답답해서 핸드폰을 사주든지 해야겠어. 핸드폰 써보면 알겠지만, 서로 연락이 금방되서 연애할 때 좋을것 같아.”

“아니, 난 아직,,,그거 비싸잖아요. 그렇게 불편한지도 나는 모르겠고.”


미소를 멈추고 혜수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학준이었다. 그의 눈빛이 당황스럽고 조금은 무서웠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눈길을 피하는 혜수였다. 학준은 책을 펴고는 아무말이 없었다. 그런 학준을 힐끗 힐끗 쳐다보며 혜수에게 그가 말했다.

“이번 수업 끝나면 공강이지? 시간좀 내줘.할 얘기 있어.”


수업이 끝난 후 학준은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가자.”


#


둘은 학교 잔디밭에 앉았다.

“오늘 날씨 좋다. 난 겨울이 시작되기 전 이런날이 좋더라. 해가 쨍해서 화사한데 공기는 차가운. 그래서 아주 춥지도 아주 덥지도 않은 그런 날.”

고개를 끄덕이는 혜수에게 학준이 말을 이었다.


“나 지난 주말 신촌 영화관에서 너 봤다.”

혜수는 당혹감에 눈을 크게 뜨고 학준을 바라보았다.

“푸하하. 주말동안 너한테 이거 말할까? 말까? 무지 고민하면서,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해 보았는데, 상상보다 너무 못생긴 표정인데?”

“학준 오빠. 그게 그러니까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버렸네. 오늘 말하려고 했어요.진짜.”

“말하지마. 그냥 말하지마.”


혜수는 학준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침묵하고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보았다.

“그날 보니까 만난지 그리 오래된것 같진 않던데? 그러니까 빨리 끝낼수 있을거라 생각해.”

“네? 무슨,,,?”

“내 말은, 그 남자랑 빨리 정리하라고. 난 그날 일 못본거로 하고 기억에서 지울테니까.”


‘기억에서 지운다?,,,,,,무엇인가를 기억에서 지우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어려운 일 일이다. 내가 지금 다른 인생을 살면서도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것처럼.’


“학준오빠, 미안. 그날 처음으로 데이트 한건 맞아요. 하지만 오래전부터 서로 마음에 두고 있던 사이였어요. 학준 오빠한테 오늘 만나면 이야기 하려고 했어. 그런데 일이 이렇게,,,어찌됐든 그 사람. 내가 좋아하는"

혜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학준은 화난 얼굴로 혜수를 노려보며 말을 잘랐다.

“뭐? 말을 하려고 했다? 나한테? 그게 무슨 뜻이야?”

“난 선배랑 사귄다고 생각한 적 없었어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선배가 본 그 사람이고, 그래서.”

“뭐? 나랑 사귀는게 아니었다고? 지금 너 누구 맘대로 일방적으로 끝을 내겠다는 거야?”

“오,,,오빠?”

“내가 그동안 너한테 잘해주기만 하니까 내가 우스워 보였나보네?! 근데 어쩌나, 나 원하는거 그렇게 쉽게 놓는 사람 아닌데?”

당황하는 혜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학준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했다.


“이번주까지 시간줄게. 그 놈이랑 끝내.”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 뒤돌아 가버리는 학준의 뒷모습을 혜수는 멍하니 바라 보았다.


#


이후 수업이 어떻게 끝났는지,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언니 지수는 최근 취업 준비로 집에 늦게 오는 날이 많았다. 입맛이 없기도 하고 딱히 먹을 것도 없었기에 혜수는 씻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그래,,,신은 항상 모든 것을 주지 않아. 이미 알고 있었잖아. 이쯤에서 시련을 주셔야 볼 맛이 나셨겠지. 계속 행복한 여주인공은 밋밋하고 재미 없으니까.’


혜수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의 냉장고를 열어 캔맥주를 따 마셨다.

'지금부터 나의 인생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여러 길로 나뉘어 지겠지? 어떤 길이 나타나더라도 난 철수 오빠를 선택하겠어. 학준의 오늘 모습은,,,'


"이전에도 이런 류의 남자를 만났었지. 자기애와 자격지심이 묘하게 결합하여 옆에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맥주를 벌컥 들이키며 혼잣말을 내뱉던 혜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혜수, 여행을 떠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자기소개, 그리고 올리기에 관하여 19.11.12 23 0 -
27 27. 나 같은 부류의 사람 19.11.21 21 1 12쪽
26 26. 도망 19.11.19 26 1 15쪽
25 25. 나의 미래 19.11.15 25 1 11쪽
24 24. 도피 19.11.15 27 1 13쪽
23 23. 감정을 삼키다. 19.11.11 31 1 13쪽
22 22. 꽤나 다정한 모습 19.11.09 34 1 13쪽
21 21. 만남 19.11.09 36 1 16쪽
20 20. 행복과 불안 19.11.04 46 1 12쪽
19 19. 그와 당신 19.11.01 49 1 14쪽
18 18. 너는 이제 내꺼야 19.10.31 50 1 13쪽
17 17. 영희, 그녀 19.10.28 48 1 13쪽
16 16. 20살의 크리스마스 19.10.25 44 1 14쪽
15 15. 능력있는 사람 19.10.24 44 1 14쪽
14 14. 이성준 19.10.23 48 1 15쪽
13 13. 가족이라는 족쇄 19.10.22 55 1 17쪽
12 12. 비밀 19.10.21 54 1 15쪽
11 11. 느끼지 마! 생각하지 마! 19.10.18 60 1 14쪽
10 10. 그 남자 19.10.17 54 1 16쪽
» 9. 그 남자랑 끝내! 19.10.16 59 1 13쪽
8 8. 제 인생을 구경중이신가요? 19.10.15 64 1 13쪽
7 7. 그와의 로맨스 19.10.14 66 1 13쪽
6 6. 우리 잘해보자. 19.10.14 68 1 7쪽
5 5. 나는 누구였을까? 19.10.13 69 1 9쪽
4 4. 언니, 내가 지켜줄게. 19.10.13 75 1 10쪽
3 3. 유생(幼生) 19.10.12 77 1 10쪽
2 2. 신생(新生) 19.10.11 87 1 16쪽
1 1. 끝의 시작 +2 19.10.11 135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