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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와 아가타

혜수, 여행을 떠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여행중독자
작품등록일 :
2019.10.11 05:14
최근연재일 :
2019.11.2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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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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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3. 감정을 삼키다.

DUMMY

혜수가 자취방에 돌아왔을 때에 언니 지수는 녹초가 되어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일찍왔네?”

“동생. 지금 9시가 넘었거든. 이건 일찍이 아니지요.”

“그래도 언니 매일 10시, 11시 이렇게 왔는데 9시에 씻고 텔레비전 보고 있는거면 일찍 온거 아닌가?”

“에효,,, 학생 신분이 세상 편한 직업이더라.”


언니의 한탄에 피식 웃고는 돌아서 욕실로 향하는 혜수였다.


“나 씻고 나올게.”

“우리 오랜만에 맥주 한잔 할까?”

“응. 좋아.”


씻고 나오니 언니 지수가 자취방에 그나마 생존해 있던 과일 몇개와 과자로 그럴싸한 상차림을 해놓았다.


“이 언니가 바빠서 그동안 동생이랑 이야기도 못나눴네.”

“첫 직장인데 정신없는게 당연하지. 나야말로 제대로 묻지도 못했던것 같아. 언니 직장 생활은 어때?”

“일이 나인지 내가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재미는 있어. 대학에서 배운게 실전에서 어떻게 쓰여지는지 알아가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증권사면 남자들 천지일것 같아.”

“남탕 문화는 대학때부터 진저리 나게 경험한 일이고. 어차피 난 여자보다 남자가 더 편해. 여자들에게 난 질투의 대상이거나 선망의 대상일 뿐. 진정한 우정이 참 어렵거든.”

“백퍼 공감은 못하지만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을것 같아.”


앞의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는 지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막 갈구고 그러는 사람은 없어?”

“있지, 왜 없겠니? ‘돌 아이 보존의 법칙’. 혹시 들어봤니? 어디든 살짝 미쳤거나 진상인 돌 아이들이 꼭 있다. 만약 ‘나는 그런거 모르겠는데?’하면, 그땐 그 사람이 돌 아이인거래.”

“하하하. 언니네 회사 돌 아이는 누군데?”

“내 사수 조대리라고 있거든. 호칭도 거지같지 않냐? 조대리. 생긴 것도 만들다가 던져버린 것같이 생겨서 성질이 그렇게 지랄 맞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사수인데 잘보여야 하지 않아?”

“내가 설마 그 놈 앞에서도 이렇게 말할까?! 속에서 용암이 끌어 올라도 참고 있지.”


그에 대해 말할수록 더욱 맥주를 갈급하게 되는 모양새인 지수를 보고 혜수는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언니 첫 월급 받으면 부모님께 선물 뭐해 드릴거야?”

“분명,,, 원하시겠지?”

“그럼! 당연히. 우리 엄마 언니 선물들고 동네방네 자랑하시고 싶어 안달이실텐데.”

“그걸 생각하면 빨간 내복. 이런거는 욕먹을테고, 그냥 현금은 성의없어 보이고. 제길, 이사람 저사람 챙기다보면 첫 월급 선물로 다 날리게 생겼어.”

“첫 월급은 다 그렇다고 하더라고. 아마 3달 정도는 그렇게 쓰지 않을까?”

“아직 대학 2학년이 어떻게 그렇게 잘알아?”

“어? 아니 뭐, 언니 이야기 들어보니까 대충 상상이 되서"

“그건 그렇고. 넌 요즘 니 남친이랑 잘 되가냐?”

“응. 나 요즘 철수 오빠 여동생 과외하고 있어.”

“저번에 살짝 들은 기억이 있긴한데,,, 너 그러다 괜히 욕만 먹고 연인 사이 애매해지게 되면 어쩔려고 그걸 덥석 한다고 했어! 여하튼, 생각이 참 짧디 짧아.”

“걱정마. 생각보다는 괜찮아. 동생이 잘 따라와주고 있어서 보람도 있고.”

“에이그~ 저 쓸데없는 긍정 마인드.”


“언니는? 언니 아직도 학준오빠 형이랑 만나?”

“만나고는 있는데, 뭔가 찜찜해서 잠시 멀리해야 겠다 생각중이야.”

“찜찜하다고? 뭐가? 언니 그 사람 되게 마음에 들어 했었잖아?!”

“그 동생에 그 형이더라. 피는 못 속이는거야.”


언짢은 표정으로 말한 지수는 동생에게 질문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넌 학준이랑 괜찮아?”

“뭐,,, 특별한 일 없어.”


갑자기 말이 없어지는 둘이었다.

지수는 그의 성행위에 대해, 그리고 그에 대한 집착에 대해 동생과 상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혜수는 종로에서 그렇게 헤어진 뒤 서로 연락이 없는 학준에 대해 내심 고민 중이었지만, 언니 지수에게 털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 피곤해서 그런지 맥주 참 맛없다.”

시큰둥하게 말을 던지고 일어서는 지수였다.


#


개강 전 혜수는 학준과의 일이 신경쓰여 연락을 할지 말지 고민이었다. 그러다 개강 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가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사과 비스무리하게 하고 마무리 지어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개강 후 계획과 다르게 학준을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의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수진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보여 혜수가 다가가면 실례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혜수와 눈이 마주친 학준이 그녀에게 다가오려 했지만 수진은 혜수를 사납게 노려보며 학준을 다른 곳으로 이끌고 갔다. 학준은 내키지 않지만 수진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는 눈치였다.


혜수는 그런 둘을 보며 시원섭섭함을 느꼈다.

‘저 둘 사이에 내가 끼어드는 건 나의 욕심일 뿐, 어느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아.’


3학년이 된 철수는 과방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혜수와 만나는 시간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둘의 사랑은 여전했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간이 생긴 혜수는 댄스 동아리 활동은 더이상 하지 않지만, 그곳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교류하며 외로움을 달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혜수는 점점 일상이 되어가는 이번 생에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어느덧 5월이 되어 완연한 봄을 지나 여름을 준비하는 그때는, 여러모로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였다.


‘날씨 참 좋다...이번 주말 수원에서 과외는 양해를 구하고 철수 오빠랑 야외 데이트를 즐길까?이런 날씨에는 놀이 공원도 좋지. 예전 삶에서는 대학까지 수녀급 생활을 하며 남친이랑 놀이 공원 놀러간 기억도 별로 없네. 이번 생에서는 정말 사랑하는 남친이랑 놀이 공원을 꼭 가봐야겠어.’


창밖의 푸르름을 감상하며 강의실에 앉아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혜수에게 학준이 다가와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여기 앉아도 돼?”

사색에 깊게 빠져있던 혜수는 흠칫 놀라며 학준을 바라보았다.


“어. 오빠. 앉아도 돼요.”

옆으로 앉는 학준의 곁에 수진이 보이지 않았다.


“수진이는요?”

대답없이 학준은 혜수의 안부를 물었다.

“잘지내고 있지?”

“응. 잘지내요.”


혜수는 그동안 기회를 엿보며 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번 종로에서 미안했어요. 그렇게 집에 가버리게 되서.”

“가끔 나 쳐다보는 네 눈빛보고 미안해 하는지 알고 있었어.”


학준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강의가 끝나자 학준은 혜수에게 함께 점심을 먹자고 했다. 둘은 교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잔디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이제 물어봐도 돼요? 수진이랑은 어떻게 된건지?”

“그냥, 둘이 따로 시간을 가지기로했어. 크게 싸운건 아니고, 어차피 나 올해에 카투사 지원할 계획이어서 그전에 미리 정리한 것도 있고.”

“그래도 수진이는 오빠 카투사 제대까지 기다릴걸요?”

“그럴지도. 뭐,,, 그건 수진과 내가 알아서 할 문제이고. 다른 이야기 할까?”


혜수는 방학동안 과외를 하며 번 돈으로 핸디를 마련한 것을 이야기하고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한 철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빠는요? 학준 오빠는 별다른 일 없었어요?”

“아까 말했듯이 카투사 지원해서 2학기에 휴학을 생각중이야. 만약 카투사가 불발이 되면 유학이라도 다녀올까 싶은 마음도 있고.”

“유학이요?”

“집에서는 일단 군대부터 마무리하라고 성화이신데, 난 그동안 유학 생활에 대해 꿈꿔온게 있어서. 꼭 형이 하던대로 따라야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고개를 끄덕이는 혜수에게 학준이 덧붙였다.

“근데, 나중에 부모님 사업을 형과 함께 경영해야 해서 집에서의 명령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해.”

쓴 웃음을 짓는 학준이었다.


“난 부잣집 도련님들은 맘편히 부모님 사업 물려받고 풍요로움 속에서 하고 싶은것 다 하면서 편하게만 사는지 알았어요.”

“그러게. 드라마 속 도련님들은 모든게 수월하던데. 난 이 모양이네. 하하"

“그런 의도로 말한건 아니에요!”

“나도 알아.”

당황하는 혜수가 귀엽다는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학준이었다.


“그럼 내년에는 카투사를 지원하던, 미국으로 유학을 가던 휴학을 하는건 정해진거네요?”

“그렇다고 할수 있지.”


혜수는 왠지 벌써부터 허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내년에 휴학하고나면 혜수 졸업하고 나서야 학교로 돌아오게 될텐데, 우리 올 한 해 서로에게 베프가 되어주는거 어때?”

“콜. 나도 좋아요.”

오늘따라 유난히 학준이 편하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혜수였다.


#


화요일은 영희와의 과외가 있는 날이었다.

‘나 오늘 과외하러 오빠 집으로 가요. 끝나고 오빠 만났으면 해요.’

문자를 보내고 혜수는 철수네로 향했다.


영희는 이제 제법 공부에 재미가 붙었는지 숙제로 내준 분량보다도 항상 더 해왔다. 그런 영희가 기특한 혜수도 성심껏 과외를 준비해 왔다. 얼마 있으면 보게 될 시험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혜수의 얼굴을 살피던 영희는 슬쩍 말을 건넸다.


“그런데,언니. 저번에 말한 그 기억속의 가족들 말이에요.”

멈칫하는 혜수였다.

“아이가 있었다고 했잖아요. 몇살...이었어요?”

“어? 아,,, 그게. 나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얼버무리는 그녀를 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영희였다.


그런 영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를 믿고 마음잡고 공부하는 영희인데,,, 거짓말 할 필요는 없는것 같아. 설령 진짜로 믿는다해도, 나중에는 지어낸 이야기였다고 말하면 되니까.’


“13살,10살. 둘다 딸이었어.”

흠칫 놀란 영희는 혼이 나간 듯 보이기도 하고 꽤나 슬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영희의 모습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혜수는 이내 이해한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영희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꾸며낸 이야기인지 알았는데 나이까지 말해주니 이상하니?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꽤나 많은 것 같아.나도 무지 이상하다니까. 영희 너만 이상한 일을 겪는건 아니니까 안심해. ”


영희는 미소짓는 혜수를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


“진짜에요? 그러니까 나한테 했던 말이 진짜였던 거네.”

“이거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난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 안하고 지냈거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기도 하고, 어차피 믿지 않을걸 알았으니까. 영희에게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것 같아서 말한거니까 비밀로 하자. 이해하지?”


끄덕이는 영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런 그녀를 알아채지 못한 채 혜수는 문제집을 펼치며 웃었다.

"숙제는 틀린것 없이 잘했어. 지금처럼만 하면 in 서울 대학도 도전해볼만 하겠어."


혜수의 말이 맞다는 것인지, 이제 확실히 알겠다는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영희였다.

#


약속한대로 철수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이렇게 마음 써주고 잘 가르쳐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별말씀을요. 영희가 잘하는거죠.”

“엄마. 나 혜수 바래다주고 올게요. 조금 늦을지도 몰라요.”

“그래. 알았어. 너무 늦지는 말고.”


밖으로 나온 철수는 혜수의 이마에 살짝 뽀뽀를 하며 말했다.

“무지 보고 싶은거 겨우 참으면서 지냈어.”

“나도. 거의 매일 오빠 생각만 해요.”


찻집에 앉아 있는 둘은 더없이 행복해보였다.


“오빠.우리 이번 주말에 놀이공원 함께 가는거 어때요? 이번 주말 과외는 양해를 구하던지, 주중에 내려가서 하고 오던지 하려고.”

“그럴까?”

“요즘 날씨가 좋으니까 야외로 막 놀러 나가고 싶더라구요.”

“학교에서 혜수 많이 못만나니까 주말에라도 만나야지! 요즘 캠퍼스에서 심심하지 않아? 심심하면 동아리 다시 알아봐도 좋을것 같은데?”

“우리 과에 내 베프 있어요.”

“그래? 나중에 같이 만나자. 남친, 아니 애인으로써 베프 정도는 알아놔야지! ”

“응··· 나중에요.”

“나중에? 설마 소개시켜주기 싫은 거야?”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면 뭔데?”

“오빠. 일단 나중에요. 아주 친하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확실치 않아서 그래요.”

“그래. 하지만 난 혜수 베프 정도는 알아야 겠으니까 꼭 소개시켜 줘야해!”


‘오늘 학준 오빠랑 이야기 하면서 참 편하고 좋았는데,,, 학준 오빠 때문에 놀랐던 사건만 뺀다면, 함께 할수록 너무 편해진다. 나랑 닮은 점도 많아 보이고. 그래서 서로의 실수나 아픔도 이해해줄 수 있을것 같은 그런 친구.’


마음으로 생각하며 혜수는 죄책감인지 불안감인지 알수 없는 감정을 꿀꺽 삼켰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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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도망 19.11.19 26 1 15쪽
25 25. 나의 미래 19.11.15 26 1 11쪽
24 24. 도피 19.11.15 27 1 13쪽
» 23. 감정을 삼키다. 19.11.11 32 1 13쪽
22 22. 꽤나 다정한 모습 19.11.09 34 1 13쪽
21 21. 만남 19.11.09 37 1 16쪽
20 20. 행복과 불안 19.11.04 46 1 12쪽
19 19. 그와 당신 19.11.01 49 1 14쪽
18 18. 너는 이제 내꺼야 19.10.31 50 1 13쪽
17 17. 영희, 그녀 19.10.28 48 1 13쪽
16 16. 20살의 크리스마스 19.10.25 44 1 14쪽
15 15. 능력있는 사람 19.10.24 44 1 14쪽
14 14. 이성준 19.10.23 48 1 15쪽
13 13. 가족이라는 족쇄 19.10.22 55 1 17쪽
12 12. 비밀 19.10.21 55 1 15쪽
11 11. 느끼지 마! 생각하지 마! 19.10.18 60 1 14쪽
10 10. 그 남자 19.10.17 55 1 16쪽
9 9. 그 남자랑 끝내! 19.10.16 59 1 13쪽
8 8. 제 인생을 구경중이신가요? 19.10.15 65 1 13쪽
7 7. 그와의 로맨스 19.10.14 66 1 13쪽
6 6. 우리 잘해보자. 19.10.14 68 1 7쪽
5 5. 나는 누구였을까? 19.10.13 69 1 9쪽
4 4. 언니, 내가 지켜줄게. 19.10.13 76 1 10쪽
3 3. 유생(幼生) 19.10.12 7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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