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역전거지의 서재

시메트리[생각을 읽는 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역전거지
작품등록일 :
2016.03.15 16:14
최근연재일 :
2019.01.31 15:15
연재수 :
383 회
조회수 :
560,033
추천수 :
8,824
글자수 :
3,079,228

작성
19.01.31 15:15
조회
227
추천
3
글자
23쪽

[외전]김준후, 강지혜(4)

DUMMY

지혜와 준후가 천봉산에 온지도 1년이 지난 어느날, 마루에 앉아있던 정용은 힘차게 짖어대는 까치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까치 두 마리가 저리 함께 우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구나. 어디서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

“이 험한 곳을 찾아오는 손님이요? 그런 손님이 있을 리가...”

“너와 지혜가 찾아오지 않았더냐.”

“하하하! 하긴, 지혜와 나도 처음엔 여기 손님으로 왔었죠. 이젠 이곳 생활이 익숙해져서 그런가 까맣게 잊었었네요.”

“다들 이제 그만하고 아침드세요. 수련도 먹어가며 해야죠.”

“아침? 지혜야, 오늘 메뉴는?”

“된장찌개에요. 처음 끓여봐서 맛은 어떨는지...”

“네가 하면 다 맛있겠지. 사부님, 앉죠.”


지혜가 끓인 된장찌개를 한숟갈 입에 넣은 준후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크아! 지혜야, 너 식당해도 되겠는데?”

“정말요? 고마워요 준후씨.”

“사부님, 맛있죠?”

“그..그렇구나...”


준후와는 다르게 정용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지혜의 된장찌개는 소태라고 불려도 될정도로 엄청나게 짰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아이들과 같이 살면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군. 대체 준후 이놈은 이게 뭐가 맛있다는거지?’


“사부님, 왜 숟가락을 내려놓으세요? 맛이 없으세요?”

“그게...허허! 나는 아침부터 너무 수련을 했더니 입맛이 별로 없구나. 너희들끼리 많이 먹거라.”

“심사범님, 수련도 좋지만 다음부턴 적당히 좀 하세요! 그리고 준후씨도요!”

“응! 알았어!”


숟가락을 들고 따지는 지혜와 그녀의 말이라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준후, 그 둘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정용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산 아래로 내려갔다.











경기도 안성, 청광검도회 본관.


쾅!


주먹으로 총사범실 책상을 사정없이 내리친 유순철은 이근상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 이놈! 대체 생각이 있는게냐?”

“사부님, 그것이...죄, 죄송합니다! 사부님!”

“죄송한 것은 아느냐? 돈을 받고 승급시험을 합격시켜주다니! 네놈이 그러고도 이 청광검도회의 부총사범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러자 그때까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근상은 유순철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껍데기뿐인 부총사범, 제가 그 자리에서 뭘 얼마나 잘할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뭐..뭐라고!? 네놈이 진정 미쳤구나!! 그리고 껍데기뿐이라니! 청광검도회의 부총사범이 어떤 자리인지를 진정 모르는 것이냐!!”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이곳 청광검도회의 2인자이자 총사범을 제외한 모든 검사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자리죠. 이제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만...”

“다만?”

“어차피 차기 총사범은 단목이 아닙니까?”


이근상의 말을 들은 유순철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놈이 설마....지금 단목이에게 질투를 느끼고 이러는 것이냐?”

“질투? 이게 지금 질투로 보이십니까?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은 질투가 아니라 억울함입니다! 전 사부님에게 구배지례를 올리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부님의 명이라면 뭐든지 따랐습니다! 수련을 하라면 수련을 하고! 대회를 나가라고 하면 나가고! 싸우라 하면 싸웠습니다! 근데 그 보답이 고작 이것입니까? 당연히 내 것이어야 할 총사범 직을! 대체 내가 왜 새파란 어린놈에게 양보해야합니까!!”


유순철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총사범직에 단목이를 앉힐거라는 네놈의 피해망상도 한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삐뚤어지는 네놈의 그 마음이 더욱 더 한심하구나.”

“한심하다....그러는 사부님은 얼마나 대단하십니까?”

“뭐라? 네놈이 지금 나를 멸시하는것이냐?”

“지금 청광검도회의 현실이 어떤지 알고는 계십니까? 다른 검도회에선 1년이면 따는 1단이, 우리 청광검도회에서는 최소 3년이상을 해야 딸 수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른 검도회에 제자들을 모두 뺏긴다고요!!! 누군 좋아서 이렇게 한줄 아십니까! 다 청광검도회를 위해서 이렇게 한겁니다!!! 현실을 모르는건 오히려 사부님이라고요!!”

“뻔뻔하게 변명만 늘어놓는구나!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검을 가르치는데 있어 돈과 권력을 밝히게 되면, 한성검도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된다고 말이다!”

“또 한성검도회 얘기를 하시는 군요.”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유순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 뒀던 말을 유순철에게 했다.


“한성검도회가 그런 고리타분한 이유로 멸문당한게 아니라는건 사부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성검도회는 혈야차라고 불리는 검사 하나가 모든 사범과 총사범을 살해했기 때문에 멸문한것입니다. 돈과 권력을 쫓아서 망한게 아니라고요!”

“그 혈야차가 어떻게 만들어진 괴물인지는 전혀 모르는 모양이구나. 혈야차는 돈과 권력만을 탐하는 자들이 저지른, 부조리한 체육계의 관행이 만들어낸 괴물이란 말이다! 한성검도회는 그 괴물에게 멸문당한거야!”

“꼭 괴물이라고 볼 수도 없죠. 솔직히 막말로, 그가 진정한 검의 고수일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지금....혈야차가 제대로 검을 갈고닦은 놈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려는것이냐?”

“혈야차는 단신으로 수백명의 검사를 베어넘긴 전무후무의 검사입니다. 그가 정말 한성검도회의 비리로 인해 탄생된 괴물이라면 사부님의 말이 맞겠죠. 하지만 그가 제대로 검을 갈고 닦은 검사라면 어찌되는 것입니까? 한성검도회는 그 비리 때문에 망한게 아니라 고수 하나를 잘못 건드려서 망했을 뿐입니다.”

“네 이놈! 책임을 피하려 이젠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놓는구나!”

“그럼, 사부님께서 한번 증명해보시겠습니까?”

“증명?”


뒷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주소 하나를 찾은 이근상은 그것을 유순철에게 보이며 말했다.


“천봉산이라는 산의 주소입니다. 이 산에 혈야차가 살고있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 사람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체육비리가 만들어낸 괴물이라면, 제대로 검을 갈고닦은 사부님께서는 당연히 혈야차를 손쉽게 이기시겠죠?”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그런 광기에 젖은 괴물 따위가 내 상대가 될리는 없다!”

“그럼 당장 이 주소로 찾아가서 혈야차를 이기는 모습을 저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럼 저도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만두겠습니다. 우리 청광검도회에서 혈야차 같은 괴물이 나오게 할 순 없으니까요.”

“하나마나한 싸움을 굳이 눈으로 봐야 믿겠다고 떼쓰고 있구나. 좋다! 내가 혈야차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네놈에게 직접 보여주마! 하지만 내가 혈야차를 이긴다면 네놈은, 부총사범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직위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야!”


혈야차와 비교를 당하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빴는지 눈에띄게 붉어진 유순철의 얼굴, 그 모습을 본 이근상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총사범실을 나갔다.











천봉산, 심정용의 오두막


탁! 타악! 타타탁!


푸른색 기운을 양발에 두르고 목책을 차던 준후는 어느새 중천에 가있는 해를 보며 지혜에게 말했다.


“심사범님이 좀 늦으시네. 산 아래에라도 내려가신건가?”

“요즘 들어 자주 내려가시는거 같던데요?”

“그래? 아랫마을에 뭐 재미난거라도 있나? 지혜야, 나 물 좀”

“여기 물이요. 그리고.... 잠시만 그대로 계세요. 얼굴에 땀이 흥건해요.”


수건을 든 지혜가 이마를 닦아주자 얼굴이 순식간에 벌개진 준후는 쿵쾅대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물을 들이켰다.


‘심사범님이 없으니까 이제 지혜랑 나 둘밖에 없구나. 이러니까 왠지 부부같은....’


“여기가 혈야차의 집인가?”

“준후씨, 누가 찾아오셨는데요?”

“젠장, 좋았는데...”

“네? 준후씨, 뭐가 좋아요?”

“그런게 있어. 여긴 왜 찾아왔습니까!!!?”


왠지 모르게 날이선 듯한 준후의 말투, 그것을 들은 유순철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이근상에게 말했다.


“저 싸가지 없는 놈은 누구지? 혈야차라고 보기엔 너무 젊구나.”

“보아하니 좀 전까지 수련을 하고 있던 것 같은데, 혈야차의 제자가 아닐까요?”

“괴물주제에 제자라니.... 검선이 통곡할 일이로군.”

“왜 왔냐고 묻잖습니까!!!”


유순철은 치밀어오르는 화를 꾹꾹 누르며 김준후에게 말했다.


“왜 그리 화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린 그저 혈야차를 만나러 왔을 뿐이네.”

“심사범님을요?”

“사범이라...허허! 주제에 자신을 사범이라고 칭하던가?”

“뭐? 주제? 저 영감탱이가 어디서 주둥아리를 함부로...”

“여..영감탱이!!? 네 이놈! 그냥 참고 넘어가려 했더니 어린놈이 말투가 고약하구나!”

“갑자기 나타나서 남의 사부욕을 하는 주제에 예의는 차리고 싶나보네. 오케이! 예의는 어거지로라도 차려줄테니까, 심사범님을 왜 찾아왔는지나 말해.”

“저놈이 근데...”

“사부님, 저에게 맡기십시오.”


이근상은 김준후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처음뵙겠습니다. 저는 청광검도회의 부총사범직을 맡고있는 이근상입니다. 그리고 제 옆에 계신 분은 청광검도회의 총사범님이시자 대한제일검이라는 칭호를 갖고있는 유순철 총사범님입니다.”

“유순철? 그럼 당신이 대한...”

“흥! 이제야 알아보는 모양이구나. 그렇다, 내가 대한제일검인 유순철...”

“대한제이검 유순철!”


그 순간, 유순철의 얼굴엔 노기가 떠올랐다.


“뭐..뭐라? 대한제이검?”

“그래, 대한제이검. 우리 사부님이 대한제일검이니 그쪽이 당연히 2등 아냐?”

“어디서 그런 괴물을 나에게 갖다붙이느냐!!! 이 시정잡배놈아!!!”

“시정잡배라니, 무슨 그런 섭한 말을.... 내 이름은 김준후, 작년까지는 좀 유명하게 놀아서 이름쯤은 들어봤을텐데? 아! 당신한테 타류시합 제의도 했었는데 기억이 안나나 보지?”

“타류시합?”

“왜 작년에 있지 않았습니까. 태권도를 하던...”

“그때 그놈이 그럼....”


김준후는 눈썹을 으쓱으쓱 올리며 말했다.


“당신한테 타류시합 제안을 거절당했을때는 참으로 기분이 거지같았지. 근데 옆에서 누가 그러지 뭐야? 진짜 한국 제일의 검사는 천봉산에 있는 혈야차니 그 사람을 찾아가라고 말이야.”

“뭐...뭐라!? 그놈이 누구냐!! 어떤 새끼가 그런 말도 안되는 말을 퍼뜨려!!!”

“그래서 결국 이 산으로 심사범님을 찾아왔는데, 붙어보니 정말 너무나도 강한분이더군. 그래서 난 그분의 제자로 들어오게 된거야. 나는 태권도를 수련하는 몸이지만 그분에게 배울것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같잖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그래서 혈야차는 어디에 있느냐!!”

“아 글쎄, 심사범님을 왜 찾아왔는지부터 말하라니까!”

“네놈이 그래도!!!”


유순철과 김준후는 불꽃이 튈정도로 서로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그런 그들을 말리기라도 하듯이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 바로 심정용이었다.


“준후야, 그래도 나를 찾아온 손님인데 말투가 너무 무례하구나.”

“아, 심사범님....무례한건 저쪽이 먼저....”

“네놈이 혈야차더냐?”

“저놈이 그래도!!”


손을 들어 김준후를 제지한 심정용은 유순철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한때 혈야차라고 불리긴 했다만.... 대한제일검이라 불리는 유순철 사범께서는 나를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

“네놈을 꺾으러 왔다.”

“허허! 다 늙은 나이에 호승심이라도 생기신겁니까?”

“네놈이 체육비리가 만든 괴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필요가 생겨서 말이지.”


그 순간, 심정용의 표정에선 왠지 모를 스산한 분위기가 풍겨났다.


“한성검도회의 부조리함 때문에 검을 들었던건 맞습니다만... 그 괴물이라는 호칭은 조금 듣기 거북하군요.”

“말로 얘기하는건 여기까지면 충분할 것 같구나.”


챠아아앙!


검집에서 칼을 뽑아드는 유순철, 그러자 한숨을 길게 내쉰 심정용은 준후를 향해 말했다.


“준후야, 내 검을 가져오거라. 그냥 넘기려고 했지만 이자의 말이 나를 조금 화나게 하는구나.”

“네? 아, 네! 여깄습니다! 심사범님!”


챠앙!


준후에게 받은 검을 검집에서 빼어든 심정용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들 멀찌감치 떨어지거라. 이자와 나의 싸움은 조금 치열할 것 같으니 말이다.”









청와대, 대통령 관저.


누군가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 세개를 보며 고민하던 박동석은 옆에 있던 차유선에게 물었다.


“차유선, 당신은 어느 쪽을 만나고 싶지?”

“글래셜 레이디라고 몇 번을 말해요!”

“그런 유치한 짓은 제발.... 오케이! 좋아! 글래셜 레이디, 당신은 둘 중 누구를 만나고 싶지?”


고민을 하던 차유선은 오른쪽에 놓인 쪽지를 집어들며 말했다.


“아무래도 군부대나 성당보다는 산이 낫겠네요. 당신은요?”

“난 아무데나 상관없긴 한데.... 오케이! 내가 성당으로 가지.”

“그냥 제일 가까운데로 가려고 그러는거 아니에요?”

“거참, 나를 뭘로보고... 정수야, 넌 이곳으로 가거라.”


마지막 남은 쪽지를 확인한 정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유선에게 물었다.


“누나, 근데 GOP가 어디에요?”

“아, 거긴 최전방인데.... 동석씨, 그냥 당신이 가면 안돼요? GOP가 뭔지도 모르는 애한테 거길 가라니...”

“어차피 나중에 다 경험할거, 미리 가보면 좀 좋아?”


정수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제가 갈게요. 한번쯤 군부대라는 곳을 가고싶기도 했고....”

“하여간 어른이 되어서는...쯧쯧!”

“사람만나러 가는데 애어른이 어디있다고? 그럼, 몸 조심하고 갔다와서 봐.”

“네, 형도 몸 조심하세요.”


인사를 나누며 관저를 나서는 세 남녀, 그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캬아아앙!


시끄러운 금속성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는 한자루의 검,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패배를 알리는 세레모니와도 같았다.


“청광검도회의 총사범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건만, 오히려 내 손이 민망할 지경이군.”

“네놈....”


패자를 향해 드리우는 차가운 검, 당연하게도 그것은 심정용의 것이었다.


“무슨 사술을 쓴 것이냐! 내가 네놈에게 질 리가 없다! 눈도 보이지 않는 네놈에게 내가 어찌...”

“재미있군. 검기를 쓰지도 않았는데 사술이라는 소리를 듣다니...”

“검기...라고?”


그 순간, 심정용의 검에 푸른색의 검기가 입혀졌다.


“이것은...네놈이 어찌....”

“선택받은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정체모를 기운이지. 아, 물론 당신과 싸우면서는 일체 쓰지 않았으니 기분나빠하지는 마시오. 당신의 검은 지나치게 무겁고, 둔하고, 심지어 생각조차도 너무 많은 것 같더군.”

“닥치거라 이놈! 네놈 주제에 뭐라고 검에 대해 왈가왈부 하느냐! 난 평생 검을 갈고 닦았다! 그런 내가 네놈에게 질 리가 없지 않느냐!!”

“하아...아직도 나에게 패배한 이유조차도 모르고 있군. 당신이 갈고닦았다는 그 검, 그게 정말 검을 제대로 수련한거라고 생각하시오?”

“뭐?”


심정용은 검을 똑바로 세우며 말했다.


“평생 검을 갈고 닦았다고 하시었소? 바로 그것 때문에 당신은 나에게 진 것이오. 검은 그저 무쇠를 갈아서 날을 만든 흉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오. 쓸데없는 의미나 뜻을 갖다 붙이면 붙일수록 검은 점점 더 무거워지는 법, 그대의 검은 이미 천근만근의 무게인데 내가 그런 상대에게 질 리가 없지 않소?”


그러자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변하는 유순철의 얼굴, 이근상은 그런 유순철을 부축하며 말했다.


“사부님, 일단 본관으로 돌아가시죠.”

“....”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근상은 아무런 말없이 멍하니 있는 유순철을 부축하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심사범님, 저 사람 뭔가 제대로 충격을 받은 얼굴인데요?”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래도 평생 검을 만진 사람이라 그런지 단번에 알아듣는구나. 아마 당분간은 좀 혼란스러울게다. 자신이 믿고 생각해온 모든 것들이 무너졌으니 말이다.”

“검이 흉기라는 말이 그렇게 충격적인건가요?”

“적어도 저 사람에게는 그렇겠지. 왠지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유순철을 데리고 무사히 산을 내려온 이근상은 주차되어있던 차에 그를 태우며 물었다.


“사부님, 괜찮으십니까?”

“내가 평생 갈고닦아온 검이....그 검이...”

“괜한 말에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깟 놈이 검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검이...고작 흉기...”


멍한 표정의 유순철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근상, 하지만 그의 그런 표정은 차 문을 닫자마자 180도 변하였다.


‘크크크! 놈이 사부님을 꺾으면 그 사실을 널리 퍼뜨려서 하야시킬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너무 좋군. 저대로라면 내가 끌어내릴 필요도 없이 스스로 내려오겠는데?’


사실 이근상이 그동안 청광검도회에서 해온 짓들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돈을 받고 심사를 통과시켜준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대회선수를 뇌물을 받고 선정해주거나 도검 제작 업체 변경에 따른 리베이트, 회비 분식회계 등의 중대한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질러 왔던 것이었다.

하나가 드러난 이상 나머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두 드러나게 될 것은 자명한 일,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이근상은 항간에 떠도는 소문인 혈야차를 이용해서 최후의 도박을 한것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보다시피....최고의 결과를 낳았다.


‘이대로 폐관수련이라도 들어가신다면 금상첨화일텐데....’


유순철이 없는 청광검도회를 머릿속에 그리며 차에 타는 이근상, 그런 그의 발에 진득한 무언가가 밟혔다.


“이건..피? 사부님, 이게 어떻게...사, 사부님!!!!”


차 바닥에 흐르고 있는 것은 검으로 자신의 손을 자른 유순철의 피였다.


“사부님! 손을 대체 왜...”

“내가 그동안....다뤄온 것이...신성시 했던 것이....검이 아니라............흉기였다. 내가 너희들에게...흉기를...숭배하라고 시킨것이야....”

“사부님! 그렇다고 손을 자르시다니요! 사부님!!!”


운전석에서 뛰쳐나간 이근상은 뒤쪽 차문을 다시 열어 유순철의 상태를 살폈다. 출혈때문인지 그사이 정신을 잃은 유순철의 모습, 그 밑에는 그의 잘린 손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사부님....”

“이봐요! 괜찮아요? 어머!? 이 피는 대체 뭐야!!?”

“당신은 누구...”

“지나가던 사람이에요. 세상에나...이 사람, 설마 스스로 손을 자른거에요?”


차안에 흥건한 피와 칼, 그리고 잘린 손을 본 여인은 이근상을 보며 소리쳤다.


“뭐해요!? 빨리 119에 신고 안하고!”

“네? 아, 네....”


갑자기 나타난 여인이 다그치자 핸드폰을 꺼내 신고하는 이근상, 그가 신고에 정신이 팔린사이 유순철의 상처를 살핀 여인은 두 눈을 하얗게 만들며 중얼거렸다.


“일단 출혈부터 멈춰야겠어. 프로스트 핸드!”


쩌저저저적!


단숨에 유순철의 잘린 손목과 손을 얼려버리는 여인, 그녀는 청와대에서 심정용을 찾아 이곳으로 온 차유선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빨리 이분이나 돌보세요. 구급차는 언제 온대요?”

“워낙 시골이라서 구급차는 오래걸린다는군요. 내가 알아서 병원까지 가면되니, 아가씨는 가던 길 가십시오. 도와준건 정말 고맙습니다.”


잠시 천봉산과 유순철을 번갈아보던 차유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처와 손은 잘 얼었으니 접합수술은 문제 없을거에요. 같이 가드리고 싶지만 저도 이 산에 일이 있어서.... 그럼, 조심히 운전하세요.”

“네, 고맙습니다. 아가씨.”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키는 이근상, 그리고 약 10분 후, 차를 잠시 멈춘 이근상은 옆에 놓여져있는 유순철의 손을 집어들며 생각했다.


‘그 여자...대체 뭐였을까?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무슨 수로 이 손을 얼린거지? 뭐, 아무래도 상관없긴 하지만...“


정신을 잃은 유순철을 백미러로 잠시 바라보던 이근상은 창문을 열고 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는 유순철의 차, 그가 떠난 도로에는 반쯤 얼어있는 누군가의 손이 흉한 모습으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한편, 그렇게 이근상과 유순철을 보내고 정용의 오두막을 찾은 차유선은 마루에 앉아있던 심정용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심정용씨 되시죠? 제가 갖고 있는건 젊었을때의 사진이지만 그때의 이목구비가 고스란히 얼굴에 남아있군요.”

“손님이 찾아오는게 1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이 집을 찾아온 두 번째 손님이라.... 날 어떻게 알고 찾아온거지?”

“기태춘 각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기태춘? 그게 누구지?”


그에 대한 대답은 준후가 대신 했다.


“모르세요? 지금 대통령 이름이잖아요.”

“대통령이 날 알고 있다고?”

“그분은 대통령이 되기전에 정치인이었고, 정치인에 입문하기전에는 검찰에 몸을 담고계셨었습니다. 검사로 재직할 당시에 심정용씨의 사건을 맡았었다고 하시더군요. 혈야차 사건, 알고 계시죠?”

“그 사건하나가 평생 나를 괴롭히는구나..... 근데 아가씨, 한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물어도 되겠소?”

“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왜 아가씨는 이런 험한 산을 올라오면서 땀 한방울 흘리지 않은것이지?”

“어? 그러고보니...”


심정용의 말에 그제서야 차유선의 행색을 살핀 준후는 두 눈을 크게뜨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정말 땀이 한방울도 없네요? 이쪽 길은 워낙 험해서 나도 처음 올 때 땀이 비오듯 흘렀는데...”

“그건 제가 가진 능력덕분입니다.”

“능력? 설마 아가씨도?”

“물 한잔만 주시겠어요?”

“지혜야 가서 물 한바가지만 떠오려무나.”


지혜가 물바가지를 갖다주자 그 끝에 살짝 손가락을 댄 차유선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프로스트 핸드.”


쩌저적!


“사..사부님, 물이 얼어버렸는데요?”

“전 모든 물체의 온도를 극한까지 낮출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듣기로는....심정용씨도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게 사실이 맞나요?”

“먼저 능력을 드러내줬으니 굳이 숨길필요는 없겠지. 맞소, 나도 눈은 멀었지만 주변의 모든 소리를 느끼는 능력을 갖고 있지. 그리고 여기 있는 이 두 아이도 미래에 관련된 능력을 갖고 있소이다.”

“이 두 사람도요?”


준후와 지혜는 웃으면서 유선에게 말했다.


“제 이름은 김준후, 4초 후의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전 강지혜에요. 가끔 미래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어요. 준후씨와는 다르게 아무 때나 볼 수 있는건 아니지만....”


차유선은 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세 분께 부탁을 좀 드리겠습니다. 저와 뜻을 함께해주시겠습니까?”

“다짜고짜 찾아오더니 이제는 뜻을 같이해달라.... 최소한 그 뜻 정도는 밝혀야 하는거 아닌가?”

“같이 하고자 하는 뜻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것이죠.”

“그것이 무엇이오?”


고개를 든 차유선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어긋난 균형의 조율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메트리[생각을 읽는 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드디어 에필로그까지 모두 완결이 되었습니다. +1 18.12.05 296 0 -
공지 몸살감기에 걸려서 며칠 쉽니다..ㅠㅜ 17.11.07 812 0 -
공지 달을 가린 구름, 구름을 가린 손 챕터의 첫화가 에러가 있었습니다. 17.05.30 494 0 -
공지 다음 챕터는 29일부터 시작합니다. 17.05.26 351 0 -
공지 연재 요일 변경 (2018.02.13 수정) +1 16.09.06 932 0 -
공지 연재시간에 관해...... 16.05.31 4,192 0 -
» [외전]김준후, 강지혜(4) 19.01.31 228 3 23쪽
382 [외전]김준후, 강지혜(3) 19.01.31 170 2 16쪽
381 [외전]김준후, 강지혜(2) 19.01.31 174 1 17쪽
380 [외전]김준후, 강지혜(1) 19.01.31 209 2 14쪽
379 [외전]심정용(6) 19.01.04 193 4 15쪽
378 [외전]심정용(5) 19.01.04 173 2 15쪽
377 [외전]심정용(4) 19.01.04 174 0 16쪽
376 [외전]심정용(3) 19.01.04 179 1 16쪽
375 [외전]심정용(2) 19.01.04 182 1 17쪽
374 [외전]심정용(1) 19.01.04 248 2 16쪽
373 에필로그 18.12.05 373 4 14쪽
372 에필로그 18.12.05 322 2 15쪽
371 최후의 결전 +3 18.11.23 348 6 17쪽
370 최후의 결전 18.11.23 265 3 17쪽
369 최후의 결전 18.11.23 242 3 17쪽
368 최후의 결전 +1 18.11.16 244 5 16쪽
367 최후의 결전 18.11.16 224 2 15쪽
366 최후의 결전 18.11.09 260 3 16쪽
365 최후의 결전 18.11.09 224 2 15쪽
364 최후의 결전 18.11.06 260 5 15쪽
363 최후의 결전 +2 18.11.01 259 4 16쪽
362 최후의 결전 18.10.31 240 4 15쪽
361 최후의 결전 18.10.26 242 4 16쪽
360 최후의 결전 18.10.23 244 3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