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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카카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영주는 복수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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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카카
작품등록일 :
2023.04.02 05:39
최근연재일 :
2023.06.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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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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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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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25화

DUMMY

생사의 갈림길이 놓인 순간.

인간은 주마등처럼 인생의 모든 기억이 스쳐지나간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의 베델이 그랬다.

데미안의 살기.

그 응축된 기운은 절대 흑마법사들과 비교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


덜덜덜.


순식간에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다.

경험 많은 상인 베델은 이와 비슷한 기세를 느낀 적 있었다.

한 때, 목숨을 걸고 전쟁터의 무기 상인으로 전장을 종횡무진하던 시절.

먼발치에서 지켜본 한 사내가 이런 기세를 풍겼다.

눈빛만으로 주위 모든 것을 즈려밟을 만한 기세. 그리고 그 끔찍할 살기.


바로 당시 홀로 적진에 돌격하여 백인의 병사와 이인의 마나 유저를 베어낸 자.

제국의 첫 번째 검, 소드마스터 베르크 공작의 눈빛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겨우 약관의 나이에 불과한 소영주가 이런 기세를. 전쟁터에서 닳고 닳은 그런 자의 경험과 연륜이 깃들 수 있단 말인가.’


뒤늦게 깨달았다.

소영주가 바뀐 것은 단순히 망나니가 정신을 차리고 딴 사람이 된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 자체가 바뀌었다.

아니, 어쩌면 진짜 사람의 영혼이 바뀐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두려웠다.

지금의 소영주가 너무 두려웠고.

또한 나중에 더욱 거대해질 소영주가 더욱 두려웠다.


‘내 삶도 여기까지인가.’


지금까지 카를로스 영지에 행해온 무례와 비열한 협잡이 한탄스러울 지경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데미안 소영주.

그는 절대 자신의 적을 살려두지 않는 자였다.


푼돈에 영지의 정보를 팔아치운 문관이 그러했고.

군주의 검이 아닌, 배신자의 비수가 되어 소영주의 등 뒤를 노린 데이비스가 그러했다.

그들 모두 대대로 오랜 세월 카를로스 가문을 섬긴 자들.

그럼에도 그들은 단 한번의 용서도 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의 죄.

베델에 비하면 크다고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지은 그의 죄악.

그 모든 악덕이 언덕위에서 굴려 내려온 눈덩이처럼 커진 느낌이다.


털썩.


베델은 바싹 엎드렸다.


쿵!

쿵!

쿵!


머리가 피범벅이 될 정도로 석벽에 머리를 박았다.

그 행동은 지금까지의 경박한 그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엄격함과 진지함.

그것이 느껴졌다.


베델이 조심스럽게 떨리는 입술을 애써 열었다.


“소영주님. 소영주님께서는 비록 저를 비열하고 돈이면 뭐든지 하는 상인으로 아실지 모릅니다만, 저도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지?”

“사람입니다.”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황금충(黃金蟲) 베델이 사람만은 다루지 않는다는 말인가?”

“예. 제가 비록 협잡과 사기를 좋아하는 그릇된 상인이라 하지만, 저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보부상이었습니다. 제 유일한 신념 하나는 사람을 사고팔지 않는 것. 제가 인륜을 저버리고, 세상의 법도를 어지럽힐지 몰라도, 흑마법사들에게 죽을지언정 그것만큼은 범하지 않았습니다.”


바짝 엎드린 베델이 고개를 들었다.

이마 아래는 선혈로 흥건했다.

뼈가지 드러난 이마 아래로 베델의 굳은 눈빛이 드러났다.


그것은 협잡꾼 베델이 아닌, 회귀 전 북부의 대상(大商) 베델이었다.

데미안은 검을 들었다.


스릉!


데미안의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이 호선을 그리며 베델의 머리를 지났다.

이윽고.


서걱!

툭!


무언가 차가운 지하실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목은 아니었다.

귀.

그의 오른쪽 귀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큿!”


터져 나오는 고통.

당장이라도 귀를 부여잡고 땅바닥을 뒹굴고 싶었지만.

베델은 애써 통증을 참아냈다.

견뎌냈다.


그의 ‘주인’이 아직 입을 열지 않았으니까.

견디고 견뎌서 기다려야 할 때였다.


그런 베델의 태도가 흡족했는지.

조금은 누그러진 기세로 데미안이 경고했다.


“기억해라. 네 녀석의 마음에 만에 하나라도 다른 생각이 깃들 때에. 지금 그 작렬하는 통증을 기억하라.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는 귀가 아닌 네 머리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또 기억하라.”

“알겠습니다, 주인이시여.”


베델의 말에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또한 항상 기억해라. 내가 네 녀석을 살려둔 이유는 진정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네 녀석이 이 영지에 할 일이 있고, 이용 가치가 있기에 이 영지에서 숨을 쉬고 두 다리를 땅에 짚고 걸을 수 있음을. 데이비스 외의 다른 네 명의 기사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이전과 달라졌듯이, 네 녀석도 앞으로 내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4인의 기사.

모를 수가 없었다.

중립이라는 미명 하에 데이비스와 데미안의 갈등을 방조했고.

또한 데미안의 검이길 포기한 겁쟁이들.

그리고 그들이 지금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도.



데이비스의 흔적을 없앤다고, 영지 곳곳을 쥐 잡듯이 뒤지고 다니는 사실.

그들이 한 바탕 난리를 피운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데미안은 그런 4명의 기사의 마음가짐을 베델에게 직시했다.

이윽고 마지막 말을 마쳤다.


“내가 비천한 종에게 내 첫 번째 명령을 내리지.”

“말씀하십시오.”

“고든 자작의 채권을 회수해라. 그것으로 네 녀석의 가치를 증명해라.”

“존명!”


털썩.


다시 한번 베델이 부복했다.


데이비스를 칼잡이로 사용하고, 베델을 이용해서 영지의 금고를 털어간 이 영지의 첫 번째 적.

고든 자작을 사냥하기 위한 첫 번째 행보가 시작되는 참이었다.



***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조금은 느슨해질 무렵.

베델이 사라진 후, 한참이 지났을 때 그레고리 집사장이 입을 열었다.


“역시 아닐 줄 알았습니다. 베델 녀석이 탐욕스럽긴 해도 선은 넘지 않는 녀석이니까요.”

“선을 안 넘는다니. 아무리 집사장이라도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그러면 저 녀석이 광산과 영지를 노린 건 선을 넘지 않았다는 겐가.”


순간, 데미안이 발끈하며 그레고리 집사장을 쏘아붙였다.

하지만 집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시의 카를로스 영지의 상황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야욕이었겠지요.”

“....”

할 말은 없었다.

그만큼 데미안의 존재가 한심해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괜한 말 하지 마. 지금이라도 저 베델 녀석의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니까.”

“이해합니다. 소영주님의 천성은 만인지상의 절대적인 군주. 자신을 농락하고, 소영주님의 영토를 감히 침범한 역적을 당장이라도 벌하고 싶으시겠지요.”

“그래. 하지만.”

“하지만?”

“녀석은 이용가치가 있지. 그리고 그게 사라지면 그때 처분하면 될 뿐.”


데미안은 유순하지 않다.

오히려 잔혹할 만큼 냉철하다.

자신의 사람에게는 한 없이 너그럽지만, 또한 적에게는 한없이 냉혹한 자.

그것이 용병왕 제크였으니까.


온정이라느니.

용서라느니.

그런 단어와 데미안은 절대 가깝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데미안의 말에 그레고리 집사장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성장하셨군요.”

“성장?”

“예. 뭐랄까. 얼마 전부터 달라진 소영주님께서는 뭔가에 쫓기는 분 같았습니다. 그리고 절대 자비를 허락하지 않으셨으니까요. 마치 복수와 징벌의 화신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순간, 그레고리 집사장의 말에 데미안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놀랄 만큼 정확하고, 또한 자신을 꿰뚫고 있었다.

동시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만큼 자신을 자세히 알고 있다는 건.

그레고리 집사장이 데미안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쓰고, 또한 관심을 가지며 애정한다는 방증이었으니까.


데미안의 미소를 확인한 그레고리 집사장도 데미안과 함께 따라 웃었다.


“이전과는 한없이 단단해지셨기에 솔직히 걱정했습니다. 단단해진 만큼, 때론 더욱 단단한 망치에 쉽게 깨지는 법이니까요. 때론 이리저리 부는 돌풍에 견뎌내는 것은 단단한 바위가 아닌 유연한 갈대일 때가 있습니다.”


“훌륭하고 또 훌륭하십니다. 이 소인이 목숨을 바쳐 따르고 싶을 만큼요.”

“그런 말 하지 말게. 목숨을 바친다는 그런 말 따위는.”


그 말에 그레고리는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진심이었다.

두 번 다시.

소중한 사람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던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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