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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카카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영주는 복수를 원한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우카카
작품등록일 :
2023.04.02 05:39
최근연재일 :
2023.06.25 06: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90,898
추천수 :
1,821
글자수 :
218,850

작성
23.04.02 06:40
조회
5,527
추천
69
글자
20쪽

1화

DUMMY

"후우. 완벽해."


탁!


막사 안에서 마지막 전술을 점검하던 제크는 서류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그 순간.

제크는 시선을 돌렸다.


드르륵.


막사의 겉문을 열었다.

사막의 공기가 시리도록 차다.

잠이 번쩍 깬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이윽고 한숨을 푹 쉬고 서류를 내려보았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 제크의 용병대에 관한 전략 문서.

내일 벌어질 모든 경우의 수를 초망라했다.

마지막 원정이니만큼 더욱 철두철미할 수밖에.


그 결과물을 내려다본 제크는 곧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


출전은 익일 새벽.

시간이 좀 남았다.

하지만 이렇게 여유만 부릴 때는 아니다.

언제 또 비상 전투 상황에 돌입할지 모른다.

자둘 수 있을 때 미리미리 자두고 먹을 수 있을 때 적당히 먹어두는 게 좋다.

그게 이곳 마경의 상식.


그렇게 막사를 나오려는 그때.


"아웅, 잘잤다."


모닥불을 쬐며 꾸벅꾸벅 졸던 부관이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가 얼굴을 구겼다.


한심한 녀석.

부관이란 놈이 지 상관이 업무에 치여사는데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괘씸한데, 눈을 꿈뻑이던 녀석이 헛소리를 시작했다.


"대장."

"뭐."

"마왕군 토벌에 성공하면 이제 뭘 할 생각이우? 스읍."


침을 닦으며 눈을 꿈뻑이는 부관의 실없는 소리에 제크는 피식 웃었다.

괘씸한 걸 둘째 치고, 참신한 개소리다.

제크는 모닥불을 막대로 휘적이며 대충 대답했다.


"용병이 뭔 계획이 있냐. 그냥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고, 뒤지라면 뒤지는 게지."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왕 사냥에 참가한 유일한 용병왕이라는 작자의 배포가 그것밖에 안 되우?"

"용병왕?"


그 말에 제크는 다시금 헛웃음을 켰다.

용병왕 제크.

그의 위명은 용병계에서 전설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회의적이었다.


"지랄. 오러 유저도 아니고, 겨우 초급 마나 유저밖에 안 되는데, 용병왕이니 뭐니 우습다, 우스워. 우린 그냥 귀족 양반들의 도구에 불과해, 제린."

"헤에? 자기 비하가 심한 거 아녀? 대장처럼 강한 용병이 어딨다고 그러슈. 웬만한 오러 유저보다 더 전투경험도 많잖우. 그리고 대장, 그 뭐냐. 마검사 아뉴?"

"마검사?"

"그래. 마검사. 마법도 2서클이나 되고, 검도 초급이지만은 무려 마나 유저잖아. 그러면 그게 마검사지 뭐여."


녀석이 눈을 반짝이며, 부러운 눈빛을 쏟아냈다.

당연했다.

용병이란 녀석들 자체가 워낙에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왈패 집합소다.

검술은 기사들의 전유물이고, 마법은 마탑의 전유물.

도제식으로 비밀리에 전술되는 그들의 비전은 세외 인사들에게 경외와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심지어 마법은 마탑을 제외하면 그 익힐 수 있는 경로가 극히 제한적이다.

그것을 동시에 두 개나 통달한 제크는 과히 용병왕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크는 피식 웃었다.

만족의 미소가 아니다.

비아냥과 자기 조롱이 한껏 담겼다.


"훗. 제린. 지식과 경험이 모두 실력이 되진 않잖아. 그리고 마검사란 건 그저 검이나 마법이나 둘 다 어정쩡하게 익혀서 대성하지도 못했다는 방증이고 말이지. 나같은 절름발이에 외팔이 검사는 그냥 용병대장이 맥시멈이지. 안 그래?"

"헤에!? 그런 거유?"

"그래. 네 녀석 계속 헛소리만 할 거면, 그냥 모닥불 옆에서 쳐 누워 자라."


이만하면 됐다 싶어 대화를 끊었다.

제린은 아닌 모양이다.

곧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흐흐흐. 내 모를 줄 아슈? 대장, 원래 귀족 출신이었다매? 마나 중독으로 부셔진 마나 코어로도 초급이나마 마나 유저가 된 게 핏줄 때문이라던데, 맞수? 본명도 따로 있다던데."


제린의 말에 제크는 처음으로 웃음을 잃었다.

모닥불의 온기마저 차갑게 가라앉을 정도의 반전.


"...! 제린, 그 얘긴 어디서 들었지?"


차가운 분노.

모닥불의 존재 따위는 잊을 만큼 주위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제크는 자신의 얼마 안 되는 마나의 힘을 개방했다.


우우우우우우웅.


마나 유저의 힘.

비록 초급에 불과하고 제대로 된 마나 코어조차 없어 반푼이에 불과하지만, 일반 용병의 입장에선 절대적이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인가.


용병왕 제크.

마왕 원정군에 합류한 수십의 용병단의 중 유일하게 혈전에서 살아남은 용병대의 대장이었고. 지금은 용병왕이라는 이름을 용사에게 하사받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

그런 그의 실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기세만은 최상급 마나 유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진한 살기와 함께 제크의 마나가 제린의 목을 조른다.


"컥. 커억. 컥! 사, 살려.... 대장, 자, 잘못."

"어디서 들었냔 말이다."

"크엑. 켁. 그, 그걸 모르는 애들이 용병대 안에서 누가 있다고... 그러는 거요. 젠장할!"

"쳇."


그 말과 함께 제크는 기세를 거두었다.


쿠웅.


제린이 긴장의 끈이 풀렸는지 털썩 바닥에 주저앉으며 엎드렸다.


"헤엑. 헥. 헤엑. 젠장할. 그놈의 성질머리하고는. 어쨌든 대장도 다음을 생각해두란 이 말이야."

"뭐가."

"노예조차 공을 세워서 귀족이 되는 세상이라고. 이번 토벌만 성공하면 황제 폐하도 큼지막 한 봉토 하나랑 성을 하사하실지도 모르잖아."

"네 녀석 바람이 아니고?"

"크하하핫! 그럼 좋지. 그러면 난 대장의 기사가 될 테니까. 아녀?"

"훗. 그래. 그러면 좋겠네."


그런 실없는 소리와 함께 제크는 다시 모닥불 앞에 앉았다.


귀족이라.

이제는 잃어버린 그의 성. 그리고 명예.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잠시나마 아른거렸다.

하지만 잡념은 거기까지.


"이제 개소린 거기까지 하고 얼른 자라. 연합군도 거의 전멸 상태고 이제 남은 건 우리 용병대뿐이니까. 아마 내일 선봉은 우리가 서야 할 거다."

"쳇. 알았슈. 그러면 기대하지. 우리의 고명하신 용병왕께서 이번엔 또 얼마나 큰 공을 세울지 말야. 히히히힛."


그 말과 함께 제린은 서둘러 사라졌다.

실없는 자식.

하지만 영 실없는 소리는 아니다.

문제는....


"정말 살아돌아갈 수만 있다면 말이지."


몰락한 가문에서 나홀로 살아남은 제크.

그는 특유의 독기와 생존 본능으로 불구의 몸으로 용병왕의 자리에 올랐다.


수많은 위기와 위험이 도사린 와중에 그를 살아남게 해준 재능은 단 하나.

직감.


그 직감이라는 녀석이 지금 요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내일의 전투.

절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찹찹한 심정으로 제크는 고개를 들어 막사 밖을 바라보았다.

두 개의 달만이 은은한 빛을 내며 처량하게 떠 있을 뿐이었다.



***




와아아아아아아!

크억!

켁!


전장의 함성 소리가 쩌렁쩌렁하다.

흙 바닥은 피와 오줌을 머금어 진창이 된 지 오래.

이종족의 사체와 내장이 발에 수없이 채인다.


혈전.

말 그대로 최후의 전쟁답게 시산혈해를 이루었다.

난전이다.


하지만 그 전투 와중에 제크의 용병대는 평온을 유지했다.

아니, 평화롭게 후방에서 제국군들이 말 그대로 피째 갈려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 사실에 신이 난 부관과 백인대장들이 입을 열었다.


"본대의 5할이 전멸이라는군요."

"제국군과 성군은 그나마 피해가 크진 않지만, 연합 왕국의 군사들은 9할이 첫 격전에서 나가떨어졌답니다."

"만약 우리가 본대에 합류했었으면 피해가 만만찮았겠는데요?'


연합군. 아니, 이제는 온전히 제국군이 된 그들은 제크의 예상과 달리 용병대를 예비대로 편성했다.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제크의 용병단만은 현재까지 눈꼽만큼의 피해 없이 후방에서 쉬고 있었다.


용병단 모두 그 이유는 몰랐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모두 웃음이 만발한다.

하지만 제크는 굳은 얼굴로 전장을 주시했다.


'어째서?'


제크의 상식으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제크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연합군의 총사령관은 제국의 황태자. 최소한의 사상자로 제국군을 온전히 돌려보내야 할 그가 용병대를 그냥 놀리는 건 말도 안 된다.'


용병대.

돈으로 고용해서 사지로 몰아넣는 대상이자 '물건들'.

잔혹하지만 그것이 현 시대 용병의 가치였다.

고기방패로 쓰면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런데 그런 용병대를 보물단지마냥 예비대로 편성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제국군과 다섯 연합 왕국의 군대들. 마지막으로 성국의 팔라딘까지.

마왕 토벌이라는 미명 하에 절대 뭉칠 수 없는 여러 권력들이 억지로 우겨넣듯 하나로 뭉쳤다.

그런 권력가들의 돈보다 소중한 병력들이 눈앞에서 갈려나가고 있는데, 용병대를 아낀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데미안의 구겨진 얼굴과 함께 경험 많은 몇몇 노장도 그리 밝은 얼굴은 아니다.

하지만 제린은 그럴 경험도 눈치도 없었다.

휘파람을 휘익 불며 말을 붙였다.


"대장. 뭐가 그리 심각해? 그래도 쉬면 좋은 거 아녀?"

"웃긴 개소리 하지 마라. 멍청한 녀석아."


제크가 부관을 타박하며 이를 갈았다.


두근.

두근.


그의 타고난 생존감각이 더욱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병력의 손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무식한 돌격으 결말이 맺어졌다.


"꺄아아아아아악!"


마왕의 사천왕 중 하나.

음욕의 엘프 나다니엘이 사지가 찢겨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로써 마왕의 모든 사천왕들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병사들이 쾌재를 불렀다.


"역시! 성녀님이셔! 신성력으로 음마를 찢어발기다니, 역시 타고난 성력이로구만."

"아아. 난 오늘부터 성국에 귀의하기로 했어."


부하 녀석들이 눈물까지 찔끔 짜며 성녀를 찬양한다.


"지랄!"


뻥!


"으악!"


그런 부하 녀석들의 엉덩이를 한 번 차준 제크는 혀를 찼다.


'성녀는 개뿔. 이틀 전에 밤이 외롭다고 내 침대로 찾아온 창녀 같은 년인데.'


몰락 귀족 출신이지만 제크의 외모는 나름 수려했다.

아니, 만약 한쪽 팔이 그대로 달려있고, 한쪽 다리도 절지 않았다면 얼굴만으로 남작위쯤은 따낼 만큼 잘생겼다.

아마 얼굴의 이마부터 턱까지 양쪽으로 찢어진 엑스(X)자 흉터만 아니었으면 더욱 그랬을 터다.

그렇기에 때때로 제크의 막사에 몰래 찾아오는 여자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틀 전은 일은 그로서도 꽤나 충격이었다.

창녀도 아니고 성녀라니.

어둠 속에서 나신으로 나타난 여성의 정체를 알아차렸을 때, 제크는 처음에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밤이라 흉터도 안 보이고 꽤나 곱상하군요.'

'그 얼굴. 그렇게 그냥 놀리는 건 너무 아까운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오늘 밤 쾌락에 젖어보는 건 어떤가요?'


달아오른 몸으로 엉겨붙던 성녀는 제크가 완강히 거부하자 이를 갈며 막사 밖으로 도둑고양이처럼 뛰쳐나갔다.

저주의 말을 남기고.


'어차피 죽을 몸뚱아리. 오늘 밤을 그냥 넘긴 걸 후회하게 해주겠어.'


여자가 한 말 치곤.

아니, 성녀가 한 말 치고는 꽤나 표독스러웠다.


그리고 그 날밤.

그동안 머릿속에 단단히 자리잡던 제크의 상식이 하나둘씩 깨어졌다.


방금 죽은 사천왕.

음욕의 엘프던가, 음마의 엘프던가.


어쩌면 지금 그 엘프의 사지를 찢은 성녀가 더 음마일 수 있다.

아니, 그 전에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성녀는 성스럽기는커녕 미친년이었다.


"꺄하하하하하! 이단의 살점! 이단의 뼈! 이단의 내장! 이히히히히힛!"


엘프의 잘린 팔을 휘저으며 춤을 춘다.

그 잘린 팔의 단면을 햝고는 히히덕댄다.

괴이한 성벽.

미친 듯이 웃는 성녀는 더이상 성녀가 아니라 광녀일 뿐이었다.


'그러고보면 다섯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이 모두 제 정신은 아니지.'


빛의 성녀 이사벨은 보는 봐와 같이 이미 완전히 미쳐버렸고, 환영의 마법사 이스테리안은 병사들과 고아들을 모아 인체실험을 자행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것뿐이랴.

가장 중요한 용사 아벨은 무감정함을 넘어서 자신의 부츠에 흙탕물을 튀긴 소녀의 목을 친 전력이 있는 사이코패스다.

절대검제 루시안은 마검의 길을 들인다고 탈영병의 사지를 묶어 마검으로 난자했다.

마지막으로 온몸이 근육질인 천하무적 권왕 스테인. 그는 자양강장을 한답시고 웅담(熊膽)도 아닌 인담(人膽)을 섭식하는 기행을 내보였다.


'모두 미쳤군.'


아군조차 두려워할 만한 용사라니.

말도 안 되는 기행이건만, 그것을 문제 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세상은 난세.

온갖 기행과 협잡. 그리고 학살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지옥도의 세상이다.

무엇보다 결과가 중요시된 작금의 현실에서 그들의 힘은 일반인의 윤리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런 기이한 광기는 전염병처럼 병사들 사이에 퍼져있었다.


"이단의 뼈를 씹어먹자!"

"엘프는 성노로! 드워프는 공노로! 오크는 가축처럼 부려먹으면 될 뿐이다!"

"여신 프레야를 부정하는 이종족들을 모조리 말살하자! 으하하하핫!"


광신.

그것이 군영 전체에 질병처럼 전염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염병의 원흉, 성녀 이사벨.

그 광신의 성녀가 천천히 제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엘프의 절단된 팔을 이리저리 막대처럼 휘두르며 입을 열었다.


"후후후. 마계의 사천왕도 모두 골라갔군요. 드디어 용병대가 나설 때예요."

"출정입니까?"


이렇게 불안하게 뒤에서 대기하느니, 차라리 출정이 나았다.

하지만 그런 데미안의 물음에 성녀 이사벨은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 천진난만함이 오히려 더욱 섬뜩할 정도.


"후후훗. 그럴 리가요. 지금부터 용병대 여러분들께 희소식을 전해드리죠. 우리 성국의 법황전하께서는 천한 것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했어요. 바로 '순교'를 크나큰 은혜를. 받아들이실 거죠?"

"뭐, 뭣!? 미친!"


그 말을 들은 제크의 반응은 빨랐다.


스릉.


곧장 검을 빼어들고, 불완전한 마나 소드를 구현했다.


우우우우웅.


푸른색의 검날이 형형하게 빛나며 형태를 갖췄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차앙!


겨우 초급 마나 유저의 힘.

검제가 나설 필요도 없이 성녀의 희미한 성력 앞에 그대로 산산조각났다.

휘두르기도 전에 검이 박살이 나며 유리처럼 깨졌다.


그녀가 초승달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참. 이건 허락을 구한 게 아니라 통보입니다."

"이런, 씨-바...!"


채 제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발밑에서 대형 마방진이 형성되었다.


우우우우우웅.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수백 명 분의 마나가 요동치며, 혈선을 그으며 완성되었다.

실력은 2서클이지만, 지식만은 여느 5서클 마법사를 뛰어넘는 제크다.

곧 그 피의 마법진으로 완성된 것이 무엇인지 곧장 알아차렸다.


"제물?"

"호오. 용케 알아보는군 천것아. 그래 이건 작품이지. 마왕성 앞까지 용병을 아낀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설마..."'

"그래. 너희를 제물로 대규모 마법을 완성할 거거든. 무려 7서클의 대마법이다."


환영의 마법사 이스테리안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마법을 완성했다.

이사벨이 신난 듯 속삭였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 했죠? 여기 용병대의 천것들을 제물로 마왕성 전체를 날려버릴 마법진을 완성할 거예요. 여러분의 이름은 모두 성국의 명부에 적혀서 순교자로 남을 테니 걱정마시구요, 데헷."


그녀의 상큼한 미소가 역겹다.

막아야 한다.

아니, 최소한 저항이라도 해야한다.

하지만.


'젠장할.'


제크는 겨우 초급 마나 유저.

마법은 2서클에 불과하다.


가진 지식과 경험은 많았지만, 어릴 적 앓은 마나중독으로 마나 하트와 마나 코어는 이미 재활불가능 수준이다.

다섯 영웅들을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순간.

제크의 감각이 번쩍였다.

이윽고.


서걱!


섬뜩한 소리.

어디선가 나타난 검에 제크의 몸을 사선으로 갈랐다.

순간 볼 수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오러 소드를 구현한 검제 루시안의 뒷모습이.


'여, 여기까지인가.'


스르륵.

그의 시선이 땅으로 떨어진다.

사선으로 이분된 그의 상체.

내장을 흩뿌리며 진창으로 떨어진다.


세상이 멈춘 것처럼 느리다.

곧 시야가 아래로 향하며 자신의 발이 보였다.

그리고 시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점멸하며 완전히 검게 물들기 전.


제크의 눈에 보인 것.

그것은 자신을 넘어서 후방의 용병대를 무자비하게 썰어대는 절대검제 루시안.

그것을 지켜보며 신난 듯이 팔짝 뛰며 히히덕거리는 성녀 이자벨.

바닥을 적신 피를 재물삼아 자신의 마법을 완성하는 환영의 마법사이스테리안.

옆에 선 제크의 부관을 입으로 물어뜯으며 살점과 그 피를 취하는 권왕.


마지막으로 가만히 팔짱을 끼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용사 아벨이었다.


"살려줘-! 커억!"

"같은 편이 같은 편을 죽이는 게 말이 되냐- 커억!"

"도, 도망, 커억!"


비명성이 제크의 귀에 들려온다.


철푸덕.


진창속에 쳐박힌 제크의 육체가 비명을 지른다.

점멸하던 의식이 이제 완전한 어둠에 잠식된다.


죽음의 순간.

그 찰나의 순간에 제크의 머릿속은 단 하나의 단어로 가득찼다.


'복수. 복수하리라! 저 녀석들의 살점과 뼈를 씹으리라. 죽어도 죽지 않고, 구천에 영혼이 떠돌더라도 어떻게든 복수하리라!'


강한 의지와 함께 제크의 마지막 의식이 끊기려는 찰나.


-훌륭하군.-


어디선가 머릿속을 강타하는 고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시작해보게. 그러면 자네는 나보다 나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제크의 의식이 완전히 끊겼다.

죽음이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아득한 죽음 뒤.

아니 찰나 같은 죽음 뒤.

누군가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일어나세요, 도련님!"


번쩍 눈을 뜬 제크는 두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긴?"


멍한 얼굴을 한 제크를 바라보는 시녀가 다급히 소리쳤다.


"오늘 베델 상회의 상단주가 찾아왔다구요!"


순간, 제크는 고개를 갸웃댔다.


전장은 어디 가고 여긴 또 어디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베델 상회의 상단주? 그 개자식?"


잊을 수 없었다.

베델 상단주.

한때 한 지방을 호령했던 제크의 영지를 한순간에 몰락시켰던 장본인.

그건 그 첫 번째 원수의 이름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첫 번째 원수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려나.

제크가 복수의 힘을 길렀을 당시.

그는 이미 객사한 이후였다.


만약 죽었던 베델 상단주가 다시 무덤에서 일어나거나, 아니면 제크가 과거로 회귀하거나 하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제크는 눈앞의 시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분명 어디서 본 얼굴인데.'


순간 떠올랐다.

메이린.

그녀는 분명 제크가 몰락한 영지를 버리고 도주할 때까지 목숨을 걸고 지켰던 시녀와 꼭 같은 얼굴이었다.


"메이린?"

"네! 도련님의 전속시녀 메이린이에요! 이제 좀 술 좀 깨세요? 아무리 숙취가 심하다고 해도 어떻게 제 얼굴을 까먹을 수 있어요!"

"메이린.. 메이린이라. 네가 어떻게 지금 살아있지?"

"예!?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진짜! 어제 또 술을 얼마나 잡수신 건지, 참."


뭐라 잔소리를 해대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잠시 뒤.


짝!

짝!

짝!


제크는 몇 번이고 자신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의 양손이 온전한 것과 없는 것이나 마찬 가지인 자신의 왼발이 온전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에 흉터 하나 없는 게 꼭 40년 전의 내 모습 같군."


젊어진 얼굴.

아니, 젊다기보다는 어린 것에 가까운 외모.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여러번 관찰하던 제크는 곧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과거로 돌아온 것인가.'


그 생각과 함께 제크는 씨익 웃었다.


"베델 상단주 그 녀석이 왔단 말이지, 메이린?"

"네, 도련님."

"후후후후후. 크하하하하핫!"


제크는 광소를 터트렸다.

어떻게 과거로 돌아온지는 몰랐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복수. 그 빌어먹을 녀석에게 복수를 할 기회가 돌아왔군.'


용병왕이기보다 미친개 제크라 불렸던 그의 눈에 광기와 함께 비릿한 살기가 넘실거렸다.

이것은 기회였다.


"훌륭하군. 내 어서 간다고 기별하거라."

"네, 도련님!"


웬일로 순순히 밖으로 행차한다고 했기 때문일까.

방밖을 나서는 메이린의 걸음이 활기차다.


그것을 지켜보며 제크, 아니 데미안이란 본명을 되찾은 소영주는 씨익 웃었다.

복수.

그것은 언제나 그의 삶의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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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4화 +2 23.06.19 708 11 15쪽
30 30화 +3 23.04.28 1,958 48 15쪽
29 29화 +1 23.04.27 1,773 44 13쪽
28 28화 23.04.26 1,976 53 16쪽
27 27화 +2 23.04.25 2,068 49 15쪽
26 26화 23.04.24 2,355 49 16쪽
25 25화 23.04.23 2,479 59 15쪽
24 24화 23.04.23 2,535 56 15쪽
23 23화 +2 23.04.22 2,541 53 18쪽
22 22화 +3 23.04.22 2,621 53 15쪽
21 21화 +1 23.04.21 2,684 54 17쪽
20 20화 +3 23.04.20 2,736 52 18쪽
19 19화 23.04.19 2,653 57 11쪽
18 18화 23.04.18 2,677 57 13쪽
17 17화 23.04.17 2,757 54 15쪽
16 16화 +4 23.04.16 2,873 59 15쪽
15 15화 +1 23.04.15 2,900 61 15쪽
14 14화 +3 23.04.14 2,916 56 16쪽
13 13화 23.04.13 2,999 62 15쪽
12 12화 23.04.12 3,048 65 13쪽
11 11화 +2 23.04.11 3,093 66 14쪽
10 10화 +5 23.04.10 3,139 62 16쪽
9 9화 +4 23.04.09 3,088 64 14쪽
8 8화 +2 23.04.08 3,295 58 16쪽
7 7화 +2 23.04.07 3,393 7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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