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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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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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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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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시련 (4)

DUMMY

44화


해 뜰 무렵 출발해서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대습지 중앙에 위치한 목적지에 도착했다.

늪 위에서 열두 시간을 넘게 보낸 셈이다.


사슬의 끝을 뗏목에 연결한 다음, 말뚝이 달린 반대쪽 끝을 잡고 뭍으로 뛰어올랐다.

그나마 덜 질척거리는 땅에 내려선 하지운은 사슬을 잡아당겨 뗏목까지 마른땅 위로 끌어올렸다.


늪에 띄워 둔 상태로 사슬만 뭍에 고정해 뒀다가는, 오늘 밤이 다 가기 전에 박살이 날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뗏목을 다 끌어올리고 사슬을 손에서 놓자마자, 하지운은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늪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아무리 그라 해도 지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열두 시간을 노만 저었다.

쉬는 시간은 정오에 빵 한 덩어리 먹을 때가 다였다.

거기다 노만 저은 것도 아니고 쉬지 않고 살기까지 질질 흘려야만 했다.


아직도 수천 마리의 도마뱀들이 섬에서 나가는 수로 입구까지 쫓아와, 대가리만 물 밖에 내민 채 눈알을 부라리고 있다.


‘하아... 여기까지 쫓아올 줄은 몰랐다. 징하다! 징해!’


더 뒹굴다가는 흙바닥에서 그대로 잠들 것 같아, 진저리를 치면서 꾸역꾸역 일어섰다.

잠이 쏟아졌지만 일단 먼저 씻고 끼니부터 때워야 했다.

그런 다음에는 주변을 탐색하고 적당한 잠자리까지 확보해야 한다.


안 그러면 성질이 지랄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섬의 원주민들과, 아직도 늪에서 째리고 있는 도마뱀들 손에 사지 육신이 인수 분해될 것이 자명해서다.


징한 것은 쫓아온 도마뱀들만이 아니었다.

씻을 만한 개울가가 있는지 찾고 있던 하지운의 감각에 빠르게 접근하는 생명체가 감지됐다.


‘세 놈인가. 씻을 틈도 안 주냐... 야박한 새끼들. 눈만 마주치고 바로 즉사를 시켜 버려야지. 배고파 죽겠네.’


망치를 두 자루 꺼내서 양손에 꼬나들고 배려 없는 괴물 놈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 처음 뵙는 생소한 세 놈이 나타나서 하지운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뭐지, 이건? 괴물...인가? 왜... 귀엽지?’


면상이 좌우로 넓적한 햄스터같이 생긴 놈들이었다.

키는 이 미터도 채 안 되어 보였고, 다른 종류의 괴물들과 달리 근육도 많이 발달하지 않았다.

비교적 얄쌍한 편인 개머리 괴물보다 몸매는 후덕한 편이었지만, 근육량은 오히려 적어 보였다.

심지어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중심부를 보고 징그럽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놈들이었다.


‘승아야 혹시 내 민원이 받아들여진 거니?’

‘어?’

‘내가 그곳이 될 수 있으면 안 보이게 작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었잖아. 얘들부터 적용된 거야?’

‘아니... 그럴 리가... 미친 거 아니니? 생명체의 디자인을 바꿀 정도로 너와 나의 발언권이 강하지가 않아.’

‘그렇겠지. 미안. 착각했네. 그런데 쟤들 귀엽지 않아? 특히 거기가...’

‘닥쳐! 이 변태 새끼야! 산만하게 굴지 말고 괴물들에게 집중해! 방심 좀 하지 말라고!’

‘어, 미안...’


썸녀가 화를 버럭 내고 나가 버리는 바람에 강제로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이 귀엽게 생긴 놈들에게서, 다른 괴물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이질적인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레게 머리도 아니고 뭔 놈의 머리털이 저렇게 풍성하지. 머리만 그런 것도 아니고 온 몸이 털투성이네. 거기다 모발은 왜 이렇게 굵어. 어린애 팔뚝만 하네. 이놈들... 꼭 고슴도치 같단 말야...’


하지운은 뭔가 귀엽고 자애로운 인상을 주는 세 놈을 보면서 오히려 지독한 위화감을 느꼈다.

지난번에 일이삼사와 이곳에 왔을 때 느꼈던 흉포한 기운들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섬에 이놈들 말고 다른 종류의 괴물이 더 있나? 그게 아니면 이놈들이 그 성질 줮같은 흉물들이었다는 건데... 이 비주얼로? 너무 매치가 안 되는데.’


잠깐 생각을 하다가 다시 놈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하지운이 품고 있던 의문들이 단박에 풀려 버렸다.

세 놈 다 도대체 ‘귀여웠던 적이 있기는 했나’하는 생각이 들 만큼 징그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모두 다 입이 귀에 걸려 있는데, 무슨 범죄 드라마에 나오는 사이코패스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하지운의 오른손이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망치가 가장 왼편에 있던 놈의 두개골을 완전히 박살 내고는 그 오른편에 있던 놈에게로 빠르게 접근했다.

동시에 상태창에 반가운 메시지가 떴다.


「능력 ‘가시 투사’를 강탈하셨습니다. 흡수하셔서 사용하시겠습니까?」


‘가시 투사... 투사?!!’


메시지를 보자마자 양손의 망치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특히 머리와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했다.


‘머리와 심장의 연결이 끊어지면 안 돼! 그랬다가는 신체 재생도 발동이 안 돼!’


겨우 뇌와 심장을 지켜 냈다.


그 대가로 복부부터 허벅지까지 열 개가 훌쩍 넘는 수의 가시가 하지운의 몸에 박혔다.


단순히 털을 가시처럼 세워서 찌르는 줄로만 알고 방심해서 접근한 게 화근이었다.

가시를 미사일처럼 발사할 줄 알았으면, 코앞까지 다가가는 얼빠진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심의 대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눈앞이 하얗다.

순간 눈까지 먼 줄 알았다.

다시 시야가 돌아왔다.

다행히 눈은 멀쩡한 모양이다.

목구멍으로 핏덩어리가 솟구쳐 올랐다.

억지로 참을 시도도 못 해 보고 다 토해 냈다.

바닥에 쏟아 낸 토사물에 큼지막한 내장 조각들이 한 무더기였다.


심장이 계속 멈추려고 하는 것 같았다.

몸이 뒤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버텼다.

온 전신이 덜덜 떨렸다.

속은 계속 울렁거리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피와 내장 덩어리가 역류해 올라왔다.


히죽거리며 다가오는 쥐새끼 같은 두 놈이 눈에 들어왔다.

다 잡은 사냥감이라 생각했는지 여유가 넘쳤다.


괴물 놈들이 이 미터 앞까지 다가올 동안, 하지운은 휘청대며 핏덩어리를 게워 내느라 알아차리지도 못한 기색이었다.


놈들의 손가락에 난 털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올랐다.

킥킥거리며 하지운의 목에 마지막 일격을 꽂으려는 찰나, 놈들의 머리가 동시에 폭발해 버렸다.


숨이 넘어갈 듯한 상황에서 전신에 남은 모든 기력을 쥐어짜 날린 것이다.

그러고는 망치를 놓쳐 버린 하지운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박았다.


한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옆으로 기울어지려는 몸을 버티면서 몸에 박힌 가시를 하나씩 뽑으려 했다.

말이 가시지 길이 삼 미터에 지름이 오 센티미터에 달하는 끝이 뾰족한 기둥이었다.


가시를 뽑아내려고 잡자마자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가시를 자세히 보니 갈고리 같은 돌기가 촘촘히 돋아 있었다.

억지로 잡아 뽑으면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 나갈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지운으로서는 최대한 덜 아프게 뽑겠다고 느긋하게 살살 돌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괴물 소굴 한복판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언제 저 고슴도치 같은 놈들의 동족들이 들이닥칠지 알 수가 없었다.


“아아악. 어흐으윽.”


소리가 퍼질까 봐 최대한 억눌렀지만, 새어 나오는 비명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배 속의 내장이 생으로 뜯겨 나오는데 오히려 쇼크로 죽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였다.

기둥 같은 가시를 뽑은 자리에 새살이 차올랐다.


‘재생을 팔십팔 레벨까지 올려서 천만다행이야. 이 상황에서 재생한다고 체력까지 빨렸으면 무조건 죽었을 거야. 체력 소모량이 얼마지... 고작 0.3퍼센트... 다행이다. 흐흑, 나 죽진 않겠네... 아으흑, 나 괜찮아... 나 진짜 괜찮아! 그러니 그만 울어, 승아야! 나 안 죽어...’


아까부터 하지운의 머릿속에서 무슨 소린가 웅웅거리며 울리고 있었다.

이제 와 정신을 차리고 들어 보니 승아의 비명 소리였다.

육체도 없이 영혼밖에 없는 애가 꺽꺽거리며 통곡을 하는데, 누가 들으면 자신이 죽어 ‘상갓집이라도 온 줄 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흘릴 눈물도 없는 애가 왤케 울어. 그만. 나 진짜 괜찮다고.’

‘아, 알았어... 흐흑. 어서 치료부터 해! 피가 계속 흐르잖아... 아으흑, 엄마아... 아, 아니! 미안! 그만 울게! 그러니 흐흑. 나 신경 쓰지 말고 빨리 재생부터 해!’

‘씨발! 막는다고 막았는데... 더럽게 많이 박혔네... 하아, 배에 박힌 건 다 뽑았다. 씨발... 일곱 개나 되네... 근데... 이건 어쩌지... 일단 다리에 박힌 거부터 뽑아야겠다...’


양쪽 허벅지에 박힌 열 개의 가시를 몸부림을 치면서 뽑았다.

승아의 울음 섞인 절규에 가까운 응원을 들으면서 용케도 그걸 다 뽑았다.

몇 번을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기어코 버텨 냈다.

사랑하는 사람 아니 귀신이 울면서 해 주는 응원의 힘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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