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새글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7.01 00:14
연재수 :
223 회
조회수 :
23,140
추천수 :
530
글자수 :
951,721

작성
23.08.02 06:08
조회
142
추천
3
글자
11쪽

여우의 숲 (1)

DUMMY

52화


하지운은 호저머리 족장 놈을 죽이고, 하루를 더 머물다가 중앙 섬을 떠났다.


처음 계획대로 열흘을 꼭 채우려고, 하루만 더 하는 마음으로 괴물들과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었다.

남아 있는 것들이 그 이상의 시간을 견뎌 내지를 못해서, 결국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호저머리들을 성의 있게 관찰해 보면, 어떨 때는 쥐새끼보다 사자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놈들이 주력 무기로 사용하는 긴 털들이 면상과 목 주변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사자의 갈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주 가끔.


이 크고 굵은 갈기털 같은 것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털들은 다른 짐승들의 털과 길이나 굵기 그리고 형태까지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없다.

그래서 이 작은 털들은 세워서 가시로 변형시켜 봐야 오십 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니 면상 주변의 털을 다 쏘고 나면, 나머지 털들은 아무리 쏴 대도 맞는 사람 입장에서 큰 위협을 못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쏘는 놈이 누구고, 맞는 놈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족장 놈은 물론이고, 젊은 수컷들만 해도 어느 부위의 털이든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 수단으로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다.

갈기털 공격이 보병들의 투창 공격을 연상시킨다면, 나머지 털들을 이용한 공격은 쇠뇌 부대의 일제 사격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체감하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작은 털들이 더 빠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들을 상대하면서 하지운은 효과적인 치료와 훈련을 병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족장 놈이 죽고 남아 있는 호저머리들과 강제 훈련을 하려 하니, 끌려 나온 괴물들도 미치려 하고 하지운 자신도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갈기털까지는 겨우 봐줄 만한 위력이 나오는데, 잔털은 생살에 맞아도 거의 수지침 맞는 기분이었다.


사실 마을에 남아 있던 암컷들이나 늙은 수컷들 중에도 싸울 의지가 있는 놈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지난 구 일 동안 다 죽어 버려서 문제였다.


하지운이 잠도 재우지 않고 족장 놈을 일주일이 넘도록 괴롭힌 것은 아니다.

어두워지면 저녁 먹고 자라고 보내 줬고, 아침 먹은 거 다 소화되면 나오라고, 해가 중천에 뜰 때쯤에야 놈들의 마을 앞에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하지운으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를 한 것이다.


그런데 마을에 있던 놈들 중 최소한의 싸울 의지를 가지고, 최소한의 전투 능력을 가진 놈 전부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족장 놈을 따라 뛰쳐나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레가 넘도록 찾아와서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오라 가라 하며 굴려 먹자, 놈들의 인내심이 제로에 수렴해 버린 것이다.


대경실색한 족장 놈이 급하게 마을 놈들을 막아선 채, 열과 성을 다해 어르고 달래 보았다.

하지만 이미 자폭할 각오가 다 된 놈들을 말로 설득하는 건 아무리 족장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족장 놈의 다급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하지운을 향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지운의 반응이야 뻔했다.

사양 않고 다 때려 죽였다.


하지운은 그날 밤에 얻은 트라우마를 손톱만큼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승아와 노닥거릴 때는 괜찮은 척했지만,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다.


자신에게 살기를 풀풀 풍기면서 달려드는 놈들을 보자, 그날 밤의 다짐 혹은 맹세 따위가 떠오르는 게 아닌, 그냥 순수한 살심이 치밀어 올랐다.

이 섬에서 구십이 레벨을 달성하고 떠날 줄 알았는데, 단숨에 구십구 레벨을 찍어 버렸다.


폭풍 렙업의 시간 중에 젊은 암컷들과 늙은 수컷들 거기다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어중간한 새끼들까지 무려 삼백이십 마리가 그 자리에서 썰려 나갔다.

결국 이틀을 못 버티고, 족장 놈이 정신 줄을 놔 버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많이 힘들지? 그래도... 시간이 지나가면 차츰 괜찮아질 거야. 넌 이겨 낼 수 있어. 난 널 믿어, 지운아.’

‘고마워...’

‘고맙기는... 그리고 말야.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넌 그날 밤 정말 잘 해낸 거야. 네가 어떤 마음이든... 난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뭘 잘해... 뭐가 자랑스러워? 너무 오버할 필요 없어. 네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다 까먹을 것들이야. 너야말로 너무 신경 써 줄 필요 없어.’


하지운의 매몰찬 말에 승아도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며칠째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너무 힘들어 조심스럽게 위로의 말을 건넨 것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이 너무 차가웠다.


‘넌 네가 뭐라도 되는 거 같아? 아직도 뽕이 덜 빠졌어?’

‘뭐! 말조심해! 내가 너한테 목을 맨다고, 사람 우습게 보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내가 널 언제 우습게 봤어! 내가 지금 네가 우스워서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아?’

‘그럼 뭔데!’

‘미친놈아! 네 몸에 학교 운동장 철봉만 한 게 열여덟 개가 동시에 박혔었어! 그 정도면 사람 아니라 뭐라도! 무슨 괴물 할애비가 와도 죽어! 넌 그러고도 살아남았어... 흐윽...’

‘......’

‘아, 씨발... 생각하니까 또 울 것 같네... 너더러 아예 힘들어하지를 말라는 게 아냐. 그래도 네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걸 받아들이라고! 누가 되었든 그런 상황이면 너보다 더 잘했을 사람... 네 말대로 티끌만큼도 안 될 거야. 그날 그 어린 호저에게 한 말... 너 자신에게 한 말이었잖아.’

‘......’

‘그리고! 제발 말 같지도 않은 망상하면서, 널 더 힘들게 만들지도 마! 너 그럴 때마다 나도 힘들어 미치겠어! 이 말은 꼭 하지 않으면, 내가 돌아 버릴 거 같아서 하는 말이야.’

‘무슨 망상...’

‘아니... 생각하니까 진짜 빡치네! 이건 진짜 개빡쳐! 몇 번을 화내려다 참았는데, 도저히 못 넘어가겠어.’

‘왜? 갑자기 왜 그렇게 흥분하는데?’

‘이 등신아! 내가 너한테 실망해서, 널 버릴지도 모른다는... 이런 개... 같잖은 고민 같은 거 말야! 아니, 도대체 그런 개좆같은 망상은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진짜 이 씨발새끼야! 내가 그 정도로 쌍년으로 보여? 내가 고삼 때 그 정도로 씨발년이었어? 네 기억 속에 난 어떤 년이야? 진짜 면상이랑 몸뚱어리 빼면 아무 것도 없어? 씨발... 그딴 년을 뭐 한다고 너는 그 긴 시간 동안 처빨고 자빠졌냐? 이 등신 같은 새끼... 진짜 자존심 상해! 유일하게 날 기억해 주는 새끼가... 날 껍데기 빼면 볼 거 없는 쓰레기 취급하고 있어!’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뭐가 아냐? 사람이 피를 한 대야를 쏟았는데, 그 와중에 생긴 일 가지고... 어머, 얘 오줌 쌌네. 좆밥이네. 다른 깔쌈한 오빠 찾아야지... 내가 이런다고? 내가 귀신이지... 정신병자냐? 정말 내가 이럴 거 같아? 똑바로 대답해! 오늘 네 대답 듣고 우리 둘 다 그냥 소멸하는 수가 있어!’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내가 연애를 못해 봐서 그런 것 같아. 뭐든지 이상한 망상으로 연결돼서... 너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어이가 없네! 요즘 세상에 어떤 호구 년이 사내새끼한테 목숨까지 건다고... 나 같은 애가 흔해 보이지?’

‘그럴 리가!’

‘그런데! 왜 나 때문에 불안해해? 불안해해도 내가 불안해해야지! 전신 성형하고 나타나서, 예쁘장한 애한테 나리 소리 들으면서 용사 놀이 한 건 넌데! 그 꼴 본 건 난데! 왜 네가 허구한 날 내가 먼저 갈아탈까 걱정을 하냐고! 난 몸도 없이 네 머리통 속에 갇혀 있는데!’

‘너... 그거 맘에 두고 있었구나...’

‘어? 이 새끼 봐라! 좋아하고 있네! 두 번 죽고 싶냐?’

‘아니야, 승아야! 한 번으로 족해. 나 왠지 상쾌해졌어. 내가 우울해했었어?’

‘어! 이 용사 놈아.’

‘저기... 우리 진정하고. 욕은 좀...’

‘이 욕들 다 너한테서 배웠어! 같이 지낸 세월이 있는데, 내 입에 그것들이 안 들러붙었겠냐?’

‘다시 돌아가면 언어 클리닉 같은 거라도 다니든가 해야지... 우리 같이 다니면서 순수해지자.’

‘지랄하네.’

‘네가 하도 버럭버럭하니까,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네. 맞게 온 거 맞아?’

‘여기 일방통행이야. 늪에 인터체인지라도 있냐? 미니맵 켜고 있으면서 왜 자꾸 뻘소리야!’

‘그만하자는 거지... 알았어! 이상한 상상은 안 할게. 하긴 네가 머릿속에 있는데, 거기다 대고... 내가 잘못했어. 그냥 연애를 드라마로만 봐서... 막장이 많잖아. 갑작스런 충격! 반전! 뭐 그런 거...’

‘나도 욕한 건... 잘못했어. 그리고 항상... 너한테 힘이 돼 주고 싶어. 네 고민거리가 아니라... 쓸데없는 망상하지 말고, 같이 힘내서 극복하자. 그리고 미션도 얼른 다 끝내서 여기서 잽싸게 탈출하자고! 제발 나도 연애가 하고 싶다고!’

‘뭐, 뭘... 하고 싶어?’

‘아! 이 씨발...’


중앙 섬에서 나와 정북 방향으로 뗏목을 몰고 있었다.

그 방향으로 쭉 올라가면 여우머리 괴물들이 출몰하는 북부 숲이 나온다.

하지운의 다음 목적지다.


다소 한가로운 상황에서 연애 고자들끼리 사소한 사랑싸움을 하다가, 결국 한 명이 치명적인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초짜들이 연애 초반에 말이 길어지면, 어김없이 하는 게 이런 말실수다.

아니나 다를까, 좀 더 격해진 쪽에서 건수가 하나 튀어나왔다.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던, 가장 감추고 싶던 비밀을 제 입으로 발설해 버렸다.


‘이거였어! 네가 날 고른 이유가...’

‘우, 우리 지금이라도 소멸되자... 네가 저기 뛰어들면 다 해결돼! 제발! 포기하면 편해져! 우리 둘 다 그만 고생하고 편해지자!’

‘크흐흑. 아오, 배야. 아, 씨! 노를 놓쳤어! 저 아까운 걸! 웃다가 뗏목을 몰던 놈이 노를 놓쳤어! 큰일 났어!’

‘닥쳐! 수납장에 세 개나 더 있잖아! 흐흑. 제발 저기로 점프해...’

‘누구 좋으라고! 아, 미치겠네... 장이 꼬이는 거 같아. 웃다가 죽겠네. 네가 그래 놓고 날 조롱했다 이거지! 널 어떻게 놀리지?’

‘......’


작가의말


 이번 편에 너무 많은 걸 때려넣으려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한숨도 못 잤는데...

 이렇게 써도 되나 싶어서 불안하네요.

 잠깐 눈 붙이고 다시 오늘 거 써야 하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5 인연 (2) +2 23.09.05 94 3 9쪽
74 인연 (1) 23.09.03 95 3 10쪽
73 캠프파이어 (7) 23.09.02 98 5 10쪽
72 캠프파이어 (6) 23.08.31 91 3 10쪽
71 캠프파이어 (5) 23.08.30 88 3 9쪽
70 캠프파이어 (4) 23.08.30 88 2 10쪽
69 캠프파이어 (3) +4 23.08.29 98 3 9쪽
68 캠프파이어 (2) 23.08.29 94 3 9쪽
67 캠프파이어 (1) 23.08.26 107 3 9쪽
66 여우의 숲 (14) 23.08.24 99 3 10쪽
65 여우의 숲 (13) 23.08.23 99 3 10쪽
64 여우의 숲 (12) 23.08.21 109 3 10쪽
63 여우의 숲 (11) 23.08.20 126 3 10쪽
62 여우의 숲 (10) +1 23.08.18 116 3 9쪽
61 여우의 숲 (9) 23.08.14 112 3 9쪽
60 여우의 숲 (8) 23.08.12 119 3 9쪽
59 여우의 숲 (7) 23.08.11 118 3 9쪽
58 여우의 숲 (6) +2 23.08.09 123 4 9쪽
57 여우의 숲 (5) +2 23.08.07 124 2 9쪽
56 여우의 숲 (4) +4 23.08.06 128 3 9쪽
55 여우의 숲 (3) 23.08.05 134 3 9쪽
54 여우의 숲 (2) +4 23.08.03 140 3 10쪽
» 여우의 숲 (1) 23.08.02 143 3 11쪽
52 시련 (11) 23.08.01 144 3 10쪽
51 시련 (10) 23.07.30 148 2 9쪽
50 시련 (9) 23.07.28 143 3 9쪽
49 시련 (8) 23.07.27 147 3 10쪽
48 시련 (7) 23.07.26 146 2 11쪽
47 시련 (6) 23.07.24 147 2 10쪽
46 시련 (5) 23.07.22 145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