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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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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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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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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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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시련 (5)

DUMMY

45화


몸에 박힌 가시 열여덟 개 중 열일곱 개를 뽑았다.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 나오는 지옥 같은 경험을 하긴 했지만, ‘신체 재생’ 능력 덕에 뚫린 부위들이 벌써 감쪽같이 아물어 있었다.

문제는 하나 남은 가시가 영 좋지 않은 곳에 박혔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박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시가 골반 좌측을 비스듬하게 뚫고 들어와 생식기와 고환을 반쯤 박살 낸 채 오른쪽 허벅지에 끝이 살짝 걸려 있었다.


몸 안에 들어온 가시의 길이는 끽해야 사오십 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어 보였다.

다른 가시들처럼 일 미터가 넘게 박혀 들어와, 뽑으면서 개고생을 하게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가시의 돌기에 완벽하게 얽혀 버린 중요 부위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손가락을 덜덜 떨면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듯이 돌기에 얽힌 살점을 떼어 냈다.

너무 아파서 눈물,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앓는 소리를 내면서 집중해서 중요 부위를 살려 내던 하지운의 귀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정확하게는 그의 머릿속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와 똑같이 앓는 소리를 내면서 울먹이던 승아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음 섞인 비명을 쏟아 낸 것이다.


‘아아! 엄마... 어떡해!! 아흐윽. 지운아! 오백 미터 내에 삼십 마리! 서둘러!!’


곧이어 하지운의 감각에도 조심스럽게 접근해 오는 흉물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괴물들이 접근하는 것도 놓치고 있었다.


하지운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침을 질질 흘리며 입술을 덜덜 떨던 그가 곧 결심을 한 듯 이를 꽉 깨물었다.

눈을 질끈 감고 가시를 꽉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잡아 뽑았다.


“어어어... 끄아아아아아아악!!”


처음에는 아픈 줄도 몰랐다.

숨이 턱 막히고 잠시 동안 무호흡 상태로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상상도 해 보지 못한 끔찍한 고통이 온 전신에 쓰나미처럼 번져 나갔다.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바닥을 뒹구는 동안 그새 새살이 돋아났다.


뜯겨 나간 부위는 말끔하게 재생되었지만, 그렇다고 몸의 절반이 난자당한 고통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뇌가 이미 인지해 버렸고,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신체가 훼손되는 큰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이 환통에 시달린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상식이다.

환상통이라고도 부르는 그 통증은 이미 훼손된 부위에서 고통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답도 없는 증상이다.

사고 후 한참이 지나고도 그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하물며 하지운은 방금 겪은 일이다.


‘신체 재생’이 환상적인 능력인 것은 맞지만, 뇌에 각인된 고통마저 다 지워 주는 기적의 치료법은 결코 아니었다.


잠시 흙바닥을 뒹굴던 하지운이 눈, 코, 입에서 물을 질질 흘리면서 꾸역꾸역 일어섰다.

그의 육체가 그새 고통에 적응을 했냐면,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비명 소리 때문에 속도를 높인 괴물들이 백 미터 안까지 접근을 한 마당에 더 이상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뗏목! 뗏목으로 가야 해. 뭍에서 저것들에게 포위당하면 난 죽어.’


휘청휘청하면서도 어떻게든 뗏목까지 뛰어갔다.

중간중간 구토도 하면서 천 리 길을 기어가는 심정으로 달렸다.

뗏목에 달아 놓은 사슬을 잡고 늪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하지운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섬 바로 앞 늪 속에서 광란의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운을 쫓아온 삼천여 마리의 도마뱀머리 괴물들이 신이 나서 발광을 하고 있었다.

호저머리 괴물 즉 히스트릭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감히 놈들의 영역인 중앙 섬 위에 발을 들이지는 못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갈면서 구경만 할 수밖에 없는 도마뱀들이었다.


그런데 호저 놈들에게 호되게 당한 원수 놈이 자신들의 영역인 늪으로 말 그대로 빤스런을 하고 있다.

어깨춤이 절로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래 같으면 원수 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감히 달려들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놈이 어떻게 자신들처럼 다친 육체를 회복시킬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 느끼는 피로와 고통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 자신이 타고나는 능력인데, 모를 리가 있겠는가.


확실히 느껴졌다.

원수 놈이 느끼고 있는 고통과 두려움이.

모든 괴물들 중 가장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그들 앞에서, 이토록 격한 감정을 감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락 페스티벌이 따로 없었다.

술 한 잔 걸치고 광란의 헤드뱅잉을 하는 여자애들을 보는 것 같았다.

소름 끼치는 쇳소리를 내면서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는 도마뱀들을 보면서, 하지운은 흡사 수천의 물귀신들이 자신을 홀리는 환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낮에 뗏목을 몰면서 지켜본 그것들은 자비를 베풀어야 할 가련한 존재들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두렵고 소름 끼치는 악귀들로 보였다.


공포에 질려 버린 하지운의 육체에 훈훈한 온기가 퍼졌다.

갑자기 온천에 하반신을 담근 듯한 기분 좋은 따스함이 퍼져 왔다.


전신이 덜덜 떨리는 와중에 느껴진 따뜻함에 위화감을 느낀 하지운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자신의 하반신을 내려다봤다.


방금 전 가시를 뽑던 와중에 찢겨 나간 하의 사이로 노르스름한 액체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늪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흡사 내한한 락스타라도 된 기분이었다.


마음이 완전히 꺾여 버린 하지운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흙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눈물이 터진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판타지 세상에 와서 엄청나게 강한 몸을 얻고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승아가 끊임없이 “정신 차려라. 방심하지 마라.”라고 잔소리를 해도 대충 듣고 흘렸다.

어차피 존나 강한 자신이 다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자신이 생각보다 별거 없다는 사실과, 이쪽 세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그냥 다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던 하지운의 머릿속에 승아의 절규가 폭발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그냥 편해져 버리려던 그를 필사적으로 붙잡는 그녀였다.


‘지운아! 안 돼! 포기하지 마! 무서운 거 알아! 나도 무서워 죽겠어! 그래도 제발 일어서!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면 안 돼!’

‘미안해... 승아야... 나 못 하겠어... 미안해...’

‘이... 병신 새끼야!! 잘 들어! 네가 소멸되면 나도 자동 소멸이야! 그건 꼭 알고 뒈져! 아빠가... 날 한 번 포기하고! 이번에는... 너마저! 너마저 날 포기하는 거야! 이이! 겁쟁이 새끼야!!’


엎드려서 떨고 있던 하지운의 몸이 흡사 벼락이라도 맞은 듯 부들부들 떨렸다.

눈물에 흙먼지까지 떡칠이 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가 멍한 눈을 껌뻑이며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한 거야... 뭐가... 소멸돼? 네가 왜? 내가 뭘 들은 거야?’

‘흐윽... 이 병신아... 내가 뭐라고 소멸 중이던 널 구해 내는데? 나... 사라져 가던 네 영혼을 붙들고 그분께 신성한 맹세를 했어! 네가 실패하면 같이 소멸되겠다고!’

‘뭐... 아아... 뭐 하는 짓이야... 나 같은 거 죽게 두지... 뭐 하는 짓이냐고! 이이... 미친년아!!’

‘그래, 나 미친년이다! 밤새도록 미친년이든 뭐든 다 지껄여도 참고 들어줄 테니까! 제발 일어서서 무기 잡아! 코앞까지 왔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지 마... 제발... 나 소멸되고 싶지 않아... 너무... 무서워! 무섭다고!!’

‘... 저 새끼들 다 죽이고... 두고 보자. 임승아.’


하지운의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던 공포심을 그녀에 대한 분노와 미안함, 부끄러움 그리고 고마움의 감정들이 밀어내 버렸다.


이미 그를 포위한 고슴도치를 닮은 괴물들이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가시를 바짝 세우고 있었다.

뭣도 모르고 그들의 영역에 기어들어 온 침략자 놈이 겁에 질려서 오줌을 질질 싸면서 바닥을 기는 것을 다 보았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쥐새끼 같은 것들이 단체로 아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가시를 세우고 있지 않았다면 배를 잡고 바닥을 굴렀을 것이다.


놈들의 비웃음에 울화가 치민 하지운이 발끈해서 한 걸음 나서려다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다시 굳어 버렸다.

놈들이 바짝 세우고 있는 가시들의 날카로운 끝부분을 보자, 속이 울렁거리고 가위에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온 몸이 무거워져 왔다.


김밥 굵기만 한 꼬챙이에 몸의 절반이 뚫려 봤는데, 첨단공포증이 안 생기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했다.


다시 눈과 생식기에서 물이 맺히는 것을 느낀 순간, 수치심을 참을 수 없었던 하지운이 손에 들고 있던 망치를 정면의 괴물에게 집어 던졌다.


망치가 엄청난 속도로 하지운의 발 앞에 자루까지 꽂혔다.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가 패대기를 쳐 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괴물들의 눈에서 대량의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자신들만의 역량으로 참아 내기에는 너무도 지독한 빅 재미였다.

큰 웃음으론 부족해 눈물까지 터져 나온 것이다.


하지운의 등 뒤에서 숨을 헐떡이던 괴물들 중 두 놈의 면상에 자신들의 가시보다 더 굵은 기둥이 박혔다 빠져나갔다.


어느새 그의 양손에는 굵고 긴 쇠창이 한 자루씩 들려 있었다.


“미, 미안하지만... 흐흑... 내가 너무 수치스러워서 그러는데... 어흑... 오늘 여기서 있었던 일을... 흑... 본 것들은 남김없이 다 죽일 거야... 내 치부를 보는 건... 승아 하나로 족해... 너, 너무 쪽팔려서... 으흐윽... 니들 싹 다 죽이고... 어, 없던 일로 만들 거야... 아무...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미안해, 승아야... 눈 감고 있어 줘...’

‘지랄하네!! 눈 똑바로 뜨고 다 보고 있을 거야! 너한테 이런 끔찍한 꼴을 겪게 한 장본인이 나야! 절대 눈 안 돌려! 내가 이런 꼴 볼 걸 예상 못한 줄 알아? 처음부터 각오하고 시작했어! 글구 저 새끼들이 내 친구야? 내 친구라도 너한테 그딴 식으로 굴면!!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저런 괴물 새끼들 따위야 죽든 말든! 개폼 잡지 말고 잽싸게 다 죽여! 더 이상은... 다치지 마! 진짜 다치기만 해!!’


작가의말


 너무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어제 쓰기는 다 썼는데...

 이걸 이대로 올려도 되나 싶어서 몇 번을 다시 읽고 고치고를 반복하다 보니 하루가 더 걸렸습니다.

 제가 제 글 쓰는 것도 버거워서 다른 분들 글을 못 보고 있는데...

 요즘 추세가... 요즘도 주인공을 어느 정도로 굴리기는 하겠죠?

 원래 설정해 놓은 게 있어 필연적인 과정이었지만...

 잘한 짓인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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