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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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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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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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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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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숲 (5)

DUMMY

56화


동족들과 하지운의 전투를 세밀히 관찰하던, 남은 열 마리의 여우머리가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운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면서, 슬금슬금 거리를 벌려 갔다.

눈깔들을 보니 전혀 겁먹은 눈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뒷걸음질 치면서 도망칠 기색을 보이고 있다.


지금은 여우머리의 습성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곳 북부에서 몇백 년을 지지고 볶았으니, 이놈들을 본 적도 없는 타지인들조차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숲에서 유일하게 게릴라전을 벌이는 종자들이 바로 이놈들이다.

다른 종자들처럼 떼로 몰려나와 죽기 살기로 덤비는 놈들이 아니다.

몇 놈이 나서서 상대의 수준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대응하는 교활하기 그지없는 놈들이다.


신장이 이 미터 이삼십 정도 되는 것들이 몸을 웅크리고, 기운을 숨긴 채 엄폐물 뒤에 죽치고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다 전사들이 무심코 지나치면 쏜살같이 튀어나와 목을 물어뜯는다.

열받은 전사들이 우르르 쫓아오면, 겁먹은 척 도망쳐서 적을 끌어들이다가, 매복지에서 포위 공격하는 것이 이놈들 주특기다.


괜히 북부의 영주들이 “서부 놈들은 제 놈들 닮아, 힘센 거 빼면 내세울 것도 없는, 돌대가리들만 상대한다.”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다.

신체 능력은 몰라도 머리 쓰는 데 있어서는 그 어떤 종류의 괴물도 이놈들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런 놈들이 하지운의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 유인하고 있다.

각자 아름드리나무를 옆에 끼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히죽거리고 있다.

어디서 배웠는지 손가락이 죄다 세 번째 손가락이다.


보고 기분 나쁘면, 쫓아와 보라는 메시지가 분명해 보였다.

그 와중에도 머리에서 가시를 날리는 괴상한 공격에 당할까 봐, 굵은 나무 기둥 뒤로 피할 준비까지 하고 있다.


‘이 새끼들 밤에 상대하니까 섬뜩하네. 괴물이라기보다는 귀신에 가까운 거 아닌가.’

‘얻다 대고 귀신을 갖다 붙여. 너 귀신 안 겪어 봤어? 저런 변종 개새끼랑 내가 동급으로 보여? 나 너랑 데이트 하고 싶은데, 매일 밤 네 꿈속에서 우리 만날래?’

‘단어 사용에 유의하겠습니다, 승아 님. 귀신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제발, 먼저 주무세요. 말씀만 들어도 개무서워요.’


하루 내내 모쏠녀라고 집요하게 놀린 것이 원인인 듯했다.

부쩍 사나워진 승아의 말투에 적잖이 당황하는 하지운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 지은 죄가 있어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열심히 장난질을 치면서 숲속으로 끌어들이는 여우들을 보면서, 보다 못한 하지운이 한마디 했다.


“오늘은 안 따라가, 시고르자브종들아. 나 졸려. 잘 거야. 그만 염병하고, 그냥 가.”


그 말에 알아듣기나 한 건지, 실망한 표정의 여우들이 손가락만 격렬히 흔들다 멀어져 갔다.


‘영물이네, 영물. 뭔 말 하는지 다 알아듣나?’


하지운은 봤다.

돌아서는 놈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것을.

잠들면 몰래 와서 간이라도 빼먹을 요량인지, 실망한 척하는 섬세한 표정 연기들이 일품이었다.


‘저러니까 북부 놈들이 괴상한 우월감에 젖어 있지. 상대하면서 고생이 많았겠네.’


지금 하지운에게는 굳이 놈들을 뒤쫓는 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다.

중앙 섬에서 험한 꼴을 당하고, 계획을 바꿔 이 숲으로 향했다.


상태창을 열어 다른 어떤 일보다, 심지어 멀쩡한 옷을 사는 일보다, 먼저 해결하고 싶었던 목표를 마주했다.


「능력 ‘감각 증폭’을 강탈하셨습니다. 흡수하셔서 사용하시겠습니까?」


지금 하지운 자신은 이 몸의 원주인인 로저에 비해, 전사로서의 모든 역량이 부족하다.

로저의 몸을 차지하고 그의 기억을 흡수했다고 해서, 완벽히 로저가 된 것은 아니다.

결국 이 몸을 움직이는 주체는 하지운의 영혼이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을 괴물들과 부대끼며 경험을 쌓아온 로저다.

타고난 재능에 그 경험들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로저의 격투 센스는 단순히 기억을 빨아먹었다고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방금 여우들과 붙어보고 바로 깨달았다.

로저였으면 상처 하나 없이, 단숨에 스무 마리 전부를 잘게 썰었을 것이다.


로저가 험프리에게 왕관을 안겨 줬을 때, 왕궁 내에서 직접 죽인 전사의 수가 백이 넘었다.

그중에 삼 할 정도는 여우 피 먹은 놈들이었다.

그것도 크랜 뭐시기의 피어스 같은 어설프게 처먹은 놈들이 아니었다.

정예 중의 정예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놈들을 웃으면서 여유 있게 때려 죽였다.

그게 왕국 최강을 다투던 로저 드레이시의 진면목이었다.


지금 자신은 ‘가시 투사’ 같은 조잡한 기습 공격 기술을 빼면, 죽기 전의 로저 앞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

로저 만큼만 하기까지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빠른 시간 내에 로저의 수준을 따라잡을, 아니 놈을 뛰어넘을, 방법은 하지운의 생각으로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마법! 로저 놈을 골로 보낸 바로 그 마법! 이것밖에 없어. 거버스부터 시작해서 이곳의 마법사들 전부가 여우 피를 처먹은 것들이야. 그러면 내가 선택할 방법도 정해진 거지. 나도 여우 피를 먹거나, 여우를 죽여서 능력을 강탈하거나.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지.’


상태창에 뜬 메시지를 보며, 하지운은 기대와 설렘을 가득 안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물론! 당장 흡수하겠어.’

‘......’

‘저기... 흡수한다니까.’

‘......’

‘듣고 있니?’

‘이, 이게 뭐야...’

‘왜? 무슨 일 있어?’

‘지, 지운아...’


승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뭔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운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거였나...’

‘응?’

‘승아야, 뭘 봤든 그대로 얘기해 줘. 그리고 절대로... 미안해라는 말은 섞지 마. 진짜 듣기 싫으니까... 네가 여기 와서 나한테 사과할 만한 일은... 모쏠이라고 놀린 것밖에 없었어.’

‘지운아...’

‘뭐 해? 어서 해.’

‘하, 하지운 님,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운 님께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마법에 관한 어떤... 능력도 강탈하실 수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앞으로도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즐거운 여행 되... 지운아! 미...’

‘그만!’

‘......’

‘도대체 네가 뭘 잘못했다고 뻑하면 미안해해! 하지 말랬지! 하지 마!’

‘......’

‘어차피 뭔가 불이익이 있긴 있을 줄 알았어. 당연한 거잖아. 그래도 이건 아니길 바랐는데... 역시 젤 갖고 싶은 걸 건드네.’

‘왜... 왜 이런...’

‘뭐가 왜야? 여기에 나 말고 보호자 동반한 참가자가 있어? 나처럼 좋아하던 애랑 같이 와서, 위로받으면서 호강하는 놈이 또 있냐고? 하다못해 전 여친이나 전처 아니면 계모라도 달고 온 놈이 하나라도 있어?’

‘내가 알기로는... 없어...’

‘뭐, 다음에 올 놈 중에... 그런 놈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놈한테도 이런 제재가 있겠지. 저승에서 형평성을 아예 무시하지는 않을 거 아냐. 안 그래?’

‘그래...’

‘하나 남은 방법을 써 봐야지... 뭐 별수 있나.’

‘네가 쓰고 있는 로저의 몸... 이미 곰머리의 피를 흡수해서 진화한 상태야. 그 상태로 한 마리분의 여우 피까지 흡수하면... 생존을 장담할 수가 없어. 그러고도 마법을 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는 마당에, 리스크가 너무 커.’

‘승아야... 이 상황에서 마법까지 쓸 수 없으면, 여기서 버티는 것 자체가 리스크야. 그냥 네 손잡고 평화롭게 같이 소멸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사실... 너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잖아. 안 그래? 로저가 죽은 과정을 생각해 봐. 마법 공격은 막거나, 쳐 낼 수 있는 게 아냐. 피하는 수밖에 없어. 그 로저 놈도 겨우 피했어. 지금 로저의 반도 흉내 못 내는 내가 그게 가능할까? 앞으로 온갖 종류의 마법을 익힌 것들이 넘어올 텐데.’

‘......’

‘리스트에 있던 초능력 같은 것들 다 기억하고 있어. 그게... 한참을 보고 있었잖아.’

‘하긴... 징하게 오래 보고 있긴 했지...’

‘뭐, 어쨌든. 그 능력들 중에 마법을 방어할 만한 능력은 없었어. 피하는데 도움이 될 능력은 몇 개 있었어도. 이동 속도 높여 주는 능력을 운 좋게 얻는다 쳐도... 언제까지 도망 다닐 건데.’

‘......’

‘거버스만 봐도 알겠지만, 마법 쓰는 놈들 전부 호위대를 잔뜩 달고 다닐 거야. 제 놈들도 스스로의 약점이 뭔지 모를 리가 없잖아. 바보도 아니고. 빠르게 접근해서 칼이든 가시든 냅다 집어던진다 해도, 졸개들이 몸으로 다 때울걸. 혼자 처기어 나와서 세상 편하게 뒈져 줄 마법 천사가 어디 있겠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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