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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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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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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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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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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시련 (10)

DUMMY

50화


7월 4일.

하지운이 중앙 섬에 들어온 지 열흘째가 되는 날이다.


둥근 해가 수평선으로 다가가고 노을에 하늘이 점점 붉어져 올 무렵, 드디어 애증의 능력 ‘가시 투사’가 구십 레벨이 되었다.


‘강탈’ 능력의 레벨이 올라간 덕에, ‘가시’ 능력을 처음부터 이십 레벨이 오른 상태로 흡수했다.

그러니 열흘 동안 칠십 레벨을 올린 셈이다.


호저머리 괴물 한 마리를 죽이면 0.02퍼센트의 경험치를 준다.

결과적으로 그 열흘 동안 삼천오백 마리가 넘는 호저머리를 죽였다는 말이 된다.


얼마 안 있으면 구십이 레벨을 찍고 이 섬을 떠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눈앞에 보이는 마지막 마을에, 백 마리가 넘어 보이는 호저머리가 한창 결사 항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놈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큰 족장 놈이 무리의 앞에서 피 끓는 연설을 토해 내며,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있었다.


놈을 보고 있자니 헨리 튜더와 함께 잉글랜드 사극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몬머스의 헨리가 떠올랐다.

아쟁쿠르 전투 직전에 보였던, 그 열정적이던 연설 장면.

그 장면이 계속 겹쳐 보여 정신을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방심하다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하지운은 금세 헛웃음을 지우고 마음을 다잡았다.


세 놈째 만나는 호저머리 족장인데, 전에 만난 두 놈처럼 털빛이 은색에 가까운 밝은 빛을 띠고 있었다.

다른 놈들이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이나 짙은 갈색의 빛깔을 띠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혼자 뽀대가 나긴 했다.


귀티가 나는 은빛 족장님을 상대로 시험해 볼 것이 있어서, 일부러 이곳을 마지막 공격 지점으로 삼았다.

그래서 섬 가장자리에 있는 마을까지 다 작살내고 다시 섬 내부로 되돌아온 것이다.


잠시 후 연설을 다 끝낸 족장님이 정확하게 일백삼십칠 마리의 친위대를 이끌고 하지운을 향해 돌진해 왔다.


‘저러다 또 지들 유효 사거리에 도착했다 싶으면, 다짜고짜 멈춰서 무작정 쏴 제끼겠지.’


너무도 익숙해진 패턴에 지쳐 버린 하지운이 잔뜩 성이 나기라도 한 듯, 머리털을 바짝 세웠다.


안 그래도 큼직한 침략자가 머리를 빗자루처럼 만들자, 용맹한 전사들조차 동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듯 괴성을 지르며 돌진하던 호저머리 친위대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크게 노한 족장 놈이 전사들 앞에서 또다시 분노의 일장 연설을 날렸다.

빛나는 족장 놈의 화려한 언변에 다시 정신 무장을 완벽히 한 전사들이 당당히 고개를 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침략자를 주시하니 어느새 머리 위에 있던 황금색 빗자루가 사라져 있었다.


당황한 전사들이 다급히 빗자루를 찾으니 침략자 놈의 우측 바닥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길이가 삼 미터에 달하는 금색 창 수십 자루가 붉은 노을빛을 받아, 화려한 조명이라도 받은 듯 빛나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창들에 비해 침략자 놈의 머리통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다발성 원형 탈모라도 온 듯, 머리 곳곳이 텅텅 비어 있는 것이었다.

차라리 완전한 빡빡이라도 되었으면 흉포한 인상이 배가 되었을 터인데, 잡초라도 뽑은 듯한 머리통의 양상은 목격자들의 굳건한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하지운 본인의 마음은 맑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정갈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가 이곳에 와서 로저 놈의 육체를 차지하고, 가장 불만이었던 것 중 하나가 헤어스타일이었다.


이곳도 지구의 중세 유럽을 참고한 것이 아니랄까 봐, 귀족 놈들의 헤어스타일이 하나같이 그지 같았다.

어중간한 길이의 바가지 머리, 극단적으로 너저분한 장발 그리고 단발에 지나치게 짧은 앞머리 등등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사실 자신이 악마와 계약이 어쩌고 지껄인 이유 중 하나가, 머리 스타일과 패션 스타일을 자신의 마음대로 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뭔가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도 굳이 귀찮게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고, “저 새끼 악마 들려서 저러는 거다!”라고 자연스럽게 납득해 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은 금발의 바가지 머리에 크롭티, 레깅스 그리고 가죽 부츠를 걸친 꼬라지를 하고 있다.

이 섬에 온 첫날 호저머리 놈들의 가시 공격에 상태가 위태위태하던 자신의 옷들이 모두 운명해 버렸다.

그래서 강간왕 리처드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두렵고 서러워서 거울도 못 보고 있다.


승아에게는 눈 감고 있으라고 했다.

입 틀어막고 웃는 듯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열흘 내내 멈추지 않는 것을 보니, 괘씸하게도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보고 있는 것 같다.


‘가시’ 능력을 얻고 가장 기뻤던 것이 잔털이 아닌 제대로 된 털, 말하자면 머리털과 사타구니에 난 털은 길이 조절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항상 되는 것은 아니고, 한 번 발사하고 다시 재생될 때 가능하다.


동네 미용실과 왁싱샵에서 들으면 기겁할 얘기지만, 하지운은 앞으로 평생 헤어에 돈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늘 자신의 머리에 있는 모든 털을 눈앞에 있는 전사들에게 무료 나눔 할 것이다.

그리고 일단 헤어스타일부터 단정한 시스루 댄디컷으로 바꿀 계획이다.


옷은 당장 어쩔 수 없다.

망토로 싸매고 다니다, 제일 처음 만나는 재단사를 유괴할 계획이다.


정수리가 텅 빌 정도로 머리털을 뽑아 댔더니, 대략 백오십 자루의 창이 그의 좌우에 빼곡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가시를 세운 후 형태를 지속하는 시간이 십 분이 되었다.

가시를 뽑아 놓고 한참 옆에 세워 두어도 상관없다.

구십 레벨을 찍은 후 누리게 된 호사다.

초반에는 지속 시간이 초 단위여서, 뽑아서 던지기 바빴다.


개쪽을 당했던 이 섬에서의 첫날에 늪에 있던 도마뱀 암컷들을 유인하려고, 혼자 기절쇼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쇼를 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날 하지운은 호저머리들이 쏴 갈긴 가시를 밟고 있다가 소름 끼치는 경험을 했었다.

갑자기 몸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더니, 발밑으로 물컹과 푹신 사이의 뭔가 어중간한 느낌을 전달받기 시작했다.


마른침을 삼키며 바닥을 내려다보니, 흐물거리는 수천 가닥의 굵은 털 뭉치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비위가 약한 하지운이 그 모습을 보고, 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에, 힘없이 졸도하는 발 연기를 펼쳤던 것이다.


털에 생체 에너지를 주입해서 단단한 흉기로 변형시킨 것이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입된 에너지가 전부 소진되면, 자연스럽게 원래의 형태로 돌아간다고... 내 입장에선 장점이 훨씬 많네. 누군가를 가시로 죽여 버렸다 치고. 흔적을 없앤다고, 귀찮게 흉기를 일일이 회수할 필요가 없잖아. 머리털이야 남아 봤자, 이 동네에선 흔해 빠진 게 금발 머리인데. 유전자 검사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호저머리 전사들과의 거리를 재던 하지운이 잡생각을 하면서 여유 있게 뽑아 둔 털을 성의 없게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옜다, 먹어라.’ 하고 던져 준 가시에 용맹한 전사들이 갈대처럼 누워 버렸다.

진형을 갖춰서 밀집해 모여 있다 보니 대충 던져도 한 놈은 맞았다.


놈들도 가시를 세워서 투척 공격에 대비했지만, 어떻게 된 것이 던지는 족족 안면에 날아와 꽂혔다.

놈들의 유일한 약점이 털이 가시로 변형되지 않는 면상이었다.

순식간에 수십 마리가 머리에 가시를 꽂고 널브러져 버렸다.


전열의 양 날개가 완전히 무너졌음에도 용맹한 호저머리 전사들은 꿋꿋하게 걸었다.

아직 유효 사거리에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거리에서 쏴 봤자 침략자 놈의 질기디질긴 거죽을 뚫지도 못한다.


‘이야, 십팔 세기 전열 보병을 보는 것 같네. 사방에서 접근해서 포위 공격하다 지들끼리 처맞추는 게 더 많으니까, 전술을 바꿔 본 거 같은데... 아주 생각들을 안 하는 건 아니네. 근데 내가 면상만 딱딱 맞힐 거라는 건 생각을 못했나 봐.’


금빛 찬란한 창이 쉰 자루도 안 남은 시점에 한 줌 정도 남은 호저머리들이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

사슬을 꺼내서 시원하게 돌려줬다.

안타까운 신음을 흘리면서도, 놈들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털 한 가닥까지 쏘아 댔다.

족장 놈을 제외한 마지막 한 놈이 쓰러질 때까지 장렬한 전투는 계속되었다.


너무도 미련하고 무모해 보이는 전술이었지만, 놈들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들의 전술은 바로 이 순간만을 위해서 고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보호를 받던 족장 놈이 팔다리를 풀면서 쌩쌩한 기색으로 하지운에게 다가왔다.


작가의말


 어제라도 뒤늦게 올렸어야 했는데, 오늘에서야 올려서 죄송합니다.

 알고보니 어제 선약이 있었더군요.

 요즘 밥먹고 화장실 가고 글만 쓰니 시간관념이 전혀 없습니다.

 한참 띄어쓰기 고치고 있는데 전화가 오더군요.

 나갔다 오니 밤늦게 올리다가 실수로 엄한 거라도 올릴까 봐 그냥 잤습니다.

 이제 일어나 마무리하고 올립니다.

 그래도 공모전 끝나고 처음으로 한 주에 다섯 편을 올리는 거 같네요.

 제 시간에 올렸으면 더 기뻤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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