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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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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7.01 00:14
연재수 :
223 회
조회수 :
23,151
추천수 :
530
글자수 :
951,721

작성
23.08.03 17:56
조회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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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여우의 숲 (2)

DUMMY

53화


중앙 섬에서 십구 일을 보내고 이십 일째가 되는 날 이른 아침, 하지운은 식사를 마치고 뗏목을 늪에 띄웠다.


노를 저으며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니 한없이 신비롭고 아름답기만 했다.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아침의 풍경은 감정이 극도로 메마른 하지운조차도 상념에 젖게 만들었다.


무려 서울시만 한 대도시가 한 개 반은 족히 들어갈 정도의 거대한 섬이었다.

미니맵상의 검은 장막을 어느 정도 걷어 내고 나니, 이 섬의 규모가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그런 거대한 땅을 때 묻지 않은 장엄한 절경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운의 마음에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이 풍경만으로도 심신이 정화되고 상처가 어느 정도는 치유되었을 것이다.

원주민들 상대로 패악질을 할 때는 몰랐던 것을 떠나는 마당에야,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과 같은 침략자가 난데없이 나타나 깽판을 치지만 않았다면, 저 아름다운 지상 낙원에 산지옥이 펼쳐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기는 해도 딱 거기까지다.

하지운 자신에게 고려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앞으로 더 아름다운 곳에 가서, 더 흉악한 짓거리를 하게 될 것이다.


삼십삼 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이 극도로 이기적인 소시오패스로 태어난 것에 감사했다.

조금만 더 좋은 놈으로 태어났다면, 승아가 아무리 애를 썼다 해도 둘의 소멸은 기정사실이었을 것이다.


물론 아름다운 절경들이 아니라도, 이 섬은 하지운의 기억 속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잊히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을 장소이긴 했다.


그에게 이쪽 세상의 무서움을 알려 주고, 썩어 빠진 정신 상태를 개조시켜 준 바로 그곳이다.

돈 한 푼 안 내고 단기 스파르타 학원을 다닌 것이나 마찬가지다.


단지 지나친 속성 강의 때문에, 부작용이 엄청나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말이다.


한 열흘 전부터인가 하지운은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잠든 시간 내내, 끔찍한 흉몽에 시달리고 있다.

내용은 매번 비슷비슷했다.

디테일만 조금씩 바뀔 뿐 메인 스토리는 대동소이했다.


갑자기 남의 몸을 뒤집어쓰고 기고만장해진 하지운 자신이 천하제일 고수라도 된 듯,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미친놈처럼 설쳐 댄다.

그때 눈부신 갑옷을 입은 착하게 생긴 미남이 나타나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 미남 용사를 비웃으며 멋들어지게 덤볐다가, 수타면 반죽처럼 정신없이 얻어맞는다.


어느샌가 알몸이 된 자신이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바닥에 처박고, 고개를 조아리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다.

얼굴은 벌써 눈물범벅이고, 볼품없이 쪼그라든 그곳에서는 또다시 지린내 나는 액체가 줄줄 새고 있다.


자신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던 미남 용사가 온라인 게임에서 주로 출몰하는 크고 아름다운 검을 들어 올린다.


정말 최악이게도, 미남 용사님의 다리를 붙들고 매달린 채, 소리가 나오지 않는 입을 격렬하게 뻐끔거리며 애원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오줌이 멈추지 않아, 불경스럽게도 용사님의 발등을 더럽히고 있다.


자신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꼴좋다는 듯 손가락질을 하며 숨넘어갈 듯 웃어 대는데, 그 소리에 고막이 찢겨 나갈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조용해져서 눈물을 그렁거리며 두리번거리니,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자신의 옆에 서 있다.

천사는 미남 용사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청했고, 자애로운 용사님은 흔쾌히 검을 거두신다.


두 선남선녀는 벌레처럼 바닥을 뒹구는 자신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팔짱을 낀 채 멀어져 간다.

모든 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박수를 치며, 입을 모아 찬양한다.


오직 자신만이 눈물을 흘리며 네발로 기어서 그 둘을 쫓아간다.

그때까지도 오줌이 멈추지 않아, 자신이 기어가는 곳을 따라 냄새나는 개울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목이 꽉 잠긴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던 입에서 단 한마디가 비명처럼 튀어나온다.


“승아야!”


그러고는 깨어난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급하게 사타구니를 만져 보면, 다행히 오줌을 지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스스로의 한심한 꼬라지를 의식하고는 급속도로 침울해지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진다.


제발 승아가 자고 있어서, 이 모든 구질구질한 꼴을 못 봤기만을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 열흘을 참고 견딘 승아가 결국 폭발했다.


엄청나게 억울했을 것이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은 승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날 일을 떠올릴 때마다, 머릿속 어디선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엄청난 죄책감과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신이 매일 거지 같은 막장극을 날마다 살을 붙여서 틀어 대고 있으니,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극도로 흥분한 승아가 정신없이 퍼붓는 쌍욕을 들으며, 오히려 지운은 몸과 마음에 감겨 있던 사슬이 조금 풀리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자신의 못난 모습에 실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거듭 확인받는 것만으로도, 꽉 막혀 있던 숨통이 약간은 트인 것 같았다.


고마운 마음에 솔직하게 승아에게 고백했다.


‘고마워, 승아야.’

‘아, 됐어. 고맙긴.’

‘그리고 나도 네가 해 주는 욕 듣는 거 좋아! 우린 취향도 잘 맞는 거 같아!’

‘닥쳐! 이 미친 새끼야! 아오! 이 새끼는 쉴 틈을 안 줘.’

‘화내지 마! 진심으로 한 말이야. 욕 듣는 거 좋아하는 모쏠녀 승아야.’

‘아악! 제발, 여길 인당수라고 생각하고 눈 딱 감고 뛰어들어!’

‘어허! 모쏠이 아닌 척 기만을 한 죄인 임승아는 오라를 받아라!’

‘꺼져! 미친놈아!’


더하면 울 것 같아서 거기까지만 했다.

머릿속 한구석에서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승아와 지지고 볶으면서 뗏목 위에서 열두 시간을 넘게 보냈다.


중앙 섬에 처음 들어온 날, 뗏목을 섬의 남쪽 끝 지점에 묶어 두었다.

그러고는 섬을 좌에서 우로 훑으면서 북상하느라, 마지막에 머문 마을은 동북 방향으로 한참 치우친 곳에 위치했다.

그 지점에서 새로 만든 뗏목으로 그대로 북상했다면, 네다섯 시간이면 북쪽 숲에 도착했을 것이다.


일이삼사처럼 정성스럽게 만들 자신이 없어서, 섬을 종단해 처음의 도착지로 돌아갔다.

그 곳에서 뗏목을 찾아 타고, 섬을 빙 돌아서 한참을 노를 저었다.

하루의 반 이상을 늪에서 노만 저으면서 보낸 것이다.


도마뱀들도 얼씬을 안 했다.

복수하겠다고 쫓아 나간 암컷들이 전원 실종돼 버리자, 더 이상 용기를 내어 나서는 놈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정말 멍하니 노만 저었다.

승아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승아가 없었다면 하루 내내 음악만 틀어 놓고 있거나, 누군지도 모를 존재의 숨소리나 생살 문지르는 소리만 주구장창 듣고 있었을 것이다.


‘승아야 하루 종일 나한테 시달려 줘서 고마워. 놀림 받느라 힘들었지?’

‘흐윽. 그래, 이 나쁜 놈아.’

‘그러니까 너도 모쏠이면서, 왜 날 놀려?’

‘영원히 안 들킬 줄 알았지... 이렇게 어이없게 내 입으로 이실직고할 줄은...’

‘그래도 네 덕에 정말 즐거웠어. 오늘은 그만 놀릴게. 힘들었을 테니 이제 그만 쉬어야지. 먼저 자. 잘 자.’

‘오늘은... 나쁜 놈...’


뗏목을 접안하기 좋을 만한 지점을 찾으면서, 여유 있게 노를 저었다.

북쪽 숲에는 이미 도착한 지 꽤 되었다.

부츠를 더럽히지 않고 걸어 들어갈 만한 장소를 찾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한 삼십 분 정도를 더 헤매고 나서야 뗏목을 댈 만한 장소가 나왔다.


계획대로라면 더 이상 뗏목을 사용할 일은 없다.

그냥 대충 버리고 가 버리면 그만이다.

중앙 섬에서 호되게 당하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뭍으로 끌어 올려 수풀 사이에 감춰 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뗏목을 다시 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뭔가를 준비해 두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뗏목을 숨겨 두고, 숲으로 진입하려는 하지운의 감각에 무엇인가가 천천히 접근해 오는 것이 포착됐다.


원활한 목표 달성을 위해, 최대한 조용히 볼일만 보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래서 살기를 비롯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어떤 종류의 기운도 몸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어떤 놈인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바로 자신에게 일직선으로 접근 중이다.

느껴지는 기운은 미약했지만, 이 정도 감각을 가진 놈이면 자신처럼 기운을 억누르고 있을 수도 있다.


일단 주변에 있는 나무 중 가장 크고 굵은 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모든 정성을 다해 기운을 억누르고, 손에는 가장 익숙한 무기인 망치를 꺼내 들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팔다리를 살짝이라도 움직이면서 몸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 썼다.


최상의 상태로 강적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왔다! 어떤 놈이지?’


놈은 돼지였다.

돼지머리 괴물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변을 보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을 먹으려 했던, 배고픈 하지운의 육체에서 주체할 수 없는 흉측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작가의말


 오늘 분량과 동시에 올리려 했지만


 쓰는 속도를 보니 택도 없어 보여서


 어제 분량을 먼저 올립니다.


 항상 업로드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반성은 하는데 개선은 힘들거 같아 더욱 죄송합니다.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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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51 [탈퇴계정]
    작성일
    23.08.03 18:01
    No. 1

    건강만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올려주시면...
    날씨가 무더우니 꼭 건필 유념하세요 ㅎㅎ
    저는 오늘도 추천과 함께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최고길동
    작성일
    23.08.03 18:13
    No. 2

    감사합니다. 오타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하다가 댓글이 있어서 깜놀했습니다.
    댓글도 있고, 추천도 보이니 좀 살 것 같은 기분입니다.
    처음에 추천이 0 일때는 정병 올 것 같았거든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51 [탈퇴계정]
    작성일
    23.08.03 18:16
    No. 3

    작가들에겐 정말 치명적인 무반응이죠 ㅠㅠ
    글 퀄리티를 떠나서 유입이 아예 없고 그러면 참 어려워요...
    저는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다만 살짝 몰아서 읽어가지고 댓글을 맨날 못달아서...
    여튼 작가님 화이팅!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최고길동
    작성일
    23.08.03 18:29
    No. 4

    아닙니다. 부담없이 읽어주세요.
    한번 달아주셨으면 된거죠.
    저야말로 작가님 서재에 방문하려는데...
    하루에 한편도 다 못 써서 주말까지 밀린 글을 쓰느라...
    오히려 죄송합니다.ㅠㅠ
    작가님도 건필하세요!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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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캠프파이어 (1) 23.08.26 109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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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여우의 숲 (13) 23.08.23 99 3 10쪽
64 여우의 숲 (12) 23.08.21 109 3 10쪽
63 여우의 숲 (11) 23.08.20 126 3 10쪽
62 여우의 숲 (10) +1 23.08.18 116 3 9쪽
61 여우의 숲 (9) 23.08.14 112 3 9쪽
60 여우의 숲 (8) 23.08.12 119 3 9쪽
59 여우의 숲 (7) 23.08.11 119 3 9쪽
58 여우의 숲 (6) +2 23.08.09 123 4 9쪽
57 여우의 숲 (5) +2 23.08.07 124 2 9쪽
56 여우의 숲 (4) +4 23.08.06 128 3 9쪽
55 여우의 숲 (3) 23.08.05 134 3 9쪽
» 여우의 숲 (2) +4 23.08.03 141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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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시련 (11) 23.08.01 144 3 10쪽
51 시련 (10) 23.07.30 14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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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시련 (7) 23.07.26 14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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