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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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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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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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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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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숲 (8)

DUMMY

59화


줄곧 한 번에 다섯 마리씩 기습을 해 오다가, 두 마리가 추가되었다.

원래 여우머리들이 곧잘 쓰는 수법이다.


이게 정말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여우들을 처음 상대해 보는 이들에게는 의외로 먹힌다.

야밤에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괴물들에게 계속 시달리다 보면, 극도의 긴장감과 피로감에 녹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특히 풋내기들일수록 판단력이 맛이 가 버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여우들이 꼭 다섯 마리씩 움직일 거라는, 말 같지도 않은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 여우들이 상대하는 풋내기는 많이 달랐다.

풋내기는 확실히 풋내기였다.

간교한 여우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풋내기치고 전투 시에 보여 주는 퍼포먼스가 너무 과했다.

여우머리들의 눈에는 침입자 놈의 전투 경험과 전투 기술의 숙련도 사이에 지나친 간극이 있어 보였다.


물론 이건 하지운도 여실히 느끼고 있던 거였다.

비록 한자 사전 뒤지다가 지쳐서 중간에 때려치우기는 했지만, 무협 소설을 연재해 본 경험이 있는, 하지운으로서는 이 생소하지 않은 상황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꼭 무협지에 출몰하는, 벌모세수를 마치고 공청석유에 만년 하수오까지 다 처먹은, 강호 초출의 무림 제일 공자를 연상시키는 폼이었다.

경험은 일천한 것이 내공만 몇 갑자인 명문 세가 애새끼.

딱 현재 하지운 자신의 상황이 이와 같았다.


여우들도 풋내기인 하지운에게 맞춰서 전략을 짜고 대응을 했다.

그러고서 이틀 동안 열두 개의 매복조가 몰살을 당했다.


매복조 자체가 상대를 지치고 질리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깔아 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목적은 전혀 달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목표물이 현재 지나치게 생기발랄한 상태다.


하지운은 세상 느긋했다.

매복조 하나를 제거하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드러누워 서너 시간씩 푹 쉬곤 했다.

다음 지점에서 웅크리고 있는 여우들만 미칠 지경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여우들이 못 참고 기습하러 다가가면, 그건 또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여우머리들도 슬슬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고심 끝에 다구리를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다.

침입자 놈의 괴상한 능력 때문에 다수의 포위 공격을 삼가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통하지도 않는 전략을 고수할 수는 없었다.


그럭저럭 널찍한 장소에 침입자가 들어서자, 매복해 있던 서른 마리의 여우머리가 동시에 공격을 감행했다.

침입자 놈도 갑자기 불어난 머릿수에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러더니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머리통에 있는 털 전부를 사방에 난사했다.


여우머리들은 항상 매복조와 관측조가 같이 움직인다.

매복조가 자리를 잡으면, 예상 탐지 거리 밖에 관측조가 은신한 채로 전투 과정 일체를 관찰한다.


침입자의 괴랄한 능력에, 관측조 일동이 기함을 한 채 얼어붙었다.

서른 마리의 동족이 한순간에 피에 절여진 구멍투성이 걸레짝이 되어 버렸다.

순식간에 다 죽어 버려서, 제대로 된 관찰은커녕, 솔직히 죽는 과정을 자세히 보지도 못했다.

곳곳에 박혀 있는 흉측한 꼬챙이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죽은지도 몰랐을 것이다.


야밤에 별빛을 받아 민머리를 번쩍이던 침입자가 나무에 박혀 있던 가시를 뽑았다.

뽑은 가시를 허공에 던졌다 받더니, 뱅글뱅글 돌리면서 생쇼를 했다.


여우머리들이 그 꼴을 보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질색을 했다.

잠시 마음이 풀어진 그 순간, 침입자가 자신들 관측조 셋 중 가장 좌측에 있던 놈에게 냅다 가시를 집어던졌다.


여우머리 한 놈의 허벅지에 가시가 박히자마자, 나머지 둘이 그놈을 부축한 채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바람처럼 달리는 여우머리들의 등 뒤로, 무엇인가가 나무에 퍽 하고 박히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부리나케 뛰고 있는데도 한동안 그 끔찍한 소리가 멈추지 않아, 셋 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눈물을 글썽이며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을 쳤다.


“아오! 씨발! 개새끼들 존나 빠르네! 이 씨발 개 조루 새끼들! 니네 쌍판 기억했어! 나중에 잡히면, 불알을 잡아 뜯어 버릴 줄 알아!”


등 뒤에서 섬뜩한 고함이 한참 들려오는데, 무슨 뜻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침입자의 목소리에 극도의 분노와 짜증이 섞여 있던 건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목소리에 가득 담긴 살기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여우 세 마리는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극한의 공포를 가까스로 버텨 내고서, 간신히 동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다행히 살아서 돌아오긴 했는데, 다리에 가시가 박힌 그 여우 놈은 도착하자마자 결국 숨을 거두어 버리고 말았다.


치료할 틈도 주지 않았다.

갑자기 구토를 하더니, 전신의 근육이 경직된 듯 뻣뻣한 상태로 바닥을 뒹굴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러다 금세 조용해졌는데,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눈은 실핏줄이 다 터져 있었고, 면상에는 모공마다 피가 맺혀 있었다.

입가는 시커멓게 변해 있는데, 아무리 봐도 질식한 것 같아 보였다.


여우머리들은 이렇게 죽는 경우를 익히 알고 있었다.

숲에 득시글거리는 검붉은 빛깔의 독사에게 물리면 딱 이 꼴이 난다.


물론 독사들이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은 아니라서, 괴물들에게 먼저 접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 어린 여우 새끼들이 멋모르고 접근해서 장난을 걸다가 물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눈깔이 돌아간 여우 성체들이 근방의 뱀의 씨를 말려 버리고는 하는데, 당연히 죽은 새끼가 살아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늙은 암컷들 하는 일이 이십사 시간 새끼들 감시하는 것이다.


어쨌든 침입자 놈은 머리통에 있는 터럭을 가시로 만들어 날려서, 순식간에 서른 마리의 동족을 몰살시켰다.

심지어 멀찍이 떨어져서 엄폐 중이던 관측조를 감지하고, 치명상을 입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관측조가 알아 온 것 중 가장 심각한 정보는 놈의 가시가 치명적인 맹독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 아무리 많은 수가 몰려가서 놈을 둘러싸도, 정작 위험한 건 놈이 아니라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독 때문에 스치기만 해도 생사를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끔찍한 보고가 올라왔다.

침입자 놈이 자신들의 마을을 향해 일직선으로 접근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관측조의 도주 방향을 보고 눈치를 챈 모양이다.

여우들이 보기에 아무래도 관측조를 죽이지 않고 일부러 놓아준 것 같았다.


매복조를 교묘하게 배치해 마을에서 점점 멀어지도록 만들어 뒀었다.

매복한 수컷 전사들을 쫓다 보면 어느새 숲속 깊이 끌려 들어가, 그 안에서 정처 없이 헤매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 소용없어졌다.

뭔가 서툴러 보이던 놈이 자신들 못지않게 교활한 구석이 있었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암컷들과 늙은 수컷들이 새끼들을 안고 썰물 빠지듯 마을을 빠져나갔다.

열댓 마리의 수컷이 호위를 위해 뒤에 따라붙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로 노약자들을 피신시킨 후, 남은 수컷들이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그 어떤 종류의 괴물도 자신들의 서식지를 포기하고 도주하지는 않는다.

암컷과 새끼는 몰라도, 항상 수컷들은 마을과 운명을 같이한다.

자신들도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냥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사명 혹은 숙명 같은 거다.


‘혹은 프로그래밍 된 행동 패턴일 수도 있지. 이 영특한 새끼들도 마을이 위험이 직면하니까, 미련하게 구는 것은 매한가지네. 안 되겠으면 그냥 도주하거나, 본거지를 점거하도록 비워 뒀다가 침략자가 자빠져 있을 때 기습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간단한 생각도 못 하다니.’


이백 마리가 조금 넘는 수컷 여우머리가 마을 입구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 앞에 손에 장갑을 낀 하지운이 천천히 다가왔다.


여우들로부터 대략 오륙십 보 정도 거리에 멈춰 선 하지운이 허공에서 보따리를 하나 꺼냈다.

바닥에 내려놓고는 세월아 네월아 푸는데, 여우들도 인상을 구기면서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전투에 앞서 갑자기 굼뜨게 구는 꼴이 눈에 거슬렸지만, 명색이 여우인데 상황 파악도 없이 달려들지는 않았다.


대열을 맞추고 선 여우들의 발 앞에 하지운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이 뿌려졌다.

‘이게 뭐지?’ 하고 내려다본 여우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놈들의 면상이 하나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다들 눈알이 뒤집혀 있는데, 흉신악살이라는 단어가 이보다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침착함과 간교함이라는 단어의 대명사와 같던 여우머리들이 대열이고 나발이고 없이 무더기로 뛰쳐나갔다.


뒷열에 있던 연세가 좀 되는 놈들이 다급하게 말려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고 용맹한 놈들 위주로 앞에 세웠는데, 정말 용감하게 다 튀어 나가 버렸다.


작가의말

 오늘 분량은 지금 미친 듯이 쓰고 있습니다.


 이것 먼저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일단 로그인했습니다.


 요번 주 분량이 특히 밀리는 이유가... 변명이긴 하지만...


 여주인공을 관리자로 바꾸면서 이전 버전에는 없었던


 제재에 관한 내용을 새로 만들어 집어넣는 과정에서


 고민이 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좀 많이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더 죄송하게도 제가 다음주에 며칠 어딜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자세한 글은 공지에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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