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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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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7.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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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721

작성
23.08.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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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여우의 숲 (11)

DUMMY

62화


지는 해가 선사하는 아름다운 붉은 조명을 받으며, 시뻘건 모피를 걸친 족장님이 우아한 자태를 마음껏 과시했다.


그 모습을 황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보던 하지운이 옷가지들을 하나씩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옷 같지도 않은 천 쪼가리들을 수납장에 던져 넣고, 부츠도 벗어 마저 집어넣었다.


난데없이 알몸으로 당당하게 나서는 하지운을 보고, 주위의 모든 여우머리들이 기이하게 여기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여우머리들의 오묘한 표정을 보고, 하지운은 심히 흡족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역시 성형은 전신 성형이지. 이놈들도 수컷이라고 대물 앞에서는 기가 팍 죽는군. 가련한 개새끼들아! 어서 이 몸을 찬양해라!’

‘내가 어쩌다 이 미친 새끼를 좋아하게 된 거지...’

‘그만큼 네 취향이 독특하다는 거지!’

‘내 자신이 밉다...’

‘재미는 있잖아! 일 열에서 즐겁게 감상해.’


하지운의 기대와는 달리 여우머리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에 대해 의외로 많은 것을 이해하고, 탐구하고 있었다.

인간을 잡아 와 가둬 놓고, 관찰하는 것은 괴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인간들만 괴물을 사육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지능이 높고 호기심이 많은 여우머리들이 더 그랬다.

돼지머리들처럼 순전히 발정 나서 아무나 잡아가는, 그런 몰상식한 납치가 아니었다.

철저히 학습용 교보재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여우머리들이 보기에, 지금 하지운의 괴행은 기이하기는 해도 그럴듯한 점이 있었다.

죽을 만큼 두려운 상황에 몰리면 오히려 흥분하는 괴상한 연놈들이 아주 가끔 관찰되는데, 이 침략자 놈이 딱 그런 부류로 보였다.


아름다운 족장님이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하지운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측은지심을 가득 담아 바람의 칼날을 뿌려 주었다.

삿된 욕망으로 가득 찬 가련한 중생에게, 죄 많은 세속의 삶을 정리해 주기 위한, 자비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하지운은 그런 족장님의 따뜻한 마음도 몰라주고, 자신의 팔에 돋아 있던 가시들을 좌우로 날려 버렸다.

그러고는 전신에 가시를 촘촘히 세워 갑옷처럼 만들었다.

길이 십 센티, 지름 오 센티미터의 통일된 규격의 가시로 온몸을 감쌌다.

이 짓도 몇 번 하다 보니 생체 병기로의 변신이 자연스러워졌다.


심지어 씹덕 기질까지 발동된 나머지, 머리통에서 이마와 관자놀이의 가시 세 개만 오십 센티 길이로 올려 세웠다.

양쪽 관자놀이의 가시 두 개는 뒤쪽으로 비스듬하게 세우고, 이마빡의 가시는 전방 45도 각도로 세워 유니콘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어깨와 팔꿈치의 가시도 한 가닥씩 세웠다.


생체 병기로의 변신을 끝마치고 용사 포즈를 취한 채, 족장님의 마법의 칼날을 튕겨 냈다.

스스로 너무도 멋짐에 취한 나머지, 전신 거울을 띄워 놓고 감상하는 시간까지 가졌다.

당연히 승아의 다급한 쌍욕 타임이 이어졌지만, 그조차도 황홀하게 들릴 지경이었다.


물론 하지운이 정신이 온전한 놈이 아닌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보이는 여유는 밑도 끝도 없는 근자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하지운은 처음 족장님의 바람의 칼날을 막아 내고, 그 즉시 칼날에 맞은 가시들을 점검했다.

긁힌 자국이 역력하기는 했어도, 잘려 나간 것은 없었다.

방어구로서의 성능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가시의 강도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우수했다.

마법 공격을 얼마나 버텨 낼지, 솔직히 기대보다 불안과 우려가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 바람의 칼날이 주먹에 돋아난 가시에 부딪혔을 때, 얼마나 쫄았는지 하지운의 거시기가 바짝 쪼그라들어 안으로 파고들어 가 버렸다.

불행히도 양손이 전부 가시투성이라 손으로 잡아 뽑을 수도 없었다.

처음부터 옷을 벗고 설치다가 그런 꼴이 되었다면, 하지운은 또다시 쪽팔림을 못 이기고 우울증에 시달렸을 것이다.


우려가 심히 장대했던 만큼, 밀려오는 환희의 파도도 그 못지않게 거대했다.

굳건하게 버텨 준 가시들을 바라보던, 하지운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이글거리며 불타올랐다.

혼자 살겠다고 제일 먼저 몸속으로 도망쳤던 놈도 어느새 기어 나와, 당당함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여우들 앞에서 거침없이 옷을 벗어던질 수 있었던, 더러운 패기가 적어도 변태성에서 기인한 건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다 로저는 ‘서양인’이다.

대한민국 사람이 아무리 털이 많아 봤자, 금발 머리 서양인과 털의 양으로 경쟁을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전생의 하지운은 왜소한 멸치였다.

남성 호르몬이 극도로 부족해, 빈모증에 가까운 상태였다.


하지만 로저는 남성성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거의 대부분의 지배층이 괴물의 피를 처먹는 정신 나간 이 세상에서도, 가히 독보적인 신체를 가진 괴수로 불리던 남자였다.


로저의 몸을 처음 움직여 봤을 때, 하지운은 ‘속에 모피 내복을 껴입었나?’ 하는 망상을 했었다.

그 정도로 털의 양이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전신이 매끄러운 몸을 쓰던 놈이 복슬복슬한 육체를 사용하게 되면서, 적응이 쉽지가 않았다.

팔이 하나 잘린 상태임에도, 털이 꺼끌거리는 것이 더 신경 쓰일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숱 많은 이 몸뚱어리 덕분에 극상의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전신의 털의 반의반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온몸을 가시로 뒤덮고 있는 것이다.

지름이 오 센티씩 되는 가시의 굵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만큼 전신의 털이 풍성하다는 얘기다.

사람이 등에도 털이 난다는 것을, 나이 서른셋에 이 동네에 와서야 알게 된 하지운이었다.


지금 레벨에서 가시 능력의 지속 시간은 십 분이다.

머리를 제외한 온몸의 숱이 극도로 부족했던 전생의 몸이었다면, 이 지속 시간은 그의 잔여 수명과 일치할 수도 있었다.

지속 시간이 다 지난 가시는 제가 알아서 털로 되돌아가, 매가리 없이 떨어져 나간다.

전생의 자신의 몸으로 가시 능력을 썼다면, 십 분 안에 승부를 보겠다고 난리 치다, 실패하고 알몸으로 다구리 맞다 뒈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육체에는, 전신에 가시로 된 갑옷을 연속으로 다섯 번씩이나 만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터럭이 달려 있다.

‘가시’ 능력 사용이 능숙해진 지금은, 이런 세심한 컨트롤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다섯 번째 갑옷을 만들 때쯤이면, 첫 번째로 사용한 털이 어느새 자라나고 있다.


‘체력만 받쳐 준다면... 이 꼬라지로 평생을 살 수도 있겠다! 잘하면 천수를 누릴 수 있겠어! 이거 방탄 가시야! 그런데... 똥은 서서 싸야겠지...’

‘네 편한 대로 싸세요. 미친놈아.’


하지운의 머릿속에 다시 뽕이 차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하지운의 머릿속은 거의 도파민 중독 상태나 마찬가지다.

열광의 도가니가 된 머릿속에서 승아마저 모든 걸 체념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심경으로 한구석에 널브러져 있다.

욕하다가 지치고 만 것이다.


이미 좌우로 날린 가시에 다섯 놈의 여우머리가 세상을 등졌다.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졸개 놈들부터 마저 다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하지운이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족장님이 정신없이 날리는 바람의 칼날이 쉬지 않고 하지운의 뒷몸을 때렸다.

솔직히 엄청 쫄려서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만, 계속 곁눈질로 확인해도 가시들이 잘 버티고 있다.

하지운으로서는 그만 걱정하고, 가시들을 믿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갑자기 측면으로 뛰어들자, 도주하려는 줄로 착각한 여우머리들이 알아서 하지운에게 달려들었다.

감사의 인사를 대신해 가시가 한가득한 주먹을 날려 줬다.


정면에 보이는 여우머리에게 왼손 잽을 날렸는데, 놀랍게도 놈이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피했다.

‘이놈 봐라.’ 하면서 놈의 좌측 횡격막을 노리고 오른손 훅을 날렸는데, 놈이 그것마저도 피해 버렸다.

뒤로 폴짝 뛰면서 재빠르게 피하는 놈을 보고, 하지운의 뚜껑이 튕겨 나갔다.


다짜고짜 놈에게 달려들어 덥석 끌어안아 버렸다.

잽싸게 잘 피하는 놈을 보고, ‘붙잡아 놓고 개패고 싶다.’는 마음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한 짓이었다.


좌측 고막이 터져 나갈까 걱정될 정도의 어마무시한 비명을 듣고 나서야, 움찔한 하지운이 품에 안겨 있던 놈을 놓아주었다.

피투성이 걸레짝이 된 놈이 종이 인형처럼 힘없이 널브러졌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여우 놈들이 죄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족장님조차도 쉼 없이 움직이던 양손을 멈추고, 멍한 눈으로 하지운을 바라보고 있다.


놈들을 둘러보고 자신의 발 앞을 내려다본, 하지운의 머릿속에서 빛이 번쩍하면서 벼락이 내리꽂혔다.

진짜 벼락이 친 것은 아니고, 그만큼 놀랐다는 말이다.


‘유, 유레카! 아이언 메이든이다! 왜 내가 이런 가성비 쩌는 기술을 생각 못했지?’


달려가서 끌어안기만 했는데 상대는 목불인견의 변사체가 되었고, 남은 적들은 말문이 막힌 채 멍해져 버렸다.

큰 노력 없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놈들이 정신 차리기 전에 하지운이 먼저 움직였다.

가장 가까이 서 있던 놈을 덮쳐 격하게 안아 주려 하였다.


한때 유행했던 프리 허그 캠페인이 생각났다.

짐승의 머리를 달고 있는 괴물조차도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박애주의자 하지운으로 거듭난 보람찬 하루였다.


작가의말

 두 편을 동시에 올리려다 너무 늦어져서 한 편만 먼저 올립니다.

 다음 편은 원고지 일곱 장 분량중에 네 장 분량이 완성되었습니다.

 물론 쓰기는 다 썼는데 철자와 띄어쓰기 문맥 확인 등이 세 장 정도

 남았습니다.

 저녁 먹고 계속 해서 자기전에는 올리고 자도록 하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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