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새글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7.01 00:14
연재수 :
223 회
조회수 :
23,167
추천수 :
530
글자수 :
951,721

작성
23.07.26 04:02
조회
146
추천
2
글자
11쪽

시련 (7)

DUMMY

47화


원수 놈이 기어코 서른 마리가 넘는 히스트릭스를 다 때려 죽였다.

도마뱀머리 괴물들이 눈에서 피눈물을 쏟아 낼 것처럼 괴로워했다.


저 흉악한 가시 괴물들이 원수 놈을 죽음 직전까지 몰 때만 해도, 자신들이 직접 원수를 갚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도 원수 놈의 죽음은 기정사실인 듯했다.

그래서 도마뱀들의 심정을 표현하자면 시원섭섭함 같은 것이었다.


서른 마리의 히스트릭스면 이곳에 와 있는 자신들 삼천 마리 정도는 순식간에 몰살시킬 수 있다.

한 번에 천여 발에 달하는 가시가 동시에 날아들 텐데, 달려드는 와중에 수백씩 죽어 나갈 것이다.

아마 코앞까지 도착했을 때는 수십 마리밖에 남지 않아, 실컷 노리개 취급당하다 갈기갈기 찢겨 버릴 것이다.


그런 소름 끼치는 악귀들을 원수 놈이 다 죽인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질질 짜면서 지려 대는 것을 다 봤다.

전의를 상실해서 제가 싼 오줌 위에 엎어져서 뒹굴던 놈이 갑자기 실성한 것처럼 몽둥이를 들고 설쳐 댔다.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저렇게 감정 기복이 클 수가 있는 것인지, 정말 통탄할 노릇이었다.


이러면 원수 놈이 죽는 꼴은 못 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놈이 피를 많이 흘리고 다친 부위에 남아 있는 통증이 계속된다 해도, 기세가 꺾이지 않은 놈을 상대로 덤비는 무모한 짓은 할 수가 없다.

자신들은 전부 암컷과 자라다 만 새끼들로 이루어진 비전투 그룹이다.

결국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원수 놈의 손에 다 맞아 죽을 것이다.


그런데 원수 놈이 화들짝 놀라더니 갑자기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자신들을 힐끗 돌아보고는 급하게 뛰어나가다 발이 꼬여 엎어져 버렸다.

잠시 바닥을 뒹굴던 놈이 다시 급하게 일어나 앞으로 튀어 나가다가, 또다시 꼬꾸라져 버렸다.

그러더니 더 이상 꿈틀거리지 않고 바닥에 처박힌 채 조용해져 버렸다.


놈이 드디어 지친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제 놈도 생명체인데, 피를 그렇게 흘리고 계속 버티고 서 있는 것이 말이 안 되긴 했다.

숨소리가 고른 것을 보니 단순한 기절인 듯싶었다.


지금이다.

지금이 놈을 죽이고 아들, 손자, 남편, 애인, 짝남, 썸남, 오빠, 동생, 아빠, 삼촌 그리고 할아버지의 복수를 할 시간이다.

지금 이 골든타임을 놓치면 영원히 후회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삼천여 마리의 도마뱀 머리가 뭍으로 뛰어올랐다.

자신들의 감각에 히스트릭스의 기척은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얼른 원수 놈을 죽이고 늪으로 돌아가면 만사형통이다.


늙고 신중한 몇이 나서서 반대했다.

성급하게 굴지 말고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말리던 몇몇도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린것들이 달려 나가는데 자신들만 살자고 뒤에 남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도 아들과 손자를 잃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원수 놈의 지척까지 다가갔다.

놈은 그때까지도 미동도 없었다.

놈의 몸뚱어리에 손톱을 박아 넣으려는 그 순간.

허공에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빠르게 빛의 선이 지나가고 동족들의 머리가 날아올랐다.


놈이 어느새 일어나 양손에 날이 시퍼렇게 선 검 한 자루씩을 잡고 있었다.

달빛이 반사된 것인지 검이 움직일 때마다 요사스런 빛이 난무했다.

동족들의 머리와 피가 솟구치는데, 놈의 검에서 비치는 달빛이 더해져 괴물들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 나 진짜 배우 할까? 내 연기력 봤지?’

‘미친... 이런 발 연기에 정말 속네. 호저나 도마뱀이나 죄다 닭대가리 같은 새끼들. 그러니까 동물 몸에 사람 머리를 달자니깐... 사람 몸에 동물 머리를 달아 가지고...’

‘야, 이씨! 너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너무 생각들을 안 하니까...’

‘야! 나 저 생각 없는 새끼들 땜에 뒈질 뻔했어!’

‘아니! 네가 아까 다쳤을 때 정말 무섭고 안쓰러워서 운 건 맞아. 그래도 제작에 참여한 사람 아니 귀신 중 하나로서, 제작물의 지능이 너무 처참한 건 빡치잖아.’

‘정규 업데이트 기간 같은 거 없어?’

‘고객님! 이게 진짜 게임이에요? 게임에서 고객님 본인이 배에 구멍 뚫려서 피랑 내장 쏟는 거 본 적 있으세요?’

‘야, 근데... 방금 그거 나한테 말해도 되는 내용이야?’

‘저기 있잖아... 나 여기 너랑 같이 왔어.’

‘어? 알아. 같이 온 거. 새삼스레 뭔 소리야?’

‘아니... 나 지금 네 머릿속에 갇혀 있다고. 그래서 그런지 더 이상 나한테 추가 정보가 오질 않아. 내가 알고 있는 거... 너한테 말해도 상관없는 것들뿐인가 봐...’

‘... 미치겠다... 야, 임승아. 조금 있다가 이것들 다 죽이고 얘기하자. 집중이 안 된다. 우리...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은 거 같아.’

‘응... 알았어.’


승아와 대화 중에도 하지운의 검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대화가 끝날 때쯤 도마뱀 무리의 중심을 돌파하여 놈들의 후방에 서게 되었다.

놈들의 무리와 늪 사이에 서게 된 것이다.

자신의 뒤로는 두 마리의 새끼와 늙은 암컷 하나가 다였다.


셋 다 움직임이 굼떠서 무리를 뒤늦게 쫓다가, 이런 끔찍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아무리 이들 앞에서 임종 직전까지도 잊지 못할 수치스러운 퍼포먼스를 보였다 해도, 인간으로 치면 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새끼였다.

그것도 암컷으로. 하지운조차도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초 정도 망설이고, 하지운의 양발이 고속으로 움직였다.

좌우 연속 앞차기로 두 암컷 새끼의 머리통을 미세한 흔적만 남기고 날려 버렸다.


고통 없이 대번에 죽여주는 걸로 그 스스로와 빠르게 합의를 봤다.

등 뒤의 도마뱀 무리에서 절망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앞의 늙은 도마뱀이 새끼들의 몸통을 끌어안고 오열하였다.

통곡을 하는 늙은 암컷도 금세 뒤따라 보내 주었다.


뒤돌아서는 하지운의 눈에 골수에 사무친 원한으로 미쳐 가고 있는 도마뱀 무리가 보였다.


“내가 말했지. 너희 모두 여기서 다 죽일 거라고. 앞으로는 절대 손톱 세우고 이빨 보이는 것들 앞에서 개폼 잡고 자비를 남발하지 않을 거다. 너희 모두 날 죽이러 따라왔으니 분명히 전사들이고 내 적수들인데... 내가 주제에 너무 꼴값을 떨었다.”


말을 이어 가다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감정들을 억누르며, 하지운은 잠시 심호흡을 하였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니들이 알아듣든 말든, 어쨌든 니들 앞에서 맹세한다. 앞으로는 가랑이 사이에 뭐가 달려 있든, 아니 있든 없든 절대 상관 안 한다. 생긴 것이 어떻든 몇 살을 처먹었든, 내 앞에서 살기를 드러내면 그건 그저 적이다. 적은 모두 죽이고 지나갈 거다. 뒤에 남겨 둬서 내 등에 칼질할 기회를 주는 일은 다시는 없을 거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죽이겠다. 너희 덕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진심으로 고맙다.”


말을 마친 하지운의 손에 망치 두 자루가 쥐어졌다.

죽음을 예감한 도마뱀들이 마음을 다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혼자 살겠다고 늪 쪽으로 달아나는 놈은 없었다.

사슬을 꺼낼 필요는 없어 보였다.

하지운의 마음에 존경심이 돋아났다.

모두 다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 주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추태를 부리는 것을 보고 환호하고 조롱했던 것을 생각하면, 전부 다 사지를 박살 내 놓고 실컷 고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암컷과 새끼들이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보는 건, 아무리 하지운 자신이라 해도 못 본 척하고 흘려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 죽인다는 결정에 변함은 없다.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려면 이것보다 더한 일도 해야 할 거다. 이런 일이 수없이 반복될 거고, 난 그때마다 선택을 강요받을 거다. 난 혼자가 아니다. 꼭... 무사히 데려갈 거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머릿속에서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했다.


손톱을 세우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도마뱀들의 무리로 뛰어들었다.

놈들에게 둘러싸인 채 미친 듯이 망치를 휘둘렀다.

전략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암컷 새끼가 처참하게 죽는 것을 보고 미쳐 버린 괴물들과 같이 미쳐 줬다.

손톱에 긁히는 건 애초에 신경도 안 썼고, 머리나 가슴 그리고 생식기로 들이대는 이빨만 신경 쓰면서 마구잡이로 망치질을 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무아지경으로 괴물들의 머리통을 박살 내던 하지운의 눈에 더 이상 서 있는 괴물이 보이질 않았다.

머리 없는 수천여 구의 시신만 가득했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것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생존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둘러보니, 다 크지도 않은 새끼 두 마리가 바닥을 기는 것이 보였다.

둘 다 다리가 박살 나 있는데, 새끼라 그런지 재생이 빨리 되질 않는 모양이었다.


두 놈들 중 그나마 회복이 조금 더 빠른 쪽으로 다가갔다.

수컷이었는데, 누워서 밟히기 싫었는지 어떻게든 일어서려 하였다.

기다려줬다.


기어코 재생을 마치고 일어선 놈이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도 끝까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진짜 멋있는 놈이구나. 나 같은 좆밥처럼 질질 싸지도 않고... 넌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다. 잘 가라, 멋진 놈아.”


놈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옆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나 남은 암컷 새끼가 오열을 하고 있었는데, 절절한 것을 보니 생판 남은 아닌 모양이었다.


보고 있으니 자신이 죽을 위기에 몰렸을 때, 울어 대던 승아가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망치를 꽉 쥐고 한달음에 다가갔다.

빨리 죽이고 끝내 버려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이 다가오자 암컷 새끼가 덜덜 떨면서 오줌을 흘리는 것이 보였다.

보고 “너도 당해 보니 어떠냐? 무서워 죽겠지?” 같은 조롱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똑같이 갚아 주겠다고 이를 갈았는데.


안쓰러워서 최대한 빨리 보내 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암컷 새끼가 하지운의 얼굴에 떠오른 연민의 감정을 느낀 모양이었다.


자비를 구걸하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이를 드러내며 분노를 표출했다.

동정 따위 집어치우라는 것 같았다.


“이런 놈들인지도 모르고, 무시하고 장난감처럼 대했다니... 정말 미안하다. 잘 가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5 인연 (2) +2 23.09.05 94 3 9쪽
74 인연 (1) 23.09.03 95 3 10쪽
73 캠프파이어 (7) 23.09.02 99 5 10쪽
72 캠프파이어 (6) 23.08.31 92 3 10쪽
71 캠프파이어 (5) 23.08.30 88 3 9쪽
70 캠프파이어 (4) 23.08.30 88 2 10쪽
69 캠프파이어 (3) +4 23.08.29 98 3 9쪽
68 캠프파이어 (2) 23.08.29 94 3 9쪽
67 캠프파이어 (1) 23.08.26 109 3 9쪽
66 여우의 숲 (14) 23.08.24 101 3 10쪽
65 여우의 숲 (13) 23.08.23 99 3 10쪽
64 여우의 숲 (12) 23.08.21 110 3 10쪽
63 여우의 숲 (11) 23.08.20 126 3 10쪽
62 여우의 숲 (10) +1 23.08.18 116 3 9쪽
61 여우의 숲 (9) 23.08.14 112 3 9쪽
60 여우의 숲 (8) 23.08.12 120 3 9쪽
59 여우의 숲 (7) 23.08.11 119 3 9쪽
58 여우의 숲 (6) +2 23.08.09 123 4 9쪽
57 여우의 숲 (5) +2 23.08.07 124 2 9쪽
56 여우의 숲 (4) +4 23.08.06 128 3 9쪽
55 여우의 숲 (3) 23.08.05 134 3 9쪽
54 여우의 숲 (2) +4 23.08.03 141 3 10쪽
53 여우의 숲 (1) 23.08.02 143 3 11쪽
52 시련 (11) 23.08.01 145 3 10쪽
51 시련 (10) 23.07.30 148 2 9쪽
50 시련 (9) 23.07.28 143 3 9쪽
49 시련 (8) 23.07.27 148 3 10쪽
» 시련 (7) 23.07.26 147 2 11쪽
47 시련 (6) 23.07.24 147 2 10쪽
46 시련 (5) 23.07.22 146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