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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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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7.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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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51,721

작성
23.07.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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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시련 (9)

DUMMY

49화


아름드리나무가 그득한 울창한 숲속을 청년 셋이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치고 있는 이 숲은 자신들의 마을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는 아주 친근한 장소였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뛰어놀던, 마을의 일족을 보호하기 위해 어른들로부터 싸우는 법을 배우던 그리고 커서는 사랑하는 여인과 은밀히 관계를 가지던 추억이 가득 담긴 공간이었다.


거기다 적이 쳐들어오려 할 때는 미리 매복해서 침략자를 섬멸하는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었다.


그런 친숙하고 소중한 곳을 달리는 청년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귀여운 얼굴들에는 눈물, 콧물, 침이 범벅이 되어 있었고, 무슨 흉측한 것이라도 본 것인지 낯가죽이 허옇게 질려 있었다.


거기다 무슨 일들을 겪었는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의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특히 팔과 다리에 난 상처들은 생살을 거의 잡아 뜯기라도 한 것처럼 흉측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조금만 더 가면 일족의 마을이 나온다.

빨리 가서 침략자의 존재를 알리고 마을에 있는 이들을 피신시켜야 한다.


어른들이 몸을 던져서 자신들의 도주를 도왔다.

무시무시한 침략자의 존재를 마을에 전하라는 임무를 맡기고, 자신들의 몸으로 청년들의 뒤를 막았다.

그럼에도 이들의 팔다리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것이다.

사실 이 정도 상처만 입고 도망쳐 나온 것이 기적이었다.

그 정도로 끔찍하고 처참한 싸움이었다.


눈앞에 거대한 너도밤나무가 보였다.

반가워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저 나무만 돌면 마을 입구가 육안으로 보인다.

달리면 몇십 초도 안 걸릴 거리다.


가장 선두에 있던 청년이 나무를 끼고 우측으로 몸을 틀려는 순간, 단창 한 자루가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청년의 오른쪽 오금을 비스듬히 뚫고 들어온 창이 무릎뼈를 완전히 박살 낸 채 밤나무에 틀어박혔다.

자세히 보니 창이 아니라, 길이가 일 미터 정도 되는 꼬챙이였다.

그 날카롭고 길쭉한 물건이 청년의 오른 무릎을 나무에 완전히 밀착시켜 놓고 있었다.


급하게 달리던 와중에 한쪽 무릎이 옆에 있던 나무에 강제로 틀어박히면서, 하마터면 오른쪽 무릎 아래가 완전히 뜯겨 나갈 뻔했다.

척추부터 우측 골반, 오른편 허벅지까지 멀쩡한 곳이 없었다.

뼈와 근육이 모두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도 박살 난 무릎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비할 수는 없었다.


“끼아아아아앙!”


청년의 입에서 폐부를 뚫고 나온 처절한 비명이 쏟아졌다.

오른 다리만 나무에 매달린 채, 왼팔과 왼 다리로 바닥을 짚은 상태로 고통에 몸부림 쳤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꿰뚫린 상처가 헤집어져 더 큰 고통이 밀려왔다.

숲 전체가 청년의 비명 소리로 요동을 치는 듯했다.


뒤따르던 청년 중 하나가 꼬챙이를 뽑아 주려 급하게 다가갔다.

개중에 가장 키가 크고 체구가 좋은 청년이었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남은 한 청년이 키 큰 청년의 왼팔을 붙들고 잡아당겼다.


간절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우리라도 빨리 가야 한다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키 큰 청년이 팔을 뿌리치고 다친 동료에게 돌아섰다.

동시에 용감한 청년의 옆통수에 또 다른 꼬챙이가 뚫고 들어왔다.

청년의 머리통을 뚫은 꼬챙이가 퍽 소리를 내면서 밤나무에 깊이 박혔다.


얼마나 힘차게 날아왔는지, 꼬챙이가 머리통을 뚫는 순간 하마터면 머리가 통째로 목에서 뽑힐 뻔했다.

머리는 나무에 박혀서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데 반해, 목 밑은 힘없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얼마 못 가 몸통만 땅에 처박힐 것 같아 보였다.


남은 한 청년의 입에서 비통하고 구슬픈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방금 죽은 키 큰 청년은 바로 그의 친형이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와 앞을 볼 수가 없었다.


흐릿해진 청년의 시야 오른편으로 거대한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모습이 희미하게 비춰졌다.

눈물이 앞을 가려 모든 것이 뿌옇게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의 마을에 저렇게 큰 생명체는 없다.

자신들을 몰살시키러 쫓아온 바로 그 침략자 놈이다.


세 청년, 아니, 젊은 히스트릭스 세 마리 중 가장 어린놈이 겨우 다시 돋아나기 시작한 잔털을 바짝 세워 다가오는 적에게 쏴 버렸다.


혹시 맞았나 하고 눈물을 닦으며 바닥을 내려다봤지만 없었다.

실망이 크진 않았다.

기대도 별로 안 했기 때문이다.


젊은 호저머리 괴물의 뒤통수에 뾰족한 송곳 같은 것이 닿았다.

뒤통수와 등에 돋아나고 있던 잔털까지 마저 발사했다.

물론 무엇인가가 쓰러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호저머리의 오른편에서 말소리와 함께 꼬챙이가 날아왔다.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소리를 들으며 머리에 꼬챙이가 박힌 호저머리 청년이 생을 다했다.


그 모습을 나무에 박힌 채 다 보고 있던, 하나 남은 젊은 호저머리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눈앞의 악귀를 바라봤다.


놈의 왼 손등에 난 잔털 중 하나가 길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호저머리는 그 순간에도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않았다.

도대체 이 악귀 놈이 어떻게 자신들의 능력을 쓰고 있는지.

이렇게 생겨 먹은 동족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동족도 아닌 놈이 어떻게 자신들의 능력으로 자신들을 학살하고 있는지.


“저놈에게도 말했지만, 날 너무 원망하지 말고 극락왕생해라. 물론 바로 소멸되겠지만.”


하지운은 작별의 인사를 남기고, 가시를 살짝 들어올렸다.

다리를 작살낸 것이 미안해서 한 방에 고통 없이 머리를 뚫어 줄 생각이었다.


나무에 박혀 있던 호저머리의 가랑이 사이에서 세찬 물줄기가 뿜어졌다.

방광의 기능이 아주 죽어 버린 듯 품고 있던 액체를 단숨에 밀어내 버렸다.


오줌을 지린 호저머리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같이 출발했던 동료들이 다 죽고 혼자 살아남은 마당에, 죽는 게 두려워 침략자 놈 면전에서 수치스러운 작태를 보였다.

이제는 그저 빨리 죽어서 동료들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하아, 괘념치 마라. 강요된 죽음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생명체의 수는... 아마 티끌만큼도 안 될 거다. 네가 그중에 하나일 거라 믿어 온 건 아닐 거 아니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가라. 고통을 준 마당에 수치까지 줘서 미안하다. 좋은 곳으로 가서 편히 쉬어라.”


마지막 놈의 머리를 뚫어 버리고 돌아보는 하지운의 눈에 분노와 서글픔을 가득 품은 히스트릭스 무리가 보였다.

마을에 남아 있던 암컷들과 늙은 수컷들이었다.


“미안하다. 너희들을 불러내려고 이놈에게 고통을 줬다. 아무리 나라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새끼와, 거동도 어려운 늙은 암컷까지 죽이는 건 할 짓이 아니더라. 그래서 최소한의 싸울 능력이 있는 것들만 불러내려고 이놈을 쥐어짰다. 너희들도 따라 보내 줄 테니 고통 없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아라.”


흉악한 말을 남기고, 왼팔의 털을 세우는 하지운의 눈에 밤나무 쪽으로 달려가는 세 마리의 암컷이 보였다.

깊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젊은 사내놈들의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암컷들을 보면서, 하지운은 수치스러웠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자신의 심신이 피폐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빨을 드러내고 살기를 흘려 대던, 늪에서 지랄 발광을 하던 도마뱀머리 암컷들을 떠올렸다.


‘내가 만약 마음이 약해져, 저 셋을 살려 두고 떠난다면...’


보나 마나 내일쯤이면 저것들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원한을 가득 품고 자신을 뒤쫓을 것이다.

죽은 연인과 피붙이들의 복수를 하려고.


‘그래, 이게 현실이지. 아무리 이계라도 결국에는 사람 아니면 사람 비스무리한 것들이 사는 곳인데. 아무 각오도 없이... 그저 구 서클 대마법사에, 소드 마스터가 될 생각밖에 없었다니. 나이 서른셋에 철딱서니라고는...’


왼팔에 돋아난 수십 가닥의 가시 중 세 개를 밤나무 쪽으로 집어 던졌다.

오른손으로 하나씩 뽑아 던졌는데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암컷들을 뚫고 지나간 가시가 나무에 박히고 나서야 다른 호저머리들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죽은 수컷들을 안고 울던 젊은 암컷 세 마리가 연인들의 시신을 안고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끄아아아아아앙!”


남아 있던 호저머리들이 가시를 바짝 세우고, 괴성을 지르며 하지운에게 달려들었다.

늙은 몸으로 가시를 날려 봐야 위력이 나오지 않으니, 달려가서 끌어안으려는 수작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굼뜬 움직임으로는 목적한 바를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 숲속에는 고요한 적막만 남게 되었다.


작가의말


 오늘 분량은 반 정도 썼습니다. 일단 어제 것부터 올리고 마저 쓰려고 들어왔습니다.

 하루에 한 편도 다 못써서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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