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최근연재일 :
2024.03.15 19:00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181,407
추천수 :
4,750
글자수 :
371,835

작성
24.03.08 19:00
조회
1,868
추천
70
글자
12쪽

시청률(2)

DUMMY

이번 씬이 <보이지 않는 사랑> 대본을 쓰면서 시청자들이 가장 마음 아파하길 바랬던 장면이다. 모니터링 화면을 보던 희정이 훌쩍거리기 시작했고 스태프들도 눈물을 훔치는 친구들이 여럿 보였다.


송현우의 가슴을 후벼 파는 연기에 이어 마정한이 연기할 차례.

나영찬의 흐느끼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이한영이 슬쩍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카메라가 이한영의 얼굴을 따라가서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김욱 감독도 이 씬에서 숨을 죽인 채 화면을 보며 마정한의 연기를 기다렸다.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린 이한영의 얼굴근육이 조금씩 실룩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얼굴이 못생기게 찌그러지며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인다. 어떻게든 울음을 참으려고 눈이 실룩거리다가 산적 같이 두툼한 손으로 입틀막을 하는 마정한의 모습.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의 눈에 슬픔보다 웃음이 번진다.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큰 팔뚝으로 몰래 쓰윽 눈물을 훔치는 이한영. 그러면서 혼자 조용히 읊조리는 대사.


‘그러게 빨리 저승 가라니깐 왜 안 가냐고··· 으흐흐흑.’


마정한의 웃픈 대사에 방금 전까지 흐느끼던 희정의 입에서 풋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한영의 그 한 장면으로 슬픈 장면이 웃픈 장면으로 바뀌고 눈물이 가득하던 스태프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김욱 감독도 웃음을 참으며 간신히 소리쳤다.


“컷, 오케이! 아니··· 정한이 너는 이 작품에서 뭘 해도 그렇게 웃기냐? 아주 시청자들 울렸다가 웃겼다가 난리가 아니네. 너 배우보다 개그맨이 더 적성에 맞는 거 아냐?”


마정한도 감독과 스태프들의 반응에 어리둥절하다가 뒤늦게 내 의도를 알겠다는 듯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나 역시 배웠다. 대본을 재미있게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가 가진 잠재력을 어떻게 간파하고 잘 활용하느냐가 대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씬의 감정이 시청자들에게 오롯이 전달될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늘 외면 받던 내 감성이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는 셈이니까.


이어지는 씬은 나영찬의 영혼과 마정한, 혜정이 처음으로 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씬이다.


이수연이 어느새 핼쓱한 혜정의 모습으로 돌아가 감정을 잡고 있었다. 이수연의 단정한 얼굴에 처연한 눈빛. 시청자들은 이수연의 모습만 봐도 손을 잡아주고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야만 하는 씬이다.

.


“레디~ 액션!”


큐사인과 함께 몽글빵집의 방울소리가 울리고 초췌한 모습의 혜정과 진호가 빵집으로 들어선다. 화장기하나 없는 이수연의 창백한 얼굴과 생기 없는 눈빛이 화면에 하나 가득 잡히고. 제빵실에 있던 이한영이 밖으로 나오며 대사를 한다.


“어서 오세···.”


혜정이 가볍게 목례를 하면···

이한영, 혜정과 진호인 걸 확인하고 다시 목을 가다듬고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혜정, 진호에게 말한다.


“아저씨한테 인사 안 해?”

“안녕하세요.”


진호가 인사를 하면 그 소리를 듣고 제빵실에 있던 나영찬이 뛰쳐나온다. 눈앞에 혜정과 지호를 보고는 울컥하는 나영찬의 영혼.


“여보··· 진호야···”


해영과 진호가 같이 빵을 고르면 이한영이 빵을 하나 더 집어 봉투에 넣으며 말한다.


“서비스예요.”


혜정, 희미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고 빵 집을 나가는 해영과 진호.

그런 세 사람의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나영찬의 영혼.


“컷, 오케이!”


나쁘지 않은 컷이다. 근데 그 순간 다시 엄습하는 불안감. 찾아야만 하는 퍼즐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시스템의 확신이 느껴진다. 그렇지 않아도 이 장면을 쓸 때 어딘지 모르게 밋밋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감독과 배우들이 다음 씬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대본을 펼쳐서 다시 읽었다.


제빵실에서 먹먹하게 고조된 감정이 혜정과 진호가 등장한 다음 장면으로 인해 오히려 희석되는 느낌이랄까.


‘여기서 제빵실의 그 고조된 감정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해. 분명히 그런 식으로 감정을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옆에서 희정이 내 눈치를 보며 걱정스럽게 울었다.


“오빠 왜? 뭐 잘못됐어?”

“그게 아니라··· 방금 그 씬 다시 찍어야 할 것 같아.”


내 말에 희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다시 찍는다고?”

“지금 감독님하고 배우 분들한테 가서 잠시 대기 좀 해달라고 전해줄래? 내가 지금 바로 대본 수정할 테니까 수정 대본보고 재촬영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전해줘. 특히 감독님 기분 나쁘지 않게.”

“아, 알았어.”


얼굴이 하얗게 질린 희정이 김욱 감독에게 달려가는 걸 보며 나는 바로 노트북을 꺼냈다. 현장에서 촬영이 끝난 씬을 작가가 재촬영을 요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상당히 조심해야만 한다.


배우는 물론이고 감독한테 대단히 무례한 요구가 되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나빠지지 않으려면 그 말은 이번에 내가 수정하는 대본의 내용이 이전보다 월등히 좋아야만 한다.


희정이 김욱 감독에게 내 이야기를 전달했다. 김옥 감독은 물론이고 배우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두들기는 날 바라봤다.


“이 씬에 뭐 특별하게 나올 게 있나?”


김욱 감독의 중얼거림에 마정한이 동의했다.


“그러게요. 세 사람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것만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 누구도 불평을 하거나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동안 허동수 작가가 했던 일 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나영찬의 영혼에 피 분장을 시킨 것도 현장에서 급하게 대본을 고친 결과였고.


그래서인지 다들 기분 나쁘기보다는 오히려 이번엔 또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올지 호기심을 품고 대본을 기다리는 분위기.

송현우가 말했다.


“전 뭐가 나올지 설레는데요? 사실 작가님 스타일상 다른 씬에 비해서 이번 씬이 밋밋하다고 느끼긴 할 것 같아요.”


감독을 비롯한 배우와 모든 스태프들이 일시 정지 상태로 내 대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노트북을 두드리는 날 주시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은 대본을 쓰면서 미래 영상을 볼 수도 없었다. 그저 나만의 판단과 감으로 쓰는 수밖에.


‘난 예전의 허동수가 아니야. 날 믿어야 해. 지금 수정한 대본이 이전의 대본보다 훨씬 재미 있을 거야. 수많은 미래영상을 보며 남들이 몇 년은 걸렸을 시행착오를 난 짧은 시간에 거친 셈이니까.’


무엇보다 지금 수정하는 대본은 제빵실에서 고조된 감정을 계속 끌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장면 이어야만 한다.

마침내 수정이 끝나고 희정이 급하게 인쇄를 해서 배우와 감독에게 쪽지대본을 돌렸다. 다들 수정된 대본을 보느라 어수선하던 현장분위기가 순간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조용해졌다.


나는 긴장한 채 대본을 읽는 배우와 감독 스태프들의 표정을 살폈다. 이윽고 옆에서 대본을 읽은 희정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수정한 게 백배는 더 좋은데?”


그 순간 처음으로 희정을 보조작가로 기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김욱 감독이 고개를 드는데 역시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허 작가. 이게 훨씬 나아. 아주 좋은데? 이 장면이 들어가면 앞으로 이한영이 혜정을 도와주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러워질 것 같아.”


이수연도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작가님. 이 장면 너무 좋아요.”


송현우도, 마정한도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무겁게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이윽고 나영찬의 영혼이 제빵실에서 나오는 장면부터 내가 수정한 대본으로 재촬영이 시작됐다.


“씬32의 4에 7!”

“레디~ 액션!”


빵집에 들어선 혜정이 진호에게 말한다.


“아저씨한테 인사 안 해?”

“안녕하세요.”


진호가 인사를 하면 그 소리를 듣고 제빵실에 있던 나영찬이 뛰쳐나온다. 눈앞에 혜정과 지호를 보고는 울컥하는 나영찬의 영혼.


“여보··· 진호야···”


원래 대본은 여기서 혜정과 진호가 빵을 사서 나가며 끝나지만 수정 대본은··· 혜정과 진호가 빵을 고르면 나영찬의 영혼이 이한영의 옆으로 가서 속삭인다.


“앞으로 진호 혼자 학교 운동장에 축구 하러 보내지 말라고 우리 집사람한테 얘기 좀 전해줘요. 저 녀석 지 엄마한테 맞은 얘기도 안하고 어제 혼자 울면서 잤거든요.”


이한영이 황당한듯 속삭인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내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해요? 괜히 귀신 보는 사람으로 소문나면 우리 빵집 아무도 안 와요.”


이한영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혜정이 의아하게 돌아본다. 이한영이 히죽 웃으면서 딴전을 피우면··· 초조하게 고민하던 나영찬이 말한다.


“봤다고 하면 되잖아요. 우연히 학교 운동장에 갔다가 진호가 공 뺐겨서 우는 거···”


이한영이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면 나영찬이 애원하며 말한다.


“제발 부탁할게요. 말 한 마디만 전해주면 되잖아요. VIP 단골이라며?”


사실 처음에 대본을 쓸 때도 이한영이 혜정을 도와줄 수밖에 없는 그런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싶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근데 현장에서 이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이한영이 고민하다가 혜정의 옆으로 가서 조용히 말한다.


“저기 잠깐 얘기 좀···”


혜정, 의아하게 보면··· 이한영이 진호가 듣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대사를 한다.


“실은 제가 그저께 학교 운동장에 갔다가··· 5학년 녀석들이 진호 축구공을 빼앗아서 노는 걸 봤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진호 혼자 학교 운동장에 보내지 마세요.”


혜정, 놀라서 진호를 돌아보고 눈물을 글썽거린다.


“진호 아빠가 있을 때는 아빠가 항상 같이 가서 놀아줬는데··· 진호는 축구를 좋아해서 그 시간을 제일 좋아하고 기다렸거든요. 근데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앞으로 축구도 못하게 되면 진호가 많이 실망할 텐데···”


이한영, 이제 됐냐는 듯 나영찬의 눈치를 본다. 그런 이한영에게 뭔가를 바라는 듯 애달픈 눈빛을 보내는 나영찬의 영혼. 나영찬의 눈빛은 그야말로 이한영이 뭔가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진다.


“아··· 그, 그럼 제가 일요일 오후에 빵집문을 일찍 닫으니까 진호하고 같이 가서 놀아주면 어떨까요?”

“네?”

“아니··· 사실 저도 축구 좋아하는데 딱히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이한영의 대사에 몇몇 스태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혜정이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정말 축구 파트너가 필요해서 그러신 거예요?”

“아네. 제가 친구가 없거든요.”


다소 황당하게 보던 혜정이 어색하게 대답한다.


“그, 그럼··· 잠시만요.”


혜정이 진호를 돌아보고 말한다.


“진호야. 앞으로 일요일 날 이 아저씨하고 같이 축구할래?”

“아저씨하고? 왜?”

“응. 이 아저씨가 축구를 좋아하는데 친구가 없어서 함께 할 사람이 없대.”


순간 몇몇 스태프가 웃음을 참느라 급하게 입틀막을 했다. 진호가 어색하게 웃고 있는 이한영을 물끄러미 보다가···


“음··· 알았어.”


진호가 대답하면 싱글벙글 웃으며 이한영을 향해 엄지척을 하는 나영찬의 영혼.

나영찬을 째려보다가 다시 진호를 보고 어색하게 웃는 이한영의 얼굴에서···


“컷, 오케이!”


김욱 감독의 큐사인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허공에 그 의문의 메시지가 다시 나타났다.


[최종 시청률 27%가 유지됩니다. 최종 시청률 27%를 달성한 후 귀기 100을 모으면 새로운 능력이 발현됩니다.]


메시지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시청률 27% 유지될 모양.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능력에 대한 궁금증.


‘대체 뭘까?’


그때 이한영이 다가오더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작가님, 이한영은 대체 왜 친구가 없는 거예요?”

“글쎄요. 저도 방금 떠올린 아이디어라서··· 이한영한테 친구가 왜 없는지 앞으로 고민 좀 해 볼게요. 흐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퇴마하는 작가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죄송합니다. 4월 1일 연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5 24.03.29 301 0 -
공지 <휴재안내> 66화부터는 4월1일 연재합니다. +1 24.03.15 215 0 -
공지 앞으로 연재시간이 저녁 7시(19시)로 변경됩니다. +1 24.01.15 4,108 0 -
65 이한영의 과거 +8 24.03.15 1,215 64 12쪽
64 새로운 능력(2) +5 24.03.14 1,481 67 12쪽
63 새로운 능력(1) +4 24.03.13 1,567 62 12쪽
62 방송출연, 영혼탐정(3) +2 24.03.12 1,632 61 12쪽
61 방송출연, 영혼탐정(2) +3 24.03.11 1,687 60 13쪽
60 방송출연, 영혼탐정(1) +2 24.03.10 1,800 64 13쪽
59 시청률(3) +5 24.03.09 1,853 67 13쪽
» 시청률(2) +6 24.03.08 1,869 70 12쪽
57 시청률(1) +4 24.03.07 1,936 68 13쪽
56 첫 방송(3) +2 24.03.06 1,927 69 13쪽
55 첫 방송(2) +1 24.03.06 1,889 65 12쪽
54 첫 방송(1) +5 24.03.05 1,970 61 13쪽
53 제작발표회(2) +1 24.03.04 1,978 67 12쪽
52 제작발표회(1) +3 24.03.03 2,050 64 12쪽
51 크랭크인(2) 24.03.02 2,110 69 14쪽
50 크랭크인(1) +2 24.03.01 2,199 68 12쪽
49 몽글빵집의 혼령(2) +1 24.02.29 2,149 66 12쪽
48 몽글빵집의 혼령(1) +1 24.02.28 2,208 72 12쪽
47 몽글빵집 +12 24.02.27 2,282 68 12쪽
46 대본리딩(2) +2 24.02.26 2,319 69 13쪽
45 대본리딩(1) +4 24.02.25 2,400 70 15쪽
44 오디션(2) +6 24.02.24 2,393 66 12쪽
43 오디션(1) +1 24.02.23 2,407 70 13쪽
42 염매(2) +4 24.02.22 2,424 78 13쪽
41 염매(1) +4 24.02.21 2,580 77 13쪽
40 마지막 퍼즐(2) +2 24.02.20 2,629 75 12쪽
39 마지막 퍼즐(1) 24.02.19 2,703 7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