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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최근연재일 :
2024.03.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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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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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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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오디션(1)

DUMMY

드림온 본사 입구 개찰구에 출입카드를 갖다 대자 불이 들어오며 차단바가 열렸다.

오디션 장소는 드림온 본사 3층 C스튜디오.

3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C스튜디오로 가는데 대기실을 꽉 채운 지원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와, 진짜 많네. 장기태씨는 왔나?’


뒷문으로 들어가 지원자들을 살폈지만 뒷모습만 보고는 찾기가 어려웠다. 그때 연출부 FD가 대기실로 들어오더니 내게 말했다.


“지원자는 제자리에 가서 앉아주세요.”

“저는 지원자 아닙니다.”

“관계자 아니면 대기실에서 나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직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라 아는 스태프라고는 감독과 조감독 밖에 없다. 따라서 현장 진행하는 FD가 내 얼굴을 알아볼 리가 없다. 작가가 지원자 대기실에 나타날 리도 없고. 대기실을 나와 C스튜디오로 들어가자 김욱 감독과 대화를 나누던 조감독이 날 발견하고 인사했다.


“작가님 오셨어요?”


김욱 감독도 반갑게 손을 들었다.


“어서 와요, 허 작가.”


그제야 스튜디오에서 이런저런 오디션 준비를 하던 스태프들이 날 돌아봤다. 다들 작가가 누군지 궁금했던 모양. 나와 눈이 마주친 스태프들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나도 그들과 눈을 맞추며 반갑게 인사하고.

이전까지는 제작사 관계자들만 대하다가 현장의 스태프들과 오디션 지원자들을 보니 비로소 드라마가 제작된다는 실감이 났다. 조감독이 김욱 감독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작가님 여기로 앉으세요.”

“아네, 감사합니다.”


조감독이 안내한 자리에는 ‘허동수 작가님’이라는 이름표가 놓여있었고 책상 위에 음료수와 간식 그리고 오디션 지원자들의 지원서가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방금 대기실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한 FD가 스튜디오에 들어왔다가 작가 자리에 앉아있는 날 보고 당황하며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작가님인지 몰라 뵙고...”

“아닙니다. 오늘 초면인데 당연하죠.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책상에 쌓여 있는 지원자들의 프로필 서류들을 살폈다.


오늘 오디션으로 뽑을 배역은 조연과 단역들. 조연은 903호남편을 비롯해서 맨날 술판을 벌이며 영찬과 갈등을 일으키던 901호 남자, 영찬의 처제이자 아내인 혜영의 여동생, 영찬의 아들 진호의 담임선생님 등이고. 단역은 대사가 있어서 어느 정도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배역들이다.

김욱 감독은 워낙 꼼꼼해서 단역들도 직접 보고 꽤나 신경을 써서 뽑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역할도 모두 중요하지만 역시 내가 가장 신경 쓰는 역할은 역시나 903호 남편. 미래 내 인터뷰에서 중요 배역이라고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903호 아내 역할로는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한소진 배우가 확정이 됐기 때문에 남편 역할도 그만한 연기력을 받쳐줘야 한다.


애초에 김욱 감독은 903호남편 역할로 무난한 연기력을 보이는 조연전문 배우 강민수를 추천하며 내 의견을 물어봤다. 난 머릿속에 장기태라는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당연히 오디션으로 뽑자고 했다.


김욱 감독은 잠시 고민하다가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 903호남편은 조연이라서 감독이 그냥 추천해서 밀어붙여도 될 텐데 굳이 내 의견을 물은 이유는 캐스팅 과정에서 내가 보여준 안목 덕분이다.


내가 송현우 배우를 캐스팅했고 이한영 역할에 마정한 배우도 추천했으니, 송현우 배우는 다들 캐스팅이 불가능하다며 기대도 하지 않았고 마정한도 이한영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다들 반대했던 배역.


하지만 칩거하던 송현우를 캐스팅하면서 대한민국 연예계가 들썩였고 마정한 역시 오디션에서 코믹한 연기로 기존의 이미지를 뒤집으면서 제작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배우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스토리보드를 작성할 때도 김욱 감독이 고심하는 씬에 대해 내가 몇 차례 의견을 냈는데 그 부분의 반응도 좋았다. 근데 사실 그 부분은 김욱 감독이 내 의견을 받아들이는 게 당연했다. 내가 봤던 미래 영상이 김욱 감독이 연출한 영상이고 난 그 영상을 보고 낸 의견이니까.


이후로 김욱 감독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내 의견을 먼저 물어봤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작품에 대해 고집이 세기로 유명한 감독이라 걱정을 했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 김욱 감독이 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면 난감한 상황이 생길 테니까.


근데 이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사소한 것까지 카톡으로 의견을 물어볼 정도로 나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 덕분에 시스템이 보여준 미래영상에 가장 가까운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생겼다.

김욱 감독이 넌지시 말했다.


“작가님이 잘 봐야 해요. 나보다 안목이 좋은 거 같으니까.”

“아닙니다, 감독님. 전 903호남편 역할만 신경 써서 보겠습니다. 나머지 배역은 무조건 감독님 의견에 따를 게요.”

“음··· 작가님은 903호남편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네요. 아니면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비중이 커질 예정인가요?”

“뭐랄까. 저희 드라마가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흐르지 않도록 밸런스를 잡아주는데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늘 작가님 마음에 쏙 드는 그런 배우가 나타나면 좋겠군요.”


김욱 감독이 웃으며 프로필을 뒤적였다. 나도 책상 위 배우 프로필을 살펴봤다. 프로필은 조연부문 지원자와 단역부문 지원자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조연부문보다는 단역부분의 지원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

나는 조연부문 지원자의 프로필을 먼저 살펴봤다.


‘장기태씨 프로필이 없네. 그럼 단역 부문으로 지원한 건가? 설마 접수를 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


*


장기태는 대기실에 앉아있는 지원자들을 둘러봤다.


‘지원자가 진짜 많네. 가만··· 저 사람은 조광훈 배우잖아.’


조광훈은 꽤나 얼굴이 알려진 조연 전문배우. 그래서인지 주위 다른 지원자들이 말을 걸거나 사인을 받기도 했다.


‘저긴 김혜나 배우 아닌가?’


대기실에 얼굴이 알려진 기존의 조연 배우가 몇 명이나 눈에 띄었다. 보통 오디션장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풍경. 아무래도 이번 오디션에서 뽑는 조연과 단역의 수가 많아서 그런 모양.

FD가 들어와서 번호를 부를 때마다 지원자들이 따라 나갔다.


‘너무 튀는 연기는 하지 말자. 내가 인상이 너무 강한 데다 튀는 연기를 하면 주조연들 연기의 몰입을 방해한다고 떨어트릴 수 있으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연기를 못 보여준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가게에서 혼자 일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도 이번엔 꼭 붙고 싶었다. 운이 따라준다면 송현우 배우와 같은 화면에서 연기하는 행운이 올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떡볶이 가게 벽면에 송현우 배우와 한 앵글에 잡힌 사진을 붙일 수 있다. 가게 벽면에 사진을 붙이며 좋아하는 아내와 딸의 모습을 생각하자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렇게 한참 더 시간이 흘렀을 때 FD가 들어와서 번호를 불렀다.


“56번 장기태씨?”

“네. 여기 있습니다.”


장기태가 벌떡 일어나 대기실을 나갔다. FD를 따라 오디션장인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앞선 번호의 지원자 연기가 끝나지 않았는지 잠시 대기하는 동안 조감독이 쪽대본을 건넸다.


‘어? 대본도 있어? 단역 오디션에서는 대부분 자유연기를 해서 대본을 주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지정연기를 하는 건가?’


장기태는 작은 쪽대본을 소중하게 받아 들었다. 대본을 보고 지정연기를 한다는 생각을 하자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 꿈틀거렸다.


‘아니야. 단역은 튀는 연기하면 안 돼.’


대본의 내용을 확인했다. 내용이 워낙 짧아서 전체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아파트 소음 때문에 싸우는 장면인 듯했다.


아파트 901호남자’가 술에 취한 소리로 대사를 한다.


<뭐? 옆동 403호? 야! 옆동 403 호에서 내 소리가 들린다고? 장난하냐?>


장기태가 해야 하는 지정연기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903호친구1’의 대사 한 줄이다. ‘술에 취해 혀꼬부라진 소리로 한다’라는 지문이 달려있는 대사.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얘 친구야, 친구··· 쓰벌~>


장기태는 대본의 상황을 떠올리며 대사를 조용히 읊조렸다. 한 줄 대사가 쉬운 것 같지만 촬영현장에서 저 한 줄 대사를 하지 못하고 계속 엔지를 내는 단역들이 수없이 많다.

대사가 주어진다는 건 극히 짧은 순간이라도 카메라가 자신을 비춘다는 얘기고 감독과 모든 스태프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얘기다. 그 순간만큼은 주연배우와 다름없이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기에 단역배우들은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장기태는 그런 긴장을 오히려 즐겼다. 덕분에 단역이 너무 튄다는 지적을 받곤 하지만. 장기태는 대사를 읊조리면서도 과하게 연기하지 말자고 다시 한번 스스로를 다독였다.


‘자연스럽게··· 과하지 않게···’


먼저 들어갔던 지원자가 나오자 FD가 말했다.


“장기태씨 들어가시죠.”


심장이 두근거렸고 스튜디오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책상에 앉아서 심사를 보는 관계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장 중심에 앉아있는 사람의 책상에 ‘감독 김욱’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고 옆 책상에는 ‘작가 허동수’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장기태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감독하고만 겨우 눈을 맞췄다.

김욱 감독이 물었다.


“장기태씨 대본 받았죠?”

“네.”

“술 취한 취객 역할을 많이 하셨다고 프로필에 적혀 있는데 잘 하실 수 있겠어요?”

“네, 해보겠습니다.”


조감독이 상황에 대한 보충설명을 했다.


“901호 남자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902호에서 항의가 들어와 실랑이하는 장면입니다. 제가 지문과 대사를 할 테니까 ‘903호친구1’ 대사를 해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장기태는 대본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며 서서히 자신을 취객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조감독이 지문을 읽고 903호남자의 대사를 했다.


“아파트 903호남자’가 술에 취한 소리로 대사를 한다. 뭐? 옆동 403호? 야! 옆동 403 호에서 내 소리가 들린다고? 장난하냐?’


조감독의 대사가 끝나자 장기태가 비틀거리며 혀꼬부라진 음성으로 삿대질까지 하며 대사를 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꺼억··· 얘 친구야, 친구··· 쓰벌~”


대사를 마친 장기태가 얼른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과하지 않게 연기를 하자고 그토록 자신을 다독였지만 저도 모르게 ‘꺼억’하는 술 취한 애드리브를 넣고 말았다. 사실 애드리브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긴 하지만 감독들은 단역의 경우 토씨 하나 다르게 하는 것도 대단히 싫어한다.


‘그렇게 조심하자고 다짐해 놓고 왜 연기만 들어가면 오버를 하냐고? 하아··· 아무래도 이번에도 틀린 것 같아. 아내가 송현우 배우 좋아하는데다 이번엔 행운이 따르는 것 같다고 많이 기대하고 있을 텐데···’


장기태는 절망적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관계자들이 무슨 상의를 하는 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이어서 감독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감독님. 장기태씨한테 903호남편 역할 있는 대본 있죠? 그 대본 한번 줘보시겠어요?”


다른 대본을 준다는 소리에 장기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보통은 단역한테 수고했다는 한 마디하고 내보내는 게 일반적인데. 다른 대본을 갖다 주라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장기태씨?”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던 장기태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 저 사람 어제···’


어제 이야기숲 카페에서 오디션에 지원해보라고 정보를 줬던 그 남자가 눈앞에 앉아있었다. 놀랍게도 그 남자의 책상에 ‘작가 허동수’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설마 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사랑>을 집필한 허동수 작가님이라고?’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 허동수 작가가 왜 본 적도 없는 단역 배우인 자신에게 오디션에 지원하라는 얘기를 했는지. 그리고 왜 지금 다른 대본을 갖다 주라고 하는지 모든 게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조감독이 새로운 대본을 갖다 줬다. 근데 이번 대본은 쪽대본이 아니다. 표지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고 제목이 인쇄된 두께가 있는 정식 대본이다. 지금까지 단역을 하면서 정식 대본을 받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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