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최근연재일 :
2024.03.15 19:00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181,384
추천수 :
4,750
글자수 :
371,835

작성
24.02.27 19:00
조회
2,281
추천
68
글자
12쪽

몽글빵집

DUMMY

3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본리딩이 끝났을 때 감독은 물론이고 배우들의 표정도 한껏 밝아져 있었다. 대본 리딩을 시작하기 전만해도 <과거의 문> 제작발표회에 기자가 200명이 넘게 참석했고 하연수가 미친 연기를 보였다는 소식에 표정이 어둡던 조혜린 실장.

이전과 달리 환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배우들 연기하는 거 보니까 너무 재밌어요, 작가님. 오프닝부터 남주 죽이고 시작하는 드라마는 우리 밖에 없을 걸요? 최단시간에 남주 죽이기 뭐 그런 기네스 기록 없나요? 호호.”

“오프닝은 일단 시청자들이 새로운 드라마를 보고 채널을 돌리지 않도록 빠르게 관심을 잡는 걸 목표로 했습니다.”


나도 새로운 드라마를 볼 때 초반 2, 3분을 보고 계속 볼지 말지 판단한다. 근데 오프닝을 쓸 때 그런 사실을 잊었다. 그래서 나영찬이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부터 오프닝을 시작하는 걸로 극본을 쓰고 영상을 봤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영상을 보니 확실히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난 미래영상을 보면서 늘어지는 부분을 계속 잘라냈고 결국 지금의 버전이 됐다. 만약 귀기가 없었으면 오프닝이 지금처럼 빠르게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맞아요. 요즘 시청자들은 진짜 2, 3분도 기다려 주지 않더라고요. 오늘 배우들이 대본 리딩하는 모습 보니까 코믹한 재미도 있고 안타까운 감정도 있어서 충분히 시청자들이 재미있게 볼 것 같아요. <과거의 문>하고 붙어도 우리 드라마만의 장점을 확실히 어필할 수 있을 것 같고.”


이 분야 전문가인 조예린 실장의 표정에 비로소 자신감이 묻어났다. 리딩을 끝낸 배우들이 다가와 저마다 내게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송현우가 걸어왔다.


“배우님··· 고생하셨어요.”

“대본이 재미있어서 연기하는데 저절로 흥이 나네요.”


사실 대본상으로 초반부는 나영찬보다 빵집 사장 이한영의 캐릭터가 더 인상적이고 매력적이다. 송현우가 이한영 역할을 하고 싶어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 근데 오늘 리딩 현장을 보니 한류스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현장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송현우는 완벽한 연기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송현우의 절절한 연기와 마정한의 코믹스러운 연기가 어우러진다면 예지력이 보여준 27%의 시청률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저기 배우님··· 앞으로 작가님 대신해서 연락 주고 받을 수 있게 휴대폰 번호 좀···”


갑자기 훅 들어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허희정.


‘와, 아무리 내 동생이지만 대단하다. 옆에 서서 송현우 배우 번호 물어볼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모양이네. 하긴 앞으로 보조작가로 써먹으려면 저 정도 순발력은 필요하지.’


송현우가 희정에게 연락처를 알려주며 얘기를 나누는 사이 김욱 감독이 다가왔다. 김욱 감독 역시 대본 리딩 결과가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느낌 좋아요, 작가님. 장기태도 학교 때 연극무대에 몇 번 섰다고 하더니 오늘 보니까 연기를 꽤 잘하는 친구 같아요.”

“네, 저도 표정이 너무 웃겨서 몇 번이나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것 좀 봐줘요.”


김욱 감독이 서류봉투에서 사진을 몇 장 꺼내서 보여줬다.


“이거 우리 로케이션 디렉터가 수십 일 동안 전국을 뒤져서 찾아낸 몽글빵집 사진이에요. 허 작가가 생각하던 분위기가 맞는지 봐봐요.”


그렇지 않아도 몽골빵집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던 차였다. 몽글빵집의 예쁜 외부와 내부 모습은 우락부락한 마정한의 이미지를 희석시켜서 츤데레의 반전 이미지로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근데 김욱 감독이 보여준 사진들은 내가 영상에서 봤던 몽글빵집과 전혀 다른 이미지.


‘뭐야? 이건 내가 미래영상에서 봤던 그 몽골빵집이 아닌데?’


나는 영상에서 봤던 몽골빵집과 최대한 비슷하게 빵집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제작진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제작진이 내 그림을 보면 영상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몽글빵집을 찾아줄 것이라 믿었다. 왜냐하면 내가 본 영상은 앞으로 제작진이 제작하게 될 미래의 영상이었으니까.


‘근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더욱 문제는 제작진이 찾은 빵집을 아무리 인테리어를 해서 리모델링 수준으로 바꾼다고 해도 구조부터가 달라 미래영상 속 몽글빵집이 될 수가 없다는 점이다.


‘확실해. 이 빵집이 아니야. 그렇다면 미래영상에 나오는 몽글빵집은 실재하는 빵집이 아니라 세트로 만든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림 실력도 별로인 내가 아무리 자세하게 그림을 그려서 설명한다고 해도 제작진이 영상 속 몽글빵집과 똑같은 세트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제 곧 크랭크인인데 어떡하지? 그냥 제작진이 찾은 빵집에서 촬영을 해야 하나?’


나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주 사소한 차이라도 미래 영상과 달라지는 변수는 줄여야만 한다. 게다가 드라마의 주무대인 몽글빵집이 다른 빵집이 된다는 건 절대 사소한 차이가 아니다. 마정한의 매력은 예쁘고 아기자기한 몽글빵집에서 극대화된다.


확실한 건 영상 속 몽글빵집이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 그랬으니까 미래영상에 등장했을 테고.


‘그럼 어떻게든 찾아야지.’


“감독님. 저는 이한영의 반전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몽골빵집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험악한 인상에 근육질의 마정한이 아기자기하고 예쁜 빵집에서 케이크와 달콤한 빵을 만드는 모습 자체가 재미를 주니까.”

“네, 맞습니다. 근데 여기 이 빵집은 제가 생각하던 그런 아기자기하게 예쁜 이미지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한번 다른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허 작가가 직접 빵집을 찾아보겠단 말인가요?”

“네.”

“음··· 우리가 시간이 워낙 촉박한 건 알고 있죠?”

“네, 알고 있습니다. 저한테 딱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김욱 감독이 입을 반쯤 벌렸다가 다물었다.


“방금 하루라고 했습니까?”

“네, 하루요.”


시간을 하루만 달라는 내 말에 김옥 감독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국의 명소를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로케이션 디렉터도 십여 일에 걸쳐서 찾은 빵집을 하루만에 찾겠다고 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루라··· 솔직히 다른 사람이라면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무시했을 거요. 근데 허 작가가 그렇게 말을 하니 반대를 못하겠네. 지금까지 허 작가가 빈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네. 저도 하루를 넘기진 않겠습니다.”


김욱 감독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거 묘한 기대가 드는 걸? 허 작가가 정말로 하루 만에 우리 로케이션 디렉터가 찾은 빵집보다 더 좋은 빵집을 찾을 수 있을지. 허허.”


사실 나도 하루 만에 몽글빵집을 찾겠다는 확신이 있어서 시간을 달라는 건 아니다. 어쩌면 내가 봤던 미래 영상을 샅샅이 살펴보면 몽글빵집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난 송현우의 번호를 받고 대화까지 나눈 후 입이 귀밑까지 올라간 희정에게 급한 일이 생겨 먼저 가야 한다고 말했다.


“너는 일단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짐 정리해서 다시 올라와. 그동안 내가 너가 지낼 방을 구해 놓을 테니까.”


한껏 들뜬 희정이 갑자기 폴더인사를 하며 말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오라버니.”


누가 보면 메인 작가가 보조작가한테 갑질하는 줄 알겠네. 어쨌든 희정이한테 이런 대접을 받아 보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크랭크인까지 시간이 워낙 촉박한 관계로 나는 드림온 본사 건물 1층 커피숍으로 달려가 바로 대본을 펼쳤다. 대본을 읽는 척하면서 정신을 집중하자 눈앞에 미래영상이 펼쳐졌다.


‘헉. 이게 뭐야?’


며칠 전까지 만해도 인물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는데 지금은 조금 전 대본 리딩을 했던 배우들의 얼굴로 전부 바뀌어 있었다.


캐스팅된 배우들이 직접 등장에서 연기를 하는 놀라운 현상. 조금 전 대본 리딩 현장에서의 배우들 연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져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마정한 배우와 한소진, 장기태 배우의 코믹한 연기, 송현우 배우의 절규하는 연기까지.


‘와, 미쳤다. 재미있어. 대본 리딩 때도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완성된 드라마는 그것보다 훨씬 재밌어. 배역이 모두 확정이 되면 모자이크가 없어지고 완성된 드라마가 보여지는 모양이네. 물론 현장 변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완성된 드라마로 보니 화면을 화사하도록 만드는 예쁜 몽글빵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마정한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그저 빵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니까.

난 미래 영상 속에서 몽골빵집이 나오는 구간만 찾아서 반복해 살펴봤다.


‘몽골 빵집 간판에는 전화번호가 없네. 그럼 빵집 옆에 동네를 알 수 있는 가게 같은 게 나오는 장면이 있으면 좋은데.’


나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 몽골빵집 외관이 나오는 장면들만 계속 찾아보며 주변의 가게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빵집 주변에 있는 편의점 간판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걸 발견했다. 화면 상으로도 거리가 멀어서 글자가 흐릿하긴 하지만 어렴풋이 알아볼 정도는 된다.


“02로 시작하는 번호면 서울인데?”


난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제발...’


알바생인 것 같은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XX편의점입니다.]


편의점이란 소리에 난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전화번호가 편의점이 맞다면···


“저기 죄송한데요, 혹시 거기 편의점 옆에 모퉁이 돌아서 예쁜 빵집이 하나 있지 않나요?”


다소 생뚱 맞은 질문에 알바생이 귀찮은 듯 무뚝뚝하게 반문했다.


[빵집이요?]

“네. 편의점에서 왼쪽으로 가다가 모퉁이 돌면 있는 것 같은데. 인테리어를 아기자기하게 잘해 놓은 빵집이요.”

[그런 빵집이··· 하나 있긴 해요.]

“아, 정말요? 죄송한데 거기 주소가 어떻게 되는지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왜요?]


여차하면 귀찮다고 전화를 끊을 기세.

내가 재빨리 말했다.


“저희가 요번에 드라마 촬영하는데 거기 빵집이 예쁘다는 소문을 들어서 촬영 장소로 섭외를 하려구요.”


순간 알바생의 목소리가 확 달라졌다.


[드라마요? 무슨 드라만데요?]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휴대폰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캬악! 그 드라마 송현우 배우님이 출연하는 드라마죠?]

“아네··· 맞아요.”


역시 한류 배우는 드라마 안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다. 요즘엔 케이블에 웹드라마까지 워낙 많은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아직 방영하지 않은 드라마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드물다.

근데 <보이지 않는 사람>은 송현우 배우 덕분에 어딜 가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 말은 곧 드라마 1화를 시청하는 시청자가 그만큼 많을 것이란 얘기고 1화가 재미있으면 처음부터 높은 시청률로 출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 빵집에서 촬영하면 송현우 배우님도 오시나요?]

“만약 거기서 촬영한다면 가실 거예요.”

[아, 어떡해. 잠시만요, 제가 주소 알려 드릴게요.]


이전까지 무뚝뚝하게 굴던 알바생이 세상 친절한 목소리로 변했다. 게다가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달려나가는 기색. 잠시 후 알바생이 숨을 헐떡이며 빵집 주소를 불러줬다. 나는 알바생이 불러주는 주소를 받아 적었다.


“고마워요.”


내가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알바생이 급하게 물었다.


[촬영하러 언제 오는데요? 제가 주 3회 근무라서···]

“죄송합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난 재빨리 전화를 끊은 후 바로 택시를 불렀다. 빵집의 위치는 서울 외곽의 주택가. 목적지에 도착해 택시를 내렸다. 앞쪽에 아까 통화한 편의점이 보였고 모퉁이를 돌자마자 눈앞에 ‘몽글빵집’이 나타났다.

그냥 미래 드라마에서 봤던 몽글빵집과 비슷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완전히 똑같은 빵집이 눈앞에 나타났다.


‘와~ 드라마에서 봤던 빵집하고 완전 똑같아. 미술팀이 아예 손을 대지 않은 모양이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퇴마하는 작가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죄송합니다. 4월 1일 연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5 24.03.29 299 0 -
공지 <휴재안내> 66화부터는 4월1일 연재합니다. +1 24.03.15 215 0 -
공지 앞으로 연재시간이 저녁 7시(19시)로 변경됩니다. +1 24.01.15 4,107 0 -
65 이한영의 과거 +8 24.03.15 1,215 64 12쪽
64 새로운 능력(2) +5 24.03.14 1,480 67 12쪽
63 새로운 능력(1) +4 24.03.13 1,566 62 12쪽
62 방송출연, 영혼탐정(3) +2 24.03.12 1,632 61 12쪽
61 방송출연, 영혼탐정(2) +3 24.03.11 1,687 60 13쪽
60 방송출연, 영혼탐정(1) +2 24.03.10 1,799 64 13쪽
59 시청률(3) +5 24.03.09 1,852 67 13쪽
58 시청률(2) +6 24.03.08 1,868 70 12쪽
57 시청률(1) +4 24.03.07 1,935 68 13쪽
56 첫 방송(3) +2 24.03.06 1,926 69 13쪽
55 첫 방송(2) +1 24.03.06 1,889 65 12쪽
54 첫 방송(1) +5 24.03.05 1,970 61 13쪽
53 제작발표회(2) +1 24.03.04 1,977 67 12쪽
52 제작발표회(1) +3 24.03.03 2,049 64 12쪽
51 크랭크인(2) 24.03.02 2,109 69 14쪽
50 크랭크인(1) +2 24.03.01 2,198 68 12쪽
49 몽글빵집의 혼령(2) +1 24.02.29 2,148 66 12쪽
48 몽글빵집의 혼령(1) +1 24.02.28 2,207 72 12쪽
» 몽글빵집 +12 24.02.27 2,282 68 12쪽
46 대본리딩(2) +2 24.02.26 2,318 69 13쪽
45 대본리딩(1) +4 24.02.25 2,399 70 15쪽
44 오디션(2) +6 24.02.24 2,392 66 12쪽
43 오디션(1) +1 24.02.23 2,406 70 13쪽
42 염매(2) +4 24.02.22 2,423 78 13쪽
41 염매(1) +4 24.02.21 2,579 77 13쪽
40 마지막 퍼즐(2) +2 24.02.20 2,628 75 12쪽
39 마지막 퍼즐(1) 24.02.19 2,702 7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