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퍼즐(2)
장기태의 말에 아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뭔 소리야? <보이지 않는 사랑> 오디션 지원은 어제 마감 됐잖아.”
“아냐. 지원하면 오디션 볼 수 있게 해준다고 했어.”
“누가?”
“오디션 관계자가.”
장기태의 말에 아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디션 관계자라니. 당신이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알아?”
“그게 아니라···”
장기태는 오늘 카페에서 남자를 만난 얘기를 아내에게 들려줬다.
“진짜? 노트북으로 극본 쓰고 있었으면 혹시··· 작가님 아냐?”
“작가님은 절대 아냐. 작가님이 나 같은 단역배우한테 뭐 하러 관심을 가져?”
“그렇긴 한데 아무리 관계자라고 해도 마감시한이 지났는데 오디션을 보게 해줄까? 당신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렇긴 하지. 날 알지도 못하고 내 연기를 본 적도 없을 텐데. 사실 나도 별로 믿기지는 않는데 혹시 모르니까 일단 지원서 접수는 해보려고. 접수가 되는지 확인해보면 되지.”
장기태는 가게에 있는 컴퓨터를 켜서 바로 오디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보통 마감이 되면 지원날짜가 지났다는 공지가 뜨거나 홈페이지 접속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근데···
“어? 접속되는데?”
“진짜 되네? 혹시 지원자가 적어서 마감을 안 시킨 거 아냐?”
“뭔 소리야? 송현우 배우님 복귀작인데. 내가 아는 사람들도 전부 여기 다 지원했어. 아마 경쟁률 엄청날 걸?”
“하긴 그렇겠지?”
<보이지 않는 사랑> 오디션은 우편과 온라인 모두 지원이 가능했다. 장기태는 지원 양식을 다운 받아서 능숙하게 작성했다. 단역배우로 살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작성한 오디션 지원서가 몇 개인지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조연’과 ‘단역’이라는 지원 구분에는 당연히 ‘단역’에 표기했다. 보통 오디션에서 뽑는 단역은 몇 마디라도 대사가 있는 단역을 말한다.
컴퓨터에 저장된 프로필 사진까지 첨부한 후 지원서제출을 클릭했다. 원서가 접수됐다는 메시지와 함께 오디션 일정에 대한 팝업이 떴다.
일시는 내일 오후 1시.
장소는 드림온 본사 3층 C스튜디오.
아내가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진짜 접수됐어.”
장기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그래. 떨어지더라도 오디션이나 보고 떨어지면 한이 남지 않을 것 같아.”
“근데 그 관계자라는 사람 누군지 너무 궁금하다. 그 분 아니었으면 오디션도 못 볼 뻔했잖아.”
“그러게. 처음 얘기 들었을 때는 실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겼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감사인사라도 드리게 연락처라도 받아 놓을 걸.”
“혹시 내일 오디션 장에서 만날 수도 있잖아. 그때 만나면 꼭 고맙다고 인사드려. 아무리 관계자라고 해도 단역배우를 그렇게 챙겨주는 게 보통 일이야?”
“당연히 그래야지.”
*
장기태가 떠난 후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랑> 9화 집필을 마치고 노트북을 접었다.
‘카페에 너무 오래 있는 것도 민폐니까 10화는 옥탑방에 가서 써야겠다.’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카페를 나서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지이이잉~
‘어? 낯선 번호네.’
예전에 인간관계가 단순할 때는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오면 받지 않았다. 전화의 99%가 광고성 스팸 전화였으니까. 전화를 받지 않아도 필요한 연락인 경우에는 어차피 상대가 문자나 카톡으로 다시 연락을 한다. 근데 지금은 갑자기 인간관계가 넓어져서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여보세요?”
[작가님.]
휴대폰에서 옥구슬 굴러가는 것 같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연수 배우님?”
내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하연수가 밑도 끝도 없이 물었다.
[작가님 그거 왜 안 돼요?]
“그거라니 뭐요?”
[그거 있잖아요. 텔레파시처럼 작가님하고 마음으로 얘기하는 거요. 저 아까부터 작가님한테 계속 마음으로 말 걸고 있었는데 못 들으셨어요?]
“네에?”
내가 놀라서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하연수가 말했다.
[여기요. 11시 방향.]
하연수가 말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여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딱 봐도 하연수라는 걸 알아봤다. 옆에 스타일리스트와 매니저로 보이는 우람한 남자도 보이고.
‘내가 카페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전음은 내가 주술을 사용할 때만 작동하는 술법이다. 근데 하연수는 그게 아무 때나 되는 건 줄 알았던 모양.
“배우님. 그건 전음이라는 건데 전음은 제가 먼저 말을 걸었을 때만 작동하는 술법이에요.”
[정말 요? 그럼 지금 우리 전화 끊고 전음으로 말해봐요.]
“저기, 배우님··· 그 전음은 아무 때나 막 사용하면···”
뚝.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연수가 전화를 끊었다.
‘뭐야? 화면으로 보던 화려한 하연수하고 너무 다르잖아.’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하연수가 이런 일에 신이 나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할 줄은 미처 예상을 하지 못했다. 멀리서 하연수가 날 보고 어서 말을 걸라며 눈짓과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휴우. 어쩔 수가 없네.’
내가 전음을 떠올리자 서늘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았다.
‘말과 생각만으로 주술을 사용할 수가 있으니 확실히 편하긴 하네.’
나는 하연수를 바라보고 정신을 집중하며 말을 걸었다. 일단 내 전음이 하연수에게 도달하면 둘 사이에 텔레파시의 채널 같은 게 생겨서 그 다음부터는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가 있다.
[배우님, 내 얘기 들려요?]
기다렸다는 듯 한껏 들뜬 하연수의 전음이 들려왔다.
[꺄악! 작가님, 들려요, 들려! 작가님하고 전음으로 대화하니까 너무 신나요.]
하연수의 들뜬 마음이 그대로 내게 전해졌다. 확실히 전음으로 얘기를 주고받으면 육성으로 말할 때보다 더 솔직한 감정이 전해진다. 육성으로 말을 할 때는 상대의 감정까지 알기는 어려운데 전음은 감정까지 느낄 수가 있다.
지금 하연수한테서는 들뜬 어린아이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그에 반해 나는···
[작가님 지금 엄청 쑥스러워 하시는데 맞죠?]
아마 하연수도 육성으로 대화를 나눴다면 지금처럼 허물없이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오늘 촬영은 무사히 마쳤나요?]
[네. 모처럼 캐릭터에 완전 몰입해서 연기했어요. 지금 너무 신나요. 감독님하고 스태프들도 다들 예전 하연수로 돌아왔다고 칭찬해줘서 너무 행복해요.]
[아··· 다행이네요.]
[사실 이번 작품 하는 동안 악귀 때문에 집중을 못해서 너무 힘들었거든요. 우울하기도 하고. 근데 작가님 덕분에 다시 행복해졌어요. 곧 촬영 시작하는 <과거의 문>에선 더 즐겁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내가 대답이 없자 하연수가 얼른 다시 말했다.
[아, 맞다. <과거의 문>이 잘되면 작가님 작품이 힘들어질 수 있겠네요. 어떡하지?]
[너무 잘되게 하진 말고 적당히 잘되도록 해줘요.]
[어떡하죠? 난 연기를 적당히 하는 건 못하는데.]
하연수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얼른 덧붙였다.
[농담이에요, 농담. 그냥 최선을 다해서 멋진 연기 보여줘요.]
물론 진짜 백퍼센트 농담은 아니고 농담 반, 진담 반의 마음이긴 했지만. 사실 마음 같아서는 ‘적당히 잘한 연기’ 정도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거의 문>도 잘되고 <보이지 않는 사랑>도 잘되는 해피엔딩이면 좋지 않을까.
[아무튼 작가님한테 고맙다는 인사 꼭 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원래 이런 성격이라고 오해하진 말아요. 다른 사람이랑은 절대 이렇게 얘기 못해요. 근데 이상하게 작가님이랑 얘기하면 마음도 편하고 아무런 얘기나 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오빠 같은 느낌도 들고.]
‘헉, 오빠!’
하긴 하연수 나이가 스물 여섯인가 그랬으니까 내가 오빠는 맞다.
[작가님.]
[네, 말씀하세요.]
[앞으로 저한테 ‘배우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편하게 부르면 안 돼요? 그냥 연수야, 하고 부르면 저도 편할 것 같아요.]
하연수는 전음으로 느끼는 친근함 때문에 저렇게 마구 직진을 해오고 있지만 솔직히 난 좋으면서도 부담이 된다. 하연수가 그냥 오다가다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연수야는 너무 나간 것 같고 앞으로 배우님 대신 연수씨라고 부를 게요.]
[네, 좋아요. 근데 전음으로 말하는 거 진짜 너무 재밌어요. 옆에 스타일리스트나 매니저 오빠는 제가 이렇게 작가님하고 얘기하는 거 상상도 못하고 있어요. 앞으로 고민이 있을 때 연락해도 되죠?]
[뭐··· 그러시던가요.]
[아··· 좋아라. 제가 어릴 때부터 오빠 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빨리 작가님하고 친해져서 오빠라고 부르고 작가님은 연수야, 하고 불렀으면 좋겠다.]
그동안 악귀한테 시달리며 불안과 공포 속에 지내던 하연수다. 갑자기 공포가 사라지고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생기니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이 이해는 된다.
[저··· 이제 가야 할 것 같아요. 저녁식사라도 하고 싶은데 너무 아쉬워요. 정말 고마웠어요, 작가님.]
하연수가 웃으면서 이야기숲을 빠져나갔다.
‘와~ 들뜨고 좋아하는 모습이 꼭 십대 여학생 같네.’
*
집으로 오는 길에 예전에 알바했던 편의점에 들러 저녁으로 먹을 도시락을 샀다. 요즘 편의점 도시락은 맛도 있고 건강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퀄리티를 갖고 있다. 게다가 난 편의점 알바를 해서 어떤 도시락이 가장 맛있고 가성비가 좋은 지 안다.
삐빅~
내 후임으로 보이는 20대 여자 알바생이 바코트를 찍고 말했다.
“4900원입니다.”
난 카드로 결제하고 편의점을 나서며 인사했다.
“수고하세요.”
내가 알바할 때도 알바생한테 인사해주는 손님이 있으면 일하는 동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편의점이든 어디든 난 항상 가는 곳마다 인사하는 게 몸에 뱄다.
내가 싱글거리며 걸어가는데···
“작가님.”
돌아보니 이수연이 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으로 웃고 있었다.
“어, 수연씨. 잘 지냈어요?”
이수연이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작가님 덕분에요.”
그냥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건강한 웃음.
“내가 왜요?”
“작가님이 추천해 주셔서 제가 혜정 역할 맡게 됐잖아요. 저는 아직도 이게 꿈인지 실감이 나지 않아요.”
“혜정 역할은 저 뿐만 아니라 조 실장님도 수연씨를 1순위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가 추천하지 않았어도 실장님이 추천했을 걸요?”
“아무튼 이 모든 행운은 작가님 덕이에요. 작가님이 <보이지 않는 사랑>을 집필하셨고 혜정 캐릭터도 만들어 주셨잖아요. 작가님 근데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싱글벙글 막 웃으며 가시던데···”
“아··· 편의점에서 도시락 사서 가는 길이에요.
내가 도시락을 들어 보이자 이수연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저녁으로 편의점 도시락 드시는 거예요? 좀 맛있는 거 사서 드시지.”
“나한테는 이 정도면 충분히 맛있어요. 수연씨도 편의점?”
이수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연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참, 내일 조단역 오디션 보는 날 아닌가요?”
“맞아요. 좋은 배우들이 많이 지원했으면 좋겠어요.”
“전 903호남편을 어떤 배우님이 맡게 될지 제일 궁금해요.”
“903호 남편이요?”
허구 많은 조연 중에서 903호남편 역할 맡는 배우가 특별히 궁금한 이유가 뭘까.
“사실 전 작가님 극본 보면서 903호부부 등장하는 씬에서 엄청 웃었거든요. 나영찬이 혜정이하고 이한영을 이어주려고 하면 남의 속도 모르고 나타나서 훼방 놓는 903호부부의 모습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좋은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면 꽤 재미있는 장면들이 나올 것 같았어요.”
사실 대본을 쓴 후 만들어진 영상을 봤을 때 다른 파트에 비해 903호부부의 씬이 그렇게 재미있진 않았다. 근데 나중에 903호부부가 감칠맛나는 연기를 해줬다는 내 미래 인터뷰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903호 부부의 캐스팅을 잘해야겠다고.
이수연이 말을 이어갔다.
“사실 903호 아내는 한소진 배우님이 너무 잘하실 것 같은데 남편 역할은 어떤 배우분이 하실지 너무 궁금해요. 남편 역할도 내일 오디션에서 뽑는 건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사실은 제가 기대하고 있는 지원자가 있긴 해요.”
“어머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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