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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최근연재일 :
2024.03.15 19:00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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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71,835

작성
24.02.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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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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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몽글빵집의 혼령(2)

DUMMY

그때 머리 위에서 서늘한 기운과 함께 축축하면서 시커먼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으며 쏟아져 내렸다.


촤악!

“헉.”


순식간에 시야가 검은 머리카락으로 덮였고 숨이 막혀왔다.


‘호신강기.’


정신을 잃기 전 급하게 주문을 읊자 항마의 기운이 내 몸을 휘감으며 다행히 막혔던 숨이 토해져 나왔다.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할 뻔했어.’


축축한 머리카락은 내 얼굴을 뒤덮은 채 목까지 칭칭 감았다. 까칠까칠하면서도 축축한 머리카락의 감촉과 현재의 상황을 상상하니 소름이 끼쳤다. 호신강기가 아니었다면 공포로 먼저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다만 문제는 시야가 머리카락으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무기로 악귀를 공격할 수도 없다. 자칫하면 악귀보다 혜미 엄마가 다칠 수 있다. 머리카락 안에서 거꾸로 뒤집힌 붉은 동공 두 개가 나타났다. 핏빛의 동공이 두개가 눈앞에 둥둥 떠서 내 눈을 노려보며 속삭였다.


[너도 내 꿈을 부수려고 온 거지? 날 방해하면 누구든 죽여버릴 거야!]


나는 악귀의 머리카락이 온몸을 잡아당기는 힘에 의지하며 허공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만약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머리가 뽑힐 수도 있는 상황.


나는 허공에 뜬 상태로 불교의 석존 5인 중 하나인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맺은 후 단전 아래에서 영력을 끌어올렸다. 비록 시야는 보이지 않았지만 단전에서 올라온 영력이 수인을 맺은 손으로 옮아가는 걸 알 수 있었고 손끝에서 항마력이 파동이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차가운 불꽃이 튀는 것 같은 항마력의 파동에 주위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것도 느낄 수가 있었다.


"옴 이베이베 이뱌 마하 시리예 사바하"


관세음보살발절라수 진언을 읊자 손끝에서 파동을 일으키던 항마력이 부채살 모양의 빛이 되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화르르륵~

[키악!!!!]


괴성과 함께 얼굴을 휘감고 있던 악귀의 머리카락이 풀어졌다. 나는 머리카락에서 풀려나자마자 거의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하며 바닥에 착지해서 천정을 올려다봤다.


혜미 엄마가 천정에 네 발로 거꾸로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동공은 검은 귀기로 가득 찼고 얼굴에는 검은 실핏줄이 논바닥처럼 퍼져 있었다. 발과 다리는 천정에 붙어있고 머리는 아래로 향했는데 방금 내 얼굴을 휘감았던 긴 생머리가 허공에서 해파리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부동명왕의 견삭!’


주문과 함께 견삭이 손에 쥐어졌다.


화르륵~


팔을 휘두르자 견삭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거꾸로 매달린 혜미 엄마의 몸을 휘감았다.


“사바하!”


밧줄에서 노란 항마의 기운이 뿜어졌다.


[키악!!!]


혜미 엄마, 아니 황미정의 모습이 악귀의 모습으로 바뀌며 괴성이 터져 나왔다.


‘아직 악귀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아 모습이 분명하게 보이진 않네.’


확실한 건 악귀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혜미 엄마의 육신이 허공에 뜬 채로 견삭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악귀가 귀곡성으로 위협하듯 소리쳤다.


[키아아악! 우린 영원히 함께 할 거야! 우리의 행복을 깨트리지 마!]

“우리가 아니라 너의 행복이겠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넌 지금 황미정씨의 행복뿐만 아니라 이 가정의 행복을 빼앗고 있는 거야.”


견삭을 계속 잡아당기자 천정에 거꾸로 서있던 혜미 엄마의 몸이 서서히 뒤집어지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이제 육신에서 악귀를 끄집어내기 위해 혜미 엄마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악귀와 황미정의 기억을 읽기 위해 허공에 떠도는 귀기를 흡입한 후 말했다.


“전 혜미 아빠의 부탁을 받고 황미정씨를 도우려는 사람입니다. 황미정씨의 육신에서 악귀를 쫓아내려면 황미정씨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악귀가 황미정씨의 육신에 들어오던 순간을 기억해 보세요.”


혜미 엄마가 그 순간만 기억하면 내가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 악귀를 제거할 수 있다. 근데 조금 전 거칠고 칼칼한 악귀의 음성 대신 나지막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요. 난 이 아이와 헤어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했나요? 당신이 말한 가정의 행복속에 나의 행복은 없어요. 난 지금이 훨씬 행복해요. 그러니까 우릴 괴롭히지 말아요.”


목소리에 귀기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혜미 엄마 본인의 목소리다. 근데 악귀한테 빙의되어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니. 예상치 못한 답변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지금 당신은 악귀에게 몸과 생각을 지배당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그 생각은 당신 생각이 아니예요. 악귀가 당신한테 들어오던 순간을 기억해서 저한테 알려주시면···”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예요? 난 성희한테 지배당한 적도 없고 성희가 날 지배한 적도 없어요. 우린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고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이에요. 이 아이 잘못이 아니에요.”


혜미 엄마는 악귀를 마치 다정한 지인처럼 신뢰하고 있었다. 나도 지금 혜미 엄마의 말이 진짜 본인의 생각인지 악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지 혼란스러웠다.


‘혜미 엄마의 협조가 없으면 악귀를 분리하는 게 쉽지 않은데 가만, 조금 전에 혜미 엄마가 악귀의 이름을 말했던 것 같은데?’


만약 악귀의 이름을 알 수 있다면 악귀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악귀를 제령 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 함께 있는 영혼의 이름을 말씀해 줄 수 있으세요?”

“이 아이의 이름은 박성희예요.”


혜미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허공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악귀 정보가 파악되었습니다]

이름 : 박성희

성별 : 여성

이승 나이 : 20세(사망 당시)

영혼 나이 : 78개월 차

종류 : 지박령

사망보고서 : 연기자가 꿈이었던 박성희는 <화려한 밤의 시간>이라는 영화에서 김은우라는 역할로 오디션을 봐서 최종 합격하였다. 하지만 박성희는 명문대 진학을 원했던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강제로 집안에 갇히게 됐고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뭐야? 사망보고서를 읽는데 왜 다른 악귀 때와 달리 마음이 아프고 슬픔이 느껴지는 거지? 그리고... <화려한 밤의 시간>이면 김성태 감독님의 대표작이잖아? 나도 재미있게 본 영환데? 박성희가 김은우 역할로 최종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김은우 역할이면...’


내가 휴대폰으로 <화려한 밤의 시간>을 검색하려는데 혜미 엄마가 말했다.


“성희가 힘들어하니까 이 밧줄처럼 생긴 것 좀 풀어주면 안 되나요?”


지금까지 퇴마를 하면서 빙의자가 악귀를 걱정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럽긴 하지만... 견삭을 거둬들였다. 악귀를 풀어준다고 위험한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고 왠지 이번 악귀는 다른 악귀들과 달리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휴대폰으로 기사를 검색했다.

당시 박성희가 오디션을 봤던 영화 <화려한 밤의 시간>은 개봉 후 전국 관객 400만을 넘기며 김성태 감독의 대표작이 됐다. 그리고 어쩌면 박성희가 연기할 수도 있었던 김은우라는 조연급 배역은 정인혜라는 신인배우가 맡아서 연기했다.


기사를 읽던 내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가만... 정인혜? 지금 주연급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그 정인혜가 이 영화의 김은우 역할로 데뷔를 했다고?’


그 말은 곧 지박령이 된 박성희가 지금의 정인혜가 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좀 더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귀기를 흡입했다. 악귀의 정보를 파악했기에 귀기를 흡입하면 박성희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 박승희의 아픈 기억이 썰물처럼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아빠... 제발 하지 마! 나 오늘 감독님 미팅해야 해! 제발... 아빠!!!]


소리를 따라 주위를 둘러보니 박성희의 기억 속 장소는 다름 아닌 이 집의 1층 거실이다.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한 손에는 가위를 들고 다른 손에는 여고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여고생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팔짱을 낀 채 여고생을 향해 소리쳤다.


[전교 1등이 뭐가 아쉬워서 딴따라를 해? 미친 거 아냐?]


여고생이 울부짖었다.


[난 연영과 가서 엄마처럼 배우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한 거란 말야!]

[박성희! 너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친척들이 학자 집안에 연예인 들어와서 품격 떨어트린다고 엄마 무시하는 거 몰라?]


이번에는 아빠가 윽박질렀다.


[겨우 연예인 하라고 그렇게 공부시킨 줄 알아?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안 돼!]


박성희가 애원했다.


[내 인생이야. 제발 이러지 마. 요즘 연예인 꿈꾸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 오디션 합격해서 지금 감독님 만나러 가야 한단 말야!!! 으악! 하지 말라고!!!]


박성희의 울부짖음이 섬뜩하게 실내를 울렸지만 아빠는 가위로 애원하는 박성희의 긴 생머리를 삭둑삭둑 자르기 시작했다. 박성희의 눈앞으로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무자비하게 잘려나갔다.

잘려나가는 자신의 소중한 머리카락, 아니 꿈을 바라보며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박성희의 고통과 절망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박성희의 아빠와 엄마는 머리를 자른 후 처절하게 울부짖는 박성희를 억지로 방에 던져놓고 열쇠로 문을 잠갔다. 그 방이 바로 지금 혜미 엄마가 들어가 있는 드레스룸이었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잘려나간 박성희는 방안에 갇힌 채 넋이 나간 것처럼 몇 시간이고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리고 영상이 바뀌었다. 박성희의 방은 그대로인데 창밖을 보니 눈이 소복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았다. 아빠가 박성희의 머리카락을 자르던 영상에서는 다들 반 팔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눈이 내리고 있었으니까.


더불어 박성희도 이전 영상보다는 좀 더 성숙해 보였다. 여고생보다는 성인에 가까운 분위기랄까.

근데 아름답던 박성희의 얼굴은 이전과 달리 생기가 사라졌고 눈 밑에는 거무칙칙한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눈빛에는 절망과 분노, 우울의 감정이 동시에 깃들어져 있었다.

방문 밖에서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아빠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성희, 문 열어! 계속 이렇게 밖으로 안 나오고 시위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다른 건 다 허락해줄 수 있어도 배우는 안 돼! 절대로!]


박성희가 옷장 앞으로 걸어갔다. 옷장에는 올가미가 매달려있었다. 박성희가 눈물을 흘리며 올가미를 바라봤다. 마음에 한이 가득한 눈빛으로 박성희가 의자 위로 올라섰다. 박성희가 천천히 올가미에 목을 걸고는 눈을 감더니 의자를 걷어찼다.


“하아···.”


박성희의 기억을 읽고 나니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럼 박성희는 그렇다 치고 혜미 엄마는 왜 박성희의 영에게 동화되어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거지?’


나는 귀기를 통해 혜미 엄마의 기억도 읽었다.


‘나 다시 모델 일하면 안 돼?’

‘그 나이에 무슨 모델이야?’

‘요즘 시니어 모델이 얼마나 인기인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빵집이나 열심히 해. 당신 이제 늙어서 예전처럼 볼품없어!’


그랬다. 박성희와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 모델이었던 혜미 엄마 역시 남편의 말에 상처를 입고 꿈이 무너졌다. 해미 엄마는 밤마다 드레스 룸에서 예전 모델 일할 때 입었던 옷들을 모두 꺼내 입으며 무대 위에 서는 꿈을 꾸었고 그러다가 박성희의 영과 교감하게 된 것이다.


“우리 집사람 괜찮은 겁니까?”

“혜미 엄마, 아니 황미정씨는 이 방에 있던 지박령에게 빙의된 겁니다.”

“귀, 귀신한테 홀렸단 말인가요?”

“뭐, 비슷해요.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황미정씨가 이 방에 있던 지박령을 스스로 자신의 안으로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스스로 귀신을 불러들였다구요? 왜요?”


나는 박성희와 혜미 엄마가 어떻게 서로를 찾게 되었는지에 대한 얘기를 간단히 들려준 후 말했다.


“비록 영과 사람이지만 둘은 서로의 마음에 공감했기 때문에 하나가 되려고 했던 거예요. 황미정씨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보다 박성희의 영에게 더 의지를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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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이한영의 과거 +8 24.03.15 1,215 64 12쪽
64 새로운 능력(2) +5 24.03.14 1,481 67 12쪽
63 새로운 능력(1) +4 24.03.13 1,567 62 12쪽
62 방송출연, 영혼탐정(3) +2 24.03.12 1,632 61 12쪽
61 방송출연, 영혼탐정(2) +3 24.03.11 1,687 60 13쪽
60 방송출연, 영혼탐정(1) +2 24.03.10 1,800 64 13쪽
59 시청률(3) +5 24.03.09 1,853 67 13쪽
58 시청률(2) +6 24.03.08 1,868 70 12쪽
57 시청률(1) +4 24.03.07 1,936 68 13쪽
56 첫 방송(3) +2 24.03.06 1,927 69 13쪽
55 첫 방송(2) +1 24.03.06 1,889 65 12쪽
54 첫 방송(1) +5 24.03.05 1,970 61 13쪽
53 제작발표회(2) +1 24.03.04 1,978 67 12쪽
52 제작발표회(1) +3 24.03.03 2,050 64 12쪽
51 크랭크인(2) 24.03.02 2,110 69 14쪽
50 크랭크인(1) +2 24.03.01 2,199 68 12쪽
» 몽글빵집의 혼령(2) +1 24.02.29 2,149 66 12쪽
48 몽글빵집의 혼령(1) +1 24.02.28 2,208 72 12쪽
47 몽글빵집 +12 24.02.27 2,282 68 12쪽
46 대본리딩(2) +2 24.02.26 2,318 69 13쪽
45 대본리딩(1) +4 24.02.25 2,400 70 15쪽
44 오디션(2) +6 24.02.24 2,393 66 12쪽
43 오디션(1) +1 24.02.23 2,407 70 13쪽
42 염매(2) +4 24.02.22 2,424 78 13쪽
41 염매(1) +4 24.02.21 2,580 77 13쪽
40 마지막 퍼즐(2) +2 24.02.20 2,629 75 12쪽
39 마지막 퍼즐(1) 24.02.19 2,703 7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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