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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최근연재일 :
2024.03.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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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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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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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작발표회(1)

DUMMY

나는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끼며 허공의 메시지를 바라봤다.

메시지의 의미를 그대로 해석하면 일단 최종 시청률 27%는 미래 영상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나오는 수치가 아니라는 것. 즉 시청률 27%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대본 완성도를 최대로 높여야만 달성할 수 있는 시청률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이다.


‘최종 시청률 27%를 달성한 후 귀기 100을 모으면 새로운 능력이 발현된다고?’


대본을 쓰면서 귀기 100을 모으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귀기 100을 모으려면 대본을 쓰지 않고 한 맺힌 영혼만 찾아다니거나 악귀만 퇴마하고 다녀야 한다. 아니, 그것도 영혼이나 악귀가 있을 때 얘기고.


‘이거 영혼의 한을 더 많이 풀어주고 더 많은 악귀를 퇴마하게 하려고 시스템이 꼼수부리는 거 아냐? 지난 번 예지력 때처럼...’


근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귀가 솔깃한 건 사살이다. 만약 예지력이 없었다면 <보이지 않는 사랑>의 감독은 이진범이 됐을 테고 그 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대체 새로운 능력이란 게 뭘까?’


어쨌든 당장은 최종 시청률 27%를 달성하는 게 중요하다. 귀기 100을 모아서 새로운 능력을 얻는 건 그 다음 문제고.


*


<보이지 않는 사랑> 제작발표회.


대형 스크린에 추가촬영한 장면이 영상으로 상영됐다. 근육질 마정한이 피투성이 나영찬의 영혼을 보고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치는 장면이 화면 가득 나오자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관계자와 기자들의 입에서 웃음과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마정한이 연기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캐릭터였기에 연예부 기자들이 바쁘게 노트북 자판을 두들겨 댔다. 기자들이 현장에서 작성해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올린 기사의 제목들은 다음과 같았다.


‘상남자 마정한이 귀신 무섭다고 비명!’

‘빵집 사장으로 변신한 귀여운 마정한.’

‘<보이지 않는 사랑>의 마정한은 츤데레 빵집사장.’

‘연쇄살인마 마정한에서 귀여운 빵집사장으로 변신!’


나는 배우들과 함께 대기실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검색하며 읽었다. 역시 기사를 검색하던 송현우가 부러운 듯 장난처럼 말했다.


“정한이 이번에 완전 뜰 것 같은데?”


옆에 있던 이수연도 제작발표회 현장의 영상을 보며 거들었다.


“<보이지 않는 사랑> 1화는 마정한 선배님이 책임지면 될 것 같아요. 기자분들 마정한 선배님 나올 때마다 빵빵 터지고 너무 좋아하는 게 보여요.”


큐시트를 체크하던 조혜린 실장이 말했다.


“마정한 배우님의 연기 변신 덕분에 일단 이슈를 만드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아요. 이제 다들 슬슬 나갈 준비하시죠.”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하이라이트 영상에 이어서 캐릭터 영상과 제작기 영상이 재생됐다.


캐릭터 영상에서는 영혼이 된 나영찬이 902호 자신의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이 재생됐다. 아빠가 생일케이크를 사 오길 기다리는 아들 진호의 해맑은 모습과 살짝 삐친 아내 혜정의 모습이 보이고 바로 그 옆에서 오열하는 나영찬의 영혼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스크린에 펼쳐지고 있었다.

혜정이 진호에게 말한다.


“아빠가 늦네?”

“케이크 사가지고 오느라고 늦는 거야.”

“케이크 사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나? 니가 다시 전화해봐.”


진호가 전화를 하면 119구급대원이 휴대폰을 받는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우리 아빠 전환데?”


진호가 휴대폰을 혜정에게 건네며 말한다.


“어떤 아저씨가 아빠 휴대폰 받았어.”

“니가 전화 잘못한 거 아니고?”

“아냐. 아빠한테 전화한 거야.”


혜정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네? 네, 맞아요. 나영찬씨 아내 되는 사람인데 저희 남편은 어디 갔나요? 네? 사, 사고요?”


숨을 죽인 채 구급대원의 얘기를 듣는 혜정. 단아하면서 청순한 이수연의 표정이 하얗게 변해간다.


“아, 아니..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 진호 아빠··· 아니 영찬씨가··· 그럴 리가··· 아니, 아니야··· 아니야···”


넋이 나가 중얼거리는 혜정의 목소리가 점점 울음으로 변하며 발표회장을 울린다. 조금 전 마정한의 코믹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터지던 현장의 분위기는 어느새 무거운 침묵으로 변했고 기자들의 손길이 바쁘게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제작발표회에서 영상이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는 사랑>은 <과거의 문>에 비해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단 두 작품의 제작비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사랑>은 작가에 대한 정보조차 없는 데다 땜빵 작품이란 선입견이 강했기 때문이다.


근데 막상 영상이 공개되자 기자들의 눈빛이 바뀌었고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김욱 감독의 연출과 스토리의 밀도가 예상보다 좋았고 1화부터 눈물과 코믹을 수시로 넘나드는 빠른 전개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제작발표회에서는 기자들이 재미있게 보지 않으면 당연히 기사거리도 없고 기사의 수도 줄어들기 마련인데...


‘베일을 벗은 <보이지 않는 사랑>, 예상 외의 다크호스!’

‘시청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드라마, <보이지 않는 사랑>’

‘<보이지 않는 사랑> 동시간대 <과거의 문>에 도전장!’

‘짜임새 있는 극본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기대되는 드라마, <보이지 않는 사랑>’

‘허동수 신인 작가의 범상치 않은 데뷔작 <보이지 않는 사랑>’


스크린에서 상영되던 영상이 끝나자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 중앙에 등장했다.


“우리 <보이지 않는 사랑>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는데 기자님들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자, 그럼 지금부터 <보이지 않는 사랑>의 주역인 배우님들과 김욱 감독님, 허동수 작가님을 무대중앙으로 모셔보겠습니다. 다들 무대로 올라와 주시겠어요?”


날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이런 무대가 익숙한 인물들이다.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김욱 감독도 대중 앞에서 수시로 인터뷰와 강연을 하는 분이고. 근데 난 이런 무대가 처음이다. 학교 때 잠시 연극을 하긴 했지만 소극장이었고 이렇게 많은 기자들 앞에 서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어차피 기자들은 배우들이나 김욱 감독한테 관심이 있지 유명 작가도 아닌 나 같은 신인 작가한테는 관심이 없을 것이란 생각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 지금 입은 케주얼 의상도 며칠 전 부랴부랴 부산에 있는 희정이와 영상통화를 해가며 급하게 구입한 것이고.


이런 화려한 자리는 아직 내게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배우들 사이에 있으니 의상도 너무 촌스러운 것 같고. 말이나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괜히 실수해서 좋은 분위기에 민폐나 끼치는 건 아닌지. 온갖 걱정이 폭풍처럼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그렇게 긴장으로 잔뜩 굳은 내 차가운 손을 누군가 살며시 잡아줬다. 따스한 온기가 도는 부드러운 손이다. 이수연이 내 손을 살며시 잡아주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은 작가님 작품이에요. 모두 작가님이 창조한 인물이고 세계관이에요. 작가님이 없었으면 <보이지 않는 사랑>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테고 송현우 선배님도 다시 연기를 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누가 마정한 선배님한테 그런 배역 맡길 생각을 했겠어요? 항상 무명 배우였던 저를 발탁해주신 것도 작가님이고. 그러니까 긴장하지 마세요. 전 오늘의 주인공이 작가님이라고 생각해요.”


이수연은 어느새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고 그 응원의 말이 마치 호신강기의 기운처럼 내 온몸을 휘감아 보호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수연의 말을 듣고 나니 신기하게도 더 이상 떨리지도 긴장으로 몸이 굳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 안에 숨어있던 새로운 감각이 꿈틀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입장.

송현우 배우가 앞장을 섰고 마정한, 이수연 배우가 뒤를 따랐다. 김욱 감독이 내게 이수연 배우 다음으로 들어가라고 옆구리를 찔렀다. 비상 복도를 지나 행사장의 홀로 나오자 기자들의 플래시가 눈꽃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마치 번쩍이는 불꽃놀이의 한가운데 들어온 것처럼 셀 수도 없이 많은 불빛들이 망막에서 점멸했다.


배우들은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김욱 감독도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능숙하게 기자들을 맞이했다. 난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억지로 웃음을 짓는 순간 단전에서부터 충만한 기운이 올라와 묘한 기분을 불어넣었다. 어쩌면 살터 할아버지가 응원을 해주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난 더 이상 예전의 찌질하던 초보작가가 아니야. 이수연의 말처럼 여기 모인 이 수많은 기자들과 배우들도 <보이지 않는 사랑> 대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난 이 자리를 충분히 즐겨도 되는 사람이야. 이왕이면 주눅들지 말고 자신감 있게 하자. 배우들한테 폐가 되지 않도록.’


예전에 연예기사를 볼 때 어색하게 서있는 감독이나 작가를 보면 아쉬운 생각이 들곤 했다. 애써 화사하게 표정을 짓고 있는 배우들의 분위기를 깎아내리니까. 그런 생각을 하자 자도 모르게 굳어 있던 표정이 자연스러워질 뿐만 아니라 마치 술법을 사용했을 때처럼 시야에 보이는 모든 상황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기자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는 기분으로 걸어갔다. 계단을 걸어올라 무대에 올라서자 그야말로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의 많은 카메라가 플래쉬를 터뜨렸다. 이런 무수한 카메라 앞에서 매일 연기를 하고 행사를 다니는 배우들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현우씨 이쪽 좀 봐주세요!”

“수연씨 여기요!”

“정한씨도 여기 봐주세요!”


기자들이 서로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배우들의 이름을 불렀다. 단체촬영에 이어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배우들이 각자 카메라 앞으로 가서 단독 포즈를 취했다. 송현우, 마정한, 이수연 세 사람은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웃고 장난을 치며 능숙하게 포즈를 취했다.


‘확실히 배우의 아우라는 다르긴 다르네.’


배우들의 포토타임이 끝나자 사회자가 말했다.


“작가님도 이쪽으로 오셔서 포즈 좀 취해주세요.”


어색해하는 날 향해 이수연이 주먹을 불끈 쥐고 화이팅을 외쳤다. 배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많은 플래시가 기다리는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이전 같으면 어떻게든 웅크리고 긴장했을 텐데···


‘어차피 나도 배우나 마찬가지야. 대본 쓸 때는 각각의 캐릭터가 되어 혼자 연기하면서 대본을 썼잖아. 지금 이곳도 현실이 아니라 대본 속 세상이라고 생각하자. 대본 속에 존재하는 인기 작가의 캐릭터라고.’


나는 자연스럽게 기자들과 눈 맞춤을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찍히는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면서 왼쪽과 중앙,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꿨고 기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 동안 포즈를 취했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다양한 표정들이 지어졌다.

포토타임이 끝나자 지켜보던 사회자가 감탄하며 말했다.


“아니··· 작가님 맞으세요? 배우 아니었어요? 얼굴도 배우 못지 않으시고 표정과 포즈도 우리 배우들보다 더 여유가 넘치시는데요? 그렇지 않나요?”


배우들이 동시에 ‘네, 멋져요!’라고 대답했다. 이수연은 더 나아가 이렇게 소리쳤다.


“작가님, 배우하셔도 잘할 것 같아요!”


사회자도 동의하며 물었다.


“작가님 혹시 연기해본 적 있으세요?”

“연영과 출신이라 학교 때 잠깐 해봤습니다.”


사회자가 다음에 등장할 김욱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허동수 작가님 연기 잘할 것 같지 않나요?”


김욱 감독이 대답했다.


“사실 저도 방금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은 잘 몰랐는데 방금 포즈 취하는 모습을 보니까 카메라 대하는 시선이라든가 눈빛, 표정이 상당히 안정되고 느낌이 있네요. 배우들도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느낌을 가지고 포즈를 취하는 게 쉽지 않은데. 진지하게 작가님한테 연기 한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은데요?”


사실 나도 얼떨떨하긴 했다. 갑자기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그 순간에 포즈를 취하고 여유 있게 시선처리를 할 수 있었는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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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이한영의 과거 +8 24.03.15 1,215 64 12쪽
64 새로운 능력(2) +5 24.03.14 1,480 67 12쪽
63 새로운 능력(1) +4 24.03.13 1,566 62 12쪽
62 방송출연, 영혼탐정(3) +2 24.03.12 1,632 61 12쪽
61 방송출연, 영혼탐정(2) +3 24.03.11 1,687 60 13쪽
60 방송출연, 영혼탐정(1) +2 24.03.10 1,800 64 13쪽
59 시청률(3) +5 24.03.09 1,852 67 13쪽
58 시청률(2) +6 24.03.08 1,868 70 12쪽
57 시청률(1) +4 24.03.07 1,936 68 13쪽
56 첫 방송(3) +2 24.03.06 1,926 69 13쪽
55 첫 방송(2) +1 24.03.06 1,889 65 12쪽
54 첫 방송(1) +5 24.03.05 1,970 61 13쪽
53 제작발표회(2) +1 24.03.04 1,977 67 12쪽
» 제작발표회(1) +3 24.03.03 2,050 64 12쪽
51 크랭크인(2) 24.03.02 2,109 69 14쪽
50 크랭크인(1) +2 24.03.01 2,198 68 12쪽
49 몽글빵집의 혼령(2) +1 24.02.29 2,148 66 12쪽
48 몽글빵집의 혼령(1) +1 24.02.28 2,207 72 12쪽
47 몽글빵집 +12 24.02.27 2,282 68 12쪽
46 대본리딩(2) +2 24.02.26 2,318 6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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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염매(2) +4 24.02.22 2,424 7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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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마지막 퍼즐(2) +2 24.02.20 2,628 75 12쪽
39 마지막 퍼즐(1) 24.02.19 2,703 7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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