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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최근연재일 :
2024.03.15 19: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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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7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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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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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글자
12쪽

크랭크인(1)

DUMMY

혜미 아빠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집사람이 왜 그렇게 우울하게 살았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제발 우리 집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게 도와주십시오. 만약 집사람이 무사히 돌아와 주기만 한다면 이후에는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제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이제 남은 건 혜미 엄마와 박성희의 영을 분리시키는 일. 물리적인 힘으로 둘을 분리시키려고 하면 혜미 엄마가 다칠 가능성이 높고.

나는 혜미 엄마에게 깃든 박성희의 영을 향해 말했다.


“난 알아. 박성희 네가 얼마나 배우가 되고 싶어 했는지. 부모님이 네 마음을 몰라줘서 얼마나 절망하고 힘들어했는지.”


혜미 엄마의 동공이 꿈틀하고 흔들렸다.


“나는 네가 오디션을 보기 위해 매일 매일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기억을 통해 봤어. 오디션 준비만 한 게 아니야. 학교 성적도 떨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지. 당시 2차 오디션 끝나고 자유 연기를 마쳤을 때 김성태 감독이 이렇게 말했잖아. 내가 찾던 김은우는 너인 것 같다고.”


혜미 엄마의 입에서 흐느낌이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사실 나도 드라마를 쓰는 작가야. 난 네가 2차 오디션에서 자유 연기하는 모습도 봤고 혼자 몰래 집에서 연기 연습하는 것도 모두 기억으로 지켜봤어. 근데 보고 나니까 김성태 감독님이 왜 너한테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아.”


가만히 듣고만 있던 혜미 엄마의 입이 움직였다.


[... 왜 그런 말을 했는데?]

“내가 봐도 넌 연기에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아이였어. 엄마도 배우라고 했지? 그 유전자를 받았는지 당시 여고생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깊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어. <화려한 밤의 시간>에서 김은우가 바로 그런 여고생이잖아. 나이는 어린데 남주인 30대 남자를 오히려 위로해주는 역할이었고.”

[... 정... 말.... 그렇게 생각해?]


혜미 엄마의 눈에서 예기치 않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무표정한 얼굴 위로 두 줄기 눈물이 거짓말처럼 흘러내렸다. 방문 앞에 있던 혜미 아빠와 혜미도 놀란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넌 영혼의 몸으로 너 대신 김은우 역할로 캐스팅된 정인혜라는 배우가 스타가 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어. 어쩌면 그 자리가 네 자리가 될 수도 있었잖아.”


혜미 엄마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넌 꿈을 피우지도 못한 채 자살했고 결국 이 작은 방에서 지박령이 되어 갇혀버렸던 거야.”

[나도 그렇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배우가 될 수 있었어. 난 너무나... 연기가 하고 싶었어. 난... 미치도록... 그 역할이 하고 싶었다고.]


검은 귀기로 가득 찬 동공이 파르르 떨렸고 혜미 엄마의 입술 사이로 울음소리가 새 나왔다. 울음 소리가 점점 커졌고 나중에는 통곡에 가까운 귀곡성으로 변했다.

이윽고 혜미 엄마의 육신에서 검은 귀기가 스르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귀기가 완전히 빠져나가자 혜미 엄마가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혜미 아빠와 혜미가 황급히 달려가 혜미 엄마를 부축했다.


혜미 엄마의 육신에서 흘러나온 귀기가 서서히 형태를 갖추더니 온전한 박성희의 모습으로 변했다. 박성희의 영이 눈물을 흘리자 그 눈물방울이 허공으로 둥둥 떠다니다가 작은 입자로 변해 사라졌다.

박성희가 날 향해 말했다.


[아저씨가 처음이야. 내 마음을 알아준 사람은. 그리고 고마워. 내가 배우가 될 재능이 있다고 말해줘서.]


박성희가 자신이 흘린 눈물과 함께 눈앞에서 모습이 스르르 사라졌고 허공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혼령 박성희의 원한이 풀어졌습니다. 귀기 ‘30’이 보상으로 지급됩니다.]


보상 메시지가 다소 이상했다. ‘악귀 박성희’가 ‘혼령 박성희’로 바뀌었다. 그 말은 곧 박성희가 악귀가 아닌 혼령으로 저승에 간다는 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너무 다행일 것 같은데. 또 한 가지 기쁜 일은 귀기의 보상은 악귀를 퇴마했을 때의 ‘30’이 주어졌다는 것.


*


조혜린 실장이 몽실빵집, 아니 지금은 미술팀이 간판을 바꿔서 몽글빵집이 된 빵집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을 쏟아내고는 내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어떻게 단 하루 만에 대본에 있는 이미지하고 똑같은 빵집을 찾을 수가 있지? 이게 말이 되나? 작가님 진짜 우리가 모르는 마법 같은 거 부리는 거 아니에요?”


가만히 있으면 진짜 오해를 받을 것 같아 급하게 핑계를 댔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사실 예전에 지나가다가 봤던 빵집이라서 이 빵집 생각하며 대본을 썼는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기억을 더듬다 보니까 이 동네가 딱 떠오르지 뭐예요?”

“아, 그럼 그렇지. 전 또 이상한 생각했지 뭐예요? 기억이 떠올라서 정말 다행이네요. 빵집이 어떻게 저렇게 아기자기하고 예쁠 수가 있지? 마정한 배우가 저 빵집 안에 있으니까 무슨 판타지 동화 같아요. 호호.”


조혜린 실장의 말처럼 컴컴한 거리와 달리 화사한 조명이 빛나는 몽글빵집 안과 그 안에서 제빵사 옷과 모자를 쓰고 있는 마정한은 동화 속 심술궂은 악당 같은 느낌이었다.

빵집 안에는 각종 촬영 장비와 스태프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가 있었고 밖에는 촬영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송현우는 차량에서 메이크업을 받는 중이고.


내가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늘 상상하던 모습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져 있었다.

마침내 크랭크인이네!


나는 구경꾼들 사이에서 꿈을 꾸는 것처럼 몽글빵집 안을 바라봤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빵집주인 마정한이 카메라 앞에서 김욱 감독과 열심히 뭔가를 의논하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는 나도 저 안에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여기 구경꾼들 사이에 섞여 저들을 바라보는 게 훨씬 행복하고 항홀하다. 드라마와 관련해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구경꾼들의 온갖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또다른 즐거움이고.


“마정한이 빵집 주인이라고? 진짜 의외네.”

“빵집에 저런 주인 있으면 빵 사러 갈 때 무서울 것 같아.”


마정한 캐스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제작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된 후 귀여움까지 장착한 빵집주인 마정한을 보고 놀랄 시청자들을 상상하니 저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온다.


“송현우도 출연하는 거 맞아? 왜 안 보여?”

“내가 아까 스테프한테 물어봤는데 확실히 나온데.”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송현우 보려고 대전에서 서울까지 버스 타고 올라왔는데.”

“근데 이 드라마는 무슨 내용이래?”

“몰라. 무슨 귀신 나온다고 하던데? 무서운 공포물인가?”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자 한창 수다를 떨던 여고생 둘이 의아하게 돌아봤다.


“지나가겠습니다. 길 좀 비켜주세요.”


빵집 주위에 몰려 있는 구경꾼들 사이로 스태프가 지나가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 스태프 뒤로 분장을 마친 송현우가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꺅꺅 거리는 비명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촬영장에 스타가 있으면 이렇게 분위기가 업이 되는 맛이 있다. 물론 인원을 통제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촬영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나 배우들은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몽글빵집이 주택가와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 것. 요즘엔 촬영장에서 일어나는 소음 때문에 주민들과 갈등도 많고 민원도 많이 제기되어 주의가 필요한데 다행이다.


“진짜 송현우야!”

“오빠 너무 멋있어요! 잘 생겼어요!”


평소 송현우라면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줬겠지만 촬영을 앞둔 지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빵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빵집문이 열리더니 안에 있던 스태프 한 명이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작가님. 작가님 어디 계세요? 허동수 작가님!’

“네. 저 여기 있어요!”


내가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가자 구경꾼들이 웅성거렸다.


“저 사람이 작가래.”

“작가가 생각보다 젊은데?”


특히나 내 옆에서 수다를 떨며 날 바라보던 여고생 둘은 입틀막을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현우가 대본을 들고 다가왔다. 송현우가 날 찾았던 모양.


“작가님 여기··· 이 부분이요.”


송현우가 가리킨 장면은 이한영이 혜정의 생일 케이크를 공짜로 가져가라고 하자 나영찬이 떨떠름하게 반응하는 장면.


“여기서 이한영이 케이크를 공짜로 가져가라고 하는데 나영찬이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럼 나영찬이 평소에도 이한영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이 있었던 건가요?”

“아··· 그 부분이요? 아직 대본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후반부에 가면 플래시백으로 나영찬의 아내 혜정이 빵집 주인 이한영에 대해 칭찬하는 부분이 나오거든요. 빵집 주인이 생긴 건 산적처럼 생겼는데 의외로 마음은 따스하고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그러니까 나영찬 입장에서는 이한영에 대한 묘한 경계심이 발동하는 거죠.”

“아, 그렇군요.”


송현우가 활짝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완결되지 않은 대본의 경우 대부분의 스토리는 작가의 머릿속에만 있기 때문에 배우 입장에서는 캐릭터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거나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밖에서 볼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빵집 안은 새로운 드라마의 첫 씬을 촬영한다는 흥분과 열기가 가득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이 흥분과 열기가 가득한 공기를 깊이 음미했다.

김옥 감독이 날 보고 손짓했다.


“작가님 이쪽으로 오세요. 작가님 자리 여기예요.”


김욱 감독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가자 감독 옆자리 의자에 ‘허동수 작가’라는 이름이 새겨진 의자가 놓여있었다. 아마도 앞으로 촬영 내내 현장에서 내가 앉게 될 의자인 모양.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익숙하게 일을 하고 있지만 난 여전히 이 현실이 꿈처럼 느껴진다.


‘아직은 모든 게 꿈처럼 낯설지만 오늘 하루가 지나면 나도 저들처럼 이 현장과 내 자리가 익숙하고 편해지겠지.’


그때 내 옆으로 누가 와서 앉았다.


“작가님 어디 계셨어요? 아까부터 한참 찾았는데.”


돌아보니 나영찬의 아내 혜정으로 분장한 이수연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내밀며 말했다.


“커피 드세요.”

“아, 고마워요. 근데 수연씨는 이따가 나영찬 아파트에서 촬영하지 않나요?”

“거기 있으면 심심해서 미리 현장 분위기도 익힐 겸 이쪽으로 왔어요.”

“아···”

“근데 나는 왜 찾았어요?”

“네?”

“아까 나 찾았다고 했잖아요.”

“아··· 그냥요. 작가님 보고 싶어서. 헤헤.”


이수연이 맑은 눈빛으로 화사하게 웃었다. 예전 이수연의 작품인 <비오는 날>의 야쿠르트 아줌마를 떠올리게 만드는 미소. 그때 영화를 보면서 ‘무슨 야쿠르트 아줌마가 저렇게 예뻐?’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쨌든 남주 두 명만 연기를 하는 현장에 여주가 나타나니 확실히 분위기가 화사해졌다.

이수연이 현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빵집 씬들 다 몰아 찍나 봐요.”


이수연의 말처럼 첫 촬영은 일단 몽글빵집 내부에서 진행되는 2씬부터 시작해서 빵집 내부 장면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찍을 예정. 조명이 세팅되고 카메라가 빵집 문 위의 방울을 클로즈업으로 잡았다.

내가 봤던 미래영상의 빵집 장면도 지금처럼 문 위의 방울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시작했다. 조감독이 소리쳤다.


“자, 슛 들어갑니다. 조용!”


나는 김욱 감독 옆에 모니터용 화면으로 빵집 문에 달린 방울을 지켜봤다. 이수연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전 그동안 매일 이 시간이 오지 않을까 봐 불안했는데 정말 왔네요.”


돌아보니 이수연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소란스럽던 빵집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지자 내게도 비슷한 설렘과 흥분이 밀려들었다.


“씬2의 1에1”

“카메라 롤~”

“레디~”


김욱 감독이 큐사인을 냈다.


“액션!”


모니터용 화면 안에서 방울이 딸랑하고 흔들리면 빵집 문이 확 열리며 나영찬이 안으로 뛰어든다. 이어서 제빵실 안에 있던 이한영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내민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첫 촬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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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새로운 능력(2) +5 24.03.14 1,480 67 12쪽
63 새로운 능력(1) +4 24.03.13 1,567 62 12쪽
62 방송출연, 영혼탐정(3) +2 24.03.12 1,632 61 12쪽
61 방송출연, 영혼탐정(2) +3 24.03.11 1,687 60 13쪽
60 방송출연, 영혼탐정(1) +2 24.03.10 1,800 64 13쪽
59 시청률(3) +5 24.03.09 1,853 67 13쪽
58 시청률(2) +6 24.03.08 1,868 70 12쪽
57 시청률(1) +4 24.03.07 1,936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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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첫 방송(2) +1 24.03.06 1,889 65 12쪽
54 첫 방송(1) +5 24.03.05 1,970 61 13쪽
53 제작발표회(2) +1 24.03.04 1,977 67 12쪽
52 제작발표회(1) +3 24.03.03 2,050 64 12쪽
51 크랭크인(2) 24.03.02 2,109 69 14쪽
» 크랭크인(1) +2 24.03.01 2,199 68 12쪽
49 몽글빵집의 혼령(2) +1 24.02.29 2,148 66 12쪽
48 몽글빵집의 혼령(1) +1 24.02.28 2,207 72 12쪽
47 몽글빵집 +12 24.02.27 2,282 6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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