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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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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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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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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퍼즐(1)

DUMMY

처음엔 장기태라는 이름을 곱씹어도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순간 그 이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장기태는 다름 아닌 미래 영상 내 인터뷰에 들어있던 이름이다.


“···. 나영찬 역의 송현우 배우님, 이한영 역의 마정한 배우님, 혜정 역의 이수연 배우님 감사드리고 903호 부부로 출연해서 맛깔스러운 연기 보여주신 장기태, 한소진 배우님을 비롯한 배우분들의 열연과···”


맞다. 내가 분명 그렇게 인터뷰를 했다.


“···.. 903호 부부로 출연해서 맛깔스러운 연기 보여주신 장기태, 한소진 배우님을 비롯한 배우분들의 열연과···. “


당시 미래 인터뷰 영상을 볼 때도 의아했다. 한소진은 악바리 같은 아줌마 연기를 잘해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뜬 조연급 배우인데 반해 장기태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포털에 검색을 해봐도 배우 장기태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무명의 배우가 <보이지 않는 사랑>에 903호남편으로 출연했다면 누군가의 추천이거나 오디션을 통한 방법 외에는 없다. 물론 동명이인일 수도 있지만 만약 옆에 앉은 남자가 미래 인터뷰에 등장하는 그 장기태라면?


나는 고개를 돌려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남자는 40대 초반 정도로 보였고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을 정도로 특이하게 생긴 얼굴이다. 굉장히 억울하게 생겨서 왠지 모르게 안쓰러운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보이지 않는 사랑>의 903호부부는 아내가 극성맞고 기가 센 캐릭터인데 반해 남편은 아내한테 기가 죽어서 늘 눈치를 보는 캐릭터다.


극본을 쓰면서도 다른 캐릭터는 모두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903호남편 역할은 도무지 배우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근데 방금 남자의 억울한 얼굴을 본 순간 바로 이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개성 있는 얼굴은 903호남편처럼 잘 맞는 배역을 맡아 연기만 잘하면 개성 있는 조연으로 평생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연기력이겠지만.’


903호남편 역할은 대사 한 줄 있는 단역이 아니라 극에서 꽤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엄연한 조연이다, 연기력이 부족하면 결코 그 맛을 살릴 수 없다. 근데 단역 연기만 했던 사람이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까.


실제로 촬영현장에 가면 단역들 중에 아주 단순한 연기나 대사조차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를 수없이 봤다. 아예 연기가 안 되는 경우도 많지만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해서 끝없이 NG를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만약 남자가 미래 내 인터뷰에 등장하는 장기태가 맞다면 분명 연기력도 뛰어나겠지.


“저기요.”


넋이 나간 것처럼 허공을 바라보던 남자가 날 돌아봤다.


“··· 저 말인가요?”

“네. 실례지만 혹시 배우신가요?”


남자가 의아하게 날 보더니 자신 없는 소리로 말했다.


“배우··· 라고 하기엔 뭣하고 그냥 단역입니다.”

“단역도 배우죠. 혹시 오디션 보실 생각 없으세요?”


갑작스러운 내 제안에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자가 극본이 띄워져 있는 내 노트북 모니터를 힐끗 바라봤다. 노트북에 극본이 띄워져 있는데다 이곳이 이야기숲 본사 안에 있는 카페라서 그런지 남자는 내 정체를 궁금해하는 눈치다.


“오디션이요? 어떤 오디션이요?”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고 두 달 후에 방영할 드라마인데··· 혹시 아시나요?”


순간 남자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보이지 않는 사랑> 당연히 알죠. 송현우 배우님 복귀작이잖아요.”

“네, 맞아요. 그 드라마에 출연할 조연과 단역배우 오디션이 있거든요.”


남자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보이지 않는 사랑> 오디션 있는 건 저도 알고 있는데 제가 사정이 있어서 지원을 못했거든요. 아마도 오디션이 내일일 텐데 이미 지원할 수 있는 날짜가 지나서 오디션을 보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남자의 말대로 <보이지 않는 사랑> 오디션은 내일이고 어제까지가 원서접수 마감 날짜였다. 하지만 이 사람이 정말 903호남편 역할을 한 미래의 장기태라면 마감 날짜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게다가 오디션은 공식적인 지원 외에도 비공식적으로 작가나 감독 추천으로 지원서가 들어오기도 하니까.


“근데 왜 갑자기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사실 조금 전에 의도치 않게 캐스팅 관련해서 조감독이라는 분과 얘기 나누는 대화를 들었거든요.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것 같은데 오디션을 보면 전화위복으로 더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르잖습니까?”

“아···”


남자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뭐하시는 분이신지···?”


괜히 작가라고 얘기하면 부담을 가질 것 같아서 대충 둘러댔다.


“그냥 오디션 관련해서··· 관계자예요.”

“··· 아네.”

“물론 지원날짜가 지나긴 했지만 오늘밤 자정까지 온라인으로 지원서를 넣으시면 오디션 보실 수 있도록 조치를 해드릴 수 있는데···.”

“그게 정말인가요?”


남자는 내 정체를 궁금해하면서도 선뜻 내가 누군지 구체적으로 물어보지는 못하는 눈치다. 물론 내가 <보이지 않는 사랑> 극본을 쓴 작가라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할 테고.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카페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시리즈물인 드라마를 쓰는 작가는 대부분 보조작가와 함께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니까.


“네. 제가 책임지고 오디션 보게 해드릴 테니까 좋은 연기해서 꼭 합격하세요.”


밑도 끝도 없는 내 응원에 남자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아··· 알겠습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


장기태는 남자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카페를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사랑> 조연과 단역 오디션 본다는 공지를 며칠 전 자신이 가입해 있는 카페에서 봤다. 오디션에 지원하지 않은 건 오디션 날짜와 이번에 이삿짐센터 직원 역할을 하기로 했던 드라마 촬영일이 겹쳤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사정이 없었다면 당연히 오디션을 봤을 것이다. 방금 전 조감독한테 출연이 무산됐다는 얘기를 듣고 딸아이 생일과 함께 먼저 떠오른 것도 <보이지 않는 사랑> 오디션을 놓쳤다는 아쉬움이었다.


‘근데 누구지? 오디션 관계자라고? 스태프는 아닌 것 같고. 그 사람 노트북화면에 띄워져 있던 건 극본이었어. 그럼 혹시 작가님? 에이··· 그럴 리가 없지. 작가님이 보조 작가도 없이 혼자 카페에서 작업할 리가 있나? 아니, 그것보다 드라마 작가가 단역배우한테 관심을 가진다는 게 말이 되냐고? 게다가 날 언제 봤다고 오디션을 보라고 권하겠어?’


어쩌면 제작사 관계자인지도 몰랐다. 자신이 이삿짐센터 인부 역할을 못하게 됐다는 사정을 듣고 딱해서 오디션 보도록 도와주려는 것인지도. 어쨌든 기대하던 역할을 놓치고 오디션도 보지 못하게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우울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


‘단역배우 떡볶이’라는 빛 바랜 간판이 달려있는 분식집. 장기태는 그 분식집 문을 드르륵 밀고 들어갔다.


“영업 끝났···”


마침 저녁장사를 마치고 테이블을 정리하던 아내가 장기태를 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당신 왔어? 저녁 안 먹었지? 내가 금방 김밥하고 라면 끓여서 차려줄 게.”

“아냐, 됐어. 나 밖에서 밥 먹었어.”


장기태는 이번에도 거짓말을 했다. 하루 종일 음식 만들고 서빙하며 혼자 뛰어다녔을 아내에게 다시 음식을 만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희는 학원 갔어?”


지희는 초등 2학년인 장기태 부부의 딸이다.


“진즉 학원 갔지. 아까 친구들하고 와서 떡볶이 막고 우르르 같이 나갔어. 왜? 딸래미 보고 싶어?”


장기태가 빙긋 웃고는 천천히 분식집 실내를 둘러봤다. 벽면 곳곳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사진들. 대한민국에 내노라 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사진인 건 맞는데 어딘지 모르게 구도라든가 앵글이 부자연스럽다.


유명배우를 찍은 사진이라면 당연히 배우가 중심이 돼야 할 텐데 사진의 중심은 배우가 아닌 다른 뭔가에 맞춰져 있었다. 게다가 텔레비전 모니터 화면을 그대로 찍은 사진이라 화질도 구리고.


그런 이유로 이 떡볶이집을 찾는 손님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벽면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사진들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이 사진들은 다 뭐예요?’


그럼 장기태의 아내는 만들던 음식도 멈추고 얼른 달려와 사진을 설명한다.


‘이거 우리 애들 아빠 나온 드라마 찍은 사진들이에요.”

‘정말요? 아···. 간판에 있던 단역배우가 남편 분이시구나.

‘네, 맞아요. 우리 애들 아빠가 단역 배우거든요.”


장기태의 아내가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여기 송강유 배우님 뒤로 지나가는 행인 있죠? 이 사람이 저희 애들 아빠예요.’

‘어머··· 그래요?’


손님이 미간을 찌푸린 채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지만 옆모습에 스치듯 지나가는 모습이라 얼굴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 드라마 아시죠? 서울의 계단. 이거 드라마 명 장면이잖아요. 여기 이지우 배우님이 오열하던 그 장면인데 여기 트럭에서 군밤파는 아저씨 보이죠? 그것도 저희 남편이에요.”


역시 카메라 초점이 이지우에게 맞춰져 있어서 뒤쪽 군밤장수의 초점은 흐릿하다. 그런데도 장기태의 아내는 신이 나서 설명을 계속했다.


‘이거 찍던 날 저희 남편하고 이시우 배우님 거리가 3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시우 배우님 울음소리를 바로 옆에서 육성으로 들었다지 뭐예요. 호호호.’


장기태와 장기태의 아내는 대학 때 연극동아리에서 만나 결혼했다. 둘 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지만 당장 생계가 어려워 분식집을 열었다. 둘은 분식집을 하면서 약속했다. 조금만 자리가 잡히면 다시 연기를 시작하자고.


하지만 사는 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장사가 생각보다 되지 않았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힐 즈음엔 예정에 없던 딸 지희가 생겼다. 결국 둘은 연기에 대한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렇게 지희가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어느 날 아내가 장기태에게 말했다.


‘당신이라도 연기 다시 시작해. 당신 재능은 그냥 묻어두기엔 너무 아까워.’


장기태는 학교 때도 연기 재능을 인정받아 크고 작은 연극무대에 올랐던 경험이 있다. 장기태는 그렇게 늦은 나이에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연극무대에 설까 생각했지만 틈틈이 아내를 도와야 하고 얼마라도 수입이 필요했기 때문에 단역배우로 활동했다. 문제는 연극과 달리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얼굴의 개성이 너무 강한 게 오히려 단점이 된다는 것.


주연이나 조연이라면 몰라도 단역배우한테는 개성 강한 얼굴이 걸림돌이었다. 덕분에 대사 있는 단역 역할을 얻기 위해 오디션을 봐도 번번이 떨어지고. 어쩌다 대사 한두 마디 있는 역할을 맡아 혼신을 다해 연기하면 감독한테 핀잔을 듣기 일쑤다.


‘단역배우가 주연보다 튀면 어떡해?’


하지만 장기태의 아내는 그런 남편을 너무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어디 아내 뿐인가. 딸 지희도 아빠가 단역배우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희는 아빠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울던 울음도 그치는 아이였다.

장기태도 그런 가족의 응원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오늘 조감독의 통보를 받고는 힘이 쪽 빠졌다.


“너무 실망하지 마, 조감독님이 다음에 또 좋은 역할 있으면 추천해 주신다고 했다며?”


장기태가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를 봐서라도 기운을 내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정말 대사가 한 줄이라도 혼신을 다해서 연기할 수 있는 좋은 배역이 주어진다면 잘할 자신이 있는데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장기태의 아내가 한숨처럼 말했다.


“근데 <보이지 않는 사랑> 오디션 놓친 건 너무 아깝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원이라도 해보는 건데··· 혹시 알아? 송현우 배우님한테 시비 거는 술 취한 행인 역할이라도 맡을지···”


장기태의 아내는 열렬한 송현우의 팬이었다. 송현우가 모처럼 복귀한다는 소식에 <보이지 않는 사랑> 오디션 정보를 알아내서 장기태에게 알려준 것도 그녀였다.

아내의 말에 장기태가 번뜩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가만··· 지금 몇 시야?”


장기태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지금 막 10시 4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나 오디션 지원서 넣어야 해.”

“오디션 지원서? 내가 모르는 오디션이 있었나? 무슨 작품인데?”

“보이지 않는 사랑.”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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