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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최근연재일 :
2024.03.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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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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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작발표회(2)

DUMMY

포토타임이 끝나고 각자 준비된 의자에 착석하자 이수연이 말했다.


“와, 작가님 완전 대박이었어요. 각각 무대 중앙에서 포즈 취하시는데 진짜 유명 배우들이 가진 아우라가 줄줄 흐르더라고요. 저는 예쁘게 찍힐 생각만 했지 작가님처럼 그런 여유는 가지지 못했거든요.”


이번에는 송현우도 거들었다.


“작가님. 농담 아니고 진짜 진지하게 연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엄청 잘하실 것 같아요.”


학교 때 잠깐 배우를 꿈꾸긴 했지만 나한테는 작가가 적성에 더 맞았다. 물론 좋은 기회가 온다면 연기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오늘처럼 내 눈빛과 표정이 외부에 어떤 식으로 비춰지는지 스스로 느껴지는 그런 날엔 더더욱.


분위기가 정돈되자 사회자가 송현우에게 그동안 칩거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송현우는 동생의 사고와 함께 다른 힘든 일이 겹쳐서 배우생활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물론 그 다른 힘든 일이란 악귀에게 빙의 되었던 사건을 의미했다.

사회자가 말했다.


“그런 배우님을 허동수 작가님이 세상 밖으로 다시 불러냈군요.”

“맞습니다. 작가님이 아니었으면 전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사회자가 내게 물었다.


“작가님. 그때는 완전 신인 작가님이었을 텐데 어떻게 한류스타 송현우 배우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있었나요? 게다가 당시엔 배우님이 칩거 중일 때 아니었나요?”

“네, 맞습니다.”


송현우가 대답하자 마이크가 내게 넘어왔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제가 처음에 송현우 배우님한테 찾아간다고 하니까 드림온 조혜린 실장님이 제발 미친 짓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경고를 하더군요. 특히 집 앞에서 무작정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는 짓은 하지 말라고. 근데 제가 그 짓을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런 자리에서 절대 그런 농담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근데 이 자리가 작품 속 세상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여유로운 농담까지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오늘 처음으로 기자석에서 제대로 웃음이 터졌고 무수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들이 빠르게 자판을 두들겼다. 제작발표회의 목표는 가능한 많은 이야깃거리를 쏟아내고 기사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답변이 나쁘지 않았던 모양.


이어서 마정한에게 마이크가 넘어갔다. 마정한에게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미지 변신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솔직히 처음엔 작가님한테 이상한 취향이 있는 줄 알았어요. 작가님이 저한테 귀여운 모습을 봤다고 해서.”


마정한의 농담에 기자석이 빵 터졌다. 순간 나도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사회자가 갑자기 신이 나서 말했다.


“작가님 답변 좀 하시죠? 원래 취향이···?”

“절대 그런 취향은 아니구요. 제가 남자한테 귀여운 감정을 가져본 건 마정한 배우님이 처음이었는데 아마 그런 감정은 앞으로도 마정한 배우님이 마지막일 겁니다.”


기자석에서 다시 웃음.

마정한이 계속 답변했다.


“근데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까 저한테 정말 귀여운 구석이 있더라고요. 작가님이 아니었으면 전 평생 강력계 형사나 연쇄 살인마 역할만 하다가 은퇴했을 겁니다. 아마도 이 작품 끝나면 유치원 선생님이나 집에서 살림하는 남편 같은 역할이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저 귀여운 남잡니다.”


마정한의 재미난 인터뷰와 내 답변에 기자석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야말로 제작발표회에서 가장 바라는 분위기.


다음으로 이수연은 나와 편의점에서 처음 만난 얘기를 털어놓았다.


“신기하게도 저희 집 근처 편의점 알바생이 드라마 대본을 보고 있는 거예요. 저희가 직업병이 있잖아요. 저도 모르게 잠깐 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남의 대본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작가님 대본을 제가 계속 읽고 있더라구요.”


나도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나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 역시 저도 모르게 마이크를 잡고 말을 이어갔다.


“사실 <보이지 않는 사랑>이 드라마가 된 건 이수연 배우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수연 배우님이 대본을 드림온 조혜린 실장님한테 보여드려서 제작이 결정됐거든요.”

“그때 편의점에서 작가님이 저한테 혜정 역할로 캐스팅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기적이 일어났네요.”


사회자가 말했다.


“그럼 이수연 배우님은 편의점에서 캐스팅된 최초의 배우 아닌가요?”


앞에서 배우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내 얘기를 했고 사회자도 내가 답변할 때마다 웃음이 터지고 분위기가 좋아지니 자연스럽게 내게 마이크가 자주 돌아왔다.

사회자가 물었다.


“작가님은 <보이지 않는 사랑> 시청률 몇 % 예상하시나요?”


내가 선뜻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마정한이 큰소리로 말했다.


“작가님, 30프로요! 30프로!”


너무 높은 수치라서 그런지 몇몇 기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살짝 농담처럼 대답했다.


“30프로는 너무 높은 것 같고 전 최종시청률이 그것보다는 살짝 낮은 27프로 예상해봅니다.”


사회자가 놀라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와우, 27프로! 과연 작가님의 예상대로 맞을지 <보이지 않는 사랑> 기대하겠습니다.”


사회자가 기자석을 보고 말했다.


“우리 허동수 작가님한테 궁금한 거 있으신 기자님 손?”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든 여 기자가 있었다.


‘헉. 저 기자는···?’


일전에 옥탑방으로 날 인터뷰하러 왔던 오늘 연예 박희선 기자였다.


“작가님 저 기억하시죠? 일전에 작가님 인터뷰하러 갔다가 귀신 무서워서 도망친 오늘 연예 박희선 기자예요.”

“네, 기억합니다.”


저 기자가 또 무슨 말을 할지 살짝 긴장이 됐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박희선 기자는 이 바닥에서 유명세는 있지만 연예인과 동료 기자들 사이에 평판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기사를 위해서라면 타인의 사생활도 무시하고 집요하게 취재하는 방식 때문이다.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공포의 대상일 정도.

하긴 일전에 나한테도 옥탑방까지 올라와서 취재를 하려고 했으니까.


지난번 핑크 걸스의 경우도 여름의 죽음이 카인의 따돌림 때문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음에도 박희선 기자는 사과하지도 않았고 해명 기사도 내놓지 않았다.

박희선 기자가 말했다.


“제가 취재하다 보니까 작가님이 귀신을 본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구요.”


박희선 기자의 질문에 기자단이 웅성거렸고 내 비밀을 알고 있는 송현우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돌아봤다. 하지만 난 언젠가 이런 얘기가 나올 것이란 예상을 하고 늘 답변을 준비해 놨다. 퇴마를 해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데 비밀이 영원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내가 준비한 대답은···


‘제가 귀문관살의 사주라서 어릴 때부터 가끔 영혼을 보곤 합니다. 사실 저 뿐만 아니라 세상에 영혼을 보는 사람이 꽤 있다고 알고 있어요. 무속인도 있고 자칭 퇴마사라는 도인들도 있고. 전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바로 답변하지는 않았다. 박희선 기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지 다음 말을 들어보고 싶어서. 근데 박희선 기자는 내가 대답을 못해서 머뭇거린다고 판단했는지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의기양양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사실 저도 작가님 인터뷰하러 갔다가 작가님이 귀신이 있다고 소리치셔서 혼비백산 도망친 기억이 있거든요? 근데 이번에 집필하신 드라마도 소재가 영혼에 대한 건데··· 귀신을 보는 게 맞는지 확실하게 말씀 좀 해주시죠.”


딱 보니 지난 번 옥상에서 혼비백산한 이후로 나한테 불만을 품고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모양.

내가 막 대답을 하려는 데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박희선 기자의 머리카락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기자들의 술렁임과 비명이 들려왔다.


“박희선 기자 머리카락이 이상해!

“으악! 머리카락이 왜 저래?”


박희선 기자의 바로 옆에 검은 귀기의 형체가 머리카락을 잡고 있었지만 날 제외한 그 누구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머리카락을 잡고 있다는 건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는 영이라는 건데··· 악귀라면 저렇게 머리카락을 잡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 같고. 지난 번 여름처럼 박희선 기자한테 원한이 있는 영인가?’


박희선 기자 주위에 있던 기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몇몇 기자는 카메라로 박희선 기자의 머리카락을 찍느라 플래시가 번쩍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박희선 기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박 기자의 동료기자가 소리쳤다.


“박 기자! 자기 머리카락 좀 봐봐.”

“내 머리카락? 왜?”


그제야 박희선 기자가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더듬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 셀카 모드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던 박희선 기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머리카락이 마치 누군가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하늘로 치솟아 있었던 것이다.

박희선 본인도 놀라서 소리쳤다.


“내, 내 머리가 왜 이래? 누가 머리카락을 잡아 당아기는 것 같아. 어떡해··· 어떡해··· 으악!!!”


박희선 기자가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자 다른 기자들도 놀라서 행사장인 상영관을 빠져나갔다. 박희선 기자에게 감정이 좋지 않던 몇몇 기자와 관계자들이 한 마디씩 했다.


“작가님이 영혼을 본다고 이상한 소리하더니 정작 본인한테 한 맺힌 귀신이 붙은 모양이네.”

“하긴 그동안 사생활 까발려서 괴롭힌 연예인들이 한두 명이야? 박희선 기자 때문에 자살한 연예인도 있다고 하던데 원혼이 달라붙어도 할 말은 없지.”


사회자가 관계자와 상의 후 말했다.


“오늘 제작발표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진행요원들이 배우와 감독이 퇴장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했다. 송현우가 퇴장하면서 내게 속삭였다. 송현우는 내가 영혼을 보는 것은 물론 퇴마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혹시 작가님은 뭐 보셨나요? 저는 아까 그 기자한테서 영적인 기운을 좀 느낀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송현우도 어릴 때부터 신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동생 희연의 영혼이 옆에 있는 걸 느끼고 눈물을 흘렸던 것도 그 때문이고. 송현우도 영적인 기운을 느낀다고 하니 왠지 가까운 동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도 확실하게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귀기의 덩어리가 그 기자의 머리를 잡고 있는 건 봤어요.”

“아, 역시···”

“제 생각에 악귀는 아닌 것 같은데 머리카락을 잡을 수 있다는 건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헐~ 그럼 어떡해요?”

“제가 가서 상황을 좀 봐야겠어요.”


송현우가 농담 반, 진담반으로 말했다.


“작가님. 우리 이제 촬영 시작한 거 아시죠?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네, 조심할 게요.”


나는 다른 배우들에게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디로 갔지? 그 상태로 운전을 하거나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설마··· 귀신 들렸다고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았을 테고···’


주위에 흐릿하게 귀기의 냄새가 남아있어서 그 흔적을 따라갔다. 귀기가 건물 뒤쪽의 후미진 구석으로 이어졌다. 계속 귀기를 따라가자 ‘직원 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자 온갖 물품들이 쌓여 있는 창고 같은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희선 기자의 목소리는 아니고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인데 음성에 귀기가 서려 있었다. 그 말은 곧 악귀가 사람의 육신에 빙의했다는 말인데.


“나하고 약속했잖아.”


내가 숨어서 보니까 박희선 기자가 휴대폰을 셀카 모드로 해서 자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얼마나 기괴하게 보였을까. 자기가 자신을 촬영하는데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을 하니까.


“현정이가 영호하고 사귀는 거 아니라고 내가 말했잖아. 둘은 그냥 친구 사이라고 했잖아! 근데··· 근데 왜··· 왜 그랬냐고! 왜!!!”


마지막에 비명 지를 때는 창고의 물품들이 흔들리고 전등이 껌빡거릴 정도로 강력한 귀기가 발산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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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이한영의 과거 +8 24.03.15 1,215 64 12쪽
64 새로운 능력(2) +5 24.03.14 1,481 67 12쪽
63 새로운 능력(1) +4 24.03.13 1,567 62 12쪽
62 방송출연, 영혼탐정(3) +2 24.03.12 1,632 61 12쪽
61 방송출연, 영혼탐정(2) +3 24.03.11 1,687 60 13쪽
60 방송출연, 영혼탐정(1) +2 24.03.10 1,800 64 13쪽
59 시청률(3) +5 24.03.09 1,853 67 13쪽
58 시청률(2) +6 24.03.08 1,868 70 12쪽
57 시청률(1) +4 24.03.07 1,936 68 13쪽
56 첫 방송(3) +2 24.03.06 1,927 69 13쪽
55 첫 방송(2) +1 24.03.06 1,889 65 12쪽
54 첫 방송(1) +5 24.03.05 1,970 61 13쪽
» 제작발표회(2) +1 24.03.04 1,978 67 12쪽
52 제작발표회(1) +3 24.03.03 2,050 64 12쪽
51 크랭크인(2) 24.03.02 2,110 69 14쪽
50 크랭크인(1) +2 24.03.01 2,199 68 12쪽
49 몽글빵집의 혼령(2) +1 24.02.29 2,148 66 12쪽
48 몽글빵집의 혼령(1) +1 24.02.28 2,208 72 12쪽
47 몽글빵집 +12 24.02.27 2,282 6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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