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종호 님의 서재입니다.

퇴마하는 작가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이상한하루
작품등록일 :
2023.10.23 09:05
최근연재일 :
2024.03.15 19:00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181,410
추천수 :
4,750
글자수 :
371,835

작성
24.03.06 19:00
조회
1,889
추천
65
글자
12쪽

첫 방송(2)

DUMMY

옆에 찰싹 붙어서 조혜린 실장의 톡을 훔쳐보던 희정이 말했다.


“와~ 그렇게 죽을 썼는데도 시청률이 12프로나 나왔어?”

“쉽게 보면 안 돼. 작가가 정미래야.”

“아참. 근데 오늘 제작발표회에서 그 여 기자는 어떻게 된 거야? 그 기자가 오빠가 영혼 볼 수 있다고 막 떠들다가 자기한테 귀신 붙었다며? 그 여 기자 말 사실 아니지? 말도 안 돼. 오빠가 영혼을 볼 수 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지.”


희정이한테는 어차피 거짓말이 금방 들통나니까 계속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가끔··· 보긴 해.”

“헉. 오빠가 진짜 귀신을 본다고?”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희정의 눈이 있는 대로 커졌다.


“언제부터? 어릴 땐 아니었잖아?”

“모르겠어. 그냥 최근에 갑자기 그런 능력이 생긴 것 같아.”

“헐~ 대박! 막 피 묻은 귀신도 보고 그래?”

“가끔··· 볼 때도 있어.”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사람이 그러고 어떻게 살아? 그러고 보니까 오빠 얼굴이 많이 상했네. 귀신한테 시달려서 그런 거 아냐? 보약이라도 챙겨 먹여야겠다.”


희정이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희정이가 겉으론 퉁퉁거려도 속은 반대다. 내가 항상 실패만 거듭하고 사람들에게 치이며 살다 보니 혹시 또 손해보는 일은 없는지 살피는 게 몸에 배어 있다.


“그런 거 아냐. 귀신 본 뒤로 오히려 대본도 잘 써지고 컨디션도 더 좋아.”


희정이 날 째려보다가 말했다.


“가만··· 그럼 혹시 귀신보고 나서 부터 대본을 잘 쓰게 된 건가?”


혹시 얘가 시스템에 대해 뭔가 눈치를 챈 게 아닌지 순간 뜨끔했다. 근데 이어진 얘기를 들으니 그건 아닌 듯.


“오빠 있잖아··· 원래 귀신을 보거나 귀신을 받아들이면 신기 같은 게 생겨서 특별한 능력이 생긴대. 내가 볼 땐 오빠가 갑자기 대본을 잘 쓰게 된 것도 귀신 보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다행히 자기마음대로 해석해서 비슷하게 합리화를 시켜주니 다행이다. 희정이가 뭔가 찜찜한 듯 계속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날 힐끔거리자 괜히 불안해졌다.


“근데 넌 오늘 어디서 잘 거냐? 계약한 오피스텔은 내일부터 들어갈 수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여기서 자면 되지.”

“내가 돈 줄 테니까 호텔에 가서 자.”

“미쳤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돈 아깝게 호텔을 가? 그냥 나 바닥에 잘 테니까 오빠가 침대에서 자.”


무슨 말을 해도 여기서 잘 기세다.


“그냥 내가 바닥에 잘 테니까 니가 침대에서 자. 그리고 내일 촬영할 분량에서 지금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 세 개 이상 생각해 놔. 알았어?”


희정이 금방 보조작가 모드로 돌아가 고분고분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작가님.”


*


촬영장 몽글빵집.

크랭크인 후 3주차에 접어들면서 다들 현장에 적응을 하면서 촬영장 분위기가 기름칠을 한 듯 잘 돌아가고 있었다.


“레디~ 액션!”


이한영이 몽글빵집 제빵실에서 빵을 굽고 있고 나영찬의 영혼이 그 옆에 힘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빵을 굽다가 돌아서던 이한영이 옷이 피로 물든 나영찬의 영혼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


“으악!”


비명소리가 얼마나 큰지 연기가 맞나 싶을 정도.

나영찬의 영혼이 피 분장을 하고 나타나는 건 미래영상에 없던 장면이다. 근데 이 장면이 나올 때마다 근육질의 마정한이 자지러지는 모습을 본 스태프들은 웃음을 참느라 입틀막을 했다.


지금처럼 이한영과 나영찬이 티카타카하는 장면들은 미래영상에도 있지만 지금처럼 임팩트가 강하지는 않았다. 근데 나영찬의 영혼이 피 분장을 한 이후로 둘의 밀당은 <보이지 않는 사랑>의 확실한 웃음포인트가 됐다.


이한영이 피 분장을 한 나영찬을 보고 몸서리를 치면서 대사를 했다. 그야말로 연기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의 메소드 연기.


“아씨! 심장 떨어질 뻔했네. 아니, 인기척이라도 좀 내던가. 그렇게 흉한 모습으로 거기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어떡해요?”


나영찬이 억울하다는 듯 힘없이 대사를 친다.


“귀신이 인기척을 어떻게 내요?”


내가 피 분장 아이디어를 낸 후 현장에서 급하게 쓴 쪽지 대본에 들어간 이 대사를 송현우는 좋아했다. 귀신이 인기척을 어떻게 내냐는 이 대사가 나영찬이 영혼이라는 걸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는 대사라며.

이한영이 답답하다는 듯 말한다.


“아니, 그러니까··· 여기서 남의 영업 방해하지 말고 얼른 저승으로 넘어가라니깐요.”


나영찬의 영혼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 이한영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친다. 나영찬의 영혼이 무서운 얼굴로 이한영의 얼굴에 닿을 것처럼 다가가서 말한다.


“당신 같으면···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저승으로 넘어갈 수 있겠어요? 내 심정을 좀 이해를 해봐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가 있어요? 결혼은 안 했어도 연애는 해봤을 거 아녜요?”


이한영이 마른 침을 꼴깍 삼키고 말한다.


“나 모쏠인데···”


김욱 감독이 소리쳤다.


“컷, 오케이!”


마지막 대사에서 몇몇 스태프들이 킥킥거렸다. 내 옆에 바싹 붙어서 모니터용 화면을 지켜보던 희정도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 마정한 배우님 표정이 왜케 웃겨? 표정은 하나도 안 웃긴데 대사하고 행동이 언발런스하니까 진짜 웃기다. 캐릭터 완전 대박이네.”


내가 불안에 사로잡혀 물었다.


“시청자들도 재미있게 보겠지?”

“이건 무조건 재밌게 본다고 봐야지.”

“시청률 잘 나올까?”

“오빠 오늘 첫방 시청률 때문에 그러지? 걱정하지 마. 잘 나올 거야. 나 촉 좋은 거 알지?”


물론 나는 희정의 촉을 믿는다. 문제는 희정이 잘 나온다는 시청률과 내가 생각하는 시청률의 수준이 많이 다를 것 같아서 걱정이다.


어쨌든 오늘이 첫방이다.

어제는 긴장돼서 거의 잠을 못 잘 정도였다. 영화의 결과는 감독 책임이 되지만 드라마는 작가 책임이 더 크다. 비록 미래 인터뷰에서 최종 시청률 27%라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변수도 많고 워낙 높은 시청률이라 과연 정말로 그렇게 될까 싶다.


그나마 이한영과 나영찬의 티키타카를 보고 스태프들이 웃으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촉이 뛰어난 희정이 장담하는 것도 안심이 되고. 스태프들이 다음 촬영 준비하는 동안 마정한이 피 분장을 한 송현우를 보며 투덜거렸다.


“현우 형 분장 좀 어떻게 안되나? 내가 놀라는 게 이게 연기가 아니라니까. 진짜 놀라는 거예요. 현우 형 얼굴 볼 때마다 진짜 지린다고요. 어젯밤에는 형 꿈에도 나왔잖아.”


송현우가 짓궂게 말했다.


“아씨··· 그건 좀 아니다. 니 꿈에 왜 내가 나와? 징그럽게. 아무튼 니가 그래서 리얼한 연기가 나오는 거야. 니가 놀라는 만큼 시청자들이 재밌어 하는데 어떻게든 견뎌야지.”

“아··· 형 진짜··· 이거 너무 극한직업이야. 작가님··· 이거 작가님 아이디어잖아요. 현우 형 언제까지 피 분장해요?”

“이 씬 끝나면 처음 대본대로 가니까 이제 피 분장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송현우 배우님도 분장하느라 너무 고생하셨어요.”

“아쉽네요. 정한이 놀라는 모습 더 보고 싶은데... 흐흐.”

“이 형이 진짜··· 내가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거 보고 싶어요?”


두 배우가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보며 희정이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에는 너무 무서운 이미지라서 마정한 배우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 근데 이번에 보니까 반전 매력이 있네. 아마 드라마 방송되고 나면 여자들한테 마정한 배우님 인기 엄청 올라갈 것 같은데?”

“그럼 이제는 송현우 배우님한테서 마정한 배우님으로 갈아타는 거야?”

“뭔 소리야? 내 최애 배우님은 영원히 송현우 배우님이라고.”


그때 옆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작가님 보조작가시라고 했나요?”


옆을 돌아보던 희정이 입을 벌린 채 얼어붙었다. 눈앞에 거대한 근육덩어리 마정한이 인상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정한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보조작가님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작가님이 현우 형만 편애해서 대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희정이 완전히 쫄은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최, 죄송해요.”

“보조작가님, 명함 한 장 줘봐요.”

“제 명함요? 왜, 왜요?”

“왜라니? 현우 형한테는 줬더구만. 작가님 바쁘실 때 나도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야 할 거 아닙니까?”

“아, 네. 네.”


희정이 화들짝 놀라며 명함을 건넸다. 마정한이 명함을 유심히 보며 중얼거렸다.


“가만··· 허희정 작가?”


마정한이 강력계 형사의 눈빛으로 희정과 날 번갈아 보고는 말했다.


“이게 허씨가 흔한 성씨는 아닌데 말이야··· 근데 보조작가님 얼굴에 작가님 얼굴이 있네? 쓰읍··· 이상하다, 이상해.”


굳이 숨길 이유는 없지만 희정이가 내 동생이라는 게 밝혀지면 아무래도 연락하는 배우들이 불편할 것 같다.


“그렇죠? 저도 처음 허희정 작가 봤을 때 깜짝 놀랐어요. 저하고 성이 같은데 얼굴도 닮은 것 같아서···”

“그쵸?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했죠? 허희정 작가님··· 앞으로 배우 편애하지 마세요?”


희정이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고분고분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마정한이 날 보더니 은근하게 물었다.


“시청자들이 이한영 보고 좋아할까요?”


인터뷰에도 나온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랑>이 27%의 시청률을 기록하는데 기여한 일등공신은 마정한이다. 근데 본인은 아무래도 시청자 반응이 불안한 모양. 아무래도 그동안 폼 잡는 험악한 역할만 하다가 갑자기 귀신 보고 놀라는 찌질남이 되었으니.


“여기 스태프들 반응 정말 좋은 거 모르세요?”

“그거야 내가 찌질하게 나오는 거 보니까 재밌어서 그러죠.”


그러자 희정이 냉큼 말했다.


“시청자들도 똑같아요. 아마 마정한 배우님 망가지는 거 엄청 재밌게 볼 걸요?”


마정한이 희정의 장담이 싫지 않은 듯 애써 인상을 쓰며 말했다.


“배우 편애하지 말아요.”


희정이 얼어서 대답했다.


“네.”


*


<보이지 않는 사랑> 첫 방송.

희정이 맥주를 훌쩍거리다가 내 눈치를 보먀 말했다.


“혹시 내가 옆에 있는 거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미리 말해. 혼자 있고 싶다고. 오피스텔로 쏜살같이 사라져 줄게.”

“아니. 오늘은 그냥 있어.”

“거봐. 오빠는 내가 옆에 있어야 한다니까.”

“오늘만이야.”


희정이 힐끗거리며 내 눈치를 봤다. 희정이 말대로 나도 첫방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하고 불안해서 혼자 있는 것보다 희정이라도 옆에 있는 게 훨씬 나았다.


“꺅! 나온다! 어떻게?”


마침내 뮤직비디오 같은 화사한 영상의 오프닝 타이틀이 화면을 가득 메우며 흘러나왔다. 나도 처음으로 보는 오프닝 타이틀.


영혼이 된 나영찬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아내 혜정을 바라보는 모습, 이한영이 빵집에서 빵을 만드는 모습, 혜정이 쓸쓸하게 낙엽이 쌓인 길을 걷고 그 옆에 나란히 영혼이 된 나영찬이 걷는 모습 등...

김욱 감독 특유의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영상이 오프닝 타이틀을 가득 메웠다.

이어진 광고시간.


“와, 영상 너무 예쁘다.”


광고가 끝나고 드라마가 시작됐다. 길을 건너서 몽글빵집에 들어가는 나영찬. 그리고 뜨는 자막.

극본 허동수.


희정이 호들갑을 떨었다.


“오빠 봤어, 봤어? 내가 티비에 이름이 나오는 드라마작가를 오빠로 두다니. 아무래도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큭큭.”


이어서 나영찬의 사고장면. 호들갑 떠는 903호 부부. 뛰쳐나오는 이한영. 영혼이 된 나영찬이 자신의 죽은 모습을 보고 이한영에게 매달리는 모습. 사고현장에서 오열하는 혜정과 진호 그리고 절망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영찬의 영혼.


희정이 휴대폰을 들며 말했다.


“지금 시청률하고 시청자 반응 어떤지 알아볼까?”

“아니. 지금은 그냥 드라마에만 몰입해서 보자.”


사실 다른 누구보다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걸 확인하면 온전히 드라마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고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퇴마하는 작가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죄송합니다. 4월 1일 연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5 24.03.29 301 0 -
공지 <휴재안내> 66화부터는 4월1일 연재합니다. +1 24.03.15 216 0 -
공지 앞으로 연재시간이 저녁 7시(19시)로 변경됩니다. +1 24.01.15 4,108 0 -
65 이한영의 과거 +8 24.03.15 1,215 64 12쪽
64 새로운 능력(2) +5 24.03.14 1,481 67 12쪽
63 새로운 능력(1) +4 24.03.13 1,567 62 12쪽
62 방송출연, 영혼탐정(3) +2 24.03.12 1,633 61 12쪽
61 방송출연, 영혼탐정(2) +3 24.03.11 1,688 60 13쪽
60 방송출연, 영혼탐정(1) +2 24.03.10 1,800 64 13쪽
59 시청률(3) +5 24.03.09 1,853 67 13쪽
58 시청률(2) +6 24.03.08 1,869 70 12쪽
57 시청률(1) +4 24.03.07 1,936 68 13쪽
56 첫 방송(3) +2 24.03.06 1,927 69 13쪽
» 첫 방송(2) +1 24.03.06 1,890 65 12쪽
54 첫 방송(1) +5 24.03.05 1,970 61 13쪽
53 제작발표회(2) +1 24.03.04 1,978 67 12쪽
52 제작발표회(1) +3 24.03.03 2,050 64 12쪽
51 크랭크인(2) 24.03.02 2,110 69 14쪽
50 크랭크인(1) +2 24.03.01 2,199 68 12쪽
49 몽글빵집의 혼령(2) +1 24.02.29 2,149 66 12쪽
48 몽글빵집의 혼령(1) +1 24.02.28 2,208 72 12쪽
47 몽글빵집 +12 24.02.27 2,282 68 12쪽
46 대본리딩(2) +2 24.02.26 2,319 69 13쪽
45 대본리딩(1) +4 24.02.25 2,400 70 15쪽
44 오디션(2) +6 24.02.24 2,393 66 12쪽
43 오디션(1) +1 24.02.23 2,407 70 13쪽
42 염매(2) +4 24.02.22 2,424 78 13쪽
41 염매(1) +4 24.02.21 2,580 77 13쪽
40 마지막 퍼즐(2) +2 24.02.20 2,629 75 12쪽
39 마지막 퍼즐(1) 24.02.19 2,703 7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