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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님의 서재입니다.

톱스타 떡잎 줍는 괴물 신입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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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흠박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5
최근연재일 :
2024.07.0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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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283

작성
24.05.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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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9화 너도 같이 오래

DUMMY

청담동 인근 한 카페.


"잘 지냈어요?"

"그럼요. 자고 책보고 맛있는거 먹고. 아주 백수가 따로없었죠."


일주일의 휴식이 확실히 보약이었던지 홍슬기의 얼굴에서 반들반들 빛이 났다.

그 사이 어느 정도 초린의 잔재를 털어낸 것 같기도 했고.


"오빠도 좀 쉬었어요?"


"예, 푹 쉬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고민도 좀 해보고요."

"오오! 괜찮아 보이는 시나리오가 있었어요?"


빨대를 입에 문 홍슬기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빨리 연기하고 싶어요?"

"그게 아니고···. 큼큼, 이게 뭐랄까. 오랫동안 해온 연기인데 새로운 맛을 알았다고 해야 할까? 하아, 저 완전 중독됐나 봐요."


눈꼬리를 축 늘어뜨린 홍슬기가 애꿎은 빨대만 질겅질겅 씹어댔다.


"독화 개봉 전까지 좀 쉬엄쉬엄 가자고 했잖아요. 조금만 참아요."

"그래야죠. 하아, 괜히 욕심만 많아서는."


담당 배우가 연기하고 싶어 죽겠다는데 말리는 것도 웃기긴 했지만, 지금은 홍슬기 배우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아직 물이 들어오기도 전인데 설레발 칠 필요는 없었다.


"지금도 단역 정도는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어요. 근데 제가 그랬죠? 슬기씨는 용수철이라고. 독화가 개봉하면 많은게 달라질 겁니다. 우리는 그때 움직일 거에요. 급물살을 타고 더 큰물로 나가는 거죠."


얘기를 다 듣지도 않았는데 고개부터 끄덕이는 홍슬기.


"네, 믿어요. 그럼 연기 연습만 하고 있으면 되는 거죠?"

"아뇨, 영화 개봉 전에 슬기씨 인지도부터 올릴 생각입니다."


"에? 인지도란게 올리고 싶다고 그냥 올릴 수 있는 거던가요?"

"당연히 아니죠. 그래서 보통 예능이라는 선택지를 많이 고르는거고."


"예, 예능이요?"


당황한 홍슬기가 불안증세를 보이며 컵을 만지작거렸다.

어느 정도 이해되는 반응이었다.

과거 홍슬기는 연예인들이 떼로 출연하여 토크 경쟁을 펼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입도 뻥긋 못한 것도 모자라 MC에게 타박까지 받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심각한 예능 울렁증에 걸려 예능에 ‘예’ 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고 들었다.


"아직도 예능이 무서워요?"

"무섭다기보다는···. 저랑 안 맞아요. 제가 말을 재밌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텐션이 높은 것도 아니고."


"이해는 해요.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새끼 양 한 마리를 던져뒀으니 트라우마가 안 생기고 배기겠어요?"


내 말에 얼굴이 새빨개진 홍슬기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봐, 봤어요?"


"당연히 봤죠. 내 배우가 나왔다는 첫 예능인데."

"꺄악. 미쳤나봐! 내 인생 최고 흑역사를···!"


"에이, 보고 말 것도 없던데 뭘. 애초에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더만."

"몇 번 잡히긴 했거든요! 병풍이긴 했지만···."


반쯤 녹은 얼음을 빨대로 뒤적뒤적하던 홍슬기가 넋두리하듯 심정을 토해냈다.


"전혀 몰랐어요. 예능이란게 그렇게 어려운건지···. 그래도 어디 가서 말 못 한다는 소린 안 듣는데···. 거긴 진짜 야생이에요 야생. 악착같이 끼어들지 않으면 말 한마디 못 내뱉겠더라고요."


"그럴 만도 하죠. 그 토크쇼가 심하게 자극적인 맛을 원하기도 했으니깐. 하필 첫 예능을 나가도 그런 데를 나갔네요."

"하아···. 당시 매니저님이 어렵게 잡아 왔다면서 무조건 나가라고 등 떠밀었거든요. 어쩔 수가 없었죠 뭐."


"저도 등 떠밀면 어쩌려구요?"


그 말에 얼음을 휘젓던 빨대를 멈칫하고선, 내 눈을 빤히 바라보는 홍슬기.


"괜찮아요. 오빠라면."

"아직 울렁증이 심하다면서요. 싫으면 싫다고 얘기해도 되요."


"지금 제 상황에서 뭘 가리겠어요. 오빠 앞에서 다짐했잖아요. 빨리 성공해서 오빠 뺏기지 않을 거라고."

"저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은 목소리를 좀 낮춰서···."


따가워죽겠다.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이 그대로 전해져서.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얼핏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미녀가 저런 멘트를 날리니 뭔가 오해를 한듯싶었다.


"예능이라고 무작정 슬기씨를 집어넣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예능이면 슬기씨도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무슨···. 예능인데요?"


홍슬기가 한껏 긴장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봤고.


"음···. 굳이 따지자면 리얼 생존 다큐, 버라이어티 토크쇼라고 할까요?"

"예? 리얼...뭐요?"


대답을 들은 그녀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일단 시작은 웹 예능이 될 겁니다. 오필수PD가 제작할 거고요."

"오필수 PD님이라면···. 혹시 예전에 그 '돌격 앞으로' 만드셨던 그?"


"맞습니다. 지금은 TBN로 이직하셨더라고요."

"헐···. 유명하신 PD님이잖아요. 히트작도 있으시고."


"요즘 좀 주춤하긴 하지만 제법 잘 나가던 예능 PD였죠."

"그런 분이···. 저를 써줄까요? 저는 검증된 게 없는데···."


"써줄 겁니다. 그것도 슬기씨 원톱 체제로."

"예···? 워, 원톱이요? 제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냐는 표정의 홍슬기를 향해 나는 오 PD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여줬다.

모름지기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겠는가.


[TBN 오필수PD: 주포씨! 이 영상 속 주인공···. 설마 홍슬기씹니까?]

[송주포: 네, 맞습니다.]


[TBN 오필수PD: 세상에···. 이런 분인 줄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주 흥미롭네요.]

[송주포: 실제로 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원하시면 직접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TBN 오필수PD: 일단 내부 회의를 한번 해봐야 하긴 하는데···. 그럼 일단 미팅 한번 하실까요?]

[송주포: 미팅이라면···?]


[TBN 오필수PD: 이게 참 무슨 우연인지 모르겠는데, 주포씨 제안대로 파일럿 성격의 웹 예능으로 우선 제작해보기로 윗선과 얘기 다 끝내놨습니다. '으스스한 캠터뷰'라는 가제의 프로그램인데···. 어째 홍슬기씨와도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헐? 이거 진짜에요?"


눈으로 메시지를 쭉 읽던 홍슬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진짜지, 가짜겠어요."

"대체 무슨 프로그램이길래 제가 잘 맞을 것 같다는 거예요?"


"슬기씨가 좋아하는거요. 캠핑. 아니, 부쉬크래프트라고 해야하나?"


수풀을 뜻하는 영단어 'bush'와 기술을 뜻하는 'craft'의 합성어인 부시크래프트(Bushcraft)는 아무런 현대 인프라가 없는 야생에서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자연을 즐기는 캠핑의 한 종류였다.


그리고 홍슬기는 부시 크래프트 캠핑 마니아였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아주 우연이었다.


어쩌다 홍슬기 집 안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방 하나가 온갖 캠핑 장비들로 가득 들어차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방에는 온갖 총기류가 종류별로, 아주 예쁘장하게 전시되어있었다.

평상시 별 감정의 동요가 없는 나도 그때만큼은 입을 떡 벌렸던 것 같다.


"아버님은 잘 지내시죠?"


홍슬기가 이런 마초적인 취미를 갖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육군 특수부대 원사로 전역한 홍슬기의 아버지는 항상 그녀를 데리고 다니며 캠핑을 다녔다고 했다.

그녀에겐 일종의 조기교육이 된 셈이었다.

따지고보면 그녀가 밀덕으로 진화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요. 어제도 연락 오셨는걸요. 지금은 산티아고에 계시데요."


정년을 꽉 채우고 전역한 홍슬기의 아버지는 현재 세계 일주를 떠나셨다고 한다.


"자, 잠깐! 설마 PD님한테 보여줬다는 영상이 설마···. 그건 아니죠?"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홍슬기가 남몰래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수익 창출의 목적은 아니었고, 얼굴은 나오지 않게 하면서 자신이 하는 야생 캠핑을 그대로 보여주는 콘텐츠였다.


분명 소통도 없이 묵묵히 일만 하는 영상이건만, 어느새 구독자는 5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언젠가 영상 댓글을 한번 둘러본 적이 있었는데.


ㄴ 와! 이 여자 뭐냐. 생존 기술 제대로 배웠는데?

ㄴ 말 한마디 안하고 일만 하고 먹기만 하는데 왜 이렇게 빠져드는 거냐···.

ㄴ ㅇㅈ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보고 있으면 잠이 솔솔 쏟아짐.

ㄴ 이 여자 최소 군필임. 삽질 자세가 예사롭지 않음.

ㄴ 얼굴 공개 언제 해주시나요! 얼핏 봐도 엄청 미인이실 것 같은데···.


나는 이쪽 분야에 대해 잘 모르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듯 보였다.


"걱정 마세요. 비밀은 지켜주기로 했으니깐. 얼마나 마음에 드신건지 영상 보자마자 바로 연락주셨어요. 미팅 한번 하자고."

"버, 벌써요? 으아···."


머리통을 부여잡은 홍슬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아무리 그런 걸 좋아한다고 해도 엄연히 예능인데···."


"잘할 수 있습니다. 크게 부담가질 필요 없어요. 슬기씨는 원래 하던 대로 캠핑만 즐기시면 됩니다. 다른 게 있다면 게스트 하나를 데리고 해야 한다는 거?"

"정말···. 그 정도면 되나요?"


그래도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라 그런지 홍슬기가 슬쩍 관심을 보였다.


"어차피 웹 예능이기도 하고, 제작 규모도 그렇게 크지 않아요. 부담 없이 하셔도 됩니다."


물론 잘되면 방송국에 정규 편성되겠지만 미리 김칫국부터 마실 필요는 없었다.


"일단···. 미팅 한번 해볼게요."


어느 정도 결심이 선 듯 홍슬기가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럼 일정 잡히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일단 회사에 얘기는 해야 하니깐."

"네. 알겠어요. 오빠만 믿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거 참 큰일이다.

어째 저 '오빠만 믿을게요'라는 말에 점점 중독되는 기분이었다.

듣기만 해도 없던 힘이 솟는 느낌이랄까?

어쨌거나 당사자를 설득했으니, 이제는 위에다가 최종 승인만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부리나케 회사로 향했다.

일단 팀장님께는 전화로 미리 상황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

전화를 받고 대뜸 비명을 지르던 팀장님의 목소리가 떠올라 픽 웃음이 났다.


[뭐!? 누구? 오필수? 예능PD 오필수? 네가 거기랑 미팅을 잡았다고?]

"예, 이번에 오 PD님이 준비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슬기씨를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요."


[자, 잠깐, 잠깐! 아니, 그나저나 니가 오필수를 어떻게 알고 컨택이 된 거야? 응? 아니다. 내일 출근하는 대로 바로 나한테 뛰어와! 내일 직접 듣게. 늦지말고 빨리 텨와라?]


잔뜩 흥분해서 얼굴이 시뻘게져 있을 팀장님을 생각하자 괜스레 웃음이 났다.

나이답지 않게 자기감정에 솔직해서 인간미가 있는 양반이었다.


회사에 도착해서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팀장님이 눈에 불이라도 뿜을 기세로 내게 다가왔다.


"주포 너 인마!"

"예?"


"지금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어딜요?"


이제 막 출근한 사람한테 다짜고짜 어딜 가자는 걸까?


"대표실. 대표님이 너 데리고 같이 올라오란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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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시궁창에도 별은 뜬다 +8 24.06.01 16,635 371 12쪽
26 26화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10 24.05.31 16,662 369 12쪽
25 25화 벌써 잊으신거 아니죠? +11 24.05.30 16,809 370 12쪽
24 24화 충격고백 +13 24.05.29 16,808 377 13쪽
23 23화 심상치 않은 게스트 +8 24.05.28 16,681 365 12쪽
22 22화 귀인이 나타났거든요 +13 24.05.27 16,720 350 12쪽
21 21화 조금 이상한 미팅 +11 24.05.26 16,733 350 12쪽
20 20화 올게 왔구나 +10 24.05.25 16,795 377 13쪽
» 19화 너도 같이 오래 +8 24.05.24 16,855 333 11쪽
18 18화 야동 아임다 +8 24.05.23 17,008 330 12쪽
17 17화 맨땅에 헤딩 +8 24.05.22 17,230 325 12쪽
16 16화 포텐터진 날 +8 24.05.21 17,252 350 11쪽
15 15화 뺏기지 않을거에요 +11 24.05.20 17,318 342 11쪽
14 14화 그쪽 정말 대단하네요 +13 24.05.19 17,348 350 13쪽
13 13화 어떻게 아는 사이죠? +9 24.05.18 17,526 368 14쪽
12 12화 부담스러운 관심 +19 24.05.17 17,549 355 11쪽
11 11화 제가 감이 좀 좋습니다 +9 24.05.16 17,773 356 13쪽
10 10화 진짜 미친년 아냐? +16 24.05.16 18,058 357 15쪽
9 9화 오빠는 내 운명 +11 24.05.15 18,192 348 12쪽
8 8화 진짜 미친년 +10 24.05.14 18,134 361 11쪽
7 7화 그녀의 대운 +16 24.05.13 18,822 359 11쪽
6 6화 이능과 업보 +8 24.05.12 19,321 391 13쪽
5 5화 이상한게 보인다 +8 24.05.11 19,973 380 11쪽
4 4화 간택당하다 +16 24.05.10 20,303 40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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