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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님의 서재입니다.

톱스타 떡잎 줍는 괴물 신입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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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5
최근연재일 :
2024.07.0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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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283

작성
24.05.1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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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9화 오빠는 내 운명

DUMMY

철컥


오디션장 문이 열리고 얼굴이 잔뜩 상기된 홍슬기가 나를 향해 총총 다가왔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목검을 건네받고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고생했어요."

"하아···. 너무 긴장해서 뭘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정도 연습했으면 몸이 알아서 잘했을 겁니다. 힘도 썼겠다 고기나 먹으러 가시죠? 한우로다가."


해맑게 고기를 부르짖는 나를보며 홍슬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안 궁금해요?"

"뭘요?"


"아니, 보통 매니저는 오디션 분위기가 어땠는지, 준비한 대로 잘했는지, 심사위원 반응은 어땠는지 이런 거 물어보던데···."

"물어봐서 뭐해요. 어차피 끝난 오디션. 그거 안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요?"


심드렁한 내 대답에 홍슬기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이미 끝난 일 붙잡고 있는 것보다 비생산적인 일도 없어요. 그럴 시간에 차라리 고기 한 점 더 먹는 게 낫지."


배고파 죽겠으니 빨리 고기 먹으러 가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아침부터 홍슬기 케어한다고 쫄딱 굶은 상태라 배가 등가죽에 붙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안 봐도 알 것 같아요."

"네?"


내 뒤를 졸졸 쫓아오던 홍슬기가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초린 역. 슬기씨가 될 겁니다."


확신이 들어찬 내 대답에 그녀의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떠올렸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슬기씨 스스로도 잘 생각해봐요. 손."




조건반사처럼 내 손바닥에 본인 손을 턱 하니 올려놓는 홍슬기.

여배우의 손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물집과 상처들로 가득하다.


"이게 그 증거잖아요. 슬기씨 생각엔 초린 역을 다른 배우가 한다는 게 상상이 돼요? 흐음···. 난 도저히 그림이 안 그려지는데."


희색을 감추지 못한 홍슬기가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실 아까 오디션 볼 때 잠깐 기억을 잃었을 정도로 초린 역에 몰입했어요. 연기하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


쫑알쫑알


그제야 얼굴에 자신감이 들어찬 홍슬기의 입에서 봇물 터지듯 수다가 터져나왔다.

사실 안봐도 알 것 같다는 말이 마냥 과장은 아니었다.


그만큼 한 달 동안 거의 동고동락하다시피 옆에 붙어서 홍슬기를 초린보다 더 초린스럽게 만들기 위해 혼을 쏟아부었다.


채홍사 정만수의 기억 속에는 초린과 아주 유사한 분위기의 기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특유의 분위기를 홍슬기에게 입히기만 해도 다른 여배우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연기가 가능했다.


'그래도 심사위원 반응은 좀 궁금하네.'


뭐, 그 반응이 예상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서도.



***



"허···. 내가 방금 뭘 본거지?"


거북이처럼 눈만 껌벅이던 정대윤 감독이 본인 볼을 꼬집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꿈은 아닌데···. 방금 저게 홍슬기라고? 내가 아는 그 홍슬기?"


늘 침착한 스탠스를 유지했던 이주석 대표도 말끝을 미세하게 떨었다.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박살내버렸네요. 홍슬기 연기가 저 정도였나···?"

"그 정도가 아닙니다! 저 정도면 거의 접신한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연기가 미쳤습니다! 아니, 원래 초린이 미친년이긴 한데······. 어찌됐건 여러 의미로 미쳤다고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정대윤 감독이 침까지 튀기며 흥분을 감추질 못했다.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은 이주석 대표가 주연 배우인 김지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원씨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눈앞에 놓인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킨 김지원이 많은 의미가 담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믿기지가 않아요. 정말 제가 알던 슬기가 맞는지 눈을 의심했다니까요. 아주 제대로···. 칼을 갈고 왔네요."


"이거 제대로 뒤통수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저런 연기력을 숨기고 있었다니···. 이제까지 오디션 봤던 배우들과는 아예 급이 다르네요."


"이 대표님···!"


갑자기 목소리를 내리깐 정 감독이 이주석 대표를 무섭게 쳐다봤다.


"초린 역은 무조건 홍슬기씨가 해야 합니다. 제 머릿속에 있던 초린의 모습 그 자체에요! 미쳐도 단단히 미쳐있는 잔혹한 살인귀! 그러면 김개시에 대한 충성만큼은 진짜인 상 미친년의 모습! 바로 저 겁니다!"


"진정 좀 하세요 정 감독님. 다들 생각은 비슷한 것 같으니."


차분한 김지원의 말투에 본인 상태를 자각한 정대윤이 멋쩍은 웃음과 함께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아무튼,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사실 이건 재고의 여지도 없어요. 이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역시 이견은 없습니다. 확실히 이제까지 지원자 중에 가장 압도적인 연기였으니···. 혹시 아까 홍슬기 손 제대로 보신 분 있습니까?"


"손이요?"

"물집과 상처들로 가득하더군요. 여배우 손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렇습니까? 초린 역에 그 정도까지···."


배우가 이 정도까지 배역을 갈망하는 모습은 창작자이자 연출자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엔 충분했다.


"이거 괜히 미안할 지경이네요. 초린 분량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닌데···."

"분량보다는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더 중요했겠죠. 아무튼, 오늘 다들 심사 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초린 역은···?


캐스팅에 관해선 제작사 대표의 권한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정대윤 감독이 애달픈 눈으로 이주석을 쳐다봤다.


"홍슬기로 낙점하시죠. 연기도 연기지만 초린 역 하나만 보고 노력해온 흔적을 봤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제법 기대되지 않습니까?"

"기대라면?"


"진짜 촬영 때는 대체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말입니다."


의미심장한 눈빛의 이주석이 홍슬기의 프로필 서류를 다시 한번 훑어봤다.



***


"축하해요 슬기씨."


담백하기 그지없는 축하에 홍슬기의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저...진짜 된 거에요?"

"네. 회사로 연락 왔어요. 이렇게 빨리 결정 날 줄은 몰랐는데···. 하하하. 그쪽도 급했나 보네요. 정말 잘 됐어요."


어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멍하니 서 있던 홍슬기는 이내.


"꺄악! 진짜 됐어!"


신난 토끼마냥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게 다 오빠 덕분이에요! 정말루요!"

"별말씀을. 슬기씨가 노력한 덕분이죠."


사실 내 덕이 크긴 했다.

하지만 홍슬기의 피나는 노력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었다.


"하아···. 왜 이렇게 안 믿기죠? 그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내가 되다니···."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슬기씨 말고는 초린 역을 제대로 소화할 사람은 없었을 거에요."


암, 대운이 트인 자가 노력까지 했는데 당연히 되야지.


"좋은 말만 해주셔서 고마워요. 저 너무 행복해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연기라면 신물이 났었는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죠?"


소매로 눈가를 훔친 홍슬기가 세상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슬기씨는 누구보다 연기를 계속하고 싶었던 거에요. 앞으로 그렇게 될 거고요."


확신이 담긴 내 목소리에 묘한 시선을 보내오는 홍슬기.


"뭔가···. 오빠를 만나고 뭔가 제 인생의 흐름이 한순간에 뒤바뀐 것 같아요. 이런 게 운명인가? 신기해요 정말."

"인연이죠. 대타 매니저로 슬기씨를 만나게 된 그 순간부터."


아니, 사실은 소품용 도자기에 뚝배기가 깨진 순간부터 모든 게 뒤바뀌었다.

타인의 기억, 그것도 악인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덧씌워진다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하지만 이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내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차올랐다.


'성취감.'


꺼져가는 불꽃에 마른 장작을 넣고, 땀나게 부채질을 하여 내 손으로 불씨를 되살리는 희열.

이 맛을 한번 보고 나니 제대로 한번 매니지먼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맛에 매니저 하나 보네.'


처음에는 현대판 노예와 같은 이 짓거리를 계속해야 하나 현타가 올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제대로 한번 해보자.'


열정이라는 불씨가 어느새 야망이라는 불꽃으로 자라난다.


'능력을 옳게만 사용한다면···. 이 업계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더불어 생명 연장의 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자 복잡했던 머릿 속이 탄산수에 씻긴 것처럼 개운해졌다.


명확한 목표가 새겨진 깃발이 가슴 속에 깊숙이 꽂힌 순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


다음 날.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홍슬기가 이른 아침부터 연습실로 들어섰다.


"쉬는 날인데 괜찮겠어요?"

"배우한테 쉬는 날이 어딨어요. 배역까지 확정된 마당에. 죽기 살기로 해야죠."


어여쁘지 아니한 아주 흡족한 마음가짐이다.

매니저로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어찌 안 들 수 있을까?


"슬기씨도 느끼고 있죠? 초린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걸."


일평생 청순가련 연기만 해온 홍슬기에게 초린이라는 파격적인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액션적으로도 미흡한 부분이 많았고, 표정이나 디테일한 포인트에도 어설픈 부분이 있었다.


나는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홍슬기를 완벽히 초린으로 탈바꿈시켜놓을 심산이었다.


"알고 있어요. 저···. 정말 이번엔 잘 해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주포 오빠."


무엇이든 해내고 말겠다는 열정과 잘 해내고 싶다는 열의가 뒤섞인 표정.

내가 아주 좋아하는 얼굴이었다.

보통 저런 절박함이 있는 사람들이 기적을 만들어내곤 했으니깐.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아주 빡센 하드 트레이닝이 될테니."


단단히 엄포를 놓았지만 홍슬기는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하고 있어요. 이 악물고 따라갈게요."

"좋습니다. 일단 지금껏 연습했던 동작부터 해볼게요."


내 주문에 얕게 심호흡을 내뱉은 홍슬기가 입술을 질끈 물고 손에 든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꾸준히 연습은 했던지 제법 태가 나오긴 했으나 내 눈에는 어설픈 점 투성이었다.


"초린이 휘두르는 검은 유연함과 화려함이 부각되어야합니다. 약간 과시적인 성향이 있는 거죠. 반대로 배우 입장에서는 메리트가 있는 거예요.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줄 수 있을 테니. 그러니깐 검을 휘두를 땐 최대한 거만한 표정을 살려야합니다. 오케이. 바로 그거에요."


그때부터 시작된 집중 코치.

나는 홍슬기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뚫어져라 응시하며 부족한 점을 메워가기 시작했다.


"손목의 움직임이 너무 부자연스러워요. 좀 더 유연하게, 마치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오케이! 바로 그겁니다."


확실히 홍슬기는 몸 쓰는 것에 자질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살면서 한 번도 남에게 해를 끼친 적 없는 그녀의 고운 심성.


"초린은 태생적인 악인에 가깝습니다. 칼에 묻은 피를 햝는다거나, 사람 몸 안에 칼을 박아넣고 장난스럽게 헤집으면서 고통어린 비명을 음미하는 듯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방금은 너무 어색했어요. 다시."


그렇게 하루 10시간에 가까운 혹독한 연습의 나날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덧 화제의 사극 '제비꽃' 25화가 방영되는 날이 찾아왔다.


홍슬기가 연기한 기생 애월이 대중들 앞에 처음 등장하는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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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맨땅에 헤딩 +8 24.05.22 17,244 325 12쪽
16 16화 포텐터진 날 +8 24.05.21 17,269 350 11쪽
15 15화 뺏기지 않을거에요 +11 24.05.20 17,335 342 11쪽
14 14화 그쪽 정말 대단하네요 +13 24.05.19 17,364 350 13쪽
13 13화 어떻게 아는 사이죠? +9 24.05.18 17,539 368 14쪽
12 12화 부담스러운 관심 +19 24.05.17 17,566 355 11쪽
11 11화 제가 감이 좀 좋습니다 +9 24.05.16 17,786 356 13쪽
10 10화 진짜 미친년 아냐? +16 24.05.16 18,069 357 15쪽
» 9화 오빠는 내 운명 +11 24.05.15 18,210 349 12쪽
8 8화 진짜 미친년 +10 24.05.14 18,154 362 11쪽
7 7화 그녀의 대운 +16 24.05.13 18,839 360 11쪽
6 6화 이능과 업보 +8 24.05.12 19,336 391 13쪽
5 5화 이상한게 보인다 +8 24.05.11 19,989 380 11쪽
4 4화 간택당하다 +16 24.05.10 20,320 403 12쪽
3 3화 단기속성과외 +15 24.05.09 20,737 40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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