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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님의 서재입니다.

톱스타 떡잎 줍는 괴물 신입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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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5
최근연재일 :
2024.07.0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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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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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283

작성
24.05.2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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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5화 뺏기지 않을거에요

DUMMY

조선 시대 궁녀에 관한 기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궁녀란 지극히 내밀한 존재였으니.


궁녀들이 역사에 기록된다는 점 자체가 정상적일 수 없었고, 어쩌다 왕이 한번 언급해야 실록에 기록될 수 있었다.

하지만 왕 입장에서는 꺼림직 했을 것이다.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이 드러날 수 있었기에.


'이건 정만수가 제일 잘 알지.'


작금에 이르러선 궁녀를 '궁궐 지박령', '왕바라기 꽃' 등으로 묘사하며 궁에 한 번 들어가면 죽기 전까지 나오지 못하는 가련한 여인들로 비춰지는데, 정만수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그 시대 커리어 우먼의 정점.

그녀들은 단순히 궁궐에서 왕족의 시중을 드는 시녀들이 아니라 엄연히 전문직 여성들이었다.


"일단 외모가 너무 튑니다."

"뭐라고요?"


"엄연히 역사를 기반으로 만든 작품인데 비슷하게는 가야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지금 분장도 너무 과합니다. 참고로 김개시는 인물이 빼어나지 않다고 아주 대놓고 실록에 기록된 여잡니다."

"허, 그리고요?"


어디 계속해보라는 듯 김지원이 팔짱을 꼈다.


"제가 쭉 지켜보니 김개시라는 캐릭터를 다소 소극적으로 표현하시더군요. 아무래도 조선 시대 여인의 신분이어서 그렇게 하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김개시의 지위는 내명부에서도 정 5품의 제조상궁. 실제 위상은 조정의 재상들조차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풍당당했습니다. 실제로 저때는···. 아니, 당시에는 정승과 의남매를 맺은 제조상궁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연기하시는 것보다 더 힘을 주셔도 어색하지 않을 겁니다."


정만수가 직접 발탁하여 연산군의 궁녀가 된 장녹수.

서로 활동한 시기는 전혀 달랐지만 따지고 보면 장녹수와 김개시란 궁녀는 엇비슷한 부분이 제법 있었다.

비록 눈에 띄는 미녀는 아니었지만 뛰어난 판단력과 눈치, 야욕으로 높은 지위에 올랐다는 점.

결국엔 왕세손을 낳지 못한 것까지.

따라서 정만수의 기억 속에 있는 장녹수를 떠올리면 어느 정도 김개시란 인물에 대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아쉬운 점인데···. 주인공이니깐 김개시를 비중있게 다루는 건 좋은데 그녀를 따르는 궁녀 무리가 모략을 꾸미는 측면을 거의 다루지 않더군요. 그 부분이 좀 아쉬웠습니다. 부하 궁녀 캐릭터 하나하나를 입체감있게 살렸다면 주인공이 더 돋보일 수 있을텐데···."


김개시라는 인물이 유별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조선 시대 여성의 지위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것 보다 높았다.

조선 시대를 주도한 집단은 선비들이었지만 따지고보면 정치적, 철학적 부분에서였지, 대중의 삶과 직결된 경제 부분에서는 지주들이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주들의 상당수는 여성이었고.


"아무튼, 뭐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조선시대 걸크러쉬 매력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거라 생각했다

물론 나는 감독이나 제작자가 아닌 일개 매니저였기에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을 뿐.


"기가 막혀서···."


혀를 차던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내 픽 웃음을 터트렸다.


"이젠 무서워서 함부로 질문하면 안 되겠어요."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철모르는 초짜 매니저가 아무것도 모르고 지껄이는 말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진짜 세상 물정 모르는 매니저는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거든요? 더구나 한번 겪은 게 있어서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질 못하겠네요."


무슨 신기한 생물 보듯이 나를 요리조리 뜯어보는 시선.

심히 부담스러웠지만 별 내색 없이 그녀의 눈을 마주 봤다.


"솔직히 말해봐요. 나이 속인 거죠? 엄청 동안인 40대 아니에요?"

"굉장히 상처받았습니다. 방금 그 말."


"아니, 솔직히 나이만 따지면 내 조카뻘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데 대화 나누다 보면 내가 지금 동년배랑 얘길 하는건지···. 헷갈린단 말이죠."


"제 말투가 좀 구닥다리 인지라···."


"단순 말투 문제가 아니라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만 풍기는 그런? 아이 참 뭐라 설명하기 어렵네."


그럴 만도 하지.

안 그래도 애늙은이 소리 듣던 나였는데 정만수의 기억까지 업로드되는 바람에 이건 뭐, 탑골공원가서 어르신들과 대화 나눠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았다.


"뭐···. 아무튼, 얘기 잘 들었어요. 그쪽과는 아주 얘기할 때마다 신선하네요. 뒤끝이 썩 유쾌하진 않지만."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앞으로 입에 바른말만 골라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말고 일관성을 유지해주세요. 아! 그리고···."


일어나 자리를 정리하던 김지원이 흘러가듯 말했다.


"혹시 내가 SH엔터 들어가면 그쪽이···."

"오빠!"


저 멀리서 봉두산발에 피 칠갑을 한 여인네 하나가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여기가 촬영장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졸도했어도 무리가 없을 살벌한 모습.


"후후, 다음에 얘기 하는걸로 하죠. 대화 즐거웠어요. 그럼 이만."


그렇게 김지원은 홀연히 떠나갔고, 그 자리를 홍슬기가 대신했다.


"나 연기하는 거 봤어요!?"

"아, 죄송해요. 김지원 배우가 갑자기 말을 거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했네요."


그러자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흘겨보는 홍슬기.


"소문이 진짠가 보네···."

"소문이요?"


"지원 선배님이 우리 회사 올 수도 있다는 거요."


하긴, 회의실에서 들은 사람이 몇명인데 소문이 안 나는 것도 이상했다.


"듣기론 지원 선배가 대놓고 오빠를 거론했다는데···. 맞아요?"

"그렇다고는 하는데···. 슬기씨도 잘 알잖습니까. 기껏해야 촬영장에서 인사 몇 번 한게 다인 거."


"알죠. 다른 건 몰라도 지원 선배님이 오빠한테 관심이 있다는 것 정도는."

"관심은 무슨···."


"어머? 지원 선배님이 동료 배우도 아니고 매니저한테 먼저 다가가서 친근하게 말 걸었다고 얘기하면 업계 사람들 아무도 안 믿을걸요?"

"그래요...?"


"아무래도 그렇죠.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부분이고, 솔직히 다른 회사 매니저랑 친하게 지낸다고 선배님 정도 되시는 분이 딱히 득 될 것도 없잖아요."


"그럼 더더욱 이상하네요. 왜 저한테 관심을 가지시는건지..."


이래서 촉이 좋은 사람과 엮이면 피곤하다.

오지랖 한번이 이런 귀찮은 결과를 낳을 줄이야.

그때의 실수를 채찍질하며 자기반성에 잠겨 있는 사이, 얼굴을 레이저로 지지는 듯한 따끔함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노려봐요? 사람 무섭게."

"안 갈 거죠?"


"가긴 어딜가요?"

"지원 선배가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오빠 달라고 하면 갈 거에요?"


"저 이제 1년차 로드입니다. 제가 뭐라고 그런···."

"만약 그렇게 요구하면 갈 거냐구요."


점 잖던 애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다가 멈칫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건 '초조함'.

소중히 여기던 장난감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왜 대답 안 해요? 진짜 갈 거에요?"


피부로 전해지는 농도 짙은 집착.

모르는 사람이 그랬다면 소름이 끼쳤겠지만, 담당 배우가 그런거라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홍슬기의 떨리는 동공을 똑바로 응시하고선 명료한 발음으로 말했다.


"안 갑니다."

"그래도 회사에서 지시하면···."


"거부하면 그만이죠. 매니저가 싫다는데 설마 억지로 시키겠습니까?"

"그러다 찍히면요?"


"찍히면 찍히는 거죠 뭐."

"그러면 진급도 안 되고 그럴 텐데···."


"별 관심 없습니다. 내 배우 잘 되는 게 우선이죠."

"아···."


홍슬기의 커다란 눈망울에 진한 감동이 들어찼다.

물론 나로서도 100% 진심인 답변이었다.


지금 회사에서 뼈를 묻겠다는 헛된 목표도, 잘나가는 배우를 맡아서 덕을 보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절실한 심정으로 지금 내가 해야 할건 뼈에 사무치는 한(恨)을 품은 무명 연예인을 성공의 길로 이끄는 것.

결과적으로 나에게 깃든 정만수의 저주를 풀어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성공한 연예인의 매니저를 맡는 건 나에겐 하등 메리트가 없었다.

그 사람들이 무슨 한이 있겠는가. 그저 자신의 성공을 쭉 이어나가고 싶어 하는 욕심만 있을 뿐이지.


하지만 내 속내야 어찌 됐건 홍슬기는 심하게 감동한 모양이었다.

커다란 눈동자가 촉촉이 젖은 걸 보니.


"아무튼, 그 문제는 신경 안 써도 됩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배우 홍슬기 매니저입니다. 저는 배우랑 같이 성장하는 게 좋지, 그분처럼 사이즈 큰 분들은 오히려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제가 오빠를 지켜줄 거에요."


잘 흘러가나 싶더니 뜬금없이 이건 또 무슨 소릴까.

잠깐 사이에 젖어 있던 홍슬기의 눈은 뜨겁게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회사에서 압력이 들어와도 제가 보호해줄 수 있게, 제가 빨리 성공할게요.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게."


나보다 어린 여자한테 이런 박력 있는 멘트를 들으니 기분이 참 거시기했다.

그래도 나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에 하는 말이라는 걸 잘 알았기에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도 잘하고 있습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입니다. 지금처럼만 가면 슬기씨는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어드릴 테니 의심은 안 하셔도 되고요."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으니 목숨 걸고 해낼 것이다.

그럴만한 능력도 있고.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각자의 동상이몽을 가슴속에 고이 품었다.

잠시 후, 벌떡 일어난 홍슬기가 담요를 던져두고선 소품용 검을 챙겼다.


"저 마지막 씬 준비 좀 하고 올게요."

"아, 제가 도와드릴···."


"아뇨! 저 혼자 조용한 데에서 마인드 컨트롤 좀 할게요."


내 도움을 거절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살짝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눈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결연한 의지.

저럴 때는 혼자 놓아두는 게 상책이라는 걸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가는 홍슬기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본의 아니게 자극이 된 건가···?"


홍슬기가 저 정도로 소유욕이 있는 캐릭터인지 몰랐다.

자기 것을 뺏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녀의 어떤 부분을 자극한 것 같았다.


"하암···. 나른하다···."


촬영장에서의 고난은 기다림이라 했던가.

그렇게 인고의 기다림 끝에 세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홍슬기의 마지막 씬 촬영 순간이 다가왔다.


"촬영 준비할게요!"


그리고 나는 스턴트 배우들과 합을 맞추고 있는 홍슬기와 눈을 마주쳤을 때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늦가을 추위를 맞이한 것처럼 팔등에 오스스 돋은 소름.


"무슨 눈빛이···."


차가운 얼음처럼 시퍼런 광채를 띄운 눈동자에는 그 어떠한 인간적인 감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하이~ 큐!"


감독의 큐 사인이 내려지자 세트장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발소리, 심지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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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하루에 두 탕은 힘들어 +9 24.06.05 15,707 342 13쪽
30 30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8 24.06.04 16,053 340 11쪽
29 29화 굴러 들어온 복 +12 24.06.03 16,415 333 13쪽
28 28화 맹목적 믿음 +8 24.06.02 16,581 341 12쪽
27 27화 시궁창에도 별은 뜬다 +8 24.06.01 16,632 371 12쪽
26 26화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10 24.05.31 16,656 369 12쪽
25 25화 벌써 잊으신거 아니죠? +11 24.05.30 16,805 370 12쪽
24 24화 충격고백 +13 24.05.29 16,805 377 13쪽
23 23화 심상치 않은 게스트 +8 24.05.28 16,680 365 12쪽
22 22화 귀인이 나타났거든요 +13 24.05.27 16,720 350 12쪽
21 21화 조금 이상한 미팅 +11 24.05.26 16,732 350 12쪽
20 20화 올게 왔구나 +10 24.05.25 16,794 377 13쪽
19 19화 너도 같이 오래 +8 24.05.24 16,852 333 11쪽
18 18화 야동 아임다 +8 24.05.23 17,005 329 12쪽
17 17화 맨땅에 헤딩 +8 24.05.22 17,225 325 12쪽
16 16화 포텐터진 날 +8 24.05.21 17,250 350 11쪽
» 15화 뺏기지 않을거에요 +11 24.05.20 17,315 342 11쪽
14 14화 그쪽 정말 대단하네요 +13 24.05.19 17,345 350 13쪽
13 13화 어떻게 아는 사이죠? +9 24.05.18 17,524 368 14쪽
12 12화 부담스러운 관심 +19 24.05.17 17,549 355 11쪽
11 11화 제가 감이 좀 좋습니다 +9 24.05.16 17,769 356 13쪽
10 10화 진짜 미친년 아냐? +16 24.05.16 18,056 357 15쪽
9 9화 오빠는 내 운명 +11 24.05.15 18,190 348 12쪽
8 8화 진짜 미친년 +10 24.05.14 18,132 361 11쪽
7 7화 그녀의 대운 +16 24.05.13 18,819 359 11쪽
6 6화 이능과 업보 +8 24.05.12 19,316 390 13쪽
5 5화 이상한게 보인다 +8 24.05.11 19,972 380 11쪽
4 4화 간택당하다 +16 24.05.10 20,303 403 12쪽
3 3화 단기속성과외 +15 24.05.09 20,714 407 11쪽
2 2화 삿된 것이 씌였다 +29 24.05.08 23,291 4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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