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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님의 서재입니다.

톱스타 떡잎 줍는 괴물 신입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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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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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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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진짜 미친년

DUMMY

키다리 픽처스.


2005년에 설립되어 제작, 투자, 수입, 배급 등 영화산업 전 분야에 걸쳐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영화 제작사였다.


설립 이후 '천일봉', '변호사 김만득', '삐에로' 등의 작품으로 대박 행진을 이어갔으나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씩 작품을 말아먹기 시작하더니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 버렸다.


결국, 결단을 내린 이주석 대표는 한동안 제작에는 손을 떼고 수입과 투자에 전념하여 회사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한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을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일념으로 설립된 회사였기에 다시 절치부심하게 되었고, 오랜 준비 기간 끝에 정대윤 감독과 손잡고 '독화' 제작에 나선 것이었다.


거의 5년만에 영화 제작에 뛰어드는 입장이다 보니 캐스팅부터 스태프 구성까지 하나하나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하여 결국 '독화'의 주인공인 김개시 역에 배우 김지원을 캐스팅하는 쾌거를 이룬다.


올해로 25년 차 배우가 된 김지원은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선보이며 탄탄한 필모를 쌓아왔고, 한국인 최초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모든 인생사가 그렇듯이 오르막길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이후, 하락 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더니 개봉하는 작품마다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으며 그녀의 전성기는 끝났다라는 말이 슬금슬금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지독한 수렁에 빠진듯 그녀의 슬럼프는 깊어져만 갔고 결국 기나긴 휴식기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이주석 대표의 집요한 구애로 4년만의 칩거 생활을 깬 그녀는 다시 카메라 앞에 서게 되었다.


***


키다리 픽처스 사옥 4층에는 한창 오디션의 열기로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기다란 테이블에 일렬횡대로 앉은 이주석 대표와 정대윤 감독, 주연 배우인 김지원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안녕하십니까! 초린 역에 지원한 채민지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자기소개를 마친 여자를 향해 이주석 대표가 물었다.


"머리는···. 일부러 그렇게 하고 오신 겁니까?"


머리에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봉두난발에 입가에는 시뻘건 립스틱이 기괴하게 칠해져 있었다.


"네! 초린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열심히 분석했는데 워낙 개성 있는 캐릭터이다 보니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해서 준비해봤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전략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숨긴 정대윤 감독이 삼각대에 세워진 캠코더 녹화 버튼을 눌렀다.


- 띠링


"뭐. 좋습니다. 준비해온 연기 한번 보여주시겠어요?"

"넵. 극 중 초린의 최후를 연기해보겠습니다. 후우···."


심호흡을 한번 내뱉은 여자가 돌연 낄낄거리는 웃음을 내뱉었다.


"천하의 개 쌍년치고는 제법 잘 놀았...커헉. 컥..윽...악."


무릎을 꿇고 기침 몇 번 하더니 바닥을 구르며 지랄발광을 하기 시작한 여자를 보며 심사위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여기까집니다···."


분위기가 영 좋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기어들어 가는 여자의 목소리.


"고생하셨습니다. 차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여자가 꾸벅 인사를 하고 말없이 나가자 장내에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니···. 여자 무사 뽑는 자리에 왜 자꾸 귀신들이 오는 거야. 무서워 죽겠네 정말."


정대윤 감독의 투덜거림에 이주석 대표와 김지원이 픽 웃음을 터트렸다.


"나름 캐릭터 분석은 열심히들 해온 것 같은데 영 핀트를 잡지 못하네요."


김지원의 말에 정대윤 감독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초린이가 보기에는 그냥 단순 미친년처럼 보여도 그게 아니거든요. 뭐랄까···. 어마어마한 샹년이면서 또 그만의 톡톡 튀는 매력이 돋보여야 하는데···. 이건 뭐. 그냥 어설픈 미친 척만 하고 있으니 답답해 죽겠습니다."


"근데 초린 캐릭터가 참 어렵긴 해요. 정작 캐릭터를 만드신 정 감독님도 어떤 느낌이라고 명확히 설명은 못 하시잖아요."

"이게 참···. 말로 풀어내기가 어렵네요. 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라···."


"뭐 대충은 알 것 같아요."


연기 짬을 허투루 먹은 건 아닌지 김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린 역이 분량은 적어도 임팩트는 확실한 캐릭터잖아요? 악인이지만 자신을 거둬준 김개시를 어미로 여기고 자기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는 은근 지고지순 캐릭터이기도 하고. 내면의 상처가 가득한데 그걸 광기로 덮은 인물이라···. 확실히 난해하긴 하네요."


"그래도 지금까지 중에는 누가 제일 괜찮았습니까?"


이주석 대표의 물음에 턱을 긁적이며 곰곰이 생각하던 정대윤과 김지원이 동시에 이름 하나를 말했다.


"뭐···. 굳이 고르자면 윤설아가 그나마 괜찮더라고요."

"저도 윤설아에 한 표. 악역을 많이 해서 그런가? 그나마 위화감이 없었어요."


"흐음···. 윤설아라."


날 선 이목구비와 차가운 이미지 때문에 악역을 많이 하는 여배우였는데 연기력도 나쁘지 않았고 본인 몫은 확실히 하는 배우였다.


"그래도 뭔가 아쉽단 말이지."


개운치 않다는 듯 정대윤 감독이 연신 입맛을 다셨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마지막 한 명 남았으니깐 이것까지만 보고 결정합시다."


테이블에 놓인 마지막 지원자의 프로필을 살펴보던 김지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홍슬기?"

"응? 누구?"


프로필을 확인한 정대윤 감독의 눈도 크게 뜨였다.


"동명이인인가 했더니 그 홍슬기 맞네. 아역배우 출신 그 친구 맞죠?"

"네 맞아요. 근데 슬기가 여기에 왜 나와? 이 대표님 이거 맞아요?"


김지원의 물음에 이주석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좀 의외였지만···. 본인이 강력히 원했다고 합니다. 지원씨와는 인연이 조금 있죠?"

"아역 시절에 저하고 작품 하나 같이 했었어요. 근데 슬기가 초린 역을 맡기에는···."


말끝을 흐리는 이지원의 뉘앙스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녹아있었다.


"이미지가 너무 안 맞는데요? 제가 아는 배우 홍슬기는 좀 무던하고···. 대체로 순해 빠진 역할을 하지 않았나요?"

"맞아요. 애가 워낙 순둥순둥하게 생겼다보니···. 초린 역하고는 너무 괴리가 큰데···.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해는 되네요."


"이해가 된다고요?"

"아시다시피 슬기는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오고 나서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어요. 본인만의 연기 색을 보여준 적도 없고 이도 저도 아닌 배우로 몇 년을 이 바닥에서 떠돌고 있죠. 아마···. 변화가 필요했을 거에요."


"그래서 초린 역을 택했다라···. 아무리 그래도 하필 초린 역을···. 이건 악역 좀 한다는 배우들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입니다. 워낙 미친년···. 아니, 유별난 캐릭터라."


"그만큼 절박했겠죠. 배우로서 입지를 잃어간다고 느낄 때만큼 배우 생활이 비참할 때가 없거든요. 아마 절벽 끝에 서 있는 기분일 거에요 슬기는."


"흐음···. 김 배우는 초린 역에 홍슬기가 캐스팅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까?"


슬쩍 떠보는 이주석 대표의 말에 김지원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작품은 작품이에요. 초린 역에 슬기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건 같이 작품을 해봤던 제가 잘 알아요. 프로의 세계에서 사적 친분을 내세울 순 없는 노릇이죠."


"후후. 역시 지원씨 답네요."


예상했다는 듯 이주석 대표가 흡족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자 들어오라고 하세요."


잠시 후, 문이 열리며 홍슬기가 다소곳한 걸음걸이로 입장했다.

다른 지원자가 봉두난발에, 얼굴에 온갖 장난질을 친 것과는 대조적인 말끔한 모습이었다.

한 손에 들린 목검만 제외한다면.


"안녕하세요. 초린 역에 지원한 홍슬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홍슬기씨를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초린 역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아보고 오셨겠죠?"


"물론입니다."


정대윤 감독이 매서운 눈으로 홍슬기를 응시했다.


"왜 하필 초린 역입니까? 극 중 배역 중에 홍슬기씨가 할만한 다른 배역들도 있었을 텐데요."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요."


괴이한 답변에 고개를 갸웃한 세 심사위원.


"아역 시절부터 치면 벌써 15년째 연기를 하고 있네요. 하지만 어디 가서 당당하게 배우라고 밝히기엔 애매모호한 배우이기도 하죠. 제 한계를 느꼈고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이대로 연기를 접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문득 지난 과거를 회상해봤습니다. 매번 비슷한 배역, 비슷한 연기···. 발전이 있을 수가 없죠. 단단히 착각했던 겁니다. 그런 배역들이 제게 잘 맞는다고 말이죠."


넋두리 같은 고백에 분위기가 살짝 숙연해지자 환기하듯 이주석 대표가 물었다.


"그 말은 초린 역에 자신 있다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연기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당찬 대답이었지만 세 심사위원의 표정은 여전히 반신반의였다.


"좋습니다. 손에 들린 그 목검을 쓰실 생각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극 중 초린이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을 연기해보겠습니다."


"네. 시작해주시죠."


"후우···."


깊게 날숨을 내뱉은 홍슬기가 고개를 숙이자 긴 머리카락이 스르르 흘러내려 얼굴을 가렸다.

짧게 흐르는 적막.

집중하여 그녀를 지켜보는 심사위원들.

잠시 후.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렸고.


"헙···."


정대윤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당혹성에 다급히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무슨···. 눈빛이."


광기(狂氣).

순수함이 묻어나오던 맑은 정광은 온데간데없이 다소 나른해 보이는 눈빛에 사나운 광기가 불붙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녀가 선보인 동작은 검술이라기보다는 얼핏 춤과 같았다.

민첩한 발걸음과 상반되는 부드러운 손짓이 내저어지자 손에 들린 목검도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표정이···."


언뜻 우아한 움직임처럼 보였지만 검을 휘두르는 홍슬기의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흡사 약에 취한 사람처럼 실실 웃고 있는데 살육을 자행하는 현 상황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했다.

그 광기 어린 살풍경은 귀신이라도 학을 뗄만할 정도.


잠시 후. 폭풍전야처럼 잔잔하던 움직임이 순식간에 광풍으로 뒤바뀌었다. 살짝 정신이 나간듯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는데 그 움직임이 광기 어린 춤사위처럼 보이기도 했고,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허? 울어?"


삐뚜름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상반되게 홍슬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어지러운 웃음소리와 더불어 눈동자는 더욱 광기로 빛이 났고, 검을 휘두르는 움직임은 더욱 과격해져 갔다.


시시각각 바뀌는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는 지켜보던 심사위원들에게 혼란과 경악으로 몰아넣었다.


"세상에···."


시간이 멈춘 듯 오디션 장내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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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뺏기지 않을거에요 +11 24.05.20 17,324 342 11쪽
14 14화 그쪽 정말 대단하네요 +13 24.05.19 17,350 350 13쪽
13 13화 어떻게 아는 사이죠? +9 24.05.18 17,530 368 14쪽
12 12화 부담스러운 관심 +19 24.05.17 17,555 35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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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 진짜 미친년 아냐? +16 24.05.16 18,059 357 15쪽
9 9화 오빠는 내 운명 +11 24.05.15 18,197 34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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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그녀의 대운 +16 24.05.13 18,827 36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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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이상한게 보인다 +8 24.05.11 19,976 380 11쪽
4 4화 간택당하다 +16 24.05.10 20,307 40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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