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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님의 서재입니다.

톱스타 떡잎 줍는 괴물 신입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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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박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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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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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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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그녀의 대운

DUMMY

독화(毒花)


장르를 넘나들며 상업 영화의 한 획을 그은 정대윤 감독의 차기작으로 광해군 시절, 당시 여인으로서는 가질 수 없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상궁 김개시'의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이었다.


김개시는 천한 노비의 딸로 태어났지만, 선조의 눈에 띄어 승은(承恩)을 받아 특별 상궁이 되었고, 평소 눈치가 빠르고 욕심과 꾀가 많아 선조와 광해군, 두 절대자의 총애를 받았으며 향후 권신 이이첨과 쌍벽을 이룰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그러나 인조반정이 일어난 뒤 반군에 의해 처참하게 참수되는 희대의 악녀이기도 했다.


"초린이라면···."


극 중 초린은 어린시절 빈민촌에서 태어나 김개시에게 거둬져 인성이 말살된 살인 병기로 키워진 인물,

적을 숙청하는데 일말의 자비 없었고, 잔혹한 살육 자체를 즐기는 그런 캐릭터였다.

그리고 이 배역이 바로 내가 해석한 홍슬기의 대운이었다.


시나리오를 쭉 훑어보니 바로 감이 왔다.

죽일: 살(殺)이 홍슬기가 대복(大福)을 움켜쥘 수 있는 키워드라면 그녀가 맡을 배역은 이것뿐이었다.

들어온 시나리오 중 가장 많은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 백정 초린.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배역을 따내야 홍슬기의 운이 좋은 쪽으로, 크게 굴러간다.

하지만 문제는 배역이 파격적이다 못해 파괴적이라는 것이었다.


"이거···. 정말 괜찮을까요?"


말끝을 흐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말이 무사(武士)지 이건 그냥 사이코패스 미친년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깐.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는 건 예삿일이었고, 고통 어린 비명에 흥분을 느꼈으며, 피에 몸이 젖어 드는 것을 즐기는 살인귀 그 자체.


"자신 없습니까?"


도발성 짙은 물음에 생각에 잠긴 홍슬기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송 매니저님 생각에는···. 제가 이 배역을 꼭 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다른 여지 없이?"

"네. 무조건 입니다. 물론 선택은 슬기씨가 해주셔야겠지만."


입술을 달싹달싹하던 홍슬기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해볼게요. 아니,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게요."


그녀의 다부진 음성에서 전해지는 강한 의지.

홍슬기는 절벽 끝에 서 있는 처지였고 사실상 배수의 진을 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테니깐.


"불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슬기씨는 충분히 이 배역을 소화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이제 막 매니저가 된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저 한번 믿고 가보시죠."


확신이 담긴 내 목소리에 홍슬기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이내, 그녀의 분홍빛 입술이 살포시 열리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죠? 자그마치 15년이에요. 그 긴 시간을 제자리걸음만 해왔는데도 제가 될거라고 본다고요?“


이에 나는 한치의 망설임없이 답했다.


"네. 됩니다. 지금 슬기씨 상태는 용수철과 같거든요."

"용수철이요...?"


"기껏해야 한두 번 압축된 용수철은 멀리 튀어 오르지 못합니다. 하지만 슬기씨는 무려 십오년이라는 시간을 웅크리고 또 웅크려왔죠. 이제는 남들이 따라오지도 못할 만큼 날아오를 때란 겁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 눈을 빤히 바라보는 홍슬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니 확신합니다. 이 작품으로 슬기씨는 훨훨 날아오르게 될 겁니다. 모두가 우러러볼 정도로."


물론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단언하는 것이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운(運)의 나침반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만약 홍슬기가 다른 작품을 선택했더라면 기껏 들어온 길운을 잡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운이 따르는 방향을 골라잡을 수 있는 '나'라는 내비게이션이 생겼으니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담담한 내 목소리에 홍슬기의 투명한 동공이 나를 향했다.


"대배우로 향하는 길은 혼자 걸어갈 수 없다고."

"아···."


"이번에 저랑 같이 사고 한번 쳐보시죠?"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자 멍하니 나를 쳐다보던 홍슬기가 픽 웃으며 내 손을 맞잡았다.


"근데 정말 초짜 매니저 맞아요?"

"네?"


"아니 무슨 신입 매니저가 그렇게 말을 잘해요? 아주 그냥 여자 마음 흔드는데 선수네 선수. 예전에 영업같은거 하셨어요?"

"여기가 첫 직장입니다만."


사실 이런 사탕발림은 채홍사 정만수의 특기이기도 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런 능력을 악용했다는 것뿐.

당시 기녀나, 광대들은 천한 신분으로 여겨지며 대우받지 못했고, 정만수는 그 콤플렉스를 잘 이용할 줄 아는 교활한 놈이었다.


[언제까지 알량한 재주 하나 믿고 이렇게 살 건가? 그 미모도, 재주도 절대 영원하지 않아. 그럴 바엔 나와 같이 한양으로 가세. 만약 자네가 전하의 눈에 들기만 하면 아, 글쎄 팔자가 뒤바뀌는 거라니깐? 평생 써도 남을 금은보화는 물론이고 운이 좋으면 후궁으로 간택될 수도 있다 이 말이야.]


이런 식으로 정만수의 혀에 놀아나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여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절대 그 양반처럼 살진 말자.'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정만수와 다르게 나는 이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할 것이라고.

그래야 업보를 청산하고 무병장수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부터 초린 역···. 제대로 한번 연구해볼게요."


결심이 섰는지 홍슬기가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일단 우리는 오디션이라는 큰 난관을 통과해야 합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슬기씨 이미지 때문에 다들 놀라긴 할 겁니다. 하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겠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 렇겠죠?


금세 시무룩해지는 홍슬기의 얼굴.


"초린 역을 노리는 배우들 역시 적지 않을 겁니다. 개성파 여배우들에겐 꽤나 탐이 나는 배역일테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철저히 초린 그 자체가 될 겁니다. 결국, 초린이라는 캐릭터의 핵심은 순수 악으로 보일 만큼의 천진난만한 잔혹성과 화려한 액션입니다. 슬기씨는 이 두 개의 무기를 제대로 완성시켜 오디션장으로 갈 겁니다."


"가능할까요···? 악역 연기야 그렇다 쳐도 무술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어서···."

"가능합니다. 제가 도와주면."


"네? 주포씨가 어떻게···?"


왜냐고?

우습게도 한때 정만수는 무관을 꿈꿨었거든.

얼마나 무술에 미쳐 살았는지 기억 속에 없는 무술 교본이 없을 정도였다.

그중에서 초린과 잘 어울릴법한 것들을 홍슬기에게 가르칠 생각이었다.

물론 철저히 보여주기식 속성 과정으로.


"지난번 부채춤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일 시간 되시죠?"

"네. 별다른 스케줄은 없어요."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입고 나오세요. 연습실에서 저랑 종일 연습하는 겁니다. 내일 데리러 갈게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술을 짓이긴 홍슬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


SH엔터테이먼트 지하1층 연습실.


"자 일단 이거 한번 잡아보세요."


나는 미리 준비한 목검을 홍슬기에게 건넸다.

아직은 어색한 듯 홍슬기가 손에 든 목검을 연신 만지작거렸다.


"생각보다 엄청 무겁진 않네요?"

"살상을 위한 용도가 아니니까요. 우리는 어디까지 오디션을 위한 연기를 연습해야합니다. 화려한 움직임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가벼운 목검이 맞습니다."


때문에 가늘고 긴 형태의 흡사 레이피어라 불리는 서양의 도검과 유사한 목검을 준비해왔다.

보통 여성 무사들은 남성들에 비해 근력이 부족하므로 민첩성과 유연성을 살릴 수 있는 게 중요했다.


더구나 초린이라는 캐릭터는 사람 죽이는 것을 취미로 여길 정도의 정신이상자.

아마 베는 것보다는 찌르기 위주의 검술을 익혔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정만수의 시대에도 비슷한 류의 여자가 있었는데 그 미친 여자가 쓰던 검술이 그러했으니깐.


"목검, 저한테 줘보시겠어요?"


순순히 목검을 건네는 홍슬기.


"아시겠지만 초린이라는 캐릭터는 그야말로 단순 무식하면서 잔인하죠. 하지만 검술은 달라야 합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우아해야 하고, 멀리서 보면 마치 아름다운 춤처럼 보여야합니다. 하지만 나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피가 낭자하고 참혹한 시신들이 가득하죠. 이게 초린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포인트입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습니까?"


"그러니깐···. 역시나 반전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바로 그거죠."


악역이라고 무조건 악하고 쓰레기 같기만 해선 안 된다.

천하에 다시없을 몹쓸 인간이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통 그런 매력은 캐릭터가 가진 고유 속성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일 때 생겨난다.


"가장 쉬우면서 임팩트 있는 동작으로만 추려왔습니다. 당장 오디션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 안에 반드시 이 동작을 체득하셔야 합니다. 검만 쥐여줘도 알아서 몸이 반응할 정도로."

"최선을 다할게요."


"좋습니다. 제가 시범을 보일 테니 잘 보세요."


작게 심호흡을 내뱉고선 자세를 낮춰 무심히 팔을 휘둘렀다.

얄팍한 목검 날이 공중에서 곱상한 반달 궤적을 그렸다.

분명 처음 잡아보는 목검이지만 매일 휘둘러왔던 것처럼 친숙하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검의 춤.


"아······."


홍슬기의 연분홍 입술이 서서히 벌어져갔다.

민첩한 발걸음과 부드러운 손짓은 마치 춤을 추듯 하늘하늘한 나비의 날갯짓을 연상케 했다.

그 모습이 우아하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한 느낌을 줬다.


'이게 생각처럼 움직여주네.'


정만수의 기억 속에 있는 움직임을 흉내 낸 것에 불과했지만 오랜 시간 이런 검술을 연마라도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구현이 가능했다.

어차피 지금 내 상황이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기에 이제는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러려니 하는 단계였다.


"잘 봤죠? 이 정도면 돼도 충분할 겁니다."

"제, 제가 이걸 할 수 있을까요?"


자신감 없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는 홍슬기.

그녀에게 다가간 나는 말 없이 목검을 다시 건넸다.


"할 수 있어요. 아니, 반드시 해야 합니다. 슬기씨의 절박함이 가능케 할 겁니다."


이에 홍슬기가 다부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이 뭉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낼게요.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되죠?"


강력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나는 그녀에게 밀착 마크하여 움직임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교정하기 시작했다.

하루 10시간,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반복된 지독한 연습에 연습.


그렇게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오지 않을 것 같던 오디션 날이 다가왔다.

비록 한 달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인간의 절박함은 때때로 기적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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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뺏기지 않을거에요 +11 24.05.20 17,335 34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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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그녀의 대운 +16 24.05.13 18,839 36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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