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흠박 님의 서재입니다.

톱스타 떡잎 줍는 괴물 신입 매니저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흠박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5
최근연재일 :
2024.07.02 12:50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933,304
추천수 :
20,146
글자수 :
325,283

작성
24.05.11 08:25
조회
19,960
추천
379
글자
11쪽

5화 이상한게 보인다

DUMMY

"저를요? 왜요?"


나를? 굳이? 그냥 땜빵으로 하루 갔을 뿐인데···. 라고 하기엔 사실 많은 일이 있긴 했다.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내가 손봐준 부채춤으로 그 깐깐한 감독과 작가의 눈에 띄어 분량까지 늘어나게 됐으니.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로 적극적일 줄이야···.'


말수가 그리 많지 않은 홍슬기였지만 조곤조곤 자기 할 말 다 하는 스타일이라 은근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배우로 소문이 나 있는데.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인마. 은근 까다로운 홍슬기가 갑자기 뭔일이래. 어제 진짜 무슨 일 없었냐? 듣기론 무슨 사고가 났었다며?"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는데 다친 데는 없어서 괜찮아요."


사실은 엄청 큰일 날 뻔했지.

작은 장독대만 한 도자기와 진한 스킨십을 나누고 본의 아니게 아주 몹쓸 놈의 기억까지 흡수해버렸으니.

괜히 일 커지면 귀찮아질 것 같아 대충 얼버무렸다.


"아무튼, 지금 빨리 회의실로 올라가 봐. 홍슬기랑 팀장님이 너만 기다리고 있어."


김태영의 재촉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어제 봤던 홍슬기와 배우 1팀 이기백 팀장이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오! 드디어 왔구만. 우리 팀 에이스! 우리 사랑스러운 주포!"


에이스? 분명 지난주까지만 해도 팀장님이 나를 부르던 호칭은 꾸물이었다.

매니저는 빠릿빠릿 움직여야 하는데 자꾸 꾸물댄다고.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팀장님."

"아주 애타게 찾았지. 일단 여기 여기 와서 앉아."


팀장님의 말에 냉큼 옆자리에 앉았다.

맞은 편에는 편한 일상복 차림의 홍슬기가 앉아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너 어제 활약이 대단했다면서? 내가 이 바닥 들어온 지 15년이 넘었는데 이제 막 수습딱지 뗀 놈이 이런 대형사고 친 건 또 처음 봤다고. 아주 잘했어!"


"칭찬은 감사한데 제가 뭘···."


대체 홍슬기가 뭐라고 했길래 팀장님이 저런 반응일까?

평소 칭찬에 무척 인색한 팀장님이었기에 더욱 의아했다.


"내가 오바하는게 아냐. 신입 매니저가 감독하고 작가에게 배우 어필 잘해서 분량 늘려오는 경우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고. 더구나 사극의 거장이라 불리는 모상호, 이장원 아니냐? 짬밥 먹은 매니저도 못 하는 일을 주포 네가 해낸거라고 인마. 으하하."

"그건 소 뒷걸음질 치다···."


흥분한 이기백 팀장이 내 말을 싹둑 잘라먹었다.


"뒷걸음이든 옆걸음이든. 쥐만 잡으면 된거야. 어제 모상호 감독한테 전화가 왔어. 내가 그 양반 알고 지낸 지가 15년이 넘었는데 한 번도 나한테 먼저 전화 건 적이 없었거든? 근데 대뜸 슬기 분량을 늘리기로 했다는 거 아니냐. 그러면서 주포 너 칭찬을 그렇게 하더라고. 내가 그 양반 입에서 남 좋은 얘기하는 걸 듣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네가 인마 내 체면도 살려준거야."


"하하하···. 별말씀을. 해야 할 일을 한 건데요."


어후. 면전 앞에 필터 없는 칭찬 폭격을 받으니 이렇게 낯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아차차. 내가 너무 잡설이 길었구만. 무튼, 아침부터 이렇게 너를 부른 이유는······. 아니다. 슬기 네가 직접 얘기할래? 그래도 본인 매니저 뽑는 자린데."


팀장의 제안에 홍슬기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커다란 눈망울로 뚫어질 듯 나를 쳐다보는 홍슬기.


"생각해보니 어제 미처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네요. 머리는 좀 괜찮아요?"

"아 넵. 전혀 문제없습니다. 어지러운 것도 없구요."


"천만다행이에요. 다름이 아니라···. 어제 밤새 생각해봤거든요? 만약···. 애초에 준비했던 대로 촬영에 임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홍슬기의 어조는 담담했지만, 그 저변에는 농도 짙은 열망이 느껴졌다.


"제 배우 인생을 돌이켜봤어요. 아역 시절까지 더하면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연기를 해왔더라고요. 지금까진 어찌어찌 잘 버텨왔지만, 현실은 밍숭맹숭한, 별 색깔 없는 그저 그런 여배우. 가끔 단역으로 써먹으면 나쁘지 않은. 뭐 그 정도고."


본인 입으로 본인의 평가를 저리도 적나라하게 하다니.

홍슬기도 보통은 아닌듯싶었다.


"아마 주포씨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대로 촬영했으면 늘 그랬듯 허무하게 묻혔겠죠? 이후에 또다시 단역이라도 따기 위해 전전긍긍···. 이 패턴의 무한 반복이었을 거에요."

"아니 뭐···. 그렇게까지는······."


"처음이었어요."

"네?"


뚫어져라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홍슬기.


"부끄럽지만 그렇게까지 배역에 빠져들어 연기에 몰입한 게 처음이라구요. 그 순간만큼은 진짜 기생 애월과 하나가 된 것 같은 그 느낌···. 너무 황홀했어요.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을 땐 모두가 저만 보고 있었죠. 어떻게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봤는데 주포씨 덕분인 것 같았어요.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애월의 분량이 늘면서 사실상 조연급으로 격상됐어요."


자리에 벌떡 일어난 홍슬기가 허리까지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아이구. 이러지 마세요. 부담스럽습니다."


홍슬기의 돌발행동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자리에 앉은 홍슬기가 담담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 매니저가 되어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주포씨와 함께 일하고 싶어요."


회의실에 흐르는 짧은 적막.

어안이 벙벙했다.

이런 일방통행적인 구애는 처음이라.

보통 배우들은 연차가 조금이라도 있는 매니저를 곁에 두고 싶어한다.

짬을 다른 구멍으로 먹지 않은 이상 고참 매니저들이 일을 더 잘하는 것은 당연했으니깐.


힐끔 홍슬기를 쳐다보니 내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해 하는 모습이었다.


"팀장님 말씀대로 저는 이제 막 수습 딱지 뗀 초짜 매니저일 뿐입니다. 그리고 어제 일은···. 전적으로 우연에 운이 겹쳐져서 벌어진 일이었을 뿐이고요."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라 생각했는지 홍슬기의 얼굴이 침울해져 갔다.


"그럼에도 저를 원한다면······.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점점 쳐져 가던 홍슬기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저, 정말이죠? 분명 승낙하셨어요? 이 팀장님도 들으셨죠?"


장성한 자식새끼 보듯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기백 팀장.


"하하하. 배우가 이 정도로 특정 매니저를 원하는 것도 오랜만에 보네. 아무튼, 번복 같은 건 없으니깐 앞으로 두 사람 어떻게 해나갈 건지 잘 한번 얘기 해봐. 나는 나가서 인수인계할 것들 좀 추려올 테니."


그 말을 끝으로 회의실을 빠져나간 이기백 팀장.

둘 만 덩그러니 남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홍슬기에게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요?"


기다렸다는 듯 홍슬기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뭐든요."

"제가 그만 실수로 춤 연습하던 슬기씨를 보고 춤이 영 아니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잖아요. 대타로 온 신입 매니저 주제에 말이죠. 사실 그때 불같이 화내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제게 물어봤잖습니까. 그럼 어떤 식으로 하는게 낫겠냐고. 그때 무슨 심정으로 그랬던 겁니까?"


"아···. 그때요?"


잠깐 생각에 잠긴 홍슬기가 이내 쓴 미소를 입에 내걸었다.


"사실 저도 답답했거든요. 춤이 애매한 것 같기는 한데 다른 대안은 없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열심히 연습해서 숙련도를 올리는 것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이 마치 못 볼 꼴 봤다는 얼굴로 춤이 영 아니라고 하니 호기심이 안 생길 수 있나요?"


내 표정이 진짜 그랬나?

앞으로 표정 관리에 신경 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뭘 안다고 지적질이지? 하는 반발심도 있었어요. 솔직히 주포씨가 사고만 당하지 않았었으면 아마 크게 화냈을 거에요. 역시 머리를 다친 후유증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그냥 들어만 주자는 생각이었거든요."


홍슬기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혹여나 거기에 앙심을 품고 팀장한테 안 좋은 소리를 해댔으면 직장생활 초반부터 심히 꼬일 뻔했네.


"그런데 이거 웬걸? 누가 봐도 극 중 애월과 너무 잘 어울리는 춤을 그 자리에서 알려주신 거예요. 주포씨는 모르겠지만 그때 주포씨 얼굴에 반드시 이걸로 해야 한다는 확신이 담겨있었어요."


내가 그랬나?

하긴. 처음 홍슬기가 선보였던 그 부채춤은 지금 생각해봐도 아니었다.

묵은지 김치찌개를 만들어야 하는데 갓담근 김치를 가져온 느낌이랄까?


"아직도 꿈만 같아요. 그런 큰 작품에 조연급 배역을 맡게 됐다니. 이장원 작가님이 넌지시 귀띔해주셨는데 임팩트는 주연 못지 않을 거래요."

"잘됐네요."


"주포씨 덕분이에요! 그러니 앞으로 절 좀 도와주세요. 부탁드려요."

"이제 슬기씨 전담 매니저인데 당연히 그래야죠."


"어릴 때부터 촉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신기 있는 거 아니냐는 오해도 받은 적도 있을만큼."


뜬금없이 뭔 소린가 했지만 홍슬기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왜 인생에는 세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잖아요. 저 뭔가 촉이 왔어요. 앞으로의 배우 인생을 결정짓는 큰 갈림길에 선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담당 매니저로서 감사하긴 한데···.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제가 슬기씨를 담당한 이상 그렇게 만들거고. 그리고 촉 얘기를 하셨는데···. 저도 그런 쪽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편이거든요? 슬기씨는 반드시 배우로서 성공할 겁니다."


홍슬기의 커다란 눈매가 반으로 곱게 접혔다.


"호호호. 주포씨가 얘기해주니 왜 이렇게 힘이 되죠?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 나 너무 주책인가?"


하지만 기분은 좋은지 홍슬기의 한번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스 브레이킹은 된 건지 분위기가 한결 편해져서 어색함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덜컥


"아이고. 두 사람. 그사이에 벌써 친해진 거야? 아주 보기 좋구만. 질투 날 정도야?"


너스레를 떨며 회의실로 다시 들어온 이기백 팀장.

손에는 서류 파일 하나와 종이 뭉치가 들려있었다.


"뭐 인수인계라고 해봐야 크게 뭐 없으니깐 이거 하나 보면 될거고···. 그리고 이건."


이기백 팀장이 테이블 위에 들고 온 종이 뭉치를 펼쳤다.


"슬기가 들어갈 만한 작품 시나리오야. 아마 오디션은 따로 봐야겠지만."


팀장님의 말에 홍슬기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시나리오 하나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입에서 터져 나온 당혹성.


"허업···! 미친? 이게 왜 여기서···?"


내 경악성에 두 사람이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봤지만 그런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殺] (죽일: 살)


지진이라도 난듯 떨리는 동공은 오직 홍슬기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오른, 네온사인처럼 요사스러운 황금빛을 발하는 정체불명의 문자에 고정되어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톱스타 떡잎 줍는 괴물 신입 매니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31화 하루에 두 탕은 힘들어 +9 24.06.05 15,697 342 13쪽
30 30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8 24.06.04 16,043 340 11쪽
29 29화 굴러 들어온 복 +12 24.06.03 16,407 333 13쪽
28 28화 맹목적 믿음 +8 24.06.02 16,576 341 12쪽
27 27화 시궁창에도 별은 뜬다 +8 24.06.01 16,627 371 12쪽
26 26화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10 24.05.31 16,650 369 12쪽
25 25화 벌써 잊으신거 아니죠? +11 24.05.30 16,796 370 12쪽
24 24화 충격고백 +13 24.05.29 16,794 377 13쪽
23 23화 심상치 않은 게스트 +8 24.05.28 16,669 365 12쪽
22 22화 귀인이 나타났거든요 +13 24.05.27 16,708 350 12쪽
21 21화 조금 이상한 미팅 +11 24.05.26 16,722 350 12쪽
20 20화 올게 왔구나 +10 24.05.25 16,789 377 13쪽
19 19화 너도 같이 오래 +8 24.05.24 16,849 333 11쪽
18 18화 야동 아임다 +8 24.05.23 16,997 329 12쪽
17 17화 맨땅에 헤딩 +8 24.05.22 17,219 323 12쪽
16 16화 포텐터진 날 +8 24.05.21 17,241 349 11쪽
15 15화 뺏기지 않을거에요 +11 24.05.20 17,305 341 11쪽
14 14화 그쪽 정말 대단하네요 +13 24.05.19 17,337 350 13쪽
13 13화 어떻게 아는 사이죠? +9 24.05.18 17,515 368 14쪽
12 12화 부담스러운 관심 +19 24.05.17 17,537 355 11쪽
11 11화 제가 감이 좀 좋습니다 +9 24.05.16 17,755 356 13쪽
10 10화 진짜 미친년 아냐? +16 24.05.16 18,046 357 15쪽
9 9화 오빠는 내 운명 +11 24.05.15 18,182 348 12쪽
8 8화 진짜 미친년 +10 24.05.14 18,123 361 11쪽
7 7화 그녀의 대운 +16 24.05.13 18,812 359 11쪽
6 6화 이능과 업보 +8 24.05.12 19,310 390 13쪽
» 5화 이상한게 보인다 +8 24.05.11 19,961 379 11쪽
4 4화 간택당하다 +16 24.05.10 20,295 402 12쪽
3 3화 단기속성과외 +15 24.05.09 20,709 407 11쪽
2 2화 삿된 것이 씌였다 +29 24.05.08 23,286 419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