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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입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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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최근연재일 :
2024.05.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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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0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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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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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DUMMY

둘 사이에는 적막이 흘렀다.

아스트라 공작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지뢰를 밟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은 많다.


“그럼, 형식상 약혼만 진행하는 건 어떤가?”

“형식상.. 인가요?”

“그래. 약혼만 진행하고 결혼은 하기 이전에 약혼을 끝내는 거지.”


계약 약혼.

로판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다.

서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약혼이 필수 불가결해질 경우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약혼하는 그런 계약.


“공작님도 저랑 아스트라 영애와의 약혼으로 얻으려는 게 있으신가 보군요.”

“레헤나의 안전이지.”

“안전이라... 그건 딱히 약혼이 아니더라도 제가 좀 더 신경쓰면..”

“계약은 확실해야 하는 법이지.”


공작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말뿐인 계약보다는 확실히 계약서가 있는 계약이 더 신뢰가 갈 테니까.

이 부분에서는 딱히 지적할 말은 없다.

다른 부분은 있지만.


“레헤나 영애와 상의 된 얘기 인 것입니까?”

“...”


대답이 없는 아스트라 공작을 보며 생각했다.

그럴 리 없지.

약혼이라는 주제에 가장 민감할 존재인 당사자. 레헤나 아스트라는 전날 평소와도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약혼 건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당사자와 상의 되지 않은 건은 얘기하기 싫거든요.”

“레헤나를 위해서네.”

“... 그런가요? 근데. 정말로요?”


아스트라 공작가 네인은 눈을 마주쳤다.

네인의 눈은 여전히 초점을 잃은 공허한 상태지만 신기하게도 그 눈이 아스트라 공작의 내면을 비추는 것 같았다.


“육아. 힘들죠?”

“..?”

“애는 잘 자라줬으면 좋겠고 늘 좋은 것만 곁에 두면 좋겠는데 정작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 그렇지.”

“근데 그렇게 자란 아이는 강할까요?”

“...”

“온실 속 화초는 물 안 주면 죽고 온도가 안 맞으면 죽고 하여간 여러 가지 이유로 죽죠. 잡초는 죽이려고 들어도 계속 살아남고요.”“하고 싶은 말이 뭔가?”

“적당히 감싸라고요.”


오냐오냐하기만 하면 애는 성장하되 성숙해지지 않는다.

다행히도 레헤나 아스트라의 경우는 그런 방향으로 자라지도 않았고 환경도 그런 환경도 아니었다.

공작부인이 있어 어린아이의 테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공작의 무모한 9써클 진입 시도로 인해 오랜 기간 공작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지 또래보다는 어른스러워지긴 했다.

선천적인 어른스러움이면 이해는 한다. 어른답게 행동하는 애들은 가끔 존재하니까. 하지만 레헤나는 후천적 요인으로 어른스러워진 케이스다.


‘그것도 지금으로써는 반쯤이지만.’


하고 싶은 말은 그거다.


“애는 어느샌가 훌쩍 보면 자라있어요. 곁에 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거든요. 오히려 곁에 둠으로써 성장이 더딘 경우가 많죠.”

“그래서?”

“풀어버리세요. 세상 밖으로.”

“흠...”

아스트라 공작도 머리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레헤나 아스트라는 약하지 않다. 또래에서는 손꼽히는 강자에 속하며 세상에서도 강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중이떠중이로 취급받을 존재는 아니다.

아스트라 공작가의 외동딸이라는 입장도 있으니, 가문을 벗어나도 가문의 수호를 못 받는 건 아니다.

충분히 세상 경험을 할 정도의 힘은 있다.


“레헤나는 아직 어리다.”

“그렇죠. 하지만 지금 공작님 생각을 봤을 때 영애가 성인이 되어서도 감싸고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충고드리는 거에요.”

“충고는 감사하게 받지.”


아스트라 공작 본인도 이번에는 확실히 냉정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레헤나의 장래를 생각하지는 못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지만 약혼은 다른 얘기라고 생각이 드는군.”

“아쫌..!”


그 이후 몇분을 더 따지고 얘기해서 네인은 겨우 공작의 곁을 벗어날 수 있었다.


“가족인가...”


네인은 복도를 거닐면서 생각했다.

가족,

가족이란 이유로 아스트라 공작은 레헤나에게 많은 걸 투자했다. 물론 투자라고 보기는 좀 애매하다. 어떤 시야로는 투자지만 그들의 생각과 의미에 투자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가족...”


네인의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는 공허한 상태다.


“레코드.”

“왜?”


허공에서 전조도 없이 튀어나온 앞치마를 두른 레코드.


“웬 앞치마냐?”

“요리하다 왔는데.”

“굳이?”

“굳이니까?”

“그러냐.”

“근데 왜 불러냈어?”

“그냥 애들 뭐하나 궁금해서.”

“에이는 여전히 연무장에서 검 수련, 퀸은 아스트라 공녀와 차 마시고 있고 케이는 체술단련 중.”

“그러냐.”


레코드는 상태가 이상해 보이는 네인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상하다. 뭔가 이상한 점은 안 느껴지는데.”

“왜?”

“그냥. 평소랑 좀 다른...? 네인. 눈 왜그래?”

“눈?”

“죽은 동태눈 같아 보이는데?”

“그래? 그렇구나.”


평소라면 반응에 약간의 저항 같은 게 있는데 이 반응은 저항조차 없다.

물은 물이요 바람은 바람이로다. 같은 반응. 이 반응일 경우 둘 중 하나다.


“화났어?”

“...? 아니.”

“짜증은?”

“그닥?”

“이상하다.. 이 상태라면 보통 둘 중 하나는 전조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네인의 상태는 공허상태다.

무언가 하려는 욕구, 욕망, 욕심 일체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현자 타임.

평소라면 그 전에 그 전조가 있었다.

화를 낸다던가 짜증을 낸다던가 그리고 그 후의 결과물은 지금과 같은 상태다.

근데 지금 네인의 말을 들어보면 그 전조조차 없이 현자 타임에 도달했다.


“뭔 일 있었어?”

“... 어? 뭔 말 했어? 레코드.”


말을 못 알아들었다는 듯 되물은 네인. 그 순간 레코드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네인. 너 내 말 들려?”

“사실 잘 안 들려.”


이상하다. 저 상태는 오히려 소리가 더 잘 들릴 텐데.


“감각은? 몸은 잘 움직여?”

“아니.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어떤 느낌인데.”

“... 물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

“물이라..”


레코드는 네인의 상태에 대해서 감도 못 잡고 있다.

전능과 네인의 심리상태가 겹쳐 현재 상황을 만든 건 잘 알겠다.

근데 딱 거기까지.

네인의 심리 중 어디가 문제고 전능의 어느 부분이 겹쳐 현재 상황을 만든 것인지에 대해서는 레코드도 알 수 없다.

안다면 1번과 2번 정도.


“불편해?”

“애매해, 불편하긴 한데 편한 것 같기도 하고.”



움직이는데 저항감이 있다.

감각도 평소보다 더 둔해진 것 같고 숨은.. 잘 쉬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근데 딱히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레코드.”

“왜?”

“눈 좀 다른 사람들 눈에 정상적인 눈으로 보이게 해줄 수 있어?”

“가능한데 왜?”

“한번 이대로 지내보려고.”

“미치셨습니까? 휴먼.”

“안 미쳤어.”


네인은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둔한 것 같기도 하고 예민한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네.”

“나쁘지는 않아?”

“어.”


딱!


레코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일단 ‘우리’ 외에는 정상적인 눈으로 보이게 해놨어.”

“고마워.”

“이상하면 말해라. 나는 빵 만들러 갈 거니까.”

“제과제빵?”

“어. 너도 흥미 있었잖아?”

“그랬지.”

“같이갈래?”

“.. 나는 됐어.”

“그래? 그럼 무슨 일 있으면 다시 불러라?”


그렇게 레코드는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

네인은 사라진 레코드를 뒤로 하고 현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이상하긴 하지만 딱히 불편하지 않은 현상이다.

정신 줄이 아슬아슬 붙어있다는 감각이 나름 신선하기도 했고 그렇다고 위태로운 느낌은 없으니까.


‘가장 확률이 높은 이유는 정신적인 문제와 전능이 섞여 이 사단을 냈다는 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인데...’


과연 뭐가 트리거가 되었길래 이런 상황이 되어버린 걸까.


저벅 저벅


발소리가 귓가에 퍼지듯 울린다.

만약 여기서 물소리가 조금 들렸다면 정말로 세상이 물에 잠겼다고 착각할 만큼 몸 전체가 약간 가벼워진 기분과 함께 신체에 압력을 받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압박은 늘 받는구나?’


기압.

혹은 대기압이라 불리며 간단히 말해서 대기의 압력.


‘근데 생각이 점점 산으로 가네.’


생각이 산으로 가는 건 늘 있던 일이라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다만 이대로 아무것도 떠올리는 것 없이 생각이 산으로 가면 문제가 된다.


첨벙.


정신을 차려보니 물속에 들어와 있었다.

수면 위를 바라보니 해처럼 보이는 발광체가 있고 바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움직일까? 아니면 이대로 있을까?’


몸이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이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 쳤을 거고 그 외의 사람들은 그대로 가라앉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내려가 볼까.’


네인은 물속 바닥까지 내려가 보려고 했다.


‘근데 어떻게 내려가지?’


수영은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기회가 적어 잘하지는 못한다.


꼬르르륵...


결국 가만히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어두워지긴 했지만, 압력이 세진다거나 몸이 둔해진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과 신경이 예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뭘까? 이 아래에 뭐가 있길래 이런 감각이 드는 거지?’


그리고 이곳은 어떤 곳이길래 나는 어떻게 이곳에 온 거지?


찰칵!


발목에 단단한 뭐가 닿는 느낌과 동시에 수갑에서 들릴법한 소리가 들렸다.


‘어?’


촤르르륵-


사슬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몸이 거꾸로 뒤집히는 동시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어... 어?!’


푸확!


“월척이요!”


월척이란 말과 함께 몸이 수면위로 튀어 올랐다.


“이게 뭔...”


철푸덕


몸이 땅에 닿자, 급격하게 피곤해진 네인은 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여긴 또 어디야..”

“안녕?”


고개를 드니 양반다리를 하고 눈앞에서 앉아있는 남자. 그리고 그 얼굴.


“너.. 뭐야?”

“나? 글쎄다? 나는 누굴까요?”


네인과 같은 얼굴을 한 남자였다.


“도플갱어?”

“흔한 답이네. 그리고 틀렸어. 여긴 현실 세계가 아니거든?”

“현실 세계?”

“하늘 좀 볼래?”


남자의 말에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것 같다.


해와 달이 같이 떠 있으며 번개가 구름같이 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땅이라고 생각하던 곳은 물이었으며 물이라고 추측되는 곳에는 구름이 보였다.


“여긴.. 어디 인가요?”

“어디긴? 너의 내부지. 환영할 게 드디어 이곳의 주인이 왔네.”


네인과 닮은 남자는 네인을 보며 웃었다.

그 시각 네인의 심상 세계 어딘가.


[... 네인?]


2번이 이변을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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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약 혹은 약속 23.07.18 2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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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싸움의 기준 23.07.12 2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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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세번째 권유 23.07.10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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