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입니다 아마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최근연재일 :
2024.05.28 08:00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7,037
추천수 :
69
글자수 :
604,358

작성
23.08.27 22:00
조회
15
추천
0
글자
12쪽

6개월

DUMMY

‘이렇게 설명하려면 되려나?’


네인은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인간은 같을까?”

“무슨 소리야?”

“인간은 전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할까?”

“아니지.”

“그래 아니지. 모두가 그럴 수는 없어. 그게 이유야.”


에이의 표정에 별다른 반응이 없자 네인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사람의 종류를 선인과 악인의 두 종류가 있다고 예시를 들어보면 이 세상의 인간들 전부가 선인과 악인으로 나뉠까?”

“그렇지 않나?”

“아니야.”


에이의 의문에 네인은 웃었다. 네인은 뭐가 웃긴 걸까?


“예시를 들어볼까? 어떤 인간이 인간을 죽였어. 그건 악행일까?”

“악행이지.”


망설임 없이 악이라 말한 에이의 대답에 네인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 죽인 인간이 인간을 백 명을 죽인 연쇄살인마라면? 그런데도 그 행동은 악인 걸까?”


문제. 악을 없애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면 그것은 선행인가 악행인가.

선악의 논리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논리 중 하나다.

악을 저지하기 위해 악을 자처하는 이를 악으로 봐야 하나 선으로 봐야 하나.

네인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 자체가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이니, 악이니 그런 판단이 인간, 사람을 더욱더 망가트리는 주제니까.

선이라 판단한 이들은 악의 징벌 혹은 심판이라는 이유를 대며 선이라 판단할 것이며 악이라 판단한 이들은 인간의 법률 혹은 생명의 존중이라는 이유를 댈 것이다.

네인은 정답이 없는 주제라 생각해서 딱히 다른 의견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저 다른 사람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고 넘기지.

그리고 에이는...


“선이지.”


전자인 모양이다.

이러면 설명이 생각보다 쉬워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자! 그럼 여기서 살인 동기는 인간 모두가 같을까?”

“... 아니지.”


복수를 위해.

쾌락을 위해.

자신의 이득을 위해.

타인의 손해를 위해.

뭐 그런 가지각색들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 다시 질문. 과연 인간이 전부 같을까?”

“아니지.”

“맞아. 착한 인간, 나쁜 인간, 이상한 인간, 솔직한 인간. 여러 종류의 인간이 있어. 그리고 나는 나쁜 인간을 싫어해. 그게 인간이 싫은 이유이고 나는 착한 인간을 좋아해서 인간이 좋아.”

“..!”

“이제 이해가 됐어?”


나쁜 인간이 있다고 해서 인간 자체를 혐오할 필요는 없다.

착한 인간이 있다고 해서 인간 자체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쁜 인간을 싫어하고 착한 인간을 좋아하면 된다.

그저 그거 하나를 알면 된다.


“인간이라서라는 이유는 딱히 필요가 없어. 중요한 건 내가 보는 인간이 착한 인간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게 중요하지.”


선행을 하면서 악행을 하는 악인은 많다.

악행을 하면서 선행을 하는 선인도 많고.

결국 선인과 악인을 정하는 건 선행과 악행의 저울에서 어느 쪽의 무게가 더 큰지에 따라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저울은 무게추로 기울기를 조절할 수 있다.


“인간을 전체가 아닌 개인으로 보는 것. 내가 인간을 좋아하는 것과 동시에 싫어할 수 있는 이유야.”

“그게 가능한 건가?”

“가능하지. 그게 불가능했으면.”


네인은 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이러고 있을까?”


오싹.


네인은 곧바로 손으로 얼굴을 가려 표정을 감추었지만, 그 잠깐동안 레코드를 제외한 모두가 섬뜩한 기운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 좀 심했나?”


손을 내린 네인은 여느 때와 같은 표정이었지만 다른 이들은 평소와 같을 수가 없었다.

방금 전 네인이 보여준 표정에서 느낀 감상은 자신이 포식자의 앞에 놓인 피식자의 감각과 엇비슷하게 느껴졌으니까.


짝!


레코드가 손뼉을 치자 섬뜩한 기운이 곧바로 사라졌다.


“하여간 다들 이상한 데서 신경 쓰네.”

“응?”

“넌 머저리고.”

“어? 왜?”

“있어 임마.”


왠지 모르게 화가 난 레코드에게 의문을 표하는 네인, 한편 다른 이들은 방금 전의 살벌한 기운을 날려버린 게 레코드란걸 눈치챘다.


“에이.”

“어... 어?”

“왜 그래?”

“.. 아무것도 아니다.”


‘레코드.. 어떤 방식으로 기운을 날린 거지?’


에이는 레코드가 한 행동을 기억 속에서 더듬어봤지만, 기운을 날릴만한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다.


“에이~ 질문 안 해?”

“하겠다.”


일단은 당장의 호기심부터 해결하자.


“마지막 질문이다.”

“그래.”

“네인. 너는 뭘 하고 싶은 거냐.”

“정확히는?”

“무엇을 이루고 싶은 거냐.”

“이루고 싶은거라...”


네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거리며 생각했다. 다만 생각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없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기 때문이다.


“없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는데.”

“생각하는 시간이 짧잖아!”

“그래도 말이지? 하고 싶은 건 많아. 근데 딱히 그걸 끝까지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요’란 말이지?”


하고 싶은 건 많다. 당장 무에 대한 수련과 마법 연구가 그 증거니까. 다만 그것을 통해 내가 이곳에 남기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요다.

이 행위는 단순 재미를 위해서일 뿐이다.

목적이 있긴 하지만 크게 보면 결국 재미를 위한 목적. 굳이 끝을 볼 필요는 없다.


“그래도 이루고 싶은 건 몰라도 해야 할 건 있지. 에러의 제거.”


네인은 신과의 약속을 말했다.

비밀 유지 서약 같은 건 안 했으니 말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했고 딱히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으니까.


“신.. 이라.”

“애초에 이 능력 자체도 신한테 받은 거니까.”

“무슨 신인지는 모르는 건가?”

“몰라요. 예측도 안 되거든요.”


공작의 질문에 네인도 이전에 그런 생각을 가진 때를 떠올렸다. 과연 무슨 신이길래 이런 능력을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답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 신은 능력에 관해 보여준 것이 없었고 외견에 대해서는 신은 약간의 변장 정도는 간단히 해낼 테니 의미가 없으니까.

그래서 찾는 건 그만뒀다.


“그럼, 그 뒤에는?”

“죽어야지.”

“왜?!”

“어차피 살 생각은 없었거든.”

“전지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죽는다고?”

“반납하고 죽어야겠지?”

“왜?!”


왜.

나는 왜 죽으려 하는 건가.


푸흡!


그러고 보니 이미 답은 정해뒀었구나.


“네인?”


돌연 웃는 네인이 이상하게 보인 건지 에이는 의문을 표했다.


“이미 한번 죽었으니까.”


한번 죽었다. 그 말을 제대로 된 의미로 들은 건 아마 에이뿐일 거다. 에이는 네인이 전생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그럼, 질문은 여기까지 받도록 할게. 정 궁금한 거 있으면 레코드한테 물어보든가.”

“나 진짜 전부 대답한다?”

“하든가~”


네인이 집무실로 나가고 시선은 레코드에게 집중되었다.


“그.. 질문은 천천히!”


‘야 이 자식아!’


레코드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





해가 지나고 3월.

설녀와 설인이 인간이 되고 난 후 큰일은 없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일을 할 뿐.

변한 것도 있다.

우선 설인과 설녀.

그 둘에게는 네인이 케이, 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은 대충 지은 거라 마음에 안 들면 본인 스스로 지어도 된다고 했지만 둘은 그 이름을 쓰기로 했다.

에이는 익스퍼트의 경지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마나를 사용하는 건 괜찮지만 역시 힘 조절에는 힘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레코드와 아스트라 공작은 평소대로. 그리고 네인과 아스트라 공녀는 2월에 둘 다 6써클에 도달했다.

네인이 공작가에서 한 연구들이 6써클을 위한 것도 있고 둘 다 벽 한 개를 남겨두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스트라 공녀는 네인이 자신의 연구를 공유하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남이 이룬 것을 자신이 가로채는 것이 싫어서인지 연구 자체에는 흥미를 보여도 한사코 거절했으니까. 하지만 네인은 계속 설득해 결국 서로 6써클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공작부인은 안 계시네요? 돌아가신 건 아닌 걸로 아는데.”

“남부 사람이다 보니 겨울을 나기 힘들어 처가에 있지.”

“아?”

“다들 아는 정보인데 모르는 건가?”

“예.”


아스트라 공작 집무실에서 공작과 네인이 마주 보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거 향이 좋군.”

“유자차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차거든요.”

“동방의 것인가?”

“아마요? 이곳에서 유자가 있다는 정보는 확인 안 해봤는데. 모과도 있으려나?”


네인은 창가로 눈을 돌렸다.

눈이 녹기 시작하고 새싹이 트는 계절인 봄이 왔다는 것 정도는 눈으로 보일 정도다.


“6개월.. 정도 있었나요?”

“그렇지.”

“이야~ 너무 오래 있었다.”

“이제 떠날 건가.”

“떠나야죠. 공작가가 제 집도 아닌데.”

“집이라...”


아스트라 공작은 뭐라도 말하려는 듯 자세를 고쳐잡았다.


“뭐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그러고 보니 약혼자가 없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

“네. 결혼에는 흥미가 없고 부모님도 그 부분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아서 약혼은 미뤄두고 있거든요.”


평범한 귀족 자제라면 어릴 때부터 약혼자가 내정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네인에게는 다행하게도 레비탄 백작가는 평범한 귀족가가 아니었다.

두 분 다 결혼에 관심이 없다가 서로에게 관심이 생겨 연애 결혼한 분이시라 정략혼은 강제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연애결혼을 적극 추천하시지만, 연애결혼에도 흥미가 없는 네인은 그저 약혼자 없는 자유로운 상태가 될 뿐이라 다행이라 생각한다.


‘근데 이 클리셰라면...?’


“내 딸. 레헤나와 약혼해 볼 생각이 없나?”


‘역시 그건가요!’


뭐.. 공작 입장에서도 네인을 약혼자로서 괜찮은 녀석이라는 생각은 한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공작 자신이 봐도 놀라울 정도의 마법 연구들은 물론이거니와 네인 개인이 소유한 ‘능력’, 11살이라는 나이에 6써클과 익스퍼트에 오른 천재, 제국 창설이래 계속 제국의 서쪽을 지킨 변경백 레비탄 백작가라는 배경.

약혼자로서는 괜찮은 인재다.

아닌가? 괜찮기보다는 상당히 매력적인 인재인 건가?


“거절해도 되나요?”

“이유를 듣고 싶군.”

“연애는 아직 하고 싶지 않아서요.”

“약혼은 연애가 아니다.”

“알죠. 아는데 딱히 사람들이랑 정들기 싫거든요.”


네인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6개월간 계속 봐온 아스트라 공작은 알 수 있었다. 네인의 본심은 눈의 초점이 흐릿해지는 순간 나온다.


“정드는 게 그렇게 무섭나?”

“그것보다는... 사랑이 제일 무섭거든요.”

“사랑이 무섭다라.. 사랑을 해본 적이 있다는 말투로군.”

“해본 적 있어요. 첫사랑.”

“...!”


네인의 눈은 여전히 흐릿한 상태다. 그리고 저 상태는 늘 진실만을 말해왔다.


“사랑. 솔직히 겪어본 적 없을 때는 왜 저러는지 이해 못 했었는데 겪어보니까 잘 알겠더라고요. 인생에서 가장 무서워야 할 순간이 어느 때면 사랑에 빠졌을 때라는 걸요.”


네인은 아직도 첫사랑에 대해 기억한다. 더 정확히는 그때의 기분을.

하면 안 된다는 이성적인 판단과 하고 싶다는 감성적인 판단을 동시에 한다.

이성적인 판단이 옳다고 판단하면서 감성적인 판단을 행동한다.

머리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지만 몸은 그것을 실행하고 마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충족감이 들었으며 차후에는 섬뜩함이 몸을 가득 채웠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기분. 그러면서 내가 이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몸과 마음.

사랑하면 사람이 바뀐다고 하지만 체감하니 사람이 바뀌는 정도가 아니었다.

사랑의 크기에 따라 그 사람의 근본을 뒤틀 수도 있다.

네인은 적어도 그렇게 판단했다.


“그래서 저는 약혼 안 합니다. 두 번 다시 사랑 같은 거 안 하고 싶거든요.”


사랑은 싫다. 하지만 인구의 약 절반은 여자다. 그럼 생각을 바꾸면 된다.

여자를 이성으로 보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그럴 껀덕지조차 만들지 않으면 된다.

그러니까 약혼은 안 된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간입니다 아마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7 저주 23.10.13 11 0 13쪽
86 파탄 23.10.05 12 0 11쪽
85 적탑의 장로 23.09.29 12 0 12쪽
84 23.09.24 13 0 12쪽
83 집지키는 개 23.09.20 13 0 11쪽
82 시스템 23.09.16 15 0 12쪽
81 과정 23.09.12 13 0 13쪽
80 악의(惡意) 23.09.09 15 0 10쪽
79 심상(沈想) 23.09.06 18 0 11쪽
78 이변 23.09.01 13 0 11쪽
» 6개월 23.08.27 16 0 12쪽
76 문답 23.08.24 15 0 12쪽
75 깨어남 23.08.21 18 0 11쪽
74 네인(8) 23.08.18 17 0 11쪽
73 네인(7) 23.08.15 16 0 12쪽
72 네인(6) 23.08.10 17 0 12쪽
71 네인(5) 23.08.08 15 0 13쪽
70 네인(4) 23.08.04 19 1 12쪽
69 네인(3) 23.08.02 21 1 11쪽
68 네인(2) 23.08.01 19 1 14쪽
67 네인 23.07.29 22 0 14쪽
66 심상 세계 23.07.26 21 0 11쪽
65 갈림길 23.07.21 24 0 11쪽
64 또 다른 이야기 23.07.20 23 0 11쪽
63 마지막의 마지막 23.07.19 27 0 11쪽
62 제약 혹은 약속 23.07.18 24 0 12쪽
61 인간의 의미 23.07.17 27 0 11쪽
60 싸움의 기준 23.07.12 27 0 11쪽
59 이야기의 방향 23.07.11 30 0 11쪽
58 세번째 권유 23.07.10 30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