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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입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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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그코크
작품등록일 :
2023.05.11 21:42
최근연재일 :
2024.05.28 0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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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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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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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네인(8)

DUMMY

제발.

9번은 이번만큼은 신에게 빌고 싶을 만큼 간절했다.

저 세계수의 입에서 알고 있다는 말이 나와야 한다.

그만큼 이 사항은 중요한 사항이다.


“네인.. 레비탄이라는 인간 말인가요?”

“네.”


알고 있다고 말해라.

알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제발.

제발...

신이시여 제발.


“모릅니다.”

“... 하!”


9번은 자기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모른다.

모른다라....

세계수가 인간을 모른다라.


“다음 질문을 해도 될까요?”

“하시지요.”

“원정이라는 인간을 아십니까?”

“모릅니다.”

“정겸이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모릅니다.”

“...? 9번?”


이번만큼은 1번만큼도 당황했다. 정겸이라는 이름은 네인의 전생의 이름이니까.

그것도 저주라고 생각하는 이름.


“야 9번 너 무슨 생각으로..?!”


1번은 네인의 전생의 이름을 언급한 걸 따질 생각이었지만 더는 따질 수가 없었다.

9번의 표정이 다른 이로 하여금 살벌하다고 느낄 정도로 화난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살벌함 때문에 주변의 초목이 시끄러웠다.


‘9번이 이렇게까지 화났다고? 뭐지?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세계수, 이름, 네인.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건 없다.

무슨 연관이 있어서 이렇게 화가 나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8번! 거기 있지!”


9번의 외침에 공중에서 눈이 꿈뻑였다.


“뭐냐.”

“5번. 당장 5번에게 가야겠어.”

“5번의 위치는 나도...”

“마수의 산맥 꼭대기. 당장 게이트 열어!”


치지직..


9번의 바로 앞에 9번 크기의 푸른 안개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9번은 망설임 없이 그곳에 들어갔다.

9번은 떠나고 세계수의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1번은 8번에게 물었다.


“8번. 9번 왜 저렇게 화난 건지 알아?”

“상황은?”

“.. 못봤어?”

“아직 인간의 눈이 더 익숙해서 정확한 건 모른다.”


8번은 ‘눈’이 많다. 너무 많아서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필요할 때 사용할 눈을 뜬다.


“그거 언제쯤 익숙해질 것 같아?”

“앞으로 5년 뒤면 제국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파악할 정도는 된다.”

“전부는 무리야?”

“무리다. 처음부터 이렇게 태어났으면 모를까. 근본이 인간이었으니까.”

“그건 안타깝네. 아! 그래서 상황 말이지?”


1번은 8번에게 이곳에 오게 된 경위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했다.


“그렇군. 9번은 아마 네인이 인간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다.”

“세계수한테 질문하 는게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이곳의 세계수는 보통의 세계수와 조금 달라. 정확히는 하는 일이 하나 더 있지.”

“뭔데?”

“명계의 입구.”


명계.

속칭 죽은자들의 세계. 이곳의 세계수는 그런 명계의 입구 역할을 한다.


“아.. 그래서?”

“저승사자를 생각하면 간단하지.”


저승사자는 죽은자의 혼을 명계로 이끈다.

그때 죽은자의 이름을 불러 그 인물이 맞는지 확인한다.


“아.. 그러니까. 세계수는 모든 생물의 이름을 아는 거야?”

“정확히는 자신보다 격이 낮은 인물만 알겠지.”


1번과 8번은 세계수를 바라봤다.


“대답해 드릴 의무는 없습니다.”

“그렇다는데?”

“어차피 알아도 딱히 쓸모없는 정보니까.”

“그럼 9번이 화난 이유는 네인이 인간이 아니라서야?”

“정확히는 이걸로 세 개 중 하나라는 것이 확정되어서겠지.”

“세 개 중 하나?”

“인간이 아니거나, 이미 죽은 상태거나, 아니면 세계수와 같거나 더 높은 격의 존재거나.”


1번이나 2번이면 어떻게든 능력으로 해결된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가장 높은 일은 아마 세계수와 같거나 더 높은 격의 존재.


“아... 그래서 화난 거구나?”

“1번 너는 화가 안 나나?”

“네인이 인간이 아닌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어서 딱히?”

“?! 그게 무슨 말이야!”


8번은 평소답지 않게 놀랐다.

네인은 놀라는 일이 별로 없었다.

주변에 무감각한 것도 있고 놀랄만한 일도 별로 없어 예상외의 일이 벌어지면 평소에는 어? 하고 만다.


“나랑 2번, 5번은 네인이 인간이 아닌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그게 말이야?! 아니 그것보다 너랑 2번은 그렇다 치는데 5번은 어떻게?”

“5번의 성향이 네인의 어디였는지 기억안나?”

“... 호기심.”

“그리고 질문이지.”


5번은 네인의 호기심과 그걸 더 파고들기 위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성향이 있다.

추론하고 분석하고 판단하고 결론짓는 걸 좋아한다.

네인의 몸속에서 네인을 관찰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보니 5번은 네인에게 주어진 상황, 판단, 결론들을 분석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점에 도달했다.

네인은 과연 인간인건가.

네인에게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1번과 2번은 그냥 알고 있었다.

5번만이 유일하게 스스로 현재 네인의 정체에 도달했다.

네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이제는 너도 알게 됐네. 9번, 아니 메모리.”


9번 메모리.


“5번.. 아니 레코드. 말해. 왜 숨겼어.”


5번 레코드.


둘은 마수의 산맥 정상에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왜 숨겼냐고? 그냥?”

“그냥이 어디 있어 이 자식아!”

“그냥이 어디 있긴. 이유가 없으니까 그냥이지.”

“야!”


레코드는 정상 아래의 구름을 쳐다보며 말했다.


“힌트는 많았지. 그걸 무시한 건 너희들이잖아?”

“...”

“본체는 주의 깊게 그리고 주변은 넓게 보는 것. 그게 어렵긴 하지만 그렇게 한번 보면 쉽지. 알잖아?”


숲을 보는가. 나무를 보는가.

물론 숲과 나무를 둘 다 보는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상당수가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간단하다. 따로 보면 된다.

숲을 보다가 나무를 보고 나무를 보다가 숲을 본다.

관찰도 마찬가지다.

한 생명을 관찰할 때 그 생물의 외견과 구조만을 보고 관찰한다고 하지 않는다.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 먹이, 날씨, 시간.

그 생물을 포함해 주변을 바라봐야 비로소 그 생물을 ‘관찰’한다고 할 수 있다.

레코드가 하는 말은 바로 그것이다.

너희들은 네인의 주변을 보지 않았다.


“애초에 네인을 죽이냐 살리냐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생각되지 않아? 메모리.”

“...”

“우리는 도구야. 사용되길 기다리는 도구. 도구가 도구의 본분을 잊으면 어떡해?”

“우리는 네인이야.”

“그리고 도구지. 본분을 잊지 마.”


레코드의 말은 주제넘게 주인의 생사여탈에 관여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애초에 본인 인생 본인이 판단해야지 남이 판단할 수는 없어. 남은 남일 뿐이니까.”

“하지만 네인은...!”

“네인도 이미 알고 있어. 본인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어?”

“오히려 나는 네인이 지금까지 본인이 인간이라고 되뇌이는 것도 아는 니들이 네인이 스스로 인간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게 이상하다고 느끼질 않아서 이상해했는데. 그냥 신경 안 썼구나?”


메모리는 침묵했다.

레코드의 말대로 메모리를 포함한 다른 인격들도 가끔 자신을 인간이라고 상기시키는 네인을 보았고 또 계속해서 그 기간이 짧아지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본인도 네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메모리.”

“응.”

“너희들은 화낼 자격이 없어. 알지?”

“... 어.”

“애초에 네인이 우리들을 정했을 때 네인이 우리를 ‘도구’로 지칭한 이유를 모르지는 않겠지. 너희도 네인이니까.”


도구이자 네인. 하지만 9번을 포함한 다른 인격들도 도구라는 정체성보다는 네인이라는 정체성을 우선시했다.


“제일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 네가 이러니 나도 참 할 말이 없네.”

“.. 미안하다.”

“아냐. 능력 때문에 지식을 너무 많이 쌓아둬서 우선시해야 할 일을 까먹은 거겠지. 그건 이해할 수 있어.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이제부터라도 도구라는 본분을 기억하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다른 녀석들이지.”


분명 다른 인격들도 도구라는 정체성보다 네인이라는 정체성을 우선해서 이상한 짓을 할 생각을 하는 녀석들이 있을 것이다.


“그건 내가 해결해 보지.”


레코드와 메모리 사이에 8번, 인이 눈을 떴다.


“인.”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우리들이 도구인 것도 그렇고 우리를 도구라 칭할 수 있게 해준 네인의 ‘배려’도 잊어버렸으니.”

“그럼 다른 애들의 건은 부탁할게.”

“알겠다.”


인은 그렇게 눈을 감으면서 공중에서 사라졌다.


“메모리.”


레코드는 메모리와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도구야.”

“그래.”

“살아있지 않은 도구.”

“그래.”

“그걸 잊지마.”

“... 잊은건 아니지. 기억이 뒷전으로 밀렸을 뿐.”

“그럼 계속해서 집어넣어. 그럼 되겠네.”

“그걸 말이라고...”

“돌아가. 1번 심심하겠다.”


뒤를 돌아보니 건너왔던 게이트는 여전히 유지 되어있었다.


“레코드.”

“왜?”

“고마워.”

“뭘~”


메모리가 나왔던 게이트에 들어가 사라지고 마수의 산맥 정상에 혼자 남게 된 레코드.


“하여간 애들 뒤치다꺼리하는 거 힘들단 말이지.”


아직 5살밖에 안 된 애들이라 그런지 생각이 짧다.

기억이 네인에게 비롯되어서 자신이 도구라는 것도 까먹는 것도 그렇고 네인을 죽이네 마네 하면서 자기들끼리 네인의 삶의 방식을 자기 맛대로 바꾸려는 것도 그렇고.


“이걸로 애들의 폭주는 한번 막은 건가?”


밖에 나오기 전에 다른 인격들이 조금 위험한 감이 있다는 것 정도는 느꼈다.

1번과 2번은 늘 똑같아서 신경 안 써도 됐었고 3번은 조금 충고만 하면 자제할 정도니 괜찮았지만 역시 다른 인격들은 각자 세계를 돌아다닐 정도로 위험했다.

애들은 네인을 위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게 더 위험에 빠트리는 건 모르는 모양이다. 뭐.. 나중에 왜 이런 사고방식이 네인을 위험하게 하는 건지 잘 알겠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는 않을 거다.

이번 일은 네인은 모르지만 이 일 이후로 더는 날뛰게 하지 않으면 아마 괜찮을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아웃, 크랙, 인, 메모리 5년 뒤에 네인의 곁에 돌아와야 하는 거 알려나?”


모르면 인 시켜서 알리라고 해야겠다.


“그러니까... 좀 가만히 있으면 안 될까? 2번. 나까지 무서워 지려 한다.”


레코드의 원피스 안쪽에 2번의 파편이 붙어있었다.


“들은 대로 애들은 이제 괜찮아 질 거야. 애초에 말은 잘 듣는 애들이잖아? 그러니까 이제는 괜찮아.”


콰득!


“윽!”


파편이 레코드의 허리를 물었다.


“아쫌!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감각이 예민하다고!”


자각.


“그래... 알아서 해라. 그래서 이제 이것 좀 떼어내면 안 될까? 걱정되는 일은 이제 끝났잖아,”


자각.


“네인한테 말해서 이거 떼어내달라 부탁하는 수가 있다?”


철퍽


파편이 바닥에 떨어졌다.


“진작에 이럴 것이지.”


파편이 부풀어 슬라임 같은 외형에 눈이 덩그러니 생겼다.


“2번 너는 이거 처음 보지?”


파편은 눈을 돌려 마수의 산맥 정상에서 아래를 봤다.


“어때? 아.. 저 모습은 말을 못했지.”


파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레코드를 쳐다봤다.


“아하하하.. 그렇게 보지 마. 나도 잊고 있었다고?”


파편은 눈을 반쯤 떴다.


“아 좀! 사람이 그렇게 쩨쩨하게 굴 거냐?”


파편은 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뭐. 됐어. 그냥 이 풍경이나 즐기자고.”


둘은 한참 동안 마수의 산맥 정상의 풍경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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